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검 (3)
방금의 장면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듯, 남궁설아는 한동안 말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았다. 의념을 깨달은 무인이었기에, 그리고 직접 카룬드와 격전을 치러본 그녀였기에, 그녀는 내가 보여준 한 수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
그렇게 잠시 적막이 흐르고 싸움의 열기마저 식어갈 때쯤. 그제서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남궁설아의 눈빛 속에는 처연함과 분노 그리고 슬픔이 뒤섞여 있었을 뿐이었다.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새어 나온듯한 말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는 건가요?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허탈한 목소리로 쏘아붙이듯 건네진 말.
하지만 어째선지 내겐 그 말이 마치 그녀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거겠지.
나는 남궁설아의 설정을 떠올려보았다.
그녀가 겪었던 과거를. 그리고 그녀가 매일같이 되새기고 있을 목표를. 제 아비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을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하는 건 굳이 소설 속의 내용이 아니더라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복잡한 심경이 담긴 군청색의 눈동자 속에 내 모습이 담겼고, 나는 그런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그러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을 건네주었다.
“강함이란 복합적인 잣대입니다.”
“······.”
서로의 시선이 교차한다.
“그건 단순히 무공, 속도, 내력 같은 걸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싸움의 형세를 읽는 시야도, 싸움에 임하는 마음도, 공격 하나의 담긴 의지도 모두 얽혀 있는 말이니까요.”
“······.”
“하지만 설아씨의 검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치명적인 단점··· 말입니까?”
남궁설아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녀의 얼굴 위로 당혹스러움과 의아함이 떠오르는 게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단호히 대답했을 뿐이었다.
“의념.”
“······.”
“당신의 검에는 잡념이 너무 많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니 검이 흔들릴 수 밖에요.”
“······그게··· 무슨?”
그녀의 입에서 의문이 새어 나왔다.
의념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걸까, 아니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 애초에 이하린같은 경우가 이상한 거지 저런 경지에 이른 무인이 의념에 대해서 모를 리는 없었다. 그러니 저건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소리겠지.
나는 그녀에게 들려줄 말을 골라보았다.
“설아씨는 기본적으로 특성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스스로의 속도를 육체가 받쳐주질 못하고 있지요.”
“······.”
“설아씨가 펼치시는 검법. 그 검의 원형은 쾌검으로 만들어진 검법이 아니겠지요? 아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검형을 설아씨의 손으로 쾌검으로 바꿔낸 것일 겁니다. 원본은 중검, 아니 강검에 가까운 패검이겠지요.”
“···!!”
남궁설아의 눈동자가 얼어붙었다.
“그러니 쾌검으로 억지로 비틀어낸 일격에, 거기에 특성까지 더해지니 그 속도를 설아씨 스스로가 받아내질 못하는 겁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검형이 받아내질 못하고 있지요.”
“······.”
나는 그녀의 검을 보며 느낀 점을 상세히 설명해주었고, 그에 따라 얼어붙었던 남궁설아의 눈빛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검형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보완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요. 그저 그걸 보완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기본기를 다지며 천천히 나아가거나 제대로 된 일념을 통해 검극을 세울 필요성이 있을 뿐입니다.”
“제대로······ 된 일념?”
그녀가 되물었다. 아마도 그녀는 스스로의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듯했다.
아니, 이성적으로는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어도 그게 얼마만큼 심각한 문제인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것도 아니라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되새겨온 목표가 이미 하나의 심마로써 자리를 잡고 있는 걸 수도 있었고 말이다.
원작대로라면 그건 언젠가는 그녀 스스로 이겨내게 될 문제였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한참 이후에 예정된 일.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마인들을 찾아가 사냥할 생각이었고 그중에는 필연적으로 그녀의 목표도 포함되어있었으니 말이다. 그녀의 성장을 위해 이하린을 위협할 상대를 방치해두고 싶진 않았다.
결국 내게 중요한 건 이하린이었으니까.
물론 그렇다 한들 녀석을 지금 당장 해치우겠다는 건 아니었다. 원작의 묘사대로라면 위타극은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적. 하이랭커의 간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위험한 도박에 불과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성장하는걸 기다리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게 훨씬 더 빠르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나로인해 남궁설아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조금 곤란했다. 남궁설아는 분명 원작의 이하린의 동료가 돼서 심연과 맞서 싸우는 주역 중 하나였고, 그녀는 제대로 성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은 간단했다.
나는 그녀에게 단초를 제공해 줄 생각이었다. 물론 이하린처럼 본격적으로 가르쳐줄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방향 정도는 얼마든지 제시해줄 수 있었다.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불확실한 상황에 이끌리는 것보단, 원하는 상황으로 이끌고 나가는 게 더 편했으니까.
이건 그런 이유였다.
“신검합일을 해보시겠습니까.”
“······예.”
갑작스러운 내 요구에도 그녀는 아무런 부언 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건 내 경지를 느꼈기에 그런 걸 수도 있었고, 아니면 내가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려 한다는 걸 느껴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물론 이유는 중요치 않았고, 그녀는 그저 백색의 검을 들어 올려 정신을 집중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서늘한 한기를 뿜어냈다.
고오오- 한순간에 퍼져나가는 검의 기세.
그런 그녀의 기세는 한 자루 세검과도 같았고, 예리하게 좁혀진 그녀의 의념이 전신을 찌르듯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
완벽하다곤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 정도면 신검합일에도 능숙해 보인다는 느낌.
분명 의념의 수발도 준수했고,
집중력 또한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기세가 너무 약합니다.”
그녀의 의념은 날카롭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약하다고요?”
“예. 약합니다.”
내 말에 그녀가 눈을 치켜떴다. 그녀의 눈에 약간의 불쾌함이 서렸다. 나는 그녀를 이해했다. 그만큼 이건 직설적인 말이었다.
“설아씨의 의념은 너무 산만합니다.”
“······.”
“아까의 싸움에서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를 바라보고 계신 건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역시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던 모양.
그럴 거라 생각했다. 마음이란 본디 수면 위로 떠오른 그림자와도 같은 것. 보편적으로는 깨닫기 힘든 것이었고, 그렇기에 깨달음이 ‘깨달음’이라 불리는 거였으니 말이다.
“분명 검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검의를 세우려면 제대로 된 일념을 세워야겠지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과거를 생각하며, 그리고 지금껏 느낀 그녀의 의념을 되새기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제가 느끼기엔 설아씨는 상대를 베겠다는 의지를 갖고 의념을 일으켜 세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게 도대체···? 아니요 저는······”
“도대체 뭐에 그리 쫒기시고 있는 겁니까. 무엇을 베기 위해 검을 휘두르시는 겁니까? 설아씨의 검은 항상 눈앞의 상대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향해있는 듯 하였습니다.”
“···!!”
그제서야 깨달은 걸까.
그녀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지난번 대련에서도, 방금의 싸움에서도,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검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더군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 그건.”
“이제 이해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삽시간에 안색이 어두워진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그런 남궁설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도 말했듯. 설아씨의 검에는 잡념이 너무 많이 담겨 있습니다.”
“······.”
“상대를 베어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베어야 하고, 스스로를 재촉해야 하고··· 이걸 여유가 없다 해야 할까요? 아니면 전투 중에 오히려 여유가 넘친다고 해야 할까요?”
“······.”
“그러니 검 끝이 흔들릴 수밖에요.”
분명 그녀는 강했다. 상성을 많이 타서 그렇지 지금의 실력만으로도 어지간한 마인 이나 마수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이래서야 그녀는 마수 정도야 손쉽게 잡을 수 있더라도, 더 강한 상대- 미래의 적들을 상대론 아무것도 할 수 없을테니까.
“의지가 곧추서지 않으니 의념이 쉽게 흩어지는 겁니다. 그 정도 속도로 가속했을 때 타점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단순히 육체의 기본기보단 제대로 된 의념이 더 중요합니다. 그 속도는 정상적인 속도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번 대련 때······”
“예. 손목이 약해도, 기본기가 약해도 검의가 무거웠다면 그렇게 쉽게 쳐낼 순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지요. 일념이 무너지면, 의념은 무뎌집니다. 날카롭게 세운 예리함도 한순간에 흩어져버리지요.”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조금은 초췌해진, 그리고 아연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지름길은 없습니다. 정진하세요.”
“······.”
“의념은 마음의 힘이고, 그건 하루아침에 의식적으로 고쳐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의 가장 큰 열망. 그걸 되새기고, 다시 딛고 일어서야 하겠지요.”
“······.”
“무학의 경지는 편법으로 올라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영혼에 날을 세우기 위해선 끊임없이 정진하여 의념을 날카롭게 벼리는 것. 오직 그 길뿐입니다.”
물론 이런 말 몇 마디로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 그녀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을 심마를 더 빨리 마주할 수 있게 되겠지.
그러니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스스로에게 맞는 길을 찾아 차근히 나아가십시오. 스스로를 벽으로 내몰아봤자 벽이 더 크다는 것밖에 못 느낄 테니까요. 그러니 조급함을 버리고 제대로 정진하세요. 당장 강적을 꺾기 위해 무리하는것보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정진하는 것.”
“······.”
“지금 설아씨한테 필요한건 그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남궁설아의 얼굴 위로 복잡한 표정이 떠오르는게 엿보였다. 아쉬움과 혼란함, 슬픔, 고민, 피로, 그리고 각오까지. 갖은 감정들이 섞여 혼탁한 색채를 자아냈고.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그녀의 목소리는 씁쓸함을 담고 숲 속에 울려 퍼졌을 뿐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침식공략 사례체험’의 첫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3주차에 접어들 때까지 계속 휴강했던 수업은 사전공지대로 야외실습으로 첫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건 분명 원작과 같은 흐름이었다.
물론 확실히 기억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 같은 조건에서 갑작스레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이하린이 당황했던 에피소드가 있었기에 나는 어느 정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침식역류가 일어나겠지.’
마인의 움직임은 나비효과로 틀어질 위험성이 높았지만, 잿빛탑의 침식은 어지간한 인과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건 원작에서도 명시되었던 부분.
그러니 오늘 실습에서 침식역류가 일어날 확률은 매우 높았다. 공지를 받기 전까진 까먹고 있던 에피소드였지만 분명 원작에서 일어났던 사건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게 거창한 사건은 아니었다. 그저 침식 방어전을 체험하기 위해 실습을 나갔다가 침식역류에 휩쓸렸을 뿐. 이하린이야 수호자급 마수와 조우해 조금 위험해지긴 했었지만 전체 흐름을 보면 생도들에게 제대로 된 실전을 경험하게 해준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등급은··· 기억 안 나네.’
다만 말했듯이 그 내역까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워낙 초반부에 있었던 일이고 첫 야외실습이라는 일때문에 기억이 날 뿐이지 세부적인 부분까지 기억하기엔 그리 큰 비중의 에피소드는 아니었던 탓.
그러니 아마 침식역류가 일어난다 한들 끽해야 여명급, 잘해야 황혼급이지 않을까?
애초에 멸화급이었으면 생도들은 전부 몰살당하고 바로 메인에피소드 급으로 격상되었을 테니 말이다. 아니, 초반부였던걸 고려하면 그 순간 사실상 원작이 끝나버렸을 테지. 그리고 멸화급 탑이 솟아났다면 그곳으로 체험을 가지도 않았을 터였다.
‘원작의 멸화급이면··· 아직은 위험해.’
소설 속 글귀로 접할 때야 그러려니 했던 부분이었지만 실제 이 세계에 들어오고 나서, 그리고 여러 마수와 인물들을 체험하고 보니 확실히 실감이 나는 기분이었다.
애당초 심연은 말할 것도 없었다.
멸화급도 지금 내 수준으로는 무리였다.
아니, 아예 상대도 되지 않겠지.
단순한 마수 무리 정도는 상대할 수 있겠지만 멸화급의 수호자 마수와 단신으로 대적했다간 얼마 못 버티고 죽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그간의 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감을 잡아볼 수 있었다.
애초에 멸화급은 국가 단위의 대응이 필요한 재앙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
카룬드 따위야 원작 초반부의 진시우한테도 발목이 잡힐 정도였지만, 처음으로 등장했던 멸화급 마수는 어느 정도 성장한 주연들은 물론이고 하이랭커까지 초토화했으니 말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물론 그건 ‘지금’에 한정된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버티는 거라면 7성, 공략을 시도해보려면 최소 8성인가? 아니. 업륜이나 가호 같은 요소도 고려해본다면 8성으로도 충분할지도······’
업륜의 쓰임새는 충분했고, 가호 또한 분명 필요한 요소. 아직 멸화급의 힘을 제대로 파악한 건 아니었지만. 등천자들과 타천자의 강함으로 파악해보자면 절정의 초극, 초절정의 초입에만 다다르더라도 가능성이 생길 것 같았다.
물론 그 계단 한 칸을 올라서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한들 불가능 한 것도 아니었다.
‘······역시 최대한 정진해야겠군.’
원작의 흐름대로라면 최초로 멸화급과 마주하게 되는 시기는 약 반년 뒤. 물론 그걸 해결하는 건 승천자였고, 이하린과 동료들은 옆에서 열심히 보조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침식이 인과 밖의 일인 거지, 사람의 행적은 인과에 속해있는 일.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이상 나는 최대한 모든 위험에 대비해야 했다.
만약 승천자가 때맞춰 오지 않는다면.
만약 이하린의 행동이 원작과 달라진다면.
만약 그전에 활동중인 멸화급과 조우하게 된다면······
나는 그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했다. 어떠한 경우로 미래가 틀어지더라도 대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므로 내 목표는 간단했다.
‘우선은 7성의 경지인가.’
반년, 아니 그 시기가 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힘을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 최소한 멸화급 마수와 단신으로 대적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무공의 경지가 그리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지만, 최소 7성까지는 나아갈 생각. 거기다 화이트 라인으로 승급한 뒤에는 침식 공략도 꾸준히 나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8성, 9성의 너머까지 도달할 수만 있다면···
‘그 정도면 해볼 만 하겠지.’
그렇게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했더니 역시 카룬드도, 여명탑도 너무 가볍게만 느껴졌다. 조금 더 명확한 파악을 위해서라도 하이랭커급의 강자와 한번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건 힘든 일이었고, 그렇기에 우선 오늘의 일부터 해결하자는 생각 속에 나는 사전에 공지된 장소- 3번 게이트로 이동했다. 그리고.
“······천하씨?”
“어? 천하다.”
“뭐야 쟤도 이거 듣네.”
“······.”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
게이트 중앙홀에 입장하자마자 미리 와있던 생도들로부터 시선이 쏠렸고, 그중에는 당연히 익숙한 얼굴들도 있었다.
생도들은 서로 친한 아이들과 무리를 이루고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레 혼자 있는··· 그러니까 이하린을 향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예. 혼자 계신 건가요?”
“······그, 그렇네요?”
그렇게 이하린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자니 저 멀리서부터 아리엘이 다가왔다.
아마 기원학회 출신의 친구들과 함께 있었던 모양인데 나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오던 그녀는 구조물 뒤에 숨어있던 이하린을 발견했는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안 그래도 작은 이하린이었던지라 뒤에 가려져 미처 보지 못했던 모양.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그녀는 화사한 미소와 함께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햇빛을 받아서인지 그녀의 머리카락은 상아색으로 화해 따스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안녕 애들아! 아니··· 근데 하린이는 도대체 언제부터 거기 있던 거야?”
“안녕하세요···! 얼마 안 됐기는 한데······.”
혹시 이하린은 일부러 구석에 숨어있던게 아니었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일이 있을 때가 아니라면 일상 시의 그녀는 다소 소심한 구석이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