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97화 (297/335)

297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97)

앞으로 1,000억 달러는 더 써재껴야 투자 업무가 끝이 난다. 말이 1,000억 달러지, 한화로 환산하면 무려 120조 원에 이르는 돈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답답하기는 조나단도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직원들을 진정시킨 뒤 곧장 정호준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조나단은 JHJ Capital에 몸담은 이들 중 유이하게 격식이나 절차를 생략하고 언제든 정호준의 사무실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이였다.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 건 오랜만이네요. 아직 나스닥 시장 폐장 전인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대표님이 건네주신 포트폴리오 명단 쪽에는 얼추 투자를 마쳤는데, 아직 회사 계좌에 1천억 달러가 남아 있어서요. 우리 JHJ가 예전에 투자했던 회사들에도 투자해도 되는지 여쭙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꽤 많은 기업에 투자를 진행한 것 같은데, 아직 1,000억 달러를 더 써야 한다는 말에 정호준은 잠깐 침묵에 빠졌다. 자신의 손에 들어왔던 돈이 얼마나 큰 돈이었는지를 새삼 다시 한번 체감한 것.

1분 정도 고민을 이어 간 정호준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단 그쪽에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스티븐 잡스처럼 이를 갈고 달려들 수도 있었기에 정호준은 사전에 동의를 구할 것을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 * *

전제조건이 달린 정호준의 허가를 받자마자 조나단은 직접 해당 회사의 CEO들에게 연락해 허락을 구했다.

추가로 지분을 확보하고자 하는 회사들은 모두 JHJ Capital이 10~20%의 지분을 확보한 상황이었기에 허락을 구하는 것도 일이었고, 허락을 구한 뒤에도 일거리가 이어졌다.

“지금부터 팀을 두 개로 나눈다. 하나는 지금처럼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이고, 나를 포함해 팀장급들은 지금부터 포트폴리오에 이름을 올린 대주주들과 접촉한다.”

대주주들의 포켓에 잠들어 있는 주식을 사들인다는 건, 프리미엄을 제시하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프리미엄을 제공해 현재가보다 높은 금액에 사들이면 그건 그것대로 무능이라 비춰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조용히 조나단의 오더를 듣고 있던 팀장 중 하나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대표님이 프리미엄을 지급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까?”

대표인 정호준의 컨펌이 들어간 건지, 아니면 CEO인 조나단의 독단(폭주)인지를.

질문을 던진 팀장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았기에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래, 주식을 사들일 수 있다면 현재가의 20%까지는 프리미엄으로 제공해도 된다고 하셨다.”

조나단의 확언에 그제야 팀장들의 얼굴에 하겠다는 의지가 서리기 시작했다.

* * *

조나단과 팀장들을 회사 전용기를 타고 뉴욕, 캘리포니아, LA 등을 오가며 대주주들을 만났다. 조나단들이 바쁘게 움직일 무렵 정호준의 저택에는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다.

장발의,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개를 돌려 외모를 확인할 아름다운 여성이 정호준의 자택 초인종을 눌렀고, 회사에 있다가 경호팀의 연락을 받은 정호준은 빠르게 저택으로 복귀했다.

“오랜만이네요. 은주 누나. 미국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김명호 대통령이 계획한 4대강 정비 사업을 파토내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만나고 이번이 처음 만나는 거였다.

“남자친구가 미국으로 출장 가서 한국으로 들어올 생각을 안 하는데 어떡하겠어. 나라도 와야지. 겸사겸사 미국 관광 다니면서 충전도 좀 하고.”

능청스러운 말투로 박기태를 욕하다 이윽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걸 보며 정호준은 새삼 그가 한 사람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놨음을 인지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김은주는 드라마 ‘프라하식 연애’로 성공을 맛본 뒤 박남정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으며 8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한 손 보탰다. 천만 영화의 여주인공이지만 전쟁 영화라 비중이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과거보다 지금이 더한 전성기이리라.

이미지 소모를 염려해 톱스타는 길게 활동을 안 하지만 우연히도 박기태가 출장을 가는 시기와 일을 하는 타이밍이 맞물리게 되었다.

톱스타들은 활동을 길게 이어 가진 않지만 활동할 때는 바쁘게 활동한다. 영화 촬영 및 화보 촬영이 줄줄이 이어져 일을 모두 마무리된 지금에서야 박기태를 찾아온 것.

“휴식기 동안 나도 미국에서 좀 머무르려 하는데, 남는 방 있지? 기태한테 듣기론 방 많다던데? 아니면 기태랑 같은 방 써도 되고.”

영어를 완벽히 숙달한 건 아니라서 회화가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휴식을 취하기엔 한국보다 미국이 편하긴 했다. 한국에서는 함부로 바깥을 돌아다니기 어려운 신분이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그저 예쁜(?) 동양인일 뿐이니까.

“방은 있는데, 머물러도 되는지는 아내의 허락이 필요할 것 같네요.”

한때지만 김은주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사실을 아리아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정호준은 선택을 아리아의 몫으로 넘겼다. 괜한 오해 살 짓은 하지 않는 게 맞았다.

정호준의 대답을 들은 김은주가 잡혀 산다며 정호준을 도발하려 할 때, 박기태가 끼어들었다.

“하아~ 하아~. 짐도 많았을 텐데, 공항에서 기다리지 그랬어요?”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자마자 반차를 내고 달려온 박기태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네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지. 나도 손발 다 달려 있는걸?”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눈에서 꿀 떨어지는 것 같이 달달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그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눈꼴이 시렸다. ‘네가 이렇게까지 행복하길 바라진 않았어’와 같은 느낌이랄까?

“큼큼!”

장난이고 어쨌든 화제가 붕 떴기에 정호준은 크게 헛기침을 하며 다시금 주의를 끌었다.

“어쨌든 아리아한테 허락을 구해 볼게요. 안 되면 호텔에서 머무는 쪽으로 하죠.”

* * *

전화가 가능한지 문자를 보내 알아본 뒤 아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급한 일 생겼어요?

정호준과 아리아는 서로의 일을 마친 뒤에 함께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 공적인 일부터 뭐를 먹었는지 같은 사적인 일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곤 했기에 이렇게 업무 시간에 연락하는 건 무언가 용건이 있을 때나 벌어질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목소리에 조금은 걱정이 서려 있었다.

“문제가 생긴 건 아니고요, 그냥 아리아의 허락을 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아리아, 김은주 기억하죠?”

-기태의 애인이잖아요?

“기태 출장 때문에 그런지 이번에 휴식기를 미국에서 보낼 모양이에요. 짐 다 싸 들고 놀러 왔는데, 우리 집에서 머물렀으면 한다네요. 그런데, 이건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래서 연락했어요. 어떻게 할까요?”

정호준의 말을 들은 아리아는 잠깐 침묵했지만, 의외로 대답은 금방 나왔다.

-그렇게 하죠. 비어 있는 손님방 중 하나 내주면 되겠네요.

“네? 방 내줘도 된다고요? 정말 괜찮아요?”

너무 쿨한 반응에 정호준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입장을 반대로 바꿔서 아리아를 좋아했던 사내놈이 우리 집에서 묵는다고 생각하면 그는 이렇게 쿨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뒤이은 아리아의 말은 정호준의 멘탈을 더 부숴 버렸다.

-네. 호준이 은주하고 섹스를 했던 것도 아니고, 내 남편이 멋진 남자라 은주 혼자 잠깐 스쳐 지나간 감정이잖아요? 오히려 이렇게 호들갑을 떠니까 수상한데요? 혹시 호준도 감정 있었었어요?

“아뇨, 아뇨! 내가 아리아만 보고 있는 거 알잖아요!!”

생생한 리엑션에 아리아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팔짝 뛰는 모습을 상상하며 웃었다.

-후후. 장난이에요. 나, 호준이 기태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잘 알아요. 여자 하나 때문에 갈라질 관계 아니잖아요?

정호준의 입으로 들은 것 외에도 따로 로슬러의 정보망을 통해 박기태와 관련된 정보를 모두 전해 들은 아리아다. 한화로 수십억 원을 주고 계산을 마쳐도 됐던 걸 정호준은 굳이 아무것도 모르는 박기태에게 유니버셜 히치 지분을 쥐여 줬다,

‘호준이 하는 일이야. 그때도 분명 유니톡이 성공할 걸 알았을 거야.’

본인은 남자가 아닌 여자인지라 남자들의 우정에 관해 잘 모르지만 수조 원을 쥐여 줄 정도의 우정이 가벼울 거라곤 결코 생각지 않았다.

“믿어 줘서 고마워요.”

-믿는 건 믿는 거고, 그래도 사람 일이니까 한마디만 할게요. 사랑과 우정을 배신하는 일은 없어야 해요. 믿어도 되죠?

“당연하죠.”

* * *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어리든 간에 사람은 잘 생기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은 박기태를 처음 봤을 때도 별로 크게 낯설어하지 않았고, 김은주 또한 자연스럽게 정호준의 저택에 녹아들었다.

중간중간 아리아가 김은주와 함께 나가 쇼핑을 다녀오기도 했다. 아리아는 같이 물건을 봐 줄 사람이 생겼다며 좋아하더라.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을 무렵 주식 매입을 끝났다는 보고서가 올라왔다.

-미라클, 평균 매입가 38.39달러. 1억 3,481만 주 매입(지분율 약 5%).

총 매입 비용: 51억 7,535만 5,900달러

JHJ Capital은 미라클의 지분을 매입하기 앞서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 있는 래리엇 닉슨의 동의를 구했다. 닉슨이 먼저 적대하지 않는 이상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히는 일이 없다면 경영권을 넘보지 않고 우호 세력으로 있을 것을 약속한 뒤에야 허락을 받았다. 이번에 추가로 매입한 5%의 지분 덕에 JHJ Capital은 20%의 지분을 가진 1대 주주가 되었다. JHJ Capital이 보유한 20%의 지분은 창업자인 닉슨보다도 많은 지분이었다.

-코카콜X, 평균 매입가 101.27달러(로열티 지급액 포함). 2억 8천만 주 매입(지분율 약 5%).

총 매입 비용: 283억 5,560만 달러

주식시장에 풀린 것으로 부족해 대주주들과 접촉해서 주식을 사들였다. 정호준이 허락한 대로 15~20%의 로열티를 추가로 지급하며 지분을 매수했고, 5%의 지분을 추가해 JHJ Capital은 코카콜X 지분 15%를 쥔 대주주가 되었다.

-펩X, 평균 매입가 96.49달러. 6,886만 주 매입(지분율 약 5%)

총 매입 비용: 66억 4,372만 2,460달러

코카콜X와 마찬가지로 시장에 풀린 주식을 사들이는 것 외에 대주주와 접촉해 로열티를 지불했다. 5%의 지분을 추가로 매수해 펩X 지분 20%를 보유했다.

-칼컴, 평균 매입가 70달러, 5,620만 주 매입(지분율 약 5%)

총 매입 비용: 39억 3,050만 달러

스마트폰의 도입으로 앞으로의 갈 길이 밝디밝은 칼컴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5%의 지분을 추가로 매수하며 25%의 지분을 보유한 1대 주주로 등극했다. 2012년 이후로 배당을 실시하기까지 하니 안 살 이유가 없는 주식이었다.

-아마조네, 평균 매입가 260달러. 5,000만 주 매입(지분율 약 10%)

총 매입 비용: 130억 달러

래리엇 닉슨에게 허락을 구했던 것처럼 창업자이자 CEO로 활동 중인 이에게 허락을 구한 뒤 대주주들과 접촉해 로열티를 지급하고 지분을 매수했다. 미국 유통의 강자로 부상하고 빅데이터 분야에서 절대 강자로 등극할 아마조네다. 주식을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나 바로 지금이었다. 본래 가지고 있던 20% 지분에 10%의 지분을 추가해 30%의 지분을 확보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