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91)
JHJ Capital 레이나 팀이 직원들이 링크온 엑시트를 진행해 수익 실현을 마치고 설탕 선물 정리를 진행하고 있을 무렵 대한민국에서도 크나큰 사건이 하나 터졌다.
-이세현 서울시장 사퇴!
2010년 12월 1일 무상급식 조례가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것이 발단이 되어 2011년 상반기 내내 논쟁거리로 세간과 인터넷을 달궜던 화제가 결국 2011년 8월 26일 서울시장의 사퇴로 끝이 난 것.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큰 울타리다. 20세기 중후반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복지와 인권이라는 개념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고, 지금에 와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안전과 생명의 범위는 실로 거대해졌다.
2011년 대한민국에서 쟁점이 된 무상급식 문제도 그랬다. 처음에는 그저 밥을 먹는 것도 어려운 취약 계층들에게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자는 좋은 뜻에서 시작된 안건은 정치화가 되었다. 정치화된 이유는 간단하다. 이목이 쏠렸고 예산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뜻은 정말 고결했으나 밥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도 돈이고 무상급식을 제공할 장소와 인력을 사용하는 것도 돈이 필요한 일이다.
그 돈은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국가 예산에서 소모되는 거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을 판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그리고 ‘취약 계층’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또한 논란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국가가 의무로 교육시키겠다고 정해 놓은 의무교육 수준은 중학교까지다.
국가가 의무로 교육해야 한다고 정한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을 취약 계층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은 쪽 간의 충돌이 있었고, 서울시장인 이세현은 초중생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세현 서울시장이 반대하는 것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돈(예산)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지방정부들은 다달이 예산을 타는 형태가 아닌 1년 단위의 예산안을 토대로 정부를 운영한다. 매년 9월 내년도 사용할 예산안을 제출하고, 제출된 예산안은 본회의에서 상정되어 상세한 심의 과정을 거친다. 12월 중순이나 말쯤 예산안이 통과되는데, 이 심의를 담당하는 건 국회의원이다.
한국 사람들이 연말에 종종 볼 수 있는 국회의원들의 싸움은 이 예산안을 놓고 벌이는 갈등이었다.
문제는 2010년 12월 1일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무상급식 조례에 관한 비용 문제는 9월에 제출한 2011년도 예산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거다.
서울에 있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모두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건 큰돈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예산의 증액은 이뤄지지 않았다. 예산을 써야 할 곳은 이미 명확하게 정해 둔 상태였고 말이다.
주어진 예산에서 어떻게든 일을 처리해야 했던 이세현 시장은 무상급식을 지원받을 초중생 범위를 줄이고자 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 우선적으로 무상급식을 실현하는 걸로 말이다.
국가가 의무교육을 해 줘야 한다고 지정한 중학생까지는 집이 잘살든 못살든 취약 계층으로 잡혔고 이 또한 문젯거리가 되었다.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 많이 세금을 내는데 자신들은 지원 대상에서 빠지는 것이 달갑지 않은 부류가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전체에게 제공되는 게 아닌 일부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면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가 다칠 수 있다는 의견 등이 나왔다. 그렇잖은가? 미묘한 것 하나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상이다. 어린아이들은 둔감하다고 하는데, 그건 요즘 아이들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의 말이다. 부모가 무슨 자동차를 끌고 아이를 데리러 오는지, 어디 사는지 등에 따라 급이 나뉘고 차별하고 무시하기 시작하는 세상이다.
순수하고 어리다는 게 착하고 선하다는 말은 아니다. 순수하기에 더 잔인하게 행동하는 경우도 많았고, 무상급식을 받는다고 알려지면 지원받는 아이가 다칠 수도 있었다.
취약 계층을 돕기 위해 시작한 정책이 취약 계층을 더 괴롭히게 되는 셈이다. 그러면 최초의 취지에서도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초중생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은 그런 주장을 이야기했다.
무엇이 옳다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어느 입장이건 장단점을 내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예산을 운영해야 하는 이세현 입장에서는 모두에게 제공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올해는 어찌어찌 처리한다 하더라도 내년부터는 무상급식 안건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사업에 대한 예산을 줄여야 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었다.
-서울시 시민들이 정말로 무상급식을 원하는지 투표로 결정하자.
이세현의 이 같은 움직임에 야당은 다시 한번 반발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었고, 둘째로 절차상의 하자가 존재해 투표 자체가 위헌이었고, 투표를 진행하려면 그에 따른 예산이 필요하다.
애초에 예산 부족을 이유로 초중생 전면 무상급식 대신 점진적으로 늘려 나가자고 이야기했는데, 그렇잖아도 부족한 예산(약 180억 원)을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투표를 진행해 더 까먹는 꼴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큰일은 국민투표로 부치며 국민의 의견을 묻는 것을 쓸데없다고 말하는 야당의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 투표율이 33.3%에 미달하면 시장직을 사퇴하겠습니다.
이세현 서울시장은 야당의 꾸준한 반대에 8월 21일 무릎까지 꿇으며 투표 진행을 강행했고, 달성할 수 있을 거라 예측한 투표율을 지정하고 그에 못 미칠시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2012년 있을 총선을 대비한 정치놀음이라는 평가와 과감한 결단이라는 평가가 잇따랐지만 어쨌든 결과는 나왔다.
이세현 서울시장이 강행한 무상급식 찬반 투표는 25.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로 힘든 국민들에겐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안이었고, 그렇게 이세현 서울시장의 정치 인생은 그렇게 개같이 멸망했다.
-이세현 서울시장은 약속한 바를 지켜라!
-국민 앞에서 공언한 대로 사퇴해라!
야당 측은 약속한 대로 사퇴하라고 압박했다.
이세현 시장을 보호해야 할 여당은 여당대로 이세현이 제멋대로 무리수를 둔 거라 이세현을 실드쳐 주지 못했다.
국민 앞에 공언한 자신의 발언을 책임지기 위해 8월 26일 이세현은 서울시장에서 사퇴했다.
* * *
서울시장. 대한민국의 수반인 대통령 다음이라 불리는 총리와 엇비슷한 권력을 가진 자리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임명직이고, 서울시장은 선출직인 것을 고려하면 권력을 행사하는 분야는 달라도 대통령 다음으로 꼽아도 모자람이 없는 그런 자리.
막강한 권력과 명예를 동반하는 자리가 공석이 됐다.
빈 권좌를 탐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욕심 많은(야망 가득한) 정치인들은 물밑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물밑에서 움직이는 무리 중에는 정호준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의원님, 제가 말했던 기회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한국 정치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정호준은 부율경저축은행의 장부 조작과 부실경영을 들춰냈다가 정부와 협의 없이 마음대로 처리했다는 이유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의원 자리를 내놨던 강현태에게 연락을 넣었다.
서울시장은 정호준이 박정혜 대통령 다음 대통령으로 준비 중인 강현태의 정치 커리어에 반드시 필요한 한 줄이었다.
“정당을 등에 업지 않고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가란 말입니까?”
“예.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의원님께서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데 정당의 지원까지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번 하반기 보궐선거에선 무소속 출신의 인권변호사가 당선된다. 이번에 시장 선거에 당선될 후보는 물론이고 보수 쪽에서 내놓은 후보 등을 통틀어 명망도 명성도, 보여 준 능력에서 강현태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서울시장이 되어서 당에 입당하는 것과 지금 입당해서 도움을 받는 것. 과연 어느 쪽이 과연 의원님의 정치 생활에 도움이 될까요?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건 죄악이지만 과소평가를 하는 것도 죄악입니다.”
굳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더라도 서울시장이 되었을 때 입당하는 게 여러모로 받아 낼 것이 많았다. 하지만 말이다. 그런 복잡한 것들을 계산하기에 앞서 풀고 싶은 의혹이 있었다.
“정호준 대표님, 나도 아닐 거라 믿지만, 그래도 물어봐야겠습니다. 설마 이세현 서울시장이 사퇴할 걸 예상하고 있었습니까?”
과거 그에게 의원직 사퇴를 권했을 때 정호준은 곧 자리가 날 거라고 말했었다. 그때 정호준이 했던 말이 이번에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서울시장 자리를 두고 했던 말 같아 소름이 끼쳤다.
“설마요. 제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미래를 보겠습니까? 2012년 총선을 두고 한 말입니다.”
정호준은 능청스럽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한번 생긴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강현태의 생각을 읽은 정호준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만약 의원님이 조급해하시면 총선 전에 자리를 만들어 드렸을 겁니다.”
“자리를 만들다뇨?”
“의원님처럼 먼지 안 묻은 정치인이 과연 한국에 있을까요? 의원님이 정말 조급해하셨다면 먼지 많이 묻은 이를 털어서 자리를 냈겠죠.”
아무렇지 않게 국회의원이나 지방정부 장의 생사(生死)를 논하는 정호준의 발언에 다른 의미로 소름이 돋았다.
“괜한 희생이나 적을 만들지 않고 자리가 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태평한 정호준의 반응에 앞에 정호준이 없음에도 강현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예전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정 대표님께서는 대체 왜 나를 돕는 겁니까?”
정호준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봤고, 정호준의 능력도 인정한다. 하지만 악연으로 시작된 인연이다. 대체 그를 왜 밀어주는지 알 수 없었다. 악연도 인연이라는 말만 믿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기엔 정호준에게 받은 게 너무 많았다.
“충고도 받아 본 사람이 잘 받는 겁니다. 악연으로 시작됐지만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연을 이어 왔죠. 강현태 의원님은 제가 어떤 사람이지, 제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잘 파악하고 계십니다. 그런 강현태 의원님이라면, 적어도 제 말을 최우선적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거면 굳이 내가 아니었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정호준은 빠르게 성장했다. 굳이 자신이 아니어도 돈과 커리어를 꾸며 주면 누구든 말을 잘 들으리라.
“세상에는 성공을 그냥 운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원님은 아니죠. 의원님은 제 어린 시절을 알고 계신 분이잖아요?”
회귀로 인한 정신적 성숙을 강현태는 특별함으로 취급했고,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고 정호준을 스카우트하려고까지 했었다. 정호준의 계획에 동참하며 정호준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은 짙어지면 짙어졌지, 옅어지진 않았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딴 생각을 가장 덜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현태의 가족관계는 자식이 죽고 손자만 달랑 하나 남은 상황이다. 물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지만 손자를 위해 물려줄 것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강현태는 굳이 진흙탕에 손을 댈 이유가 없는 양반이었다.
“아, 제가 이런 말을 했다고 착각해선 안 될 게 있습니다. 저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한국을 위해 애쓸 생각은 없습니다. 제 조국은 이제 미국이니까요.”
한국을 위한다면서도 선은 확실하게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