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17)
김은주가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을 배웅한 뒤 박기태는 계획했던 대로 방송을 시작했다.
할리우드 스타든 스타 BJ든 신인 시절이 존재하는 법. 박기태라고 다를 리 없었다. 아니, 박기태는 정호준이 그랬던 것처럼 백인이나 흑인이 아닌 황인이었기에 미국인보다 높은 진입 장벽이 존재했다.
이미 차별을 경험했기에 박기태의 도전이 쉽지만은 않을 거라 판단했다. 그러나 박기태는 괜한 걱정이라는 듯 금방 자리를 잡았다.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었고, 박기태는 배우급은 아니지만 모델급은 족히 될 정도로 잘생겼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외모는 인종을 초월했다.
흑인이든 황인이든 백인이든 간에 잘나고 예쁜 얼굴에 호감을 갖는 건 인종을 불문하고 같았다.
Legend League Champion’s Room!!
12시즌 챔피언이란 미끼로 관심을 끌고 방제에 이끌려 찾아온 이들을 특유의 입담과 친화력, 그리고 정호준에게 레전드 리그를 배우면서 알게 된 팁이나 세계 최고 부자인 정호준과의 관계, 기자로 일하면서 겪은 일들을 썰로 풀며 고정 시청자로 붙잡았다.
평균 시청자 수가 300명을 돌파하는 데까지 정말 한순간이었다.
“Thanks Bro!”
시청자가 많아지기 시작하니 후원도 쏠쏠히 들어오기 시작했고, 부업이라고 생각했던 스위치 게임 방송이 기자 월급을 앞질렀다.
“Guys, if you have time, please watch the video uploaded to V-Tube(여유 되면 뷔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도 봐 주세요).”
뷔튜브 채널 홍보까지 깨알같이 진행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았다.
* * *
김은주가 귀국하고 박기태가 부업을 뛰며 열심히 살고 있을 무렵, 대한민국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다.
박정혜와 민재민.
대통령의 권좌에 앉았을 운명을 가진 이들끼리의 격돌이었다.
오리하의 압승으로 끝났던 미국 대선과 달리 18대 대통령 선거는 참으로 치열했다.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격전이 이어졌다.
경쟁률이 치열해도 결국 결과는 나오기 마련.
박정혜: 15,363,128표.(50.0078%)
민재민: 15,112,632표.(49.1924%)
250,496표. 백분위로 환산하면 0.8154% 정도에 불과한 아주 미약한 차이로 보수당 출신 후보자 박정혜가 승리를 거두었다.
아리아와 식사를 함께하며 개표 방송을 끝까지 지켜본 정호준의 업무용 연락처로 전화가 걸려왔다.
-박정혜
발신자를 확인한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리하도 그렇고 이 여자도 그렇고. 대통령 당선됐다고 나한테 전화를 하네. 내가 꿀인가?’
속으로 불평을 하면서도 목소리를 가다듬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 통화를 연결했다.
“정호준입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저 박정혜입니다. 혹시 기억하실까요?”
“그럼요. 기억하고 말고요. 그렇잖아도 와이프와 함께 한국 개표 방송을 보던 참입니다.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후보님. 아니지, 당선인이라 칭해야 맞겠네요.”
“호호호, 호칭이야 뭐든 괜찮습니다.”
형식상의 사죄에 박정혜는 너스레를 떨며 받아쳤다.
“뒤풀이하느라 바쁘실 것 같은데, 어쩐 일로 연락을 다 주셨습니까?”
“2월에 있을 취임식에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연락드리셨습니다. 오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시간 괜찮으실까요?”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직종이라 당장 확답을 드릴 수가 없네요.”
빼는 듯한 대답에 ‘비싸게도 군다’란 생각을 하면서도 시간 괜찮으면 와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대표님께서 공사가 다망하신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잠깐 시간을 내주셨으면 좋겠네요.”
“혹시, NB(남부) 하이텍이라는 회사 알고 계십니까?”
“남부그룹 자회사로 알고 있습니다.”
박정혜의 대답에 정호준은 헛기침을 하며 잠깐 말을 끊고 집중시켰고, 잠깐 생겨난 정적을 끊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하이스트 반도체가 남부 하이텍과 남부LED를 인수할 수 있게 힘 좀 써 주시면 제가 시간이 날 것도 같습니다.”
자신의 이름값과 명성을 알고 있는 만큼 정호준은 대가를 요구했다.
“…….”
대가를 요구하는 정호준의 발언에 박정혜는 침음을 흘리며 침묵했다.
* * *
남부 그룹. NamBu의 N과 B를 따 NB 그룹이라고도 불리는 기업으로 강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장남 강준호가 세운 미룡건설이 그룹의 시작이었다.
1971년 남부고속운송을 세워 관광사업에 진출했고, 1972년 남부상호신용금고를 개업해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1973년 사우디아라비아에 미룡건설 지사를 세워 중동의 오일머니를 끌어와 기업을 확장했다. 1976년 부실 합금철회사인 삼척산업을 인수하며 철강업에 뛰어들었고, 1978년 한미물산, 대정실업, 부산운수 3사를 인수해 물류업에까지 손을 뻗었다. 1980년 공기업 한국자동차보험의 주식을 인수해 보험업에까지 손을 뎄고, 1982년 남부투자금융, 1989년 남부애트나생명 등을 설립하여 금융사업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1984년에는 동진제강을 인수한 후 CIP까지 제정한 뒤 86년 공기업인 한국비료공업과 울산석유화학을 인수하며 석유화학사업에도 욕심을 냈다.
공격적인 경영과 IMF를 견뎌 낸 덕에 21세기에 들어서는 대한민국 10대 그룹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승승장구를 이어 갔지만, 00년대에도 남부그룹은 공격적인 경영을 이어가며 사세를 키웠다.
무리한 확장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는 법. 회사 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자금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고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디폴트 사태로 시장과 금융업계 등이 경색되는 바람에 10년대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호준이 언급한 남부 하이텍은 1997년 남부산업에서 정보통신본부를 분리시켜 ‘남부정보기술’로 출범시킨 뒤 창업한 남부전자가 시초로, IMF 때문에 세가 기운 아남반도체를 인수해 덩치를 불린 기업이다.
‘그리고 남부 하이텍이 남부 그룹을 말아먹는 데 한 손 크게 보탰지.’
반도체 사업은 그 어떤 사업보다도 돈 먹는 하마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분야다.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던 남부그룹 회장의 강력한 의지 때문에 반도체 사업에 꾸준하게 돈을 들이부었지만, 이 선택은 남부 그룹이 흔들리는 상황에 한 손 보탠 꼴이 되었다.
‘수익이라도 내고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계속 적자였으니까.’
정호준이 인수한 하이스트 반도체조차 2005년 이전까지 계속 적자였고, 2007년 이후에도 3년간 적자가 지속되었다. 기술 개발 등을 이유로 돈은 꾸준하게 꼬라박아야 하는데, 회사는 해마다 적자 경영이다.
남부 하이텍은 규모에 있어서도 오성전자나 하이스트 반도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곳이다 보니 규모의 경제나 경쟁력 면에서도 밀렸다.
‘2015년부터 흑자로 전환됐지.’
남부 그룹의 재무 구조를 악화시키던 ‘남부 하이텍’이 흑자로 전환된 건 2015년. 1,267억이라는 순이익을 얻은 뒤로 승승장구를 이어 갔다.
‘고집을 부리긴 했지만 안목과 비전만큼은 확실히 봤다는 소리지.’
재벌 2세나 3세는 욕먹는 경우가 많아도 1세대들은 국민으로부터 인정받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인정받고 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사정이고 반도체 업계에서도 절대 강자가 되고자 하는 정호준은 제 욕심을 위해 움직였다.
“도와달라라. 지금이 오공, 육공 시대도 아니고 제가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
민주주의가 완연하게 장착된 21세기에서 정부가 기업에게 매각을 강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것도 상대는 조그마한 중소기업이 아닌 한때나마 10대 그룹에 이름을 올린 기업이다. 그리고 지금도 20대 기업이나 30대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저력 있는 기업이었다.
은연중 거절을 입에 올린 박정혜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정호준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밝혔다.
“남부 그룹의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쪽을 살짝 쑤셔 주시면 제가 일을 편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흑자 전환이 되는 시기는 2015년. 남부 그룹에게 남부 하이텍은 아직 애물단지였다. 1년 정도는 더 기다려 보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 인수해서 규모를 확장해 둬야 앞으로 있을 황금기에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취임식에 참석해 주시는 것에 대한 대가로는 조금 과한 것 같습니다.”
“제가 대통령님의 부탁을 받고 펀드를 하나 새로 개설하면 어떻겠습니까?”
“펀드요?”
정호준은 1인당 100만 원까지 입금 가능한 펀드를 개설하겠다는 제안을 건넸다. 박정혜 대통령이나 박정혜 대통령을 후원한 사이비 종교 집단의 수장에게 경제적 이득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JHJ Capital이 투자자의 돈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예, 유명하니까요.”
JHJ Capital이 자신의 자산을 불려 주길 원하는 부호는 전 세계에 널리고 널렸다. 그럼에도 정호준은 개인 자산 운용이라는 JHJ Capital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5년 만기 펀드로 수익의 60%를 수수료로 JHJ Capital이 가져가고, 혹시 모를 손해에 배상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개설될 펀드입니다. 오리하 대통령과도 이야기가 된 사안인데, 그 대상을 대한민국 국민까지 넓혀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펀드도 수수료로 20% 이상 떼가지 않는다. 그런데 수수료로 반 이상을 떼간다? 그러면서 손해는 책임지지도 않고? 박정혜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 그 조건으로 돈을 맡길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될까요?”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실력이고 능력 아닐까요?”
100만 원. 평범한 서민 가정 기준에서 볼 때 적은 돈은 아니다. 그렇지만 큰돈으로 분류하기도 애매한 돈이다.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배곯지 않을 그런 애매한 돈.
정호준이 펀드를 개설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인도나 중국 주식에도 투자를 하긴 해야 하니까.’
이름값 있는 대기업에만 투자할 생각이다. 중국을 우선으로 하고 인도는 그다음. 그런데 문제는 정호준이 중국에게 끼친 손해가 상당히 막심하다는 거다. 최초의 원유 선물만 걸리고 나머지는(곡물 선물 포함) 아직 까발려지지 않았으나, 금값 폭락으로 정호준에게 금광을 매입했던 중국 경제는 다시 한번 타격을 받았다.
원유 선물로 한번, 신용부도스와프(CDS)로 한번, 그리고 이번 금값 폭락 사태로 또 한 번. 밝혀진 것만 한화로 약 200조 원은 족히 손해를 봤다. 2010년 3분기부터 일본 GDP를 추월했을 중국은 정호준 때문에 2012년 1분기가 돼서야 처음으로 일본의 GDP를 추월했고, 그마저도 금값 폭락이랑 곡물 선물이 겹쳐 다시 주춤했다.
그래서 문제였다.
정호준에게 앙심을 품은 공산당이 정호준에게 손해를 끼치고자 투자한 회사를 일부러 망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중국은 공산당이 일당 독재를 하는 기상천외한 나라잖은가? 그런 이유로 정호준은 자신의 개인 자산을 결코 중국 쪽에 투입하지 않았다.
정호준 때문에 몇 번이고 큰 손실을 입었지만 그럼에도 중국은 거대한 나라였고, 무시할 수 없는 잠재력을 지닌 나라였다. 앞으로 최소 5년은 눈부시게 성장할 게 눈에 보였기에 욕심이 났다.
그래서 생각한 게 미국인을 등에 업는 펀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