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84)
보고서를 읽으며 자신이 건네줬던 리포트에 적힌 기업들에 투자를 잘 마쳤다는 걸 확인한 정호준은 훗날 2015년에 주식을 정리하며 얻게 될 수익을 기대했다.
‘오늘의 투자가 최소 3배 이상의 이득으로 돌아오겠지?’
자산의 규모가 작은 개인 투자자들이야 배당으로 들어오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아 배당보다는 주가가 오르는 것을 기대하며 투자를 하지만, 굴리는 자산 규모가 막대한 부호들에겐 배당 또한 자산을 늘려 주는 쏠쏠한 수단이다.
정호준이 이번에 투자한 일본 기업들은 ‘TOPIX Core 30’에 이름을 올린 탄탄한 기업으로, 매년 막대한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성장하는 기업들이었다. 주가 상승과는 별개로 배당금으로도 재미를 안겨 주리라.
팀장에게 연락해 고생했다는 말을 끝으로 정호준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정호준이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졌을 무렵 일본과 한국은 정호준이 벌인 일 때문에 소란이 일었다.
정호준의 지시하에 JHJ Capital 일본 법인은 한화로 40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어 주식을 사들였다. 20개가 넘는 기업에 적당히 분산시켜 주식을 매입했지만 몇몇 예외의 경우를 제하면 한 회사당 2조 원이 넘는 거금을 쏟아부은 셈이다.
2조라는 액수는 발행 주식이 적은 회사일 경우 총발행 주식의 20%를 확보할 만큼 막대한 규모의 돈이었다.
‘TOPIX Core 30’이란 이름으로 회사들을 묶어 지수로 내보낼 정도면 그만큼 회사의 장래가 유망하고 투자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한순간에 그것도 동시에 그런 회사들의 대주주로 등극했는데, 소문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TOPIX Core 30 대핀치?!]
[지진을 수습하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일본의 회사를 집어삼키려 하는 JHJ Capital!]
대기업에 종사하는 이들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은 일본 언론사들 더 정확히는 우익적인 성향이 짙은 언론사들은 JHJ Capital의 행보를 과장과 양념을 섞어 기사를 써냈다. 일본은 한국보다도 더 배타적인 시민 의식을 가진 나라였다.
당연히 정호준이 하이스트 반도체를 인수하면서 겪었던 반발이 일본에서도 터져 나왔다.
다만 긍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았다.
[JHJ Capital의 투자는 일본 경제가 안전하다는 보증이다!]
[21세기 들어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JHJ Capital이 거금을 쏟아부었다는 건 그만큼 일본 회사들이 우수하다는 거다.]
우익과 반대되는 입장인 좌익 색깔이 짙은 언론사나 중도성을 띠는 언론사들은 JHJ Capital의 투자를 긍정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물론 하이스트 반도체 인수 건처럼 그들이 뭐라고 씨부리던 돈을 지불해 주식을 사들인 이상 되돌릴 방법은 없었지만 말이다.
다음날 잠에서 깬 정호준은 커피를 한잔 마시며 화상통화를 연결해 일본 상황을 전해 들었다.
“우리 JHJ가 자금을 추가로 쏟아부어 경영권을 빼앗을 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여론 조작을 위해 움직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 JHJ에 보내는 경고 같습니다.”
우익 매체들에서 날뛰는 것도 JHJ Capital이 지분을 사들인 회사들로부터 돈을 받아먹어 움직인 것 같다는 가능성 높은 분석을 내놓았다.
일종의 시그널을 보내는 거란 팀장의 분석에 정호준도 어느 정도 동감했다.
경영권을 빼앗지는 않았지만 전설이라 불리는 스티븐 잡스와 진흙탕을 뒹굴며 거의 빼앗은 거나 다름없는 엔플.
창업자들의 지분을 모두 매입해 JHJ Capital의 자회사로 만든 페이스노트.
창업자들과 분쟁이 발생해 상장할 때 지분 대다수를 팔기로 한 클럽폰.
인수 안 한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해 놓고 결국 인수 경쟁절차까지 밟았던 하이스트 반도체.
아는 사람만 아는 사건들은 제한다 치더라도 JHJ Capital의 악명은 상당했다.
“팀장님이 기업, 정부 인사를 만나서 이야기해 주세요.”
“무엇을요?”
“우리 JHJ가 일본 회사를 인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대표님. 대표님께서는 한국의 하이스트 반도체도 인수하지 않는다고 하셨었습니다. 이번에도 말이 바뀌면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속이는 게 당연하고 속는 놈이 바보인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다. 세상은 한 번은 용서해도 두 번은 용납하지 않는다. 인수하지 않는다고 해 놓고 이번에도 말을 바꾸면 JHJ Capital이 돈을 얼마나 벌든 간에 신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자기 사람인 팀장부터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상황에 정호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주식을 매입한 회사들은 정말로 인수할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 와서 변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인수 타이밍을 내년으로 잡고 있었을 뿐 하이스트 반도체는 원래 인수할 계획이었습니다. 은성에서 회사를 인수하려 게 포착돼서 계획을 앞당긴 거고요.”
하이스트 반도체는 2007년 적자로 전환해 2008년에는 1조 5천억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9년부터는 다시금 흑자로 전환하기는 하지만 정호준은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디폴트 사태로 세계 경기가 침체로 빠져들고 하이스트 반도체도 좀 더 오래 적자가 이어질 거라 추측했다. 그래서 당장 경영권을 가져올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 인수 제안을 거절했었다는 생각을 알려 주었고, 그제야 팀장은 납득을 해 주었다.
“그럼 정치권 인사와 만나 저희의 의향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정호준은 김명호 대통령이 기다리는 청와대로 이동하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그런데, 그런 정호준의 발걸음을 방해하는 무리가 있었다.
“정호준 대표님! 일본에 350억 달러를 투자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혹시 한국에도 투자할 계획 있으십니까?”
“하이스트 반도체와 진웨이는 언제쯤 신규 공채를 진행하나요?”
“한국인임에도 한국에 인색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 기자들이 몰려와 정호준을 방해했다.
‘소식이 참 빠르네.’
세계화 시대라 정보가 퍼지는 속도가 빠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크리라.
한국과 일본은 앙숙과 같은 관계를 유지 중이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나빠서인지 두 나라의 언론과 국민들은 일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한국인인 정호준이 일본에 수십조를 투자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한국에 전달됐고, 이는 이슈화되기 충분한 사안이었다.
그게 기자들이 호텔 관계자나 경호원들의 제제에도 기를 쓰고 버티는 이유였다. 정호준은 기자들이 뭐라고 하든 무시한 채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아 가며 차로 이동했다.
정호준이 대답 한마디 없자 결국 기자들은 있는 사실만 가지고 기사를 적었는데.
[한화 40조를 일본에 투자한 JHJ Capital!]
[한국계 미국인 정호준의 일본 사랑?!]
그걸로도 자극적인 기사가 나오기 충분했다.
* * *
정호준을 청와대로 초청(?)한 김명호는 정호준과 만찬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자들이 호텔에 찾아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치들의 무례를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정호준의 재산 규모가 언급돼서 그런지 선을 지키는 데 그쳤던 김명호 대통령의 태도가 좀 더 예의가 발라졌다.
“대통령님께서 사과하실 거 없습니다. 특종에 목말라 달려드는 기자들을 하루 이틀 겪는 게 아니니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제가 따로 언론사에 언급은 해 두겠습니다.”
“대통령님께서 괜한 위험을 감수하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일단 배려받겠습니다.”
호의를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정호준은 김명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지난번에 잠깐 이야기 나누었던 하이스트 공장 증설에는 어느 정도나 투자할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전문가들을 불러 컨설팅을 해 봐야 알겠지만 최소 5조는 쓸 것 같네요.”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김명호의 얼굴이 환해진다.
* * *
정호준의 지시를 받고 일본으로 출장 나간 투자팀이 바쁘게 움직일 무렵 미국 시카고 본사에 있는 투자팀도 바쁘게 움직이긴 마찬가지였다.
90년도 말부터 00년도 초반 주식 투자자들의 관심사가 IT였다면, 00년도 중후반, 그리고 10년도 초반의 관심사는 스마트폰을 탄생시킨 엔플과 구골, SNS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페이스노트 같은 기업들이다.
그렇다면 10년대 초반 이후 중후반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가상화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상화폐를 주식으로 취급하기는 무리가 있다.
2010년대 중반 주식투자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던 종목은 바로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시스템’이었다. 데이터센터를 건립을 지시하며 빅데이터와 클라우드가 생각난 정호준은 해당 업계에 대한 조사를 명했다.
2012년 상장을 계획 중인 회사의 명단을 확보한 후 지분을 확보할 것을 지시했다.
정호준의 지시를 받은 조나단은 곡물과 관련한 업무를 맡은 팀을 제외하고 특별한 업무를 맡지 않은 직원들을 모두 불러 모아 팀을 두 개로 나누었다.
그리고 자신의 팀에는 적은 인원을 2팀에는 많은 인원을 배치했다.
“워킹데이는 대표님과의 인연이 있는 미라클과 연관이 깊은 것 같으니, 1팀이 맡도록 하겠습니다.”
미라클의 창업자 로랜스 닉슨과 정호준은 처음에는 사이가 나빴지만 잡스의 건강이 호전되는 것을 확인한 뒤로는 사이가 많이 개선되었다. 과정이 어떻게 됐든 간에 정호준의 잡스의 수명을 늘려 준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조나단도 정호준의 밑에서 일을 이어 가면서 닉슨과 안면을 텄다.
조나단이 자신이 맡겠다고 언급한 워킹데이는 주문형(클라우드 기반) 재무 관리, 인적 자본 관리, 학생 정보 시스템 소프트웨어 등을 서비스하는 업체로 2005년 미라클이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전사적 자원 계획) 회사 ‘PersonSoft’를 인수한 후 펄슨소프트의 설립자이자 전 CEO인 다니엘 브루스와 수석전략가 안토니 켈슨의 도움을 받아 좀 더 발전시킨 회사다.
워킹데이는 2012년에 상장해 2020년까지 성장을 이어 갔고, 2020년대에도 좋은 평가를 받는 회사였다.
“2팀은 다시 팀을 두 개로 나눠 활동합니다.”
“2팀이 해야 할 업무는요?”
“서비스투데이 경영진과 만나 지분을 확보하고, 세일즈파워 주식의 기술적 매입입니다.”
‘ServiceToday’는 워킹데이와 마찬가지로 2012년에 나스닥에 상장하는 회사로 기업의 조직이 일상적인 작업을 간소화하고 자동화하여 운영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클라우드 기반 워크플로우 자동화 플랫폼이다.
“세일즈파워 주식은 얼마나 매입합니까?”
세일즈 파워는 고객 관계 관리 솔루션(CRM)을 중심으로 한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기업들의 매출 증대와 업무의 원활한 진행 등 사업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회사다.
“대표님께서 15% 정도는 확보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15% 확보할 때까지 기술적 매입을 이어 가 주세요.”
조나단의 말에 2팀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