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334화 (334/335)

334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34)

정호준은 욕심이 있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했지만, 그게 문제가 될 게 있냐는 뻔뻔한 태도에 오리하는 허허 하고 웃다가 정색하며 말했다.

“배짱 두둑하게 백악관의 주인을 경쟁자를 제칠 칼로 써먹는 호준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유야 어찌 되었든 자신의 손을 빌려 윌스&파고를 친다는 펙트는 달라지지 않았다.

얼굴을 직접 맞대지 않고 수화기 너머에서 하는 이야기임에도 뭔가 심각하다는 느낌을 들은 정호준은 한발 물러나며 오리하를 달랬다.

“제가 오리하를 칼로 쓴다고 표현하는 건 과장이 많이 섞인 표현 같습니다. 저는 대통령님과 민주당을 돕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윌스&파고에도 도움을 주고 있는 거겠네요.”

“…….”

오리하에게서 별다른 답이 없자 정호준은 황급히 할 말을 이어 갔다.

“한국 속담에 ‘꼬리가 길면 언젠가 걸리게 되어 있다’라는 말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란 표현이 있습니다. 지금 제가 터트리지 않아도 언젠간 터지게 될 일이었고, 지금이 터지는 게 아니라 훗날 더 곪을 대로 곪았다가 터지면 더 큰 손해와 파장을 야기시킬 겁니다. 모기지론처럼 말이죠.”

아직 발생한 지 5년밖에 안 된 위기다. 2016년보다 2013년 현재가 좀 더 약빨이 잘 먹힐 소재였다.

“모기지론의 부실은 제가 눈치채고 로슬러와 로건 등을 설득해 최대한 미국에 피해가 덜 가는 방향으로 해결했지만, 또다시 그럴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일탈 행위를 파악한 지금 확실하게 브레이크를 걸고 회초리를 드는 게 정부와 민주당, 윌스&파고, 그리고 합중국을 위한 거라 생각합니다.”

정호준이라는 변수의 출현으로 회귀 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1회차든 2회차든, 살아남은 은행들은 국가와 국민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쳤음에도 제대로 된 벌을 받지 않았다. 정호준에 의해 바뀐 2회차의 삶에선 리만 브라더스라는 거대한 폭탄을 중국에 넘기기까지 했다.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던 1회차 때도 아무렇지 않게 부정을 저질렀는데, 피해가 적었던 현재는 오죽하겠는가?

정호준의 말이 설득력을 갖고 있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이용당한다는 생각을 하고 난 뒤라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그나마 오리하가 감정 컨트롤을 할 줄 아는 이였기에 이 정도에서 끝난 거였다. 아니, 오히려 잘됐다는 듯 말했다.

“그래요. 미국을 위하는 호준의 마음은 잘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내 쪽에서 한 가지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했는데, 미국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정 대표라면 들어줄 거라 믿습니다.”

오리하의 말을 들은 정호준은 불안감이 밀려왔다.

‘무슨 부탁을 하려고 저런 밑밥을 까는 거야?’

얼굴을 마주 보지 않고 전화 통화로 이야기를 나눠서일까? 정호준의 표정에 불안감이 서렸다.

이름으로 부르다가 정 대표라며 격 높여 부르는 것도 불안감을 조성했다.

“JHJ Capital의 엔플 지분 보유량을 30%까지 줄여줬으면 합니다.”

“예?!”

귀를 의심할 법한 불리한 말이 수화기를 통해 들리자 정호준은 자신이 잘못 들었길 희망하며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러나 잘못 듣지 않았다는 듯 오리하는 확인 사살을 가했다.

“시장에 풀린 주식 수가 적어 돈이 있는데도 엔플에 투자를 못 한다고, 투자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정 대표가 조금 양보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JHJ Capital은 잡스를 내쫓을 때를 제외하곤 이사회나 CEO의 경영 방침에 순순히 따를 뿐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래서 이사회가 안심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대주주 한둘만 손잡아도 과반을 넘길 1대 주주를 편하게 대할 순 없는 노릇이잖나?

종종 정치인들을 만나 넌지시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내뱉곤 했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건너 건너 오리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아니.”

정호준은 너무한 거 아니냐고 따지려 했지만 정호준보다 오리하가 더 빨랐다. 오리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정호준의 말을 끊었다.

“호준!! 백악관은 JHJ Capital이 반도체 회사에 돈을 뿌리는 걸 그냥 넘어가 줬습니다. 백악관에서 호준의 사정을 봐줬으면, 사정을 봐준 것만큼 양보하는 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그래도 30%는 너무 과합니다.”

“건강한 기업 활동을 위해서라도 너무 많은 지분이 몰려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오리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정호준은 입을 다물었고, 이번에는 오리하가 정호준의 눈치를 보며 흥정을 했다.

“34%, 여기가 마지노선입니다.”

“10%를 내놓으란 말이군요.”

“10%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JHJ Capital이 독점하는 형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JHJ Capital이 보유 중인 엔플 주식은 44%. 말이 10%지, 408,006,020(4억 800만)주를 매각하란 말이었다.

정치인의 필수 조건은 철면피란 걸 증명하듯 오리하는 뻔뻔한 어조로 말했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양보를 바랄 뿐입니다.”

회귀 전 보고 들은 엔플이란 회사는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걸로 유명한 회사다. 회사에서 꾸준하게 자사주를 소각하는 행보는 엔플의 주가 상승을 꾸준히 이어 가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런데 2회차 들어서는 정호준이 워낙 많은 지분을 쥐고 있는 탓에 자사주 소각은 전혀 시도하지 않았다. 물론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거해, 엔플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았어도 유동 물량이 워낙 적은 탓에 엔플의 주가는 100달러를 돌파한 지 오래였지만 말이다.

처조부인 찰스에게 통보받았던 것처럼 오리하가 말한 33% 지분율은, 오리하가 반드시 지켜야 할 포인트라고 설정한 마지노선이었다.

“34%, 받아들이겠습니다. 대신 2014년 말까지 시간을 주십시오.”

“시간을 주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드린 그 시간에 정 대표님이 무엇을 할지는 알아야겠습니다.”

“당장 엔플의 주식분할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분할 비율은 1 대 10쯤 되겠네요.”

회귀 전 엔플은 2014년에 1주를 7주로 나누는 주식분할을 실시했다. 분할 시기도 1년 당기고 더 잘게 쪼개는 거긴 하나, 정호준의 입장에서 이득을 최대화하는 방법은 이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하시죠.”

정호준이 1년이 넘는 시간을 달라고 한 건 분할 후 주가가 최대한 상승했을 때 주식을 정리하려는 계산에서 비롯됐음을 알아차렸지만, 그 정도 꼼수는 귀엽다 여기며 넘어가 주었다. 오리하 본인도 자신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대신 저도 조건 한 가지만 더 붙입시다.”

“말씀하시죠.”

“저번에 엔플 주식을 일부 매각해 달라고 부탁드렸을 때, 주식을 매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령 계좌를 동원해 물량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주식을 매각해 달라는 말만 전했지, 주식 매입하는 것에 관해서는 따로 말을 전달한 게 없어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지분율 34%를 넘지 말라는 지시는 숨기고 있던 정호준의 반골 기질을 올라오게 할 뻔했지만, 꾹 참았다. 대통령과 대립각을 내세워 봐야 손해를 보는 건 바로 본인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시기가 안 맞았다. 정말로 복수를 하고 싶다면 최소한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온 뒤에 움직이는 게 맞았다.

통화를 마친 뒤 정호준은 확보해 두었던 주주들에게 주주총회를 열겠다는 뜻을 밝혔다.

[엔플 주식분할 안건 주주총회 통과!]

[2013년 10월 11일 엔플 주식분할 실시!]

[분할 비율은 1 대 10!]

오리하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정호준은 주주총회를 개최해 주식분할을 진행했다. 1대 주주가 지분 44%를 지닌 회사에서 불가능이란 없었다.

엔플의 주식분할 소식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112.36달러였던 주가는 140달러를 넘기며 껑충 뛰었다.

* * *

정호준이 무사히 주주총회를 마쳤을 무렵, 재무부나 법무부에서 보낸 감사팀은 윌스&파고가 유령 계좌를 운영했다는 증거물을 찾기 위해 뒤졌다.

언론 또한 신물과 광고를 팔아먹을 기회라는 듯 하루도 쉬지 않고 윌스&파고의 경영진을 욕했다.

재무부 소속으로 국내은행 및 국제 은행에 대한 감독을 담당하는 OCC(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 마찬가지로 재무부 소속으로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을 감독하는 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법무부 소속으로 기업의 부정행위 조사를 담당하는 DOJ(Department of Justice), 독립된 기관으로 금융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보호와 규제를 담당하는 CFPB(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까지. 연방정부 휘하의 기관들이 발 벗고 나서서 윌스&파고를 공격했다.

[내 개인 정보가 어디선가 도용되고 있었다?]

[실적을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이들!]

[사태는 심각했다! 유령 계좌만 100만 개를 넘긴 범죄자들!]

제 나라가 어디쯤 위치해 있고, 이웃 국가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본인이 거주 중인 주가 어디쯤 있는지도 모르는 이가 많은 곳이 미국이란 나라였지만, 미국인들은 본인의 개인 정보와 프라이버시를 두고 그 어떤 나라보다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국민적인 이슈로 떠오르자 미국 상원은 윌스&파고 측 CEO를 상원 청문회 자리로 불렀다. 아리아와 티타임을 가지면서 청문회를 함께 지켜봤고, 청문회를 구경한 정호준은 한숨만 내쉬었다.

‘큰 목소리로 꾸짖기만 할 뿐,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는 건 한국이랑 똑같네.’

미국의 정치인들은 한국 정치인들처럼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게 아닌 협치할 때는 확실하게 협치를 해 줬고, 그 모습을 보며 미국이 한국보다 정치 수준이 높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도 목소리 크면 이긴다고 생각하긴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유령 계좌 때문에 시작된 조사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고구마 줄기처럼 비리를 연달아 내보였다.

[윌스&파고, 자동차 대출 고객을 대상으로 보험 판매 부정행위 적발!]

[윌스&파고, 주택담보대출 사기 적발!]

[윌스&파고, 신용카드 수수료 추가 부과!]

먼지 없는 기업은 없다는 말처럼, 감독 기관이 작심하고 은행을 터니 예상하지 않았던 온갖 불법 행위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탈출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겠네.’

일전에 고객(소비자)은 혜택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이야기했지만, 때에 따라선 귀찮음 때문에 둔하게 움직이기도 한다.

결제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되는 불편함과 윌스&파고가 깎아 먹는 이미지는 ‘고객의 이탈’이라는 결과물을 가져다주었고, 윌스&파고에서 이탈한 고객이 유니버셜 뱅크나 다른 3대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는 경향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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