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25)
정호준의 지시를 받은 JHJ Capital 주식 매입팀이 주식을 사들인 회사는 모두 합쳐 13곳. 과장 조금 보태면 미국에서 반도체란 이름을 달고 있는 회사를 다 매입한 꼴이다.
주식을 매입하는 데 쏟아부은 돈은 354억 8,276만 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40조가 넘는 돈이다.
354억 8,276만 달러는 후진국이라 분류되는 국가의 예산보다도 많은 돈으로, 개인 자산으로는 좀 큰 감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현금으로 들고 있는 일은 더더욱.
하지만 JHJ Capital은 903억 달러라는 웬만한 개발도상국급 예산을 보유 중이었고, 이 말은 지금까지 쓴 돈보다 써야 할 돈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보고서 잘 전해 받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의상의 대화가 잠깐 오간 뒤 정호준은 추가 지시 사항을 이야기했다.
“엠비디아와 AME의 주식을 조금 더 확보하고 싶네요.”
“추가로 얼마쯤 더 확보하길 원하십니까?”
“적게 잡아도 10%, 사정이 허락한다면 20%까지 더 확보했으면 합니다. 대주주와 접촉해서라도 반드시 매입해 주세요.”
2010년대 초반인 현재까지도 저점에서 놀고 있는 회사들이지만, 이 두 회사는 가파르게 성장을 거듭한다. 엠비디아와 AME는 2022년 기준 31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반도체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질 회사들이다.
정호준의 눈에 두 회사의 주식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보물과 같았다.
“두 회사 모두 우리 JHJ Capital이 이미 20%나 지분을 확보한 회사들입니다. 우리가 경영권을 노린다고 판단하고 크게 반발할 수 있습니다.”
조나단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을 알리자 정호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둘은 칼컴이나 린텔이 아니잖습니까? 경영진이나 창업자들이 반발하고 눈총을 주더라도 지분 확보가 우선입니다. 조나단 선에서 해결이 안 되면 내 쪽으로 연결해 주세요. 내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적의를 사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정호준이 적의를 감수하겠다고 말하자 조나단은 입을 다물었다. 정호준이 적의를 감수할 만큼 두 회사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
잠깐 자기 의견을 내다가 수긍하는 조나단의 태도에 정호준은 웃으면서 추가로 시킬 것들을 언급했다.
“해외 반도체 회사의 주식도 매입했으면 합니다.”
“계획해 두신 바가 있으십니까?”
“메일로도 보내 드리겠지만 대만의 TWSMC와 마이크로일렉트로니스 유니온, 미디어테크놀로지, 네덜란드의 ASMLC과 NXP 마이크로컨덕스, 독일의 Inferion Union과 스위스의 ST 세미크로 일렉트로닉스, 한국의 오성전자입니다.”
현재 가치 있는 혹은 귀에 익은 회사들의 명단을 뽑은 거지만 위 회사들은 모두 2022년 매출 기준 세계 20위 안에 랭크인 하는 1년에 17조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들이다.
“가급적이면 지금 언급한 회사들 지분을 20%는 확보했으면 합니다.”
“오성전자는 12%만 추가로 확보하면 되겠습니까?”
조나단은 JHJ Capital이 과거 한국 시장에 투자할 때 8%의 지분을 매입한 사실을 언급했다. 추가로 20%를 매입할지, 아니면 12%만 매입해 20%를 채우길 원하는지 묻는 물음에 정호준은 잠깐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12%만 매입하는 거로 하시죠.”
오성전자가 승승장구할 미래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 많은 주식을 확보하고 싶었지만 몇 가지 걸리는 게 있어서 욕심을 접었다.
첫째로 김건희 회장이 제안한 정략결혼에 그는 아직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아직 숙고 상태인 셈. 하지만 그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 간에 너무 많은 지분 확보는 상대방에게 불쾌감과 적개심을 심어 줄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도 그럴 게 정호준이 요구한 20%의 지분도 우호세력이 가진 지분으로 생각하고 말기엔 너무 많았다. ‘순환출자’나 ‘다단계 피라미드식 지주회사 구도’ 등 여러 꼼수를 활용했음에도 오성 일가가 보유한 오성전자 지분은 15%를 넘기지 못했으니 말이다.
정략을 받아들이면 받아들이는 대로 JHJ Capital이 기회라고 생각해 손녀를 앞세워 오성전자의 경영권을 노린다는 의심을 심어 주기 충분했고, 정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않는 대로 사돈도 아닌 ‘남’이 그렇게나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우리라.
둘째로 한국 기업들은 배당에 짜다는 현실이 정호준의 욕심을 막았다.
‘한국 재벌들은 배당에 인색하지.’
한국의 재벌들은 그들이 5~20%의 지분만 보유하고 있음에도 순환출자나 다단계 피라미드식 지주회사 운용과 같은 금융 기술과 재벌가의 거수기 역할을 톡톡히 하며 재벌들의 우호 세력으로 남는 국민연금을 이용해 회사의 주인 행세를 하며 회사를 자기들 맘대로 경영한다.
그런데 배당은 지분을 쥐고 있는 만큼 나눠 갖게 만드는 행위다. 1,000억을 배당한다고 쳤을 때 오너 가문은 적으면 50억에서 많아 봐야 20%인 200억밖에 못 가져가니, 회사를 자신들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배당이란 행위는 달가울 리 없었다.
그래서 한국의 재벌들은 배당을 정말 최소한으로 실시하며 사내보유금이라는 명목으로 자산을 꿍쳐 뒀다. 그리고 자신이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를 새로이 설립해 일감을 몰아주는 식으로 회사를 키우며 자신의 자산을 불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도 아니라면 잘 성장한 회사를 물적분할을 통해 갈라쳐 새롭게 상장시키기도 했고 말이다.
코스피나 코스닥이 한국의 경제 규모보다 저평가되었다는 말이 항상 나도는데도 한국 증시가 드라마틱한 상승을 경험하지 못하는 건 전부 이유에서였다.
배당금 외에도 주가 상승으로 충분히 돈을 벌긴 하겠지만, 같은 돈을 묵혀 둔다는 전제라면 배당금이 많이 들어온 쪽이 더 탐나는 게 현실이잖은가?
“급하지 않으니까 천천히 부탁드립니다.”
* * *
업무상의 통화를 마친 정호준은 다시 한번 보고서를 훑어본 뒤 비서팀이 구해 온 연락처를 통해 김재호 회장과 약속을 잡았다.
‘일단 김재호 회장의 생각은 어떤지 물어봐야지.’
앞으로 1년 후인 2014년. 김건희 회장이 건강 악화로 쓰러진다. 사망에 이르진 않고 정신도 말짱해 병원 내부에서 산책 등을 하며 활동하긴 하지만, 일선에 나설 정도로 회복되는 건 아니라서 그룹의 경영에서는 손을 떼게 된다.
이 말은 즉 김건희 회장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보단, 김재호 회장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김재호 회장이 딸을 가진 당사자이기도 했고 말이다.
정호준이 워낙 거물인 데다가 김건희 회장에게 따로 언질받은 이야기도 있어서 김재호는 빠르게 시간을 내주었다.
시간을 내주는 걸로 모자라 한남동에 위치한 본인의 저택으로 초대까지 해 주었다.
“갑자기 이렇게 약속을 잡아서 죄송합니다.”
“갑자기라니, 그런 말씀 마시죠. 저는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남들은 십억을 넘게 지불하면서까지 갖고 싶어 하는 자리잖습니까?”
현재 미국에선 정호준과 갖는 식사 자리는 에릭 버펫과 갖는 식사 자리만큼이나 인기가 많아졌다. 미국에 심어 둔 정보망을 통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김재호는 위트 있게 정호준의 형식상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낯 뜨겁습니다. 부인을 도우려고 한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다 대표님께서 능력이 있으셔서 그런 겁니다. 그나저나 대표님께서 저를 따로 불러내셨다는 건 약혼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서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이야기는 전해 들으신 모양이네요.”
인정하는 듯한 정호준의 발언에 김재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며칠 전에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자수성가 출신이라 정략결혼이라는 행위 자체가 좀 껄끄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부회장님의 따님도 그렇지만 제 아들이 너무 어려서요.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더군요.”
자칫 잘못하면 네 딸이 부족하단 식으로 들려 기분을 상할 수도 있기에 정호준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다만, 아직 결정을 내리진 않았어도 약혼에 관한 사안은 김건희 회장님보단 부모이신 김재호 부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호준의 경우 있는 이야기에 그나마 김재호의 표정이 조금은 온화해졌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나도 아버지가 우리 혜주의 약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당황스러웠으니까요.”
“부회장님께서는 이 혼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아버지가 결정하신 일인데, 내 의지가 얼마나 통하겠습니까?”
재벌가가 아들을 선호하긴 하지만 딸을 예뻐하는 시대적 가치관은 충분히 주입된 상태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딸의, 초등학생인 딸의 혼사가 벌써부터 언급되는 지금의 상황이 김재호 부회장이라고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런 말씀 마시죠. 김재호 부회장님은 직접적으로 연관된 당사자십니다. 부회장님이 이 약혼을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를 확인해야 제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을 이끄는 오너의 입장에서는 대표님과의 결합이 달갑긴 합니다. 다만 진심을 이야기하자면, 딸 가진 아빠로서는 마음이 씁쓸합니다.”
김건희 회장이 본인과 비교하며 깎아내리지만 김재호 부회장이 후계자 수업을 받은 지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호준의 아들과 자신의 딸을 엮으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부친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정호준이라는 보험을 하나 더 들어 놓으려는 거겠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재호를 보며 정호준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김재호 부회장님도 이 약혼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예, 맞습니다. 훗날 아이들이 커서 정말 결혼하기 싫다고 이야기하면, 그땐 결혼을 다시 생각해야겠지만. 당장은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 중에 있습니다.”
* * *
박정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정호준이 펀드 개설을 언급한 뒤로 대한민국 전역에 위치한 동사무소와 구청은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몰려든 부모들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통장(계좌)을 만드는 것에 대한 연령 제한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의 통장은 만들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배 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부모들이나 아이 계획을 세운 예비 부모들은 구청에 몰려와서 출생신고를 요청했다.
전에도 이야기했다시피 100만 원은 사회생활을 이어 가고 있는 이들에게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돈이었다.
‘일찍 출생 신고한 게 걸리면 벌금(과태료)을 내야겠지만, 과태료보다 정호준이 벌어다 줄 게 더 많을 테니까.’
[접수까지 기본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 현실!]
[3월부터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출생신고. 이유는?]
[몰려드는 민원 때문에 고통받는 공무원들!]
덕분에 공무원 인력이 부족하다느니, 접수하기까지 기다림이 너무 길고 민원이 빠르게 처리되지 않는다는 사회 문제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