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46화 (246/335)

246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46)

아리아와 대화를 좀 더 이어 가긴 했으나 결국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문제에선 정호준이 한발 물러나게 되었다. 아이의 교육과 관련해 주로 엄마들이 손을 쓰는 풍토에서 자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리아에게 설득됐기 때문이다.

“호준이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고용한 가정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별로 없을 거예요.”

공부를 좋아하는 별종이 아닌 이상 세상에 공부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이가 어디 있을까? 아리아가 장담한 내용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다시금 따지려고 할 때 아리아가 가방에서 포스트잇을 꺼내 문장을 적어 나갔다.

“제가 가정교사에게 받아서 풀었던 문제 예시문이에요.”

-아리아는 어제 노느라 바빠 학교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안 했다. 학교 선생님은 치사하게 당신이 숙제를 안 한 사실을 엄마에게 전화로 일러바쳤고, 아리아가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걸 전해 들은 엄마는 분노해 아리아를 혼내기 위해 XX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엄마가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어라? 뭔가 문장이 재미있네?’

기계적으로 풀었던 문제집과 달리 뭔가 흥미를 유발한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본인의 이름이 들어간 문제, 그저 본인의 상황처럼 연출했을 뿐인데, 기계적으로 풀었던 문제와 비교했을 때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어때요? 재미있죠?”

입 밖으로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음에도 아리아는 정호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예, 뭔가 재미있네요.”

“암만 집에서 공부하라고 강요해 봐야, 본인이 그럴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거 호준도 잘 알잖아요.”

공부는 본인이 해야 느는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가 닦달하면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하긴 하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닌 만큼 스트레스는 더 늘어난다.

“나이를 먹고서야 이게 본인들에게 왜 필요한지를 아니까, 지루하고 하기 싫어도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지, 아이들은 아니죠.”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할 이유를 모른다는 거예요. 이유를 모르면 최소한 공부가 재미있어야죠. 제가 고용한 가정교사들은 전부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줄 사람들이에요. 저도 그 덕을 톡톡히 봤고요.”

찾아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교사들이라는데 정호준이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더하겠나.

“그래요, 그럼. 아리아의 뜻대로 해요.”

공부를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사람 구실을 하는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이 공부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기에, 정호준은 개인 교사를 두는 것을 허락했다.

‘아이들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이 보이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도 늦지 않겠지.’

나중에 아이들이 과외를 받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이 보이면 그때 다시 이야기를 나눠도 충분하잖은가? 당장은 한발 물러나며 양보하지만 지금의 양보가 그때 가서 그의 말에 힘을 실어 줄 수도 있었다.

* * *

2010년 5월 22일 토요일. 정호준은 아리아와 함께 스페인에 나와 있었다. 더 정확히는 레알 마드리드 FC의 홈구장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 VIP실에 앉아 있었다.

Ce sont les meilleures équipes,

Es sind die allerbesten Mannschaften,

The main event.

Die Meister,

Die Besten,

Les grandes équipes,

The champions.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가 섞인 근엄하면서도 웅장한 챔피언스 리그 주제곡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 이기면 우승이랬죠?”

“네. 맞아요. 이번이 파이널이죠. 리그에서는 이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이제 이 경기만 남았죠.”

리버풀이 얻은 승점은 총 87점으로, 86점으로 시즌을 마친 첼시나 85점으로 시즌을 마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때문에 끝까지 누가 우승을 할지 알 수 없는 시즌이었다.

“가만 보면 호준은 구단 운영에도 소질이 있는 거 같아요. 호준이 인수하기 전까지만 해도 리그에서 우승을 못 했던 클럽이라면서요.”

아리아가 태워주는 비행기에 정호준은 손짓하며 겸양을 내뱉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제가 인수하기 전에도 우승했었어요.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리는 그 경기를 보고 리버풀을 좋아하게 됐죠.”

구단 명성, 팬덤, 수익을 모두 고려해서 매입했지만 정호준은 그 사실을 팬심이라는 가면 밑으로 숨겼다.

무리뉴 감독의 인테르 밀란과 카를로 안첼로티의 리버풀이 결승전에서 막 붙었다.

‘명장이 괜히 명장이 아니구나.’

줄리오 세지르라는 골기퍼와 마이튼이라는 라이트백을 리버풀에 빼앗겼음에도 무리뉴는 꾸역꾸역 결승전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무리뉴와 인테르의 선전은 결승전이 마지막이었다.

-골~!! 골입니다!!

전반전 내내 바이에른 뮌헨의 맹공을 잘 막아 내며 역습으로 선제골을 뽑아냈던 1회차 때와 달리 베일, 토레스, 리베리, 제라드로 구성된 리버풀의 공격 라인은 바이에른이 여는 데 실패했던 인테르의 골문을 기어코 열어 냈다.

-제라드의 시원한 중거리 슛이 골로 연결됩니다!! 제라드! 본인이 왜 리버풀의 심장인지, 왜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냅니다.

스포츠 감독들은 종종 팀에 승리 DNA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정호준이 리버풀을 인수한 이번 생에서 리버풀 선수들은 인테르 선수들과 달리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무대에서 세 번이나 뛴 선수들이 가득했고, 개중에는 제라드처럼 두 차례나 빅이어를 들어 올린 이도 있었다.

결승전에서 뛰어본 경험이, 그 승리 DNA가 리버풀과 인테르의 운명을 갈랐다.

무리뉴의 전술은 선수비 후역습이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무리뉴의 역습 전술은 동점이나 선제점을 넣었을 때는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지만 반대로 선제골을 먹힌 상황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덕장으로 유명한 안첼로티지만 명장이라 불리는 이답게 안첼로티 또한 전술적 식견이 높았다. 안첼로티는 골을 넣자마자 지시를 내려 점유율을 높이며 경기를 천천히 풀어가도록 지시했고, 리버풀 선수들은 체력을 많이 세이브하며 전반전을 마칠 수 있었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인테르 선수들의 마음이 급해졌고, 리버풀은 인테르에게 쐐기를 박았다.

-토레스 슈유윳! 아니 접었습니다. 접고 슛!! 골~~ 골입니다!!

인테르의 공격을 막고 절묘한 위치에서 공을 소유하게 된 알론소는 스프린트를 하며 빠르게 달려 나가는 베일에게 스루패스를 밀어주었고, 공을 받은 베일은 페널티박스 안쪽까지 공을 몰고 들어와 토레스에게 패스를 건네주었다.

팀이 만들어 준 기회를 토레스는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켰다.

-인테르!! 무너지고 맙니다!!

-아직 포기하면 안 됩니다. 0405시즌 리버풀이 만들어 냈던 이스탄불의 기적을 떠올리며 끝까지 포기하면 안 돼요.

해설위원들은 인테르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뛰기를 권했지만 경기는 2:0으로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인테르 이탈리아 구단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할 수 있던 기회를 이렇게 놓쳐 버리네요.

무리뉴가 스페셜원이란 별명을 이어 갈 수 있게 해 준 트레블 기록이 정호준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다.

무관으로 끝냈던 작년과 달리 0910시즌 카를로 안첼로티는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커리어를 썼다.

* * *

정호준이 자신이 소유한 구단의 우승에 기뻐하며 선수단과 스태프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할 무렵인 2010년 6월 7일. 2010년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가 뉴저지주 세코커스의 MLB 네트워크 스튜디오에서 개최됐다.

2009년, 정호준의 지시하에 맘먹고 탱킹 시즌을 보냈던 컵스는 2010년 개최된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서 가장 먼저 선수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드래프트에서 컵스가 갖고 있는 이점은 또 있었다.

메이저리그 드래프트는 보통 작년 성적을 토대로 한 라운드당 한 번씩 선수를 지명한다. 2010년에 한해 시카고 컵스는 두 번의 지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승 도전을 위해 달리기 시작한 동네 이웃팀 시카고 화이트 삭스와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지명권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소라이노가 조금 아깝긴 하네.’

시카고 컵스는 정호준의 주도하에 먹튀 소리를 듣지만 중간중간 돈값을 하기도 하는 ‘알폰스 소라이노’와 2000년대에 컵스의 에이스로 불리며 많은 이닝을 소화해 주었던 ‘카를로스 짐브리노’를 컵스가 연봉의 일부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시카고 화이트 삭스로 보냈다.

그 대가로 1라운드 지명권과 시카고 삭스의 유망주 하나를 받아 왔다.

-서던 네바다 컬리지의 브라이언 에던 하퍼 선수를 지명하겠습니다.

“시카고 컵스, 브라이언 에던 하퍼 선수를 지명했습니다. 하퍼 선수 축하드립니다!!”

드래프트에 참석한 데이비드 사장은 정호준에게 지시받았던 대로 브라이언 하퍼를 지명했다. 브라이언 하퍼는 2009년 컵스가 지명했던 마이콜 트라웃과 함께 2010년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외야수 중 한 명으로 늘 꼽히는 이였다.

-플로리다 굴프 코스트 대학의 크리스 쉐인 선수를 지명하겠습니다.

“시카고 컵스, 크리스 세인 선수를 지명했습니다. 쉐인 선수 축하드립니다!!”

시카고 컵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게 넘겨받은 1라운드 13픽 지명권으로 화이트 삭스가 지명했었을 투수, 크리스 세인을 지명했다.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라는 야구계의 격언은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 봤을 유명한 말이다. 크리스 쉐인이 바로 그 좌완 파이어볼러였다. 큰 키, 긴 팔을 낮게 채찍처럼 휘두르는 투구폼이 특징인 선수로, 평균 구속 93~94마일에 달했고 최고 구속은 101마일까지 기록했다.

-아구아 프리아 하이스쿨의 사무엘 솔라스를 지명하겠습니다.

“시카고 컵스, 사무엘 솔라스 선수를 지명했습니다. 솔라스 선수 축하드립니다!!”

아무리 구단주라도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맘대로 하면 반발을 사기 마련이기에 2라운드 지명은 구단의 스태프들이 결정하도록 양보했고, 컵스 관계자들은 몇 차례의 회의를 통해 사무엘 솔리스라는 투수를 지명하기로 결정했다.

사무엘 솔라스는 2010년 워싱턴 네셔널스에게 2라운드 1픽으로 지명받아 2015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가 NPB(일본 프로야구)로, NPB에서 재계약이 불발돼 이윽고 멕시코 리그로까지 밀려난 이였다.

3라운드 지명에서 시카고 컵스는 다른 구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감행했다.

-네바다 보난자 하이스쿨의 크리스 브린트 선수를 지명하겠습니다.

“시카고 컵스, 크리스 브린트 선수를 지명했습니다. 브린트 선수 축하드립니다!!”

크리스 브린트는 3루수와 좌익수를 볼 수 있는 인재로 정호준은 그에게 컵스의 좌익수를 맡기기 위해 뽑았다. 브린트는 1회차 때도 시카고 컵스에게, 그것도 1라운드로 지명을 받는 선수였다.

다만 브린트가 컵스에게 1라운드 2픽으로 지명받는 시기는 2010년이 아닌 2013년이었다.

2010년 드래프트에서 전체로 따졌을 때 547(18라운드)번째로 뽑혀 계약을 포기하고 대학을 선택해 절치부심했던 선수다.

‘일찍 뽑은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사람을 써서 집중적으로 관리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더 좋은 환경에서 집중적인 관리를 진행하고 따로 불러다 선수의 자존심을 조금 건드려 주면 성공을 위한 동기 또한 채워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크리스 브린트를 3라운드에 뽑은 것에 대해서 커뮤니티에서 말이 많기는 했지만, 2010년도 최고의 대어 하퍼와 성공적으로 계약을 마쳤다는 점에서 컵스 팬들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드래프트라는 총평을 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