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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59화 (59/205)

무림의 검 (3)

앞으로 다가온 그녀- 남궁설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십니까.”

나는 그녀에게 마주 인사를 건네며 그녀를 들여다보았다. 호흡과 내력의 상태를 보아하니 조금 전까지 검을 휘두르다 온 모양. 물론 방금 전까지 위타극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그런 그녀의 노력이 조금 미묘하게 다가왔을 따름이었다.

만약 내가 위타극을 사냥하게 된다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외부에 다녀오시는 건가요?”

“예. 잠시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 왔습니다. 그것보다 이 시간까지 계속 수련을 하고 계셨습니까?”

“······예. 가르침을 받은 대로 천천히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좋은 자세입니다.”

“······.”

내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였다.

그건 분명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내 눈은 그녀의 동공이 조금씩 떨려오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입술도 조금씩 움찔거리는 게 마치 무슨 말을 하려다 삼켜내는 듯한 느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신지요?”

내 말에 그녀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리고는 이내 호흡을 가다듬은 그녀의 입에선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요. 없습니다.”

“······그럼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갈등하는듯한 심정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나 또한 생각이 복잡한 상황이었기에 굳이 내가 나서서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잠시 그녀를 바라본 나는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대강 인사를 건넨 뒤,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날의 검.”

나는 등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스며든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보여주셨던 검로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제껏 본 그 누구의 검보다도요.”

“감사합니다.”

“만약 폐가 안된다면··· 언젠가 다시 한 번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시간이 나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나를 향해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고, 나 또한 마주 묵례함으로써 인사를 건넸다.

“그럼 그때를 기다리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 편안한 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 나는 다시 그녀를 등지고 기숙사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걸어가는 와중에도 그녀의 시선은 내게 날아오고 있었고, 그 시선은 무척이나 따가우면서도 또 차가웠을 뿐이었다.

***

남궁설아에게는 한가지 비밀이 존재했다.

그건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선천적인 자질이었고, 하나의 재능이었으며 또 그녀가 감추고 있는 숨겨진 패이기도 했는데, 그건 바로······

후각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단순히 냄새를 잘 맡는다의 수준을 넘어서 후각만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또 체향을 통해 기의 분위기마저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후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가끔씩 그녀에게 사람들의 비밀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가볍게는 누가 무엇을 먹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서로 사이가 안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이 사실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라든가, 혹은 그 사람이 익힌 무공이 특별한 계열의 무공이라든가- 그런 사실마저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그녀의 후각은 매우 특별했다.

물론 그건 상대가 누구라 할지라도 자연스레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유천하 또한 그녀의 감각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남궁설아가 유천하와 처음 마주했던 날.

유천하의 체향은 독특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무척이나 사나우면서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러면서도 서늘한 열기를 품고 있는 침전된 향. 그는 마치 불가에서 법전을 읊을때 피우는 향과 같은 냄새를 풍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수백 번의 담금질을 통해 연마된 차가운 금속과도 같은 향을 풍기는 자였다.

하지만 그다음에 마주했을 때 그의 몸에서는 여자아이의 체향이 짙게 묻어나왔었다.

그리고 그건 그녀와 같은 수업을 듣는 생도- 이하린의 냄새와 동일했기에 남궁설아는 두 사람의 사이가 특별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유천하의 체향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니, 점점 다채롭게 변해갔다.

그렇게 하루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향.

또 어떤 날에는 서늘하게 곤두서있는 향.

그의 체향은 마주칠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으며, 다른 어떤 날에는 아리엘의 체향마저 언뜻 묻어나왔고, 어떤 날에는 짙은 혈향마저 묻어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렇다.

유천하에게선 가끔씩 짙은 혈향이 풍겨 나올 때가 있었다.

그건 특히 2주 전부터 심해졌는데, 무학담론시간에 마주쳤을 때나, 가끔 수업을 듣기 위해 이동하다 마주칠 때마다 짙은 혈향이 풍겨져 나왔다. 아니, 요즘에는 2학구를 거닐다 보면 허공에 잔류하는 혈향만으로도 유천하가 어디로 향했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또 혈향.”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의 유천하에게선 지금까지 맡았던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혈향이 풍겨오고 있었다. 그나마 평소에는 유천하가 자아내는 특유의 차분한 체향속에 묻혀 감각을 가라앉히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방금 만큼은 정말 압도적인 혈향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수십 명의 사람을 죽이고, 그 피로 목욕이라도 하고 온 것 같은 냄새를 말이다.

하지만 유천하의 행색은 무척이나 깨끗했고, 그의 옷에는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감각이 잘못되었을 리는 없었으니 남궁설아는 다소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물론 타천자를 죽이고, 순례자의 길을 통과한 자가 마인 일리는 없었으니 분명 유천하는 저 나름대로 필요한 행위를 벌이고 다니는 것일 터. 그렇기에 그녀는 유천하에게 그 사실을 물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온 것이냐고.

그리고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냐고.

하지만 어떤 대답이 돌아오든 분명 민감한 이야기가 섞여 있을 터였기에 남궁설아는 차마 그 질문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혼자 고민해보았다.

이 시대에 저렇게 사람과 격전을 치르고 올 일이 뭐가 있을까. 그것도 주기적으로 나서야 할만한 일이? 그녀는 멍하니 유천하가 사라진 길을 바라보며 많은 가능성을 검토해보았고, 이내 그 생각은 결국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마인 사냥.”

그리고 그 결론과 동시에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

“벌써 4월이에요···!”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이하린은 내게 그런 말을 건네왔다. 그녀는 아리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인사 대신 그런 말을 꺼내온 것이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예. 입학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네요.”

“벌써라기엔 뭔가 긴 3월이었던 거 같아.”

“이런저런 일이 많기는 했죠? 특히 저희는 매주 일에 휘말렸던 편이니까요.”

“타천자에 침식역류에··· 으음. 이번 달은 그래도 평화롭게 지나가겠지?”

“······네! 반드시 그럴 거예요!”

이하린이 주먹을 굳게 움켜쥐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엔 그녀 스스로 하는 다짐으로 느껴졌지만, 아리엘이 보기엔 그저 그 모습이 귀여웠던 걸까.

그녀는 이하린을 마주 보며 똑같이 주먹을 움켜쥔 채 이하린과 같이 손을 떨어댔다.

“응! 반드시 그럴 거야!”

“4월은! 반드시 평화롭게···!”

“······.”

마음 같아서는 나도 그에 맞춰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속 편히 안심하고 있기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기에 나는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행히 평소의 표정과 다를 바는 없었는지 이하린은 해맑게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이하린의 더 텐션이 높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아니요. 딱히 뭐 없었는데요···?”

“맞아. 나도 아까부터 그 생각하고 있었어. 하린이 기분이 되게 좋아 보였거든. ”

“······정말요?”

“응! 인사할 때부터 엄청 해맑았는걸?”

그 말에 이하린이 조금 의아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는데,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에 껴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손을 가져갔다.

“여기··· 머리카락에 뭐 붙으셨습니다.”

“···!”

순간 움찔거리는 이하린의 모습이 엿보였기에 나는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그사이에 껴있던 꽃잎만 가볍게 빼내었다. 꽃잎은 무척이나 익숙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어? 벚꽃잎이네? 하린이 오늘 기원관 쪽 산책로 지나왔나 보구나?”

“······.”

이하린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벚꽃이라··· 확실히 봄이긴 한가 보군요.”

그나저나 벚꽃잎을 보는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중원에서도 매화나무는 여러 번 봤었지만 현대에 와서 벚꽃을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중원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짙은 매화 향이 스며든 검법이 떠올랐고, 무림의 풍취가 떠올랐으며, 그 생각은 다시 위타극의 일로 이어졌다.

무림을 살해한 자.

나는 계속해서 그 칭호가 신경 쓰였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1학기가 끝날 때쯤에나 주연들과 맞닥트리게 되겠지만, 카룬드의 일을 생각하면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이하린에게 마도련과 위타극에 대해 아는 게 있냐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지금의 그녀에게는 물어보기는 조금 꺼려질 따름이었다.

“어? 하린이 왜 얼굴이 빨개졌어. 혹시 감기 걸렸어? 봄이어도 몸조심해야지.”

“···아, 아니요···! 그, 그냥 더워서 그래요.”

방금의 일이 부끄러웠는지 당황하는 이하린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아까 그녀가 한 말이 떠올랐다.

4월은 평화롭게- 그렇게 말했던가.

나도 그녀가 그렇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는 지금 순조롭게 성장하는 중이었고, 굳이 위험한 일에 얽힐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조금 얼떨떨한 생각이긴 하지만 그녀는 조금 더 평온을 누려도 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

그런 생각 속에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순간 귓불이 붉어진 이하린이 고개를 치켜들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 그것보다! 회랑 에타에서 본 건데 각성자 협회 분들은 주말에 동해로 자체 MT를 떠난다 하던데··· 다들 들으셨나요?”

“아! 맞아 맞아 그러더라. 마르네가 저번에 자랑했었어. 사람이 너무 조이기만 해도 안 된다면서 실컷 놀다 올거라던데? 침식역류도 겪었겠다. 자기한테 주는 포상이라면서.”

그 말을 직접 들은 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르네가 어떤 말투와 표정으로 말했을지가 그대로 예상되는 기분이었다.

“어···? 근데 그러면 기원학회나 천중무련 쪽에서는 어디 안 가는 건가요?”

“응. 우리 쪽은 대부분 방구석에 있는 걸 선호하는 애들이 많은 편이거든. 그리고 무련쪽 애들은 자기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면서 열심히 수련하러 가던데?”

“······아. 그건 아마도 무학담론의 영향이 아닐까 싶네요.”

그 순간- 이하린이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무학담론 시간이 떠오른 모양.

참고로 무학담론의 강의방식은 첫 수업 이후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무언가를 가르치고, 질타하고, 호통소리가 오간다. 그녀의 말을 들었더니 자연스레 내 귓가로도 갈!- 이라 호통치는 철위강의 환청이 들려올 정도였다.

그리고 당연히 천중무련 소속의 아이들이라면 대부분 무학담론 수업을 듣고 있을테니 다들 비슷한 경험을 겪었을 터였고, 그런 만큼 당연히 수련에 매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무인의 자존심이 있지 그런 소리를 듣고 누가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는가?

그나마 나는 있는 둥 없는 둥 특별 취급을 받고 있었지만 옆에 있는 이하린만 해도 주기적으로 혼나는 편이었고, 다른 아이들은 꽤 열성적으로 질타를 받는 편이었다. 덕분에 무학담론 수업이 끝나고 나면 생도들의 대부분은 죽을상이 된 채 강의실에 널브러지는 편이었고 말이다.

그렇게 잠시 연무장에 널브러졌던 지난주의 이하린을 떠올리고 있자니 갑자기 손목의 스마트워치가 웅- 하고 울려댔다. 그건 주변에 있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자연스레 워치를 확인하였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메시지.

[웹 발신 : 등천회랑 대외홍보팀에서 공지드립니다.]

[금주 금요일 / 4월 3일에 순직자 영결식 및 타천자 토벌 건에 대한 훈장수여식이 이루어질 예정이오니 생도 여러분들은 모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이런 게 있었지- 요즘 마인 사냥에 정신을 쏟고 있어서 그런지 잠시 까먹고 있었다. 물론 딱히 기억하고 있어야 할 내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때, 문자의 내용을 확인한 이하린이 다소 반짝거리는 눈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맞다! 천하씨 혹시 그거 들으셨어요? 훈장수여식 수여자로 누가 오는지요.”

“···응? 누구 온대?”

“아니요. 못 들었습니다.”

아리엘이나 나나 그런 소식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나는 이하린의 반응을 보아하니 어느 정도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이하린이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십중팔구 원작의 인물. 그것도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이곳에 올 만한 사람이라면 역시···.

그리고 내 짐작은 들어맞았다.

“저도 얼마 전에 들었는데 티르유씨가 온댔어요! 저희한테 훈장을 수여해주러요!”

“······티르유? 아! 설마 그 철혈무희?”

“네!”

철혈무희? 순간 티르유를 부르는 호칭에 조금 흠칫했지만 나는 빠르게 생각을 털어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티르유도 나름 상위권의 랭커였던 만큼 그런 이명 하나쯤은 갖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티르유씨가 직접 오신다니 신기하네요. 항상 바쁘신 분 아니었습니까?”

“네! 티르유씨도 그래서 조금 고민하셨대요. 근데 저희 후견인이기도 하고, 둘 다 타천자다, 황혼탑이다 뭐다 이래저래 일이 엮여있으니 한번 시간을 내보신 거 같아요.”

“그렇군요.”

“어? 그분이 너희 후견인이었어?”

“네···! 정확히는 둘 다 등천의 구도자한테 후원을 받는 거긴 한데, 후견인 등록은 티르유씨로 되어있어요.”

나는 그녀들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잠시 티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입학 전 마주했던 그녀의 기세는 분명 강렬했고, 그때의 나로서는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에테리얼 크리스털을 흡수한 것도 그렇고, 업륜의 활용법을 깨달은 것도 그렇고, 6성의 깨달음을 어느 정도 갈무리한 것도 그렇고- 지난 시간 동안 나한테도 이래저래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이라면 그녀를 상대로도 확실하게 승리를 자신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 또한 다획의 업륜을 보유하고 있을 테고, 가호와 특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으니 그리 쉽진 않겠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

나는 오랜만에 그 단어를 떠올려보았다.

‘상태창.’

그러자 허공에 떠오르는 글자들.

[유천하 踰天遐]

특성 : 만상의 눈

등급 : 각성자

칭호 : 순례자

가호 : 풍결의 가호

업륜 : 一

처음 상태창을 불렀던 날에도 생각만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나는 빠르게 생각을 털어내고 상태창의 내용을 확인하였다.

정확히는 가호를 말이다.

‘풍결의 가호.’

이건 지난번 황혼급 마수를 토벌함으로써 부여받게 된 가호였는데, 물론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이 그렇게 사기적인 가호는 아니었다. 그저 바람의 결을 느낄 수 있고, 조금 다룰 수 있게 된 정도. 딱 그 정도의 가호였다.

‘하지만 좋은 능력이야.’

나는 손끝을 휘감고 지나가는 바람을 휘저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꿈틀거리는 바람의 결은 내 의지가 더해지는 순간 그대로 실질적인 현상으로서 힘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후웅-! 손끝으로 모여드는 바람의 밀집체.

물론 이게 저작권리의 가호나, 단절의 가호처럼 사기적인 능력은 아니었지만 분명 활용성이 높은 가호였다. 전투 외의 보조적인 수단으로도 쓸 구석이 많았고, 전투 같은 요소에서도 분명 응용할 만한 구석은 충분히 많았다.

예를 들어 저항과 바람결을 통해 상대의 공격을 흐트러트릴 수도 있었고, 미약하지만 속도를 더할 수도, 그리고 불가시의 장막을 칠 수도 있을 테니 어찌 안 좋겠는가? 물론 개개별의 위력이 높은 건 아니었지만 내가 응용하기에 따라 활용할 구석이 많은 보조수단쯤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느낌.

애초에 당장 황혼급 마수를 잡을 때만 해도 이런 가호가 있었다면 직접 공중전을 벌일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런 만큼 나는 이 세계에 온 지 겨우 두 달이 안지난 이 시점에서도 스스로가 강해졌다는 걸 확연히 실감할 수 있었다. 오온의 깨달음은 둘째치고서라도 업륜과 가호, 그리고 특성만으로도 말이다.

하지만 역시 위타극은 신경 쓰였다.

그는 과연 어떤 종류의 강함을 갖추고 있는 걸까? 마인으로서 강한 걸까, 아니면 무인으로서 강한 걸까- 나는 그 사실이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

작중에선 분명 위타극을 토벌하기 위해 주연인물들에 랭커까지 섞여 다 같이 합심해서 대응했고, 특히 진시우는 마력까지 폭주시키며 전력을 쏟아낼 정도로 모두 죽을 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아이들과 랭커의 합공에 죽었다는 것도 확실한 사실이었기에 나는 그 기준선에 대한 감이 명확히 잡히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당장 비슷한 조건으로 생사결을 치른다 하면 나는 이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위타극의 강함에 대해서도, 그리고 하이랭커와의 간극에 대해서도 영 감이 잡히지 않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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