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86)
로랜스 닉슨이 주최할 파티에 참석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았지만 일단 당장 급한 볼일을 모두 마친 정호준은 취미에 집중했다.
조현우와 올리버 윌슨, 제임스 밀러, 박기태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박기태는 상당히 깔끔한 플레이를 보여 주고 있었고, 조현우나 올리버 윌슨, 제임스 밀러도 실력이 많이 늘었다.
“나 없다고 놀지는 않았나 보네.”
박기태와 주변 사람들을 모아 만든 팀에서 정호준은 서포터라는 역할군으로 게임을 플레이했다. 서포터와 함께 라인을 서는 원거리 딜러 포지션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박기태는 자연스레 정호준으로부터 가장 많은 지적을 당했다. 화가 나고 반발심이 생길 만도 하건만 박기태는 정호준이 한국에서 볼일을 보고 올 동안 지적받았던 것들을 모두 고쳤다.
사실상 칭찬이나 다름없는 말을 들은 네 사람의 표정에 긴장이 사라졌고, 넷 중 정호준을 가장 편하게 여기는 박기태는 너스레를 떨어댔다.
“지금 게임을 즐기는 건지 투잡을 뛰는 건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연습했다니까!!”
박기태의 너스레에 다른 세 사람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고생한 게 아깝지 않도록 조금만 더 힘내. 힘냅시다. 우승하면 상금도 나오고 우승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념 스킨도 만들어서 수익을 나눠 줄 거니까요.”
“1년 동안 스킨 판매액의 20%를 배당한다고 했던가요?”
조현우 PD의 질문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신화 게임 경영진이 그랬던 것처럼 디자이너들을 굴려 반지도 제작하고 따로 트로피도 만들었다. 상금도 100만 달러나 준비했다.
“조현우 PD님과 윌슨 씨에게는 쏠쏠한 벌이가 될 겁니다.”
정호준은 박기태나 제임스 밀러는 거론하지 않았다. 제임스 밀러는 정호준의 가족 외에도 NFL, MLB, NBA 등에서 활약하는 운동선수들이나 건강에 관심이 많은 부호들의 식단을 짜주며 매년 10억 원 이상의 거금을 버는 능력 있는 영양사였고, 박기태는 정호준을 제외하면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가장 큰 부를 소유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박기태가 보유 중인 유니버셜 히치의 주식 1%는 최소 2조 원에 달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유니버셜 히치 주식과 비교 거리는 못 되지만, 목동에 신축 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가지고 있기도 했다.
“거기에 나랑 밀러의 이름을 끼워 넣지 말지? 너한테만 푼돈이야.”
당사자만큼이나 박기태의 재산 사정을 파악 중인 정호준은 그게 뭔 개소리냔 눈빛으로 박기태를 바라봤지만 박기태는 오히려 추궁을 해 왔다.
“나는 수중에 몇 푼 없다고?! 주식 팔지 말고 계속 가지고 있으라고 말한 건 다름 아닌 너라고!”
박기태가 주식 부자가 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주식이란 건 현금화시키기 전까지는 돈이 아니다.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하나 손해를 봐도 주식을 팔기 전까진 손해가 아니라는 말처럼, 현금화시키기 전까지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앞으로 더 오를 거니까 가지고 있으라는 거지, 돈 필요하면 팔아도 돼.”
“내가 당장 돈 필요할 일이 뭐 있어? 그냥 네가 나랑 밀러의 이름을 빼고 이야기하길래 한번 해 본 말이야.”
정호준의 저택에서 먹는 밥은 웬만한 고급 레스토랑보다도 맛있었다. 한식이 나오는 빈도가 적다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더 잘 먹고 있었다. 그리고 정호준의 저택은 웬만한 호텔보다 더 아늑했다. 박기태와 조현우 등이 머무르는 게스트룸에 배치된 가구조차 전부 명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게다가 출근을 위해 타고 다니는 자동차조차 안전을 위해 특수 제작한 방탄 차량 타고 다녔다.
먹는 것과 거주 문제로 돈 들어갈 일이 없다 보니 방탄 차량에 들어가는 기름값을 제하면 월급 모두를 고스란히 저축 중인 상황이었다.
“돈 열심히 모아 둬. 여유 되면 나이크에 투자 좀 하고. 꾸준하게 성장을 이어 갈 것 같거든.”
정호준은 다른 세 명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 종목을 짚어 주었다. 정호준이 자리를 비웠음에도 게으름 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게 보여서 주는 상과 같았다.
‘자세한 주가의 흐름을 아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이크는 잘 나갔으니까.’
의식주(衣食住). 사람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을 일컫는 단어다. 나이크가 판매하는 상품인 옷과 신발 등은 의식주 중 의(衣)에 속한 필수재다. 그러나 필수재에 속해 있음에도 옷이나 신발 등은 의외로 사치품 같은 성격을 띠고 있었다.
‘똑같은 옷을 계속 입는 게 싫은 인간의 욕구 때문에 소비가 계속 생겨나지만, 사실 작년에 샀던 옷을 다시 꺼내 입는다고 죽는 건 아니니까.’
당장 지갑 사정이 나쁘고 상황이 안 좋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줄이는 게 식비와 의복비다. 정호준은 개인적으로 의복에 지출하는 비용이 가장 빠르게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인간은 밥을 먹어 영양분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생명을 이어 갈 수 없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비를 줄인다는 건 밖에서 사 먹는 비용이나 고기를 먹는 빈도수를 줄인다는 거지 밥을 안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면 조금 전 언급했던 대로 작년에 입었던 옷을 다시 입는다고 죽거나 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불경기가 찾아오면 의류 기업의 매출은 종종 떨어지는 걸 볼 수 있다.
‘뭐, 대부분은 할인이란 전략을 꺼내 들며 어떻게든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양적완화 정책으로 앞으로 10년 정도 세계 경제가 호황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호준은 자신이 죽기 전까지 성공을 이어 간 나이크 투자를 권했다.
* * *
정호준을 구단주로 둔 리버풀은 1011시즌 FA컵과 리그컵에서 우승컵을 들며 무관을 면했지만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맨유에게 빼앗겼고, 챔피언스리그는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만나 패배했다. 회귀 전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을 하비에로 마스체라노가 정호준의 팀인 리버풀에서 뛰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는 정말 막강했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홈구장인 얀필드에서는 3:2로 승리를 거뒀지만, 원정에서 1:3으로 패배했다. 챔피언스리그는 더 많이 골을 넣은 팀. 그리고 원정에서 넣은 골을 더 높게 평가하는 규칙이 존재했고, 원정 다득점 규칙에 의거해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만나 2:1로 승리하며 빅이어를 거머쥔 바르셀로나는 0910시즌에 실패했던 선수 영입을 다시 한번 시도했다.
[바르셀로나의 재오퍼. 마스체라노는 바르셀로나 DNA를 가진 선수!]
‘저것들은 걸핏하면 바르셀로나 DNA래.’
바르셀로나 보드진은 언론을 활용해 그들이 축구계에서 늘 하는 레퍼토리를 시전하며 불편함을 주었다.
“단장님께서 마스체라노 선수를 잘 달래 주십시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시고요.”
보드진에게 연락해 정호준과 구단에서 마스체라노를 신경 쓰고 있음을 어필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축구의 신이라 불릴 리오넬 레온라도 리버풀로 데려와 바르셀로나에게 한 방 먹여 주고 싶었으나 바르셀로나에 깊은 애정과 충성심을 갖고 있는 그를 데려올 방법이 없었다.
‘만주르 왕자조차 실패한 방법이니까.’
만주르 왕자는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한 후 이적시장이 열릴 때마다 리오넬 레오를 자신의 팀으로 데려오기 위해 공수표를 남발했었다. 만주르가 불가능했는데, 정호준이라고 방법이 있을 리 없다.
당장 복수할 방법이 없어 분을 삭히고 있을 때 또 한 번 정호준의 복장을 뒤집는 일이 벌어졌다.
[베일과 리베리는 크리스티아누 로메로와 함께 갈락티코 2기의 핵심 멤버가 될 것!]
바르셀로나와 우승을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가 리버풀의 선수를 탐내 정호준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최근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리오넬 레온과 과르디올라라는 명감독의 활약으로 08시즌 이후 3년 동안 바르셀로나에 중요 대회 트로피를 빼앗겼다.
바르셀로나에게 빼앗긴 트로피를 되찾기 위해 그들은 더 좋은 선수를 데려오고자 했고, 리버풀에는 탐이 나는 선수가 참 많았다.
작년에는 알론소를, 올해에는 리베리랑 베일을 노리는 레알 마드리드 FC의 만행에 결국 정호준은 레전드컵을 준비하다 말고 기자를 불러다 대응에 나섰다.
[리버풀 정호준 구단주의 일갈!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는 껍데기만 남은 팀이 내 선수들을 탐내는 것이 불쾌하다?!]
* * *
애정과 관심은 주고받는 거라던가? 정호준이 아리아에게 고마움이란 감정을 품게 만들 일이 일어났다.
“오늘부터 집안에서 호준과 나누는 대화는 한국어로만 말할 거예요. 그러니까 호준도 되도록이면 한국어를 쓰도록 해요.”
식사 시간. 줄리우와 헤리나도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아리아가 갑작스레 한국어를 사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국에서는 자식 교육에 관심이 많은 능력 있는 부모들이 자식의 영어 교육을 위해 집이나 밖에서 영어로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용하는 언어만 다를 뿐 딱 그 꼴이었다.
24개월을 넘어 36개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줄리우와 헤리나는 한국 나이로 치면 2011년 1월에 4살이 되었다. 아이들은 말귀가 트이고 말문도 트여 곧잘 원하는 것을 이야기할 정도로 성장했는데, 성장한 만큼 가정교사들에게 배우는 게 늘어났다.
벌써부터 공부에 치여 사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공부할 거리를 늘려 주고 싶지 않았던 정호준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굳이 집에서 한국어를 쓸 이유가 있…….”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아리아의 목소리에 끝까지 말을 끝내지도 못했다.
“줄리우와 헤리나가 아빠인 호준의 모국어를 익혔으면 하니까요.”
정호준이 결혼하기 전에 재산 분할과 관련해 따로 각서를 쓰게 만들며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긴 했지만 재단을 설립하고 미술관까지 따로 운영하며 그녀가 상류층의 일원으로서 사회생활을 이어 갈 수 있게 해 준 걸로 응어리지고 상했던 마음은 완전히 풀렸다. 오히려 아이들의 패밀리네임을 로슬러로 정한 시점부터 일종의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성을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아리아가 판단하기에 정호준쯤 성공하면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호준이 투자금을 받는다고 선언하는 순간 황인종이라고 거부감을 느끼는 이는 없을걸?’
21세기 미국에선 그 어떤 가치도 돈보다 우선시 되지 않았다.
“사실 올해 초쯤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기태가 미국에 좀 더 잘 적응하길 바라서 계획을 늦춘 거에요.”
집에서부터 영어로 대화를 나눌 줄 알아야 밖에서도 영어가 술술 나온다 생각해 박기태를 배려했지만 5개월 정도 도와줬으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실제로도 박기태는 영어를 수월하게 사용하고 있었고.
자신을 생각해 주는 아리아의 마음에 가슴이 따듯해지는 걸 느낀 정호준은 차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얘들아, 아빠가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