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70)
일본 주식에 투자하라는 지시를 내리기 전, 정호준은 팀장들을 모두 불러 모아 마지막으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무엇을 확인하냐고?
본래의 역사대로 ‘아베가 총리직을 달 수 있을까?’에 대한 확인이었다.
나비가 날갯짓하면 반대편에서 폭풍이 몰아친다고 했다. 사고 등급 7단계의 사건을 4~5등급 선에서 수습하게 만든 파장이 적을 리 없었다.
‘아베노믹스가 없다면 주가가 본래 역사만큼 못 뛸 수도 있어.’
하토야마 총리가 재선에 성공하거나 혹은 민주당의 다른 후보가 총리가 돼도 똑같은 방향으로 흐를지는 알 수 없다. 지도자가 어떤 방향을 제시하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바뀌니까 말이다.
가능성을 확인하고 아베가 총리직을 달 수 없다는 쪽이 다수라면 정호준은 하토야마 총리와 약속했던 일본 투자를 은행 인수금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반대로 아베가 총리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으면 은행 인수는 새로운 자금을 투자해 인수할 생각이었다.
“생각하는 바를 기탄없이 이야기해 주시죠.”
팀장들에게 의견을 듣기 불렀다는 뜻을 밝히며 시작하라고 손짓했다. 정호준의 손짓에 잠깐 눈치를 보다 포문을 열었다.
“희생자가 적은 건 아니지만 진도 9.1에 달하는 지진을 겪은 거치고 저 정도면 선방한 거니 정권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9.1의 지진이 발생한 건 도호쿠 지방에서 조금 떨어진 태평양이다. 도호쿠 지방은 그 여파를 맞은 정도다. 진원지에서 가까울수록 9.1 수준이고 멀리 떨어질수록 지진의 강도가 약해졌지만 말이다.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만 단위의 사망자를 야기시켰지만 지진 때문에 건물이 무너져 피해를 입은 건 전무했다. 재산 피해든 사망자든 쓰나미 때문에 발생한 거다.
일본은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냈다.
들이닥치는 쓰나미를 어떻게 방비할 수 있겠는가?
“남아시아 사태와 비교하면 족히 10배는 나은 결과입니다.”
비슷한 사례인 2004년 12월 26일에 발생한 남아시아 대지진 때보다 사망자가 훨씬 적었다.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지만 않았어도, 오히려 일본을 치켜세웠을지도 모른다.
토론이라는 게 긍정적인 의견이 나오면 부정적인 의견도 나오는 법. 지미 딕슨 팀장이 손을 들고 발언권을 획득하더니 반박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와 일본의 인구 밀집도가 다릅니다.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선진국입니다. 인명에 대한 인식도 후진국과는 다릅니다.”
당장 배를 곯아 죽는 사망자도 허다한 후진국에서는 인명을 경시하는 기조가 있다. 재앙으로 죽으나 배곯아서 죽으나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딕슨 팀장은 정권이 바뀐다는 쪽에 거는 거군요.”
“예, 남의 나라가 어땠는지가 중요합니까? 만 명 이상 사람이 죽었으면 책임론이 부각되기 마련입니다.”
먹고살 만한, 인간의 권리나 복지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는 일본에서는 인명 피해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터키도 그랬고, 인도네시아도 그랬습니다.”
지진으로 죽은 사망자 때문에 책임론이 일어 정권을 실각하거나 쿠데타가 일어났었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막아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1만 5천 명 이상의 사람이 죽어 나간 건 부정할 수 없는 펙트였다.
회의는 꽤 긴 시간 동안 이뤄졌다.
‘정권이 바뀔 것 같다’와 ‘정권을 유지할 것 같다’, ‘잘 모르겠다’의 비율은 7 대 2.5 대 0.5로. 정권이 바뀔 것 같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토론을 지켜보던 정호준 또한 ‘정권이 바뀔 것 같다’에 표를 던졌고 말이다.
‘결론이 났군. 은행 인수는 따로 자금을 마련해서 하자.’
* * *
이미지라는 건 고정적인 게 아니다. 이미지는 상황에 따라, 당사자의 행보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을 가진 유동적인 성격을 뗬다.
이런 말을 왜 하는가 하니, JHJ Capital의 이미지가 변모했기 때문이다.
창업자들이 비전이 뭐냐고, 무엇을 봤기에 우리에게 투자한 거냐고 직접적으로 조언을 구하기 전까지 간섭하지 않고 돈만 투자해 엔젤 투자자의 이미지가 강했던 JHJ Capital은 천사의 가면을 쓰고 공들여 키운 회사를 날름 빼앗아 버리는 악당으로 바뀌었다.
월가와 실리콘밸리에서 정호준이 페이스노트와 뷔튜브 지분을 거의 다 집어삼키고 회사를 빼앗은 걸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개중 몇몇은 엔플의 경영권마저 빼앗았다고 말하곤 했다.
‘뷔튜브나 엔플은 조금 억울한데.’
뷔튜브의 경우 어차피 정호준이 지분을 사들이지 않았으면 구골에 인수됐을 회사다. 구골에게 빼앗기는 거보다 초창기 투자자인 그가 가져가는 게 더 좋은 그림 아니겠는가? 게다가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거지, 당장 뷔튜브는 그렇게 큰 수익이 나지 않았다.
엔플도 마찬가지다. 먼저 이빨을 드러낸 건 호준이 아니었고, 뒤통수를 맞은 뒤 진흙탕 싸움을 벌여 잡스와의 다툼에서 승리한 후에도 45%의 지분을 소유한 뒤로 더는 지분을 사들이지 않았다. 2010년 잡스가 아이패드를 발표하기 전까지 예우를 갖춰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놔두었고 말이다.
그리고 잡스가 원했던 대로, 이사회를 통해 짐 쿡을 후임 경영자로 임명까지 해 줬다. 잡스가 아니었어도 정호준 또한 짐 쿡을 잡스의 후임자로 선택했겠지만 어쨌든 정호준은 충분히 잡스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악당이라니. 억울하네. 그나저나 본래 역사라면 올해 잡스가 사망하지 않던가?’
정확한 날짜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2011년에 사망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휴식이 약이 될 수도 있었다.
‘뭐 그것도 의사가 하라는 대로 약 잘 먹고, 요양해야 가능한 거지만.’
몸에 칼 대는 거 싫어하고 약도 싫고, 음식도 유기농 채소만 먹는 사람이다. 콩이 단백질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지만 원기를 회복하려면 고기 같은 것도 먹어 줘야 하는 법. 감히 판단하건대 휴식으로 컨디션이 좋아져서 수명이 조금 길어질 수는 있어도,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5년만 더 살아도 기적 아닐까?’
물론 5년이나 더 살 것 같지도 않았지만, 사람의 수명이라는 게 질길 때는 또 질겨서 딱 단언할 수는 없으니깐. 어쨌든 그랬다.
잠깐 삼천포로 빠졌는데, 어쨌든 JHJ Capital의 이미지가 많이 나빠졌다는 말은 왜 하냐 하니, JHJ Capital이 투자했던 회사들이 줄줄이 상장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JHJ Capital이 투자한 회사 중 가장 먼저 상장을 앞둔 회사는 JHJ Capital이 25%의 지분을 보유한 ‘클럽폰’이었다.
클럽폰의 창업 초창기에 JHJ Capital은 400만 달러를 투자해 20%의 지분을 받아 냈고, 이후에도 600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5%의 지분을 타냈다.
나스닥에 상장을 요청하고 심사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과정 사이에 몇 차례 만남을 가졌는데, 그때마다 클럽폰 창업자인 조던 메이슨과 빅토르 레프코프스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경계심이 잔뜩 실린 눈빛이랄까?
그러한 분위기는 공모를 위해, 상장을 위해 주식을 내놓는 비율을 합의하는 자리에서도 이어졌다.
* * *
열심히 피와 땀을 쏟아부어 회사를 기워났더니 날름 삼키는 모습을 보였던 정호준을 사실 누가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던 메이슨과 빅토르 레프코프스키 마음은 이성적으로는 확실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사람이 항상 이성적으로만 사는 건 아니잖은가?
만날 때마다 저러니 정호준도 슬슬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사실 적의를 가졌을지라도 표정 관리나 가식은 떠는 게 맞잖은가?
그러나 기분이 상했어도 꾹 참았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들 하잖은가. 10년은커녕 반 개월이면 복수가 가능했다.
‘차라리 잘됐네.’
어차피 클럽폰은 익시트로 수익 실현을 할 종목이었기 때문이다. JHJ의 주식 보유량을 줄이기 위해 안달이 난 모습은 JHJ에 있어서도 이득이었다.
다만 익시트를 하더라도 회사에 피해가 덜 가도록 적당히 템포를 조절해 줄 생각이었는데. 그런 배려를 관두기로 결심했다. 무례하게 나오는데 이쪽이 신경 써 줄 이유는 없잖은가?
“우리 JHJ Capital이 지분을 25%나 들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 같은데, 다들 보유 중인 주식의 10분의 1만 부담하시죠. 나머지는 우리 JHJ Capital에서 부담하겠습니다.”
정호준의 말에 창업자인 조던 메이슨과 빅토르 레프코프스키는 물론이고 JHJ Capital에 추가 투자를 받고도 자금이 모자라 지분을 대가로 투자했던 투자사에서 나온 이들이 반색했다.
“그러시겠습니까? JHJ Capital에서 그래 주신다면야 저희는 감사할 뿐입니다.”
한국이나 일본이었으면 ‘어떻게 그러냐고’ 한 번이라도 가식을 떨었겠지만, 미국은 달랐다. 가식 한번 떨지 않고 기회라는 듯 받아들였다.
이게 파멸의 구렁텅이로 이끄는 선택지란 것도 모른 채.
“최근 우리 JHJ Capital의 이미지가 나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메이슨 씨와 레프코프스키 씨에게는 정말 실망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레프코프스키 씨에게 실망했습니다. 심중으로는 저희를 경계하더라도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사업가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아닙니까?!”
메이슨이야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하다가 창업한 거라 자신감과 혈기가 넘치고 노련하지 못 할 수 있다. 사회생활을 경험할 때로 경험한 레프코프스키는 그래선 안 됐다. 그러한 점을 지적하며 정호준은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JHJ가 이익 실현을 위해 익시트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해야 해.’란 계산이 깔린 감정 표현이었다.
“저희가 너무 무례했습니다. 이제라도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나마 사회생활을 오래한 레프코프스키는 정호준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사과를 건넸다.
이래저래 표정 관리하고 거짓을 드러내는 연기를 하다 보니 연기에 노하우가 쌓인 건지, 아니면 정말 감정이 상했기에 연기가 리얼했던 건지 투자사에서 나온 책임자들은 정호준의 분노에 별다른 의심을 갖지 않았다.
정호준이 원했던 대로 나팔수가 되어 월가에 소문을 뿌려 주었다. 그것도 꽤나 과장되게 말이다.
분노라는 감정을 드러냈던 정호준의 행동이 ‘JHJ Capital의 정호준 대표가 클럽폰의 창업자 들고 다퉜다.’라고 와전되어 빠르게 퍼졌다.
막대한 성공은 언제나 적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왜곡될 때로 왜곡된 소문은 이윽고, ‘정호준이 ‘페이스 노트’나 ‘뷔튜브’처럼 ‘클럽폰’의 경영권을 빼앗으려다가 창업자들의 경계심 때문에 막혔다’라고까지 왜곡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JHJ Capital이 가졌던 지분을 집어삼키고자 공모에 끼어든 펀드가 수두룩했다.
‘나야 고마울 뿐이지.’
부탁하기도 전에 알아서 달려들어 공모가를 높여 주는데, 감사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