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06)
정호준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해결책이 한 번 더 점검하는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과정을 하나 추가한다는 건 그만큼 ‘자동차의 생산 속도[PR(Production rate)]’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그럼 기업은 PR(생산 속도)이 낮아진 만큼 더 많은 인건비를 사용해야 한다. 인건비 외에도 공장을 돌리느라 사용한 전기 비용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깔끔하게 한마디로 정리하면 순이익의 비율이 낮아진다는 말이다.
게다가 PR이 낮아진 만큼 차를 구매한 고객이 차를 받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늘어나게 될 테고, 그러다 보면 기다리는 게 싫어서 다른 제품을 선택하거나, 환불을 요청하는 경우도 생겨날 거다.
조금 과장된 가정일지 모르나 가능성이 ‘0’는 아니었다.
순이익과 매출에 지장이 생길 수 있는 한 수를 굳이 둬야 할 이유가 있을까?
더군다나 과정을 하나만 추가해도 시간을 왕창 잡아먹는데, 정호준은 하나도 아니고 세 곳이나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래 자동차와 지아 자동차가 정호준이 지적한 사안에서 트러블이 발생한다는 것을 모르는 박몽구 회장 일가나 그를 따르는 주주들은 정호준이 너무 과하게 걱정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증명하듯 박의선 부회장이 사회자로부터 발언권을 얻어 피드백을 시작했다.
“정호준 대표님께서 제안하신 의견을 수렴하면, PR의 감소가 상당할 겁니다. PR의 감소는 순이익의 감소로 작용할 거고요. 왜 스스로 배당을 줄이시려 합니까?”
“지금의 선택이 종국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 믿으니까요. 박의선 부회장님이 말씀하셨듯 PR이 문제가 된다면 안전 검사를 진행하는 범위를 줄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고견이 있으시다면 일단 의견 수렴하겠습니다.”
안전 검사를 진행하자는 의견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는 듯 정호준이 역제안을 제시하자 박의선은 어떤식으로 진행할 것인지를 물었다.
“저는 종종 듣곤 했습니다. 미래 자동차는 내수용과 수출용이 다르게 생산된다고.”
“낭설일 뿐입니다. 미래 자동차는…….”
정호준의 갑작스런 공격에 박의선 부회장은 발언권을 얻지도 않고 변명을 외쳤다. 그러나 박의선 부회장의 변명이 끝나기도 전에 말에 힘을 실으며 박의선 부회장의 말을 끊어 냈다.
“상관없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싶지만, 미래가 내수용 자동차를 어떻게 생산하든 간에. 그건 제가 알 필요 없는 일입니다. 어차피 한국은 미래 자동차의 앞마당이고, 트러블이 있어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미래에게 있다고 믿으니까요.”
정호준의 말에 박의선 부회장은 입을 다물었다.
“저는 돈을 굴리는 투자자입니다. 돈 굴리는 투자자가 도덕 같은 걸 따질 것 같습니까?”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특허를 낸다 한들, 자신들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빼앗는 작업을 스스럼없이 진행하곤 한다. 그게 한국의 대기업들이다.
대기업(재벌가)의 입김은 법조계든 은행권이든, 언론이든 구분할 것 없이 모두 들어가 있었고, 그들이 쳐 놓은 그물은 약자의 발버둥을 찍어 누르곤 한다.
내수용과 수출용이 정말 존재하는지는 관계자만 알겠지만 중소기업의 특허를 빼앗는 건 정말 암암리에 알려진 팩트이지 않은가? 도덕을 따질 거면 애초에 대기업에 투자하지 않고 중소기업에 투자하고 같이 싸워 주는 게 올바른 선택지였다.
가시밭길을 함께 걷는 대신 미래에 돈을 투자했다면 그러한 과정에서 눈을 떼는 게 맞았다.
“내게, 아니 우리 JHJ에게 중요한 건, 미래가 우리에게 꾸준하게 돈을 벌어다 줄 역량이 있는지, 그리고 문제가 생겨도 금방 수습할 역량이 있는지입니다.”
일장 연설을 한 정호준은 박몽구 회장과 박의선 부회장,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 뒤 물었다.
“미래는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잡음 없이 해결할 역량을 갖췄습니까?”
정호준은 거짓을 입에 담을 생각을 못 하게 냉정한 시선으로 쏘아봤다.
“아! 하나 덧붙이자면, 우리 JHJ가 미래 자동차를 위해 미국 정계나 언론에 힘을 써 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결코 없다고 이 자리에서 장담하겠습니다.”
“미래가 잘되는 게 JHJ에게도 좋은 거 아닙니까?”
주주 중 하나가 발언권을 획득해 물음을 던졌고, 정호준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미래 자동차를 두둔하는 모습이 미국 국민이나 상류층들에게 좋게 보일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빅3 중 두 곳이 정부의 주도하에 병합됐고, 큰 수술을 거쳐 살아나기 시작했다. 재단장을 마친 뒤 나스닥에 재상장하기도 한 만큼 정부가 곱게 볼 리 없었다. 국민 여론도 비슷했다. 미국은 자동차 사업 분야에서 나름 콧방귀를 끼는 나라였고, 자신들이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런 나라에서 막대한 부를 소유한 정호준이 경쟁 업체인 미래 자동차를 위해 움직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회장님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미래 자동차는 아메리카 대륙이나 유럽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정호준이 그럴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정확한 수치까지 가져다 댈 것을 눈치챈 박몽구는 거짓 없이 솔직하게 무능을 인정했다.
“경영자께서 PR이 문제가 된다고 하시니, 저도 한발 물러나 드리는 겁니다. 수출용에서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판매하는 것에만 추가로 검사를 진행하면 어떻겠습니까?”
아시아 국가들이 많이 올라온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나라의 부를 빨아먹는 최상위층을 제외하면 구매력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상품에 대한 주된 평가는 어디까지나 미국 시장이나 유럽 시장에서 팔리는지에 갈렸다.
그리고 다 떠나서 미래 자동차나 지아 자동차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인으로서 가슴 아픈 사실이지만 이 팩트는 2020년대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기차 브랜드인 테슬러의 출현으로 점유율만 빼앗겼다.
“JHJ Capital이 제안한 안건 받겠습니다.”
* * *
정호준이 한국에서 볼일을 보고 있을 무렵 JHJ Capital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들에서 꽤 많은 변화가 뒤따랐다.
첫 번째 변화는 2012년 5월에 발생했는데, 스티븐 잡스가 CEO로 재취임한 이후로 배당금을 지급한 적 없었던 엔플이 배당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2010년 애플 패드 발표 이후 은퇴한 잡스의 자리를 차지한 짐 쿡은 제품 생산과 유통 과정 개선에 힘을 실으며 잡스의 그림자를 지워 냈고, 짐 쿡 본인의 뜻대로 회사가 굴러가는 것을 인지한 후에야 1회차 때처럼 배당을 시작했다.
짐 쿡은 다른 회사들처럼 연에 4번 배당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고, JHJ Capital은 이런 짐 쿡을 지지했다. 엔플 지분의 40% 이상을 보유 중인 JHJ Capital이 짐 쿡을 지지하자 별다른 잡음 없이 배당이 시작되었다.
‘돈 준다는데 싫을 사람이 어딨어? 이제야 수익이 나네.’
JHJ Capital은 우호 세력의 지분까지 합치면 50%가 넘는 지분을 확보했다. 사실상 엔플의 주인이라 봐도 무방했으나, 한국 대기업처럼 오너 가문이 곶감 꺼내 먹듯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엔플의 정체성은 주식회사였고, 이익을 창출하려면 배당이라는 수단이 필요했다.
두 번째 변화는 JHJ Capital이 대주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회사들이 하나둘 액면 분할(Stock Split)을 실시했다는 거다.
정확히 두 곳이 액면 분할(Stock Split)을 실시했는데, 바로 ‘코x콜라’와 ‘펩x’였다. 당장 새로운 주식을 매입할 계획이 없던 JHJ Capital은 이전까지와 달리 주식 분할에 찬성했고, 대주주의 찬성에 잡음 없이 분할이 시작되었다.
코x콜라는 2012년 6월 초 주식 분할을 실시했고, 그에 뒤질세라 ‘펩x’ 또한 7월에 주식 분할을 실시했다. 두 회사 모두 한 주가 2주로 변하는 2:1 비율로 주식 분할을 실시했다.
JHJ Capital이 보유 중이던 코x콜라 주식 8억 4천만 주(지분율 15%)는 16억 8천만 주로 변모했고, JHJ Capital이 보유 중인 ‘펩x’ 주식 2억 7,542만 주(지분율 20%)는 5억 5,084만 주로 새끼를 쳤다.
주식 분할이라는 행위는 기업의 가치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단순히 주식만 나누는 행위였으나, 분할 후 빠르게 상승하는 주가를 생각하면 배당금을 지급받지 않았음에도 가만 앉아서 큰돈을 번 셈이다.
* * *
민재민으로부터 정호준과 공식적으로 만날 수 있게 다리를 놔 달라는 부탁을 받은 강현태는 그에 대한 대가로 이번 대선에서 떨어지면 책임을 지고 은퇴하겠다는 각서를 받아 냈다. 각서에 도장은 물론이고 지장까지 찍게 했다.
‘공수표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최소한 이런 담보는 있어야지.’
민재민에게 각서를 받아 낸 강현태는 각서를 받아 냈다고 이걸 깔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다. 괜히 자기들끼리 밀실에서 밀약을 주고받았다고 역풍이 불 수 있다는 걸 모를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았으니깐 말이다.
‘다만, 최소한 당의 중진들의 생각이 바뀔 수는 있겠지.’
정치는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내어 주는, 주고받는 게 분명해야 하는 분야다. 본인이 직접 정치적인 양보를 약속해 놓고 말을 바꾸는 이를 과연 누가 신뢰할 수 있을까?
어쨌든 받을 걸 받은 강현태는 약속한 대로 정호준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개인적으로 강현태를 대통령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 정호준은 그러한 강현태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국민에게 노출시킬 공식적인 만남인 만큼 JHJ Capital 한국 법인이 사용하고 있는 테헤란로의 빌딩에서 만남이 성사되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진보당의 민재민입니다.”
“JHJ Capital의 정호준입니다.”
노민현을 시작으로 김명호와 박정혜, 민재민까지. 대통령이 될 사람을 많이도 만난다고 생각하면서도 준비해 둔 티와 다과를 가져오도록 손짓했다.
정호준과 민재민 외에도 자리에는 민재민의 보좌관이 함께했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 세계 경제가 어떻게 변화할지 고견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탈원전 정책은 접어 두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스스로를 결과만 가지고 평가하는 중도라 생각하는 정호준은 민재민 또한 좋아하지 않았다. 모두까기 인형이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잘한 건 잘한 거고 못한 건 못한 거잖은가?
‘탈원전을 시작으로 이래저래 잘한 게 없지.’
민재민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당시 세계 분위기가 탈원전을 추구하는 추세였다고 말하고, 원전을 없애거나 건설 중인 것을 엎은 게 아닌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계획만 해 뒀던 것들을 엎었다고 주장한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때도 프랑스는 원전을 선호했고, 추가 계획을 엎은 것만으로도 그쪽 업계에서 부품 등을 납품하며 먹고사는 업체들을 망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사업이란 건 현재 매출만 갖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의 주도하에 원전 사업을 키우고 경쟁력을 갖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탈원전을 외친 건 국가에서 더 이상 원전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 없다는 걸 선언한 거였고, 누가 들어도 호재로 작용할 수 없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