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335화 (335/335)

335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35)

결제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는 불편함과 부도덕, 비리 등이 겹치며 고객 이탈 현상이 벌어지긴 했지만, 이득을 많이 봤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첫째로 유니버셜 뱅크를 찾는 예금주보단 다른 3대 은행을 찾는 예금주가 많았고, 둘째로 이탈이 막 드라마틱하게 극적으로 이뤄지진 않은 까닭에서였다.

그도 그럴 게 주거래 은행을 옮긴다는 건 간단하게 생각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 일이지만, 복잡하게 생각하면 귀찮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은 그런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잡하고 번거로워지는 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미국은 한국처럼 월급 통장을 주거래 은행 계좌로 받도록 강요하지 않는다는 거지.’

미국 기업은 한국 기업처럼 직원에게 월급을 받을 통장을 기업의 주거래 은행으로 개설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 덕에 자산 규모가 크지 않은 월급쟁이들은 빠르게 계좌를 옮겼지만, 사업을 하거나 많은 자산을 보유한 VIP들은 돈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잖은가? 은행이 괜히 돈이 많은 이들을 VIP로 묶어서 따로 관리하는 게 아니다.

은행은 금리를 더 주는 상품을 만들어 VIP들이 그들의 은행에 돈을 맡기게끔 했고, 금리를 올려 준 만큼 일정 기간 동안은 돈을 빼지 못하게 제한했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은행에 돈을 맡긴 이들은 더더욱 마음이 급했다.

‘윌스&파고’라고 다르진 않았다.

천천히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보자 예금자들의 이탈 외에도 새로운 악재가 윌스&파고를 찾아왔다. 정호준은 그 악재를 사무실에서 뉴스를 통해 확인했다.

-CFPB(소비자금융보호국)와 FED(연준)는 윌스&파고에게 과징금 지급을 명했습니다.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는 유령 계좌 개설이란 불법을 저지른 대가로 18억 달러(한화 약 2조 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여했다.

주식 투자자답게 정호준의 사무실 벽에 설치된 TV는 6개가 넘었고, TV에서는 또 다른 악재를 이야기했다.

-예금주들은 개인 정보를 도용한 윌스&파고 측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은행 계좌를 옮기는 건 옮기는 거고, 소송의 나라답게 보험 판매 부정행위와 주택담보대출 사기, 신용카드 수수료를 추가로 부과한 사안을 놓고 집단 소송이 시작되었다.

유니버셜 뱅크에 관한 보고를 마치곤 대표실에서 정호준과 커피타임을 가지며 뉴스를 지켜보던 조나단이 정호준을 보며 말했다.

“FHFA나 Ginnie Mae와 진행 중이던 협상이 많이 엉클어지겠는데요?”

2007년 모기지론 디폴트로 미국 금융가와 세계가 흔들렸었다. 로건이나 로슬러가 물밑에서 움직이고 로비를 벌여 지금의 4대 은행이나 골드만식스 등이 생존에 성공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법을 자행하며 경제를 망가트린 것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윌스&파고는 물론이고 다른 3대 은행은 모기지론 부실 대출 혐의로 미국 ‘연방주택금융기관(FHFA, Federal Housing Finance Agency)’, 정부 대출보증기관인 ‘Ginnie Mae’과 과징금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자숙해도 모자랄 판에 유령 계좌 사건이 걸려 직원이 몰래 저지른 주택담보대출 사기까지 적발됐다. 이 또한 모기지론에서 비롯된 사기인 만큼 과징금 협상에서 난항을 겪게 될 게 불 보듯 뻔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이번 기회에 4위 자리를 탈환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네?’

한창 새롭게 도약하며 커나가야 할 시기에 진흙탕을 구르게 만들었으니, 백악관을 통해 수작을 부린 값은 분명히 한 셈이다.

‘수지타산이 맞는지는 의문이지만.’

유니버셜 뱅크의 경쟁자가 진흙탕을 구르는 건 흐뭇한 일이지만, 그게 2014년 말까지 엔플 지분 10%를 매각하는 손해를 메꿀 만큼의 이득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조나단이 짚어 준 사안을 가지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손익을 판단하고 있을 때 JHJ Capital의 문젯거리 또한 조나단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나저나 실리콘벨리의 신성으로 떠오른 메리 홈즈의 아폴론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어떻게 정정 기사라도 내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 * *

21세기는 유명세가 돈을 낳는 시대다.

아폴론의 창업자이자 월가와 세계 부호를 상대로 사기를 쳤던 메리 홈즈는 유명세가 돈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다.

유명세를 얻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명성 높은 이와 친분이 있다는 걸 드러내는 거다.

[의술의 신의 이름을 딴 키트!]

[혈액만으로 병의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기적의 키트!]

[아폴론! JHJ Capital이 지분을 원했던 회사!]

[아폴론! JHJ Capital의 투자를 거부한 회사!]

투자금을 받을 때도 정호준을 팔아먹던 메리 홈즈는, 그녀의 회사에서 개발한 ‘아폴론 키트’란 물건을 소개하는 과정에서도 은근슬쩍 정호준을 끼워 팔았다.

적당히 팔아먹었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는데, 메리 홈즈는 선을 넘었다. 토크쇼까지 나와 정호준과 JHJ Capital을 악당으로 몰았다.

“세간에 떠도는 정보에 의하면 JHJ Capital로부터 투자 제의가 있었는데, 홈즈 대표님께서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JHJ Capital의 투자 요청을 거절하신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JHJ Capital이 투자를 대가로 요구한 지분은 몇 번을 곱씹어도 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비장한 표정을 짓고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아폴론이란 회사를 창업하고 아폴론 키트를 개발한 건, 미국 시민들이 더는 값비싼 검사비 때문에 망설이다가 치료받을 시기를 놓치는 일이 없길 바라는 비전을 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표정 연기, 시선 처리,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톤의 목소리까지, 비전을 이야기하는 메리 홈즈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아폴론 키트의 판매가는 최대한 미국 시민들에게 부담되지 않을 가격으로 책정해 판매하고 싶었습니다. JHJ Capital 측에서 투자를 대가로 요구한 지분을 넘겨주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회사를 창업할 때 품은 비전이 흔들리는 건 한순간입니다. 그래서 투자 제의를 거부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보험이 적용되는 범위나 비용 등이 주마다 다른 나라다. 이는 수술비나 검사 비용 외, 약값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다. 더군다나 자본주의의 총본산답게 되도록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을 따르곤 했다.

이는 곧 환자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약일지라도 기업이 약값을 올리는 것을 막지 못한단 이야기였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투자회사가 제약 특허를 사들여 약값을 5,000% 높여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기 힘들다는 말이었고, 실제로 회귀 전 약값을 5,000% 올렸다가 환자나 환자의 가족에게 반감과 원망을 산 CEO가 존재했다.

해당 CEO는 두고두고 욕을 사발로 먹었으니, 총기를 든 이에게 암살당하지 않는 한 오래 살긴 했으리라.

“미국의 다른 제약회사들처럼 키트의 가격을 높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정호준 대표님이 꼭 그럴 사람이란 건 아니지만, 월가 관계자들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지를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미리 준비해 둔 계획대로 인기몰이에 성공한 메리 홈즈는 정치권과 언론이 떠받든 덕에 미국 시민을 위해 큰돈과 편한 길을 포기하고, 고난을 선택한 성녀라 불리기까지 했다.

“지분을 달라는 이야기는 나눠 본 적도 없잖습니까? 게다가 우리를 완전 악의 축으로 몰고 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차후 JHJ Capital에게 악재로 작용할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할 사람이 회사 이미지를 걱정한다. 아이러니한 상황에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꾹 참고 입을 열었다.

“게다가 월가의 투자를 안 받은 것처럼 가식적으로 구는 것도 역겹습니다.”

월가 투자자들과 멕시코 최고 부호로부터 투자를 끌어내 놓고 저런 말을 한다는 게 기막혔던 조나단은 정호준을 보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정호준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뭐 나도 조나단의 말에 동의하긴 하는데, 이번만큼은 별다른 수가 없어요. 그 당시 상황을 녹음해 둔 파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죠. 그리고 우리가 아니라고 반박해 봐야 시민들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상황을 선택할 겁니다.”

인간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이 있었다. 메리 홈즈가 인기몰이에 성공한 지분을 사들이겠다는 제의를 보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해 봐야, 시민들의 눈엔 자존심이 상해서 둘러댄 변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JHJ Capital의 포트폴리오에 아폴론은 없다는 것만 발표하고, 추후 대응을 어떻게 할지는 한국에 다녀온 뒤에 결정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정호준은 가족들을 모두 동반한 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 * *

명성이나 유명세가 돈이 되는 세상인 건 맞으나,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나쁜 점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유명세를 가진 인간은 돈을 얻는 대신 사생활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단점을 가지게 되었다.

박기태가 연예계에서 활동한 당사자는 아니지만, 부친인 박남정은 이번까지 무려 네 번이나 흥행에 성공한 상업영화 감독이었고, 부인될 사람은 잠깐 주춤하긴 했으나 천만 영화와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필모를 가진 톱 여배우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이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함께 하는 박기태다. 일명 네티즌 수사대라고 불린 이들에게 박기태가 신상을 털리게 되는 것도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가 터져 나왔다.

⌎여기서 언급한 박기태가 강서 고등학교 박기태면, 얘 내가 아는 애 같은데?

⌎rere: 그러게.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이거 대박 사건인데?

박기태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신상과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고등학교 졸업 사진은 박기태와 같은 시기에 상서고를 졸업한 졸업생들로부터 더 많은 정보가 나돌게 했다.

[님들 그거 앎? JHJ Capital의 정호준이랑 김은주랑 결혼하는 박기태랑 둘도 없는 절친임.]

⌎사람도 급이 있는 거. 고등학생 때 친했다고 그 인연이 과연 지금까지 이어질까?

⌎re(작성자): 그렇게 장담할 게 아닌 게, 정호준 부모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박기태는 고민하지 않고 학교 빼먹고 문상감. 사고 났을 당시가 수능 몇 개월 안 남았을 시기임을 고려하면 진짜 인생 걸고 간 거.

⌎rere: 아! 나도 기억났다. 얘네가 걔네 확실함? 그러고 보니까 레전드 리그에도 같이 나갔던데.

온라인에 퍼진 박기태 정호준 절친설은 정호준이 박기태의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전용기로 한국을 방문했다는 데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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