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05화 (105/205)

각자의 마음 (1)

삐빅- 삐빅- 정신을 일깨우는 소리.

“······.”

그녀의 하루는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우웅-! 그와 동시에 잠들기 전 스스로 되뇌었던 언령. 딱 2시간만 자고 일어나자- 라는 말은 한순간에 마력으로 화해 그녀의 심장을 두들겨 주었고, 그렇게 그녀는 다소 피로에 잠긴 상태로. 남들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각에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고요히 가라앉은 어두컴컴한 새벽의 공기.

“······아.”

몽롱한 정신 속에 손을 더듬거려 시간을 확인해본다. 그러자 워치 속에 떠오른 시각.

[2020. 05. 02 / Am 05:00]

잠들었던 시간이 새벽 3시였으니 수면시간은 겨우 2시간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아리엘은 충분히 수면을 취했다는 듯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애초에 마력이 있는 한, 그리고 저 자신의 특성이 있는 한, 잠은 2시간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했으니 말이다.

아, 물론.

“······피고··· 내.”

그렇다 한들 정신과는 별개로 육체는 휴식을 요구하는 법이었고, 그렇기에 아침마다 느껴지는 무거운 피로감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 침대에서 일어난 그녀의 몸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억눌린 피로 속에 이리저리 흐느적거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니야··· 안 피고내··· 안 피곤해··· 안 피곤해······ 안 피곤하다··· 안 피곤하다······”

그녀의 언령은 분명 이런 부분에서도 좋은 범용성을 갖추고 있었고, 다시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특성과 만나 스스로가 원하는 심상을 말로써 현실에 투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기중의 마력과 공명하는 목소리.

한줄기 현상으로 화해 휘몰아치는 마력.

우웅-! 그 순간 마력은 그녀의 육신을 훑으며 요동쳤고, 몸을 억누르던 피로감이 빠르게 씻겨나가며 몽롱했던 그녀의 정신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멍하니 가라앉은 채로 두 눈을 끔뻑거리던 그녀의 눈동자 속에도 서서히 빛이 깃들었을 뿐.

“······그래. 안 피곤해. 일어나자.”

우웅- 그렇게 또다시 자기암시에 가까운 회복을 통해 피로감을 떨쳐낸 그녀는 아까보단 조금 더 상쾌해진 몸으로, 그러면서도 아직은 조금 몽롱한 정신 속에 주섬주섬 옆에 벗어뒀던 옷을 주워입으며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촤륵- 커튼을 열어 재꼈다.

그렇게 아직 동이 터오기 이전의 하늘. 창백하리 만치 푸르게 질려있는 새벽녘의 색채를 바라보며, 아리엘은 다시 천천히 두 눈을 가라앉혀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두 손을 가운데로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두 눈을 감고 차분히 들이마시는 호흡.

그리고 그렇게.

“나의 말이 바람이 되어 퍼져나가기를. 나의 말이 소리와 뜻을 세운 깃발이 되어 펄럭이기를. 나의 말이 세계에 닿아 한줄기의 뜻을 피워내기를. 물가에 휩쓸린 모래알처럼 목소리는 흝어질지라도 그 속에 담긴 염원만큼은 파도가 되어 바다를 내달리기를······”

천천히 읊조리기 시작한 축언築言

이 순간- 부드럽게 흘러나온 목소리는 염원을 담은 언령이 되었고, 다시 언령을 위한 기도가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기상한 그녀가 매일같이 가장 먼저 행하는 일이었다.

애초에 언령은 말로 자아내는 업이었고,

그리고 마법이란 다시 업의 체현이었다.

우우웅- 그렇기에 아무리 특성이 뛰어나다 한들 평소에 쌓아둔 말의 인과는 언령을 마법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뼈대였으니- 이렇게 반복되는 노력이 쌓였기에 그녀의 목소리는 다른 이들의 언령보다 더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고, 그렇기에 매일같이 반복되는 축언은 분명 그녀에게 있어선 무척 중요한 일과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일종의 의식이기도 했다.

잠들어있던 그녀의 정신을 일깨우는 의식. 아무도 없는 자신의 방에서, 다시 아무런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 고요한 새벽녘 아래였기에 늘어질 수 있었던 무방비한 정신을-

“······게 올바른 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아리엘 화이트’로 일깨워주는 의식.

후우우우웅-!

그런 만큼 이렇게 꼭두새벽에 일어나 축언을 쌓는 행동은 어찌 보면 평범한 17살의 소녀를 다시 한 명의 공략자이자 언령사로 만들어주는 일종의 트리거라고도 볼 수 있었으니- 피로했던 몸에 활력을 부여하고, 몽롱했던 정신을 축언을 통해 일깨우는,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그녀는 그렇게 비로소 평소의 그녀가 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2020. 05. 02 / Am 05:30]

그렇게 정신을 일깨운 그녀가 그다음으로 하는 일은 바로 옷을 갈아입는 것이었다.

물론 오늘은 수업을 듣는 날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조금 부스스한 몰골을 고양이 세수로 간단하게 정리한 뒤, 간편히 레깅스 위에 후드티만 걸친 채로 모자를 푹- 그리고 후드까지 뒤집어 쓴 채 그대로 공원으로 향하였다.

당연히- 이것 또한 매일 반복되는 루틴.

비록 그녀가 육체를 사용하는 계열의 초인은 아닐지언정, 기본적인 체력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법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마력을 사유하는 마법사라 한들 자신의 체력을 꾸준히 관리하는 건 필수적인 행위 아니겠는가?

그렇게 아리엘은 마력을 쓰지 않고 순수한 체력 단련의 일환으로 공원을 몇 바퀴씩 돌기 시작했으며, 한적한 공원의 풍경에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꼈을 따름이었다.

물론 그 만족의 이유는 간단했는데······

‘역시 오늘도 사람이 없네.’

이 광활한 화이트라인의 구역에는 겨우 학년별로 50명의 인원만이 거주하고 있었고, 이곳이 아닐지라도 회랑의 넓은 부지 속에는 인적이 드문 곳도 많았으니- 그녀가 이렇게 부스스한 몰골로 돌아다니더라도 다른 사람과 마주칠 확률은 극히 낮았기 때문이었다.

뭐··· 물론 화이트라인인 만큼 다른 생도들 또한 다들 부지런한 편이었고, 그런 만큼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도 없진 않았기에, 이따금 이런 새벽의 공원일지라도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

“······.”

이곳에선 이렇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으면 서로 말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으니 그게 그녀로선 참 다행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또한 참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 그녀 자신의 모습만큼은 언제나 완벽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루타텔님의 자식이라 그런지 정말 훌륭하네요. 기대되는 아이예요.

-특성의 자연개화라니··· 정말 엄청난 재능입니다! 과연 승천자의 핏줄이라는 건가요?

-3살에 마력을 발현했다더니 역시······!

자신의 모습이 부모의 위상과 연결되고,

자신의 언행이 부모의 명예로 연결되는,

그렇고 그런 삶을 살아온 지도 어언 17년.

아리엘의 인생은 분명 그녀 자신의 것이었으나, 아쉽게도 그 지분만큼은 간신히 51% 정도를 넘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항상 다른 누군가를 투영해왔다.

하지만 물론- 그건 아리엘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지금의 세계는 삭막한 세상이었고, 침식에 세계가 천천히 잠식되어가고 있는 만큼 사람들은 더 많은 희망을 필요로 했으니, 그녀의 존재는 좋은 희망의 소재거리였을 테니 말이다.

스스로 마력을 깨우쳐낸 아이.

스스로 특성을 개화해낸 아이.

그리고.

저 지고한 승천자- 루타텔의 아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초인의 아이로 태어나, 다시 천부적인 자질을 보여줬으니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의 재능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 입증해주기를 원했다. 다시 승천자라는 희망으로 자라날 거란 희망 또한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필요로 했던 건 그저 예쁘장한 어린아이가 아닌, 미래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희망의 상징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 기대를 받아들였다.

그 누구보다 우수하고 뛰어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그러면서도 아비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항상 상냥하고, 친절하고, 겸손한 모습만을 내비쳤다.

그건 분명 무척이나 피곤한 나날이었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순간도 정말 많았던 나날이었지만, 피곤하고 부담스럽긴 했어도 자신은 희망이 품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사소한 부분일지언정 아빠의 발목을 붙잡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미숙함이 아빠를 멈춰 세우면 안될 테니까. 수많은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발걸음이 고작 자신 한 명 때문에 멈칫해서는 안될 테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이곳에 와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언젠가는 그의 짐을 덜어줄 수 있도록.

매일 같이 앞서나갈 수 있도록 노력했고, 다른 누군가의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했고, 다시 다른 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잠을 줄여서라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온종일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일지라도 그건 분명 그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라 생각해왔으니까.

하지만 물론······ 가끔이지만 이런 일상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도 없진 않았다.

이따금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어질 때도 있었고, 연락 한번 하지 않는 아빠가 미워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구한다는 것이 갖는 의미를, 자신은 이미 어린 시절 겪어본 적 있었기에 그런 아버지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건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일이었고, 그녀도 누군가처럼 다른 이들에게 희망으로 자리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바라는 건 단 하나였다.

언젠가는 자신도 아빠와 같은 곳에 설 수 있기를, 그런 능력을 갖춘 공략자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닌,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렇게 해서 결국- 다른 누군가를 안심시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그녀는 바라고 있었다.

“······아리엘님? 안녕하세요!”

“응? 아. 안녕안녕. 좋은 아침이야.”

“옙! 좋은 아침입니당!”

그러기 위해- 그녀의 일상은 하루하루가 완벽함을 위해 빚어지기 위한 나날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잠들고, 일찍 일어나고, 축언을 쌓고, 체력을 관리하고, 수업을 듣고, 수련을 하고, 공부를 하고, 수련하고, 그렇게 다시 달이 기울어져 갈 때 숙소로 복귀하고······ 다른 이들과 똑같이 교차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일지라도, 그녀의 하루는 분명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20. 05. 02 / Am 11:48]

그러기 위해선 다시- 아리엘은 다른 이들에 비해 분명 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어? 아리엘 님이다. 어디 가시지?

-방향 보니까 수련실 가는 것 같은데.

-아리엘은 평소에 뭐 하고 지낼까?

-그러게. 수업 때 말고는 볼일이 없으니까.

-티나네랑 같이 노는 거 아니야?

-공강때는 그러던데 수업 끝나고는 거의 안보이더라. 그나마 도서관에서 가끔?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했고, 하루는 너무나도 짧았으니- 그녀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선 누군가와 어울릴 시간도, 무언가에 흥미를 쏟을 시간도 있을 리 만무했을 뿐.

그렇기에.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당···!’

‘뭐··· 생각해줘서 고맙네.’

아리엘이 지난주부터 유천하와 이하린에게 스터디를 해주기로 결심했던 건 그녀에게 있어선 무척이나 특별한 일이었다. 그녀의 하루는 짧았고, 다시 줄어든 시간만큼 그녀는 매일 더 많은 무리를 감내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아리엘로선 그게 지금의 그녀가 보답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을 뿐이었다.

유천하도, 이하린도 모두 타천자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었으나 자신에겐 다른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줄 능력이 없었다. 그들이 다시 한 번 또 다른 타천자와 맞서 싸웠다는 것도 자신은 뒤늦게 알게 되었고,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 한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을 거란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해줄 수 있었던 건 그들을 위해 온종일 축언을 쌓아 빨리 나으라는 말 한마디를 전해주러 가는 것이었고, 다시 만약을 대비해 이론을 가르쳐주는 것이었으니- 지금으로선 이것이 그녀의 최선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가지.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면 정작 그들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말 너무해.’

그들은 그녀에게 그런 도움까지 줘놓고선, 막상 자신이 무언가를 해주려 하면 둘 다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기에 이전부터 아리엘은 그것이 항상 불만스러웠다.

그 애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심지어 잘 생각해보면- 그 둘은 이제껏 자신에게 단 한 번도 무언가를 기대한 적이 없었다. 타천자가 처음 나타났을 때의 이하린은 자신에게 무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행동에 나섰고, 자신이 기절하고 나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서 싸웠다. 유천하는 아무렇지 않게 타천자를 처리했고, 그러고도 그 둘은 그녀에게 어떠한 감사도, 보답도 바라지 않았다. 마치 그녀에게 아무 기대가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아리엘은 내심 불만스러웠다.

‘······기대만 하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기대도 없는 건 싫단 말이야.’

기대 어린 시선은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그건 그녀가 바라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대 없는 시선은 편했을지언정 이렇게 아무런 도움도 못 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불편했다.

그녀 또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들이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해주는 만큼.

그들이 자신에게 그런 도움을 줬던 만큼.

하지만 그들은 그녀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남궁설아 때도 그렇고, 회랑에 있던 이하린이 테러가 일어났던 곳으로 뛰쳐나갔을 때의 일도, 그 밖의 사소한 일들도. 이제까지 그들은 항상 저들끼리 무언가에 얽혀들어 갔고, 다시 해결해냈다.

대체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하길래 그러는 걸까? 자신은 신뢰가 가지 않는 걸까? 아니면 나름대로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은 그녀를 유망주가 아닌 오로지 평범한 한 사람의 생도. 그저 자신을 그들의 친구로서만 바라봐주기에 그러는 걸지도 몰랐다. 유천하도, 이하린도. 둘 다 그녀의 앞에서 단 한 번도 루타텔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고, 그 말은 다시- 어쩌면 루타텔이라는 배경을 제외한다면 그녀도 생각보다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승천자의 아이가 아닌 평범한 아이.

기대받는 천재가 아닌 평범한 생도.

솔직히 말해서 이하린이라면 모를까 유천하 만큼은 확실히 그녀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는 그럴만한 실력과 재능을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아리엘은 그들과 같이 있을 때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이 흐트러지는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스스럼없이 대해주는 만큼 완벽 하고자 했던 마음이 흐트러졌고, 아무런 기대를 보내오지 않는 만큼 가끔 미묘한 열등감 속에 기분이 우울해질 때가 있었다. 그들, 특히 유천하 앞에 있을 때면 자신도 그저 평범한 생도 중 한 명이 된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티 내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가 그녀를 가끔 시무룩하게 만들때도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그 편안함은 분명 그녀를 즐겁게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아리엘은 그들을 좋아했다.

차가워 보이지만 편안하게 대해주는 그가.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하기만 한 그녀가.

그리고.

자신에게 큰 자극이 되어주는 유천하가.

자신에게 작은 평온을 안겨주는 이하린이.

그녀의 몇 안 되는 친구 중에서도 자신을 그렇게 대해주는 이들은 그들이 처음이었기에, 유천하도, 이하린도, 둘 다 그녀에게는 분명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비록 서로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 안 지났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아리엘은 그들을 위해서라면 그녀의 하루가 뒤엉키는 한이 있더라도 얼마든지 그들에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평범함이 그녀에겐 무척이나 편안하게 느껴졌고, 다시 그녀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히 차올라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

수련을 하러 가던 중 그녀를 발견하게 된 아리엘이, 자신의 루틴을 깨고 그 즉시 그곳을 향해 다가간 것도 어찌 보면 그녀에겐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린이···? 거기서 뭐 해 하린아?”

······그녀의 소중하고도 작은 친구가 완전 울상을 하고선 그곳에 쭈그려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마치, 판다라도 되는 것 마냥 다크서클까지 쭉 내려놓은 채로 말이다.

***

고개 숙인 너머에서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 그 부드러운 목소리에 벤치에 앉아있던 이하린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한 사람.

“······아, 아리엘씨?”

그곳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산뜻한 사복 차림을 한 아리엘이 어딘가 염려스러워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러면서도 언제나처럼 상냥한 미소와 함께 그렇게 서 있었다.

“응! 안녕···? 여기서 모하구 있었어?”

“······아··· 그, 그··· 아··· 안녕하세요?”

그렇게 갑작스러운 조우에 이하린은 뭐 그리 놀랄 일인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리엘은 순간적으로 다소 뜬금없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저 볼을 쿡 찔러보고 싶다- 그게 바로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

솔직히 말해서 저 동그랗게 뜨여진 눈과 말랑해 보이는 볼은 평소에도 항상 그녀의 마음속에 묘한 충동을 일으키는 요소였지만, 정말로 그랬다간 이하린이 울상을 지을 게 뻔했으니 그녀는 평소처럼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충동을 꾹 내리누르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밝게 미소를 지어줬을 뿐이었다.

“응! 안녕! 그래서 지금 뭐 해?”

“어··· 그··· 그러니까아··· 그게에······”

그녀가 이하린과 알고 지낸지도 어언 2달.

물론 그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마냥 짧은 시간도 아니었으니. 그녀가 보기에 이하린은 지금 당황한 게 아니라 그냥 대답해주는 걸 곤란해 하는 중이었다.

‘아니, 뭐 그게 그거인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렇기에.

역시나 평소처럼 하린이다운 모습이구나- 아리엘은 그런 생각 속에 잠시 머리를 굴려보았다. 물론 아리엘 자신은 이 귀여운 친구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정말 이하린이 말하기 곤란해 하는 내용이라면 차라리 그냥 아무것도 캐묻지 않는 편이 좋다는 걸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괜히 엄한 애를 괴롭혀서 뭐하겠는가? 이하린은 섬세한 아이였다.

그리고 물론- 애초에 이하린의 이하린스러움은 생각보다 범주가 꽤 넓은 편이었으니 사실 별거 아닌 이야기일 가능성도 충분히 높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일이 되었든 간에 그녀에게 고민거리가 있는 것이라면 아리엘로선 그녀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을 뿐.

그러므로.

“혹시 말하기 곤란한 일이야?”

“아. 그··· 그건··· 아닌데에······”

넌지시 그녀의 반응을 찔러본 아리엘은 빠르게 정황을 추측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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