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305화 (305/335)

305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05)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는 종종 정치인의 격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되곤 한다.

2000년대 중반 사진원이 중국 중앙 정계에 입문하지 못하고 바깥에서 겉돌던 시기에 대한민국을 방문했던 사진원은 대한민국의 제1당 여당 대표 박정혜에게 만남을 청했다. 당시 사진원은 박정혜와 미팅을 가질 급이 안 됐는데, 박정혜는 중국이 한국 경제 발전에 큰 축이 되어 주고 있는 점을 고려해 시간을 내어 그를 만나 주었다.

박정혜의 호의에서 비롯된 만남을 활용해 사진원은 중국 중앙 정계에 입문했고, 이후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했다.

가문까지 포함된 자산이면 순위가 조금 뒤로 밀리긴 하지만 개인 한정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라 불리는 정호준은 사진원이 박정혜를 만날 당시 박정혜가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의 여당 대표(실세)라는 타이틀보다 강력하면 강력했지, 모자람은 없었다.

그런 만큼 청와대 만찬장에서 미팅을 가진 것은 정치적으로나 국민에게나 크게 선전되었고, 실제로 화이트칼라(직장인)들은 술을 마시며 박정혜와 김명호가 정호준에게 투자를 이끌어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

이런 사실이 그 무엇보다 불편한 이가 있었는데, 그 남자의 정체는 바로 대통령의 권좌를 꿈꾸는 야망 가득한 남자 민재민이었다.

강현태 서울시장을 진보당으로 끌어들인 것에 정치적 역량을 인정받으며 경선 후보로서의 입지를 완벽하게 다진 민재민은 경선 중임에도 당장의 일보다는 그다음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정호준 대표를 가지고 박정혜가 국민의 관심을 다 가져가는 걸 두고만 봐선 안 돼.’

하지만 급한 마음과 달리 민재민 혼자서는 이 난관을 헤쳐나갈 역량이 부족했다. 세계 최고 부자이자 미국에서도 주류 중 주류에 속한 정호준과 대한민국 야당의 경선 후보에 불과한 그는 사회적으로 급이 안 맞았다.

정호준은 자신을 밀어주고 있는 노민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에도 이유가 없으면 부름에 응하지 않는 이였다.

박정혜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마음이 조급해진 민재민은 여유가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했고,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강현태 시장님, 저 민재민입니다.”

민재민이 선택한 답은 정호준과 몇 번 함께 움직였던 과거를 가진 강현태 서울시장의 도움을 받자는 선택지였다.

“강현태 시장님께서 다리를 놔주셨으면 합니다.”

* * *

민재민 후보가 이제는 정말 어엿한(?) 정치인이 된 강현태 시장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며 끙끙 앓고 있을 무렵, 미래 자동차 본사에서도 대주주가 소집한 주주총회가 개최되었다.

“대주주이신 JHJ Capital의 요청으로 개최된 주주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미래 자동차의 관계자가 사회를 보며 주주총회를 진행했고, 의례적으로 내뱉는 사회가 끝난 뒤 주주총회를 소집한 JHJ Capital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일단 바쁘신 가운데도 JHJ Capital의 요청에 따라 주주총회에 참석해 준 주주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정호준은 미래 자동차 오너인 박몽구 회장과 박의선 부회장과 아이컨텍을 한 것을 시작으로 주주들을 한 번 쑥 둘러본 뒤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미래 자동차와 지아 자동차는 변화의 추세에 대처를 잘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몇 가지 분야에서 아쉬운 점이 있고, 수정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이렇게 주주총회를 요청했습니다.”

“수정해야 할 점이라. JHJ Capital은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침해하겠다는 말입니까?”

말만 들어 보면 미래 일가에서 할 법한 말이었지만, 박몽구 회장이나 박의선 부회장이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미래 자동가 일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지분 투자자, 이른바 백기사가 대신 이야기를 하는 구도가 되었다.

“회사의 주인 된 주주가 회사에 필요한 어드바이스를 제공해 주겠다는 건데, 그걸 경영권 침해로 보면 조금 섭섭하네요.”

능글맞은 표정을 짓던 정호준은 일순 정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손해를 볼 바엔 말씀하신 대로 경영권 침해로 여기는 일을 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정호준의 발언에, 상황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던 박몽구 회장은 상황 정리에 나섰다.

“경영권 침해라뇨? 저는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마시죠. 주주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건, 주주의 지지를 받아 회사를 운영하는 회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정호준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대립보다는 한 수 접어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대응을 지켜본 정호준은 하고자 하는 말씀을 이어 가 달라는 박몽구 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하고 싶은 말을 이어 갔다.

“기술은 해가 지날수록 발전하고,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은 점점 편리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자동차 또한 변화를 이어 가고 있죠.”

키를 꽂고 돌려야 열리던 차가 이제는 리모컨으로 열리는 시대를 맞이했고, 더 나아가 몸에 차 키를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별다른 동작 없이 잠긴 차 문을 여는 게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사용자의 편리함을 생각하는 변화를 시동을 거는 것에도 적용됐다. 키를 꽂아야만 시동이 걸렸던 자동차가 이제는 그냥 키만 지니고 있으면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시동이 걸린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그에 준하는 리스크 또한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회장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보안에 대한 점검은 충분히 되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우리 미래 자동차는…….”

회사의 회장이 주주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제 회사 제품의 보안이 별로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래 자동차의 보안은 완벽하다는 소리를 입에 담았다.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정호준은 자신이 파악한 것들을 정리해 만든 PPT를 사회자에게 넘겨주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모빌라이저(Immobilizer)를 시리즈 모델에 적용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따로 조사해 본 결과, 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이모빌라이저(Immobilizer). 차량의 엔진을 부팅하는 시스템을 지칭하는 용어다. 더 정확히는 정통한 키가 아닌 경우 차량의 시동을 걸 수 없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자동차 업계는 버튼을 눌러 시동을 켜는 식으로 변화를 이어 감에 따라 보안을 위해 이 이모빌라이저 시스템을 도입했다.

“해외에서 판매되는 차량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모빌라이저가 필수 설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자리 잡은 곳이 많았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차량을 판매하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미래 자동차와 지아 자동차는 이모빌라이저를 옵션 사항으로 두었다. 직접 확인한 건 아니지만 유럽에 판 것도 아마 그럴 가능성이 컸다. 이로 인해 정호준의 1회차의 삶에서 미래 자동차와 지아 자동차는 ‘자동차 훔치기 챌린지’란 콘텐츠의 희생양이 되었다.

차를 잘 만들어 놓고도 보안에 취약해서 기껏 벌어 놓은 점유율을 깎아 먹기에 이르렀다.

“제가 하나 영상을 틀 겁니다. 주주님들은 집중해서 잘 봐 주십시오.”

정호준은 이모빌라이저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전에 촬영된 동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에는 정호준이 미리 섭외한 JHJ Capital의 자회사에서 근무 중인 보안 담당 전문가의 모습이 보였다. 담당자는 어렵지 않게 차 키가 없음에도 자동차를 훔쳐 내는 데 성공했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움직이는 것을 끝으로 영상을 마친 정호준은 다시금 주주들의 시선을 받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보시는 것처럼 이모빌라이저가 설치되지 않은 차량을 훔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정보화 사회입니다. 지금이야 아직 정보가 퍼지지 않았지만, 언제 이슈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어쩌면 개인이 아닌 경쟁사에 의해 퍼질 수도 있습니다.”

정호준은 주주들이 한번 둘러보고는 박몽구 회장을 똑바로 쳐다봤다.

“자동차는 고가의 물품입니다. 도난 방지가 취약한 자동차란 악명이 씌워지는 게 미래 자동차와 지아 자동차의 이미지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 제가 입 아프게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라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사고가 터지기 전에 곳간을 수리해 주는 거다. 박몽구 포함 미래 자동차 일가는 그에게 고마워하면 고마워했지, 원한을 가져선 안 됐다.

그럼에도 정호준을 바라보는 박 씨 부자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정호준을 바라보는 시선엔 ‘그냥 따로 사전에 알려 줄 수도 있지 않았냐’는 말이 담겨 있었다.

박 부자의 마음속 말처럼 사전에 알려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래서야 원하는 것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정호준이 원하는 게 물질적인 거나 자동차 반도체를 사 주는 정도가 아니었기에 주주들의 앞에서 이야기를 한 거다.

‘나를 원망하는 건 번지수가 잘못된 거지.’

원하는 것을 얻어 내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것. 경영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미안하지도 않았다.

“대주주인 JHJ Capital의 대표님께서 이렇게 직접 나서서 트러블을 잡아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경영자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발 벗고 뛰듯, 주주도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은 돕는 게 맞잖습니까?”

“그렇군요. 참 감사합니다.”

박몽구 회장의 감사 인사를 태연하게 받아 낸 정호준은 이 자리를 마련한 또 하나의 이유를 꺼내 들었다.

“사실 주주총회를 소집한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또 뭐가 있냐는 신경질적인 시선에 정호준은 당당하게 할 말을 이어 갔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과정에 한 가지 과정을 추가로 삽입했으면 합니다.”

앞으로 미래 자동차와 지아 자동차는 몇 번이고 리콜을 발표하게 된다. 2015년에는 차량 수백만 대에서 발사기 트러블이 발생해 엔진이 꺼지는 현상이 나타나 리콜을 발표했고, 2016년에는 수천 대의 차량에서 브레이크가 정상적으로 발동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 리콜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미국 시장에 풀린 3백만 대 이상의 차량에서 엔진에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리콜을 발표한다.

‘이게 회사에 좋을 리 없지.’

미래 자동차에서 실시하는 리콜은 키요타 모터스처럼 전액 환불을 해 주거나 혹은 새 것으로 교체해 주는 게 아닌 해당 부품만 바꿔 주는 리콜이었지만, 리콜은 리콜이다.

리콜을 한다는 것, 그리고 리콜이 잦다는 것은 그만큼 브랜드 가치를 까먹기 충분한 소재였다. 전문가가 아닌지라 수박 겉핥기로만 기억하고 있지만 그래도 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알고 있다.

“해외로 수출하는 차종에 한해, 발사기, 브레이크, 엔진 컴포넌트를 최종 점검하는 단계를 새로 생성했으면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면서 효과가 좋은 해결책은 한 번 더 점검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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