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검 (2)
물리법칙을 벗어난 듯한 카룬드의 움직임.
얼어붙은 녀석의 형상을 유심히 관찰해본 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행동 양상이나 움직임의 수준은 제 기억과 동일하군요. 그런데 생각하기에 따라선 세부적인 부분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라··· 상당히 신기한 현상입니다.”
“예. 그게 환몽의 숲의 기능이에요.”
사실 원작에선 회랑 내부의 백색탑들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묘사되진 않았었다. 등천회랑의 백색탑은 총 89개나 되었고, 탑 하나하나를 전부 설명하긴 힘들었을 테니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원작에서도 이하린이 필요로 하는 탑들은 자주 등장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 이곳을 포함한 대부분의 탑들은 원작에선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았을 뿐.
그래서일까?
남궁설아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환몽의 숲이 가지고 있는 기능은 정말 놀라웠다. 자신이 경험했던 상대를 제한적이나마 실체로 구현해낼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이곳의 기능이었으니 말이다.
이건 정말 흥미로웠다.
“이곳··· 허가받는 게 어렵다고 했나요?”
“예. 저는 무련의 어르신들을 통해 허가받은 거라 보통은 받기 힘들 겁니다. 소모되는 마력도 따로 근원석으로 보충해줘야 돼서 어지간해선 안 쓰는 탑이라 하니까요.”
“그렇군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내 머릿속으론 언젠가는 허가를 받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자신이 경험한 적을 그대로 구현해내고, 그 적의 행동을 조작할 수 있다니···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지 않은가?
저건 허상이지만 동시에 실체였다.
근원석의 마력을 동력으로 삼아 물리력을 행사하고, 얼마든지 실체로서 가동하고 살아 움직이는 허상. 그리고 그 말은 즉. 이곳은 근원석의 마력이 존재하는 한에선 그 상대가 누가 되었든 직접 경험해본 상대라면 얼마든지 다시 싸워볼 수 있는 곳이라는 소리였다.
‘마음에 들어.’
물론 구현해낼 수 있는 적은 근원석을 조작하는 사람의 경험에 의거했고, 또한 근원석이 보유하고 있는 마력에 따라 한계도 존재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적어도 조건만 갖춰진다면 어떤 상대라도 재현해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위해선 적어도 멸화급의 근원석이라도 가져와야 하지 않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만 그렇다 해도 상관없었다.
무림으로 돌아가기 이전, 내가 목표로 했던 실력에 도달했을 때쯤이면 멸화급의 근원석이라도 하나쯤은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나는 내 기억속의 인물들과 다시 한 번 겨룰 수 있을 테지.
한 수에 산을 베고, 하늘을 가르던 그들.
‘검혈마제 그리고 아버지.’
그들을 이겨낼 수 있을 때, 그때가 바로 내가 무림으로 돌아가야 할 순간이었다.
***
큉-!!
[가소롭구나!]
“······.”
처음 강철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을 땐, 이미 음속에 가깝게 가속된 남궁설아의 신형이 카룬드를 향해 수십 차례의 검격을 퍼붓는 중이었다.
카각-! 캉! 쉭-! 카가각-! 퀴긱-! 카앙!
하지만 눈 깜빡할 사이에 쏟아지는 연격속에서도 카룬드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야말로 우직한 움직임이었고, 그의 피부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아이야. 그래서야 이 몸을 가를 수 있겠느냐? 피부가 다 간지럽구나.]
“······.”
나는 만상의 눈으로 카룬드, 그러니까 카룬드의 허상과 남궁설아의 격전을 바라보았다. 그런 내 시야로는 그들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뇌리에 박혀 들어오고 있었다.
[음? 방금 뭘 한건지 모르겠구나. 간지럽다고 피부라도 긁어준 건가?]
“······경박하기는!”
참고로 카룬드의 특성은 강체화.
스스로의 의지가 허용하는 선에서 얼마든지 육체가 강건해질 수 있는 특성이었다.
물론 지금의 카룬드는 내 기억을 기반으로 한 허상이었기에, 눈앞의 허상은 그날의 카룬드를 한계로 잡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생도 수준의 공격을 받아내기엔 충분했을 따름.
캉-!! 피륙과 강철이 교차했다기에는 상당히 격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남궁설아의 공격은 끊임없이 그의 몸에서부터 튕겨 나가는 중이었다.
애초에 카룬드는 이하린과 아리엘의 합공도 가볍게 무시했던 타천자였다. 그런 만큼 남궁설아라 한들 다를 순 없는 노릇.
[하하하!! 잘도 피하는구나!]
그나마 선방하는 점은, 그녀의 특성이 변속제어였기에 카룬드의 공격 또한 그녀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압도적인 속도의 우위 속에서 퍼부어지는 맹공. 그녀는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교환비만을 강제하고 있었다.
가속, 가속, 또다시 가속.
필요한 순간마다 시기적절하게 변화되는 그녀의 속도는 타천자의 공격을 피해내기에 충분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상성이 나쁘지 않네.’
애초에 카룬드는 특성에만 의존하던 초인.
가속된 신체로 보법을 밟아 나가는 남궁설아를 타격하기엔 카룬드의 실력이 너무나 형편없었다. 속도에서 우위가 갈리고, 무의 묘리에서도 우위가 갈리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과연 얼마나 버티려나.’
하지만 남궁설아에게 있어 안타까운 점은 둘은 파괴력과 내구성에서도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카룬드의 공격이 한 번씩 그녀의 검을 빗겨 칠 때마다 그녀의 검극이 거세게 흔들리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가 한 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그대로 전세는 기울어지겠지. 한 번의 타격이라도 그녀에겐 치명적으로 작용할 테니 말이다.
[슬슬 진심으로 상대해주마···!!]
쐑-! 또다시 빗나가는 카룬드의 공격.
하수를 상대로나 간신히 힘자랑하는 수준이면서 끊임없이 입을 놀려대는 모습이 영 거슬렸다만 이건 남궁설아의 대련이었기에 나는 말없이 그들을 지켜봤다.
물론 관찰도 나름대로 성과는 있었다.
애초에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 이유 중에는 그걸 위한 것도 있었으니 말이다.
[죽어라-!!]
“······.”
비록 제한적이라지만 나는 저번의 대련만으로도 그녀의 특성을 카피해냈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서 그녀가 특성을 수십 번 연달아 사용하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그 이해가 더 깊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특성 운용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아마 만상의 눈으로 조금만 더 지켜본다면 감속까지도 따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가속만큼 감속도 탐나는 능력이었기에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속과 감속, 두 가지의 변속은 분명 내 검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줄 터.
물론 내 경지가 단순히 검의 빠르기에 얽매일 단계는 아니었지만 아직 검형마저 온전히 벗어던지지 못했다는 건 사실이었기에 그녀의 특성은 무척이나 탐나는 것이었다. 일천검결의 결과 변속제어라는 특성이 만난다면 어지간한 공세의 흐름은 다 내 입맛대로 조절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슬슬 힘이 빠지더냐···?]
“······.”
내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그들의 격전도 절정으로 치달아가는 듯 했다.
다소 거리를 벌린 채 남궁설아가 호흡을 고르마신다. 조금 지쳐 보이긴 했지만 그녀가 거리를 벌린 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모험을 해볼 생각인가.’
한순간에 호흡을 확보한 남궁설아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의념을 그러모았다. 그러자 멈춰선 그녀의 검에서 짙은 군청색의 기류가 넘실거리는 게 육안으로도 선명히 들어왔고, 이내 그녀의 검에 일렁거리던 아지랑이는 서서히 격류 속에 휘몰아치며 하나의 형상으로 모여들었다.
그녀의 검 위로 내려앉은 청색의 별무리.
다소 흔들리긴 했지만 분명 검강이었다.
[호오···?]
그 모습에 카룬드가 흥미를 표했고, 그와 동시에 남궁설아의 신형이 다시 한 번 가속했다. 눈 깜빡할 순간에 청색의 잔향을 남기며 늘어지는 그녀의 신형. 순식간에 최고속으로 가속된 그녀의 검극이 카룬드의 심장을 향해 매섭게 쏘아져 나갔다.
음속으로 뻗어 나가는 차가운 궤적.
칼의 궤적이 허공을 꿰뚫으며 나아간다. 이것이 남궁설아가 꺼내 든 최선의 일격이었고, 늘어지는 잔상 속에서 군청색의 선은 카룬드를 향해 길게 늘어졌다.
퀴이잉-!!
하지만.
카앙-!! 그 궤적은 한순간에 부풀어 오른 카룬드의 두 팔에 가뿐히 가로막혔고, 그 모험의 대가는 명백했을 뿐.
“···!!
[멍청하구나.]
쾅-! 비대해진 팔이 그녀의 배를 후려쳤다.
“······웁!!”
파괴적인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남궁설아의 신형이 그대로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녀의 입에서 위액이 토해졌다.
[미숙하구나··· 미숙해!! 그걸로 내 힘을 뚫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더냐?]
그리고 튕겨 나가는 그녀를 따라 늘어지는 잿빛의 그림자. 단숨에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간 카룬드의 몸이 찐득한 마력을 토해내며 힘을 그러모았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비틀거리는 남궁설아를 향해 팔을 내려쳤다.
쾅-!! 다시 한 번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머리를 후두려 맞은 남궁설아의 동공이 조금 풀어졌다. 동시에 그녀의 이마에서 붉은 줄기가 흘러내렸다.
순간적으로 내력을 끌어올려 방어한듯했지만 완벽하게 막아내진 못한 모양. 아마 저대로 한 번만 더 타격을 허용한다면 이번에는 내력으로 방어하기도 전에 육체가 파괴되겠지.
[이제 죽···!]
“그만.”
그렇기에 나는 곧바로 녀석을 멈춰 세웠다. 이대로 두고 보기엔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훈련은 여기까지다.
[······.]
훅- 그렇게 흉흉한 마력을 머금은 마인의 팔이 남궁설아의 눈 바로 앞에서 멈춰 섰지만 비록 초점은 풀려있을지언정 그녀의 눈빛만큼은 아직 투쟁심을 잃지 않고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단 일 초라도 멈춰 세우는 게 늦었다면 그 팔은 그대로 그녀의 머리를 깨부쉈을 게 분명했음에도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하며 그 공격을 똑바로 마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대단한 정신력.
허나 방금의 타격은 의지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피해였고, 그렇기에 그녀의 입에서 억눌린 요청이 더듬거리며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아, 아직··· 더··· 할 수 있···.”
“무리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실전이었다면 방금 죽었을 텐데 뭘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그녀의 태도도 마음에 들었고, 나 또한 그녀에게 얻어낸 게 꽤 많았기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나는 비틀거리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어떻게 말해줘야 그녀에게 도움이 될까.
그것을 고민해보았고, 이내 결정했다.
“설아씨는 이미 패배하셨습니다.”
“······아, 아··· 니 아직 안 끝··· 났···”
“방금의 결과는 우연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건, 실수··· 였어요.”
“실수라··· 실수가 아니었다면요? 그래 봐야 조금 더 오래 버티는 게 다였을 겁니다.”
꽤나 직설적으로 말했던지라 남궁설아가 당혹스러운, 그리고 아직까진 머리가 아픈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짚어 보였다.
“······.”
“공격이 통하지 않은 순간부터 그건 정해진 결과였습니다. 안전이 보장된 연습이었기에 격전이 이어진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렇지는···!”
“실전이었다면 그 특성으로 도주를 시도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겠지요.”
그녀를 자극하기 위해서 한 말이었고,
당연히 예상했던 반응이 돌아왔다.
“···어떻게 그런 말을!”
남궁설아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그리고 실망이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공략자가! 어떻게 마인을 앞에 두고 도망을 간다 할 수 있는 겁니까!!”
역시 이곳의 아이들은 너무 극단적이다. 그게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었다.
물론 태어난 순간부터 침식과 마주하며 살아왔던 이들과 단순히 다른 세계의 일로 받아들이는 나와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터였다. 허나 그렇다 한들 이하린도, 그녀도, 그리고 다른 주연인물들도 내가 보기엔 너무 스스로를 내몰고 있다는 느낌이었을 따름이었다.
솔직히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객관화가 되지 못하는 마음에 여유마저 깃들지 못한다면 그건 결국 위험을 초래하게 될 터. 물론 주연들도 나름대로 다 사연이 있겠지만 그런 리스크는 장기적으로 봤을때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그리고 눈앞의 그녀에게 필요한 건 다른 무엇보다 현실적인 경험이란 생각이 들었다. 올곧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깨달을 필요성이 있었다.
“역량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건 무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아니요! 그!”
그렇게 소리친 남궁설아는 아직도 골이 흔들리는지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 고개를 몇 번 휘저은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건···! 공략자의 자세도, 무인의 긍지도 아닙니다! 저희에겐 의무가 있으니까요!”
“긍지는 만용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타천자와 생도의 차이는 스스로도 알고 계신 거 아닙니까? 생도가 타천자보다 약한 건 오히려 당연한 겁니다. 오히려 실력차이를 알면서도 죽음을 향해 뛰어들면 그게 멍청한 일이겠지요.”
내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입장에선 조금 다르게 들렸던 모양. 남궁설아의 눈이 기이한 열망을 담은 채 나를 응시하였다.
“······그치만 당신은!”
왠지 다음에 나올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녀의 눈빛이 답을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당신은 이겼잖아요! 생도여도 타천자를 이겼잖습니까! 그렇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요. 그건 별개입니다.”
“하지만!”
“직접 보시지요.”
스르릉- 나는 검을 뽑아들었다.
그녀의 말은 투정처럼 들렸지만, 나는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었기에 저 목소리에 담긴 절박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이해시켜줘야 했다.
“제가 타천자를 토벌할 수 있었던 이유, 설아씨가 타천자를 이길 수 없는 이유.”
“······.”
“그 이유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뒤로 한 채 나는 카룬드를 향해 걸어갔다. 움직여라-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멈춰져 있던 카룬드가 다시 몸음 움직였다. 당연히 이번에 그를 상대할 사람은 바로 나였다.
“답은 간단합니다.”
카룬드의 마력이 재활성화되며 그의 몸에서부터 흉흉한 그림자가 터져 나왔고, 그러자 나를 발견한 카룬드가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네 놈···!! 네 놈은-!!!]
저 대사 또한 내 기억의 잔재인 걸까.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마주한 것처럼 분노를 토해내는 그를 보며 나는 내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미 한번 죽였던 상대.
손대중은 필요 없었다.
[죽여버리겠다-!!!]
그렇게 광화에 휩싸인 카룬드가 나를 향해 몸을 던졌다. 육체가 변형되진 않았지만, 발을 박차는 시점, 마력이 움직이는 흐름, 호흡의 기점. 그 모든 게 지난번과 같았다.
나는 심상의 매듭을 풀어냈다.
그러자 순식간에 활성화된 6성의 내력이 전신을 내달려 한순간에 검으로 모여들었고, 날카롭게 벼려진 정신은 내공과 마주하여 칠흑의 검날을 자아냈다.
그 순간, 나는 세계를 지각했다.
“······.”
지난 격전에서 나는 카룬드의 능력도, 무력도, 신체의 내구도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호흡을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식으로 마력을 운용하는지.
어떤 식으로 몸을 움직이는지.
나는 그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물며 내겐 조금 특별한 눈이 존재했고, 그는 내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허상일 뿐.
그렇기에.
[······이게 무슨?]
“······!!”
서걱- 이것으로 충분했다.
이미 한번 베었던 상대에게 두 번의 검격까진 필요 없었으니까. 그저 그뿐이었다.
그렇게 멈춰선 타천자를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남궁설아를 바라보았다.
“설아씨의 검이 타천자를 뚫지 못하는 이유도, 제 검이 타천자를 베어낼 수 있는 이유도. 모두 별게 아닙니다.”
“······방금 그건.”
나는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제가 더 강하니까.”
그리고.
“오직 그것뿐입니다.”
그 순간 타천자의 몸이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