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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44화 (244/335)

244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44)

박남정은 월가와 실리콘밸리의 주목을 받는 거물 정호준의 배웅을 받으며 그렇게 한국으로 귀국했다.

사실 정호준은 박남정을 배웅하기에 앞서,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전용기나 본인 명의로 된 전용기를 띄워 박남정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말했었는데, 박남정은 정호준의 호의를 거절했다. 그것도 꽤 단호하게 말이다.

“네 마음은 잘 알겠는데, 그래도 나는 한국항공 비행기를 타고 가고 싶구나. 비즈니스석을 타면 크게 불편한 것도 못 느끼겠고.”

박남정도 얼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LA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띄우는 데 최소 2천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정호준에겐 2천만 원이 친한 이의 편의를 위해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는 돈일지 몰라도 호의를 받는 당사자인 박남정에게는 무거웠다.

‘나 하나 때문에 전용기를 띄우는 건 부담스럽다. 그리고 호준이 녀석에게 계속 받기만 하는 것도 싫고.’

두 차례 메가폰을 잡고 영화를 찍었고 박남정이 메가폰을 잡고 찍은 두 영화는 모두 600만 이상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두 번째 영화는 아예 본인의 자금 일부를 투자해서 본래 영화 감독이 얻게 될 과실보다 더 크고 달콤한 과실을 취했다. 사회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보나 확실히 성공한 축에 속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본인이 챙겨 줘도 모자랄 아들과 같은 정호준에게 무언가를 계속 받기만 한다는 건 여러모로 부담스럽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전용기를 타고 가라는 정호준의 권유를 거절하고 한국항공의 비행기를 탔다.

다만, 한국항공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당도한 박남정은 무게중심을 잘 잡아야 할 거란 정호준의 조언이 과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영화산업의 거장 카메론 감독과의 작업은 어떠셨습니까?!”

“아바X라는 대작에 참여하신 소감 한말씀만 해 주십시오!!”

“아바X 촬영팀에 들어가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혹시 카메론 감독과 다음 작품도 함께하기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차기작 계획은 잡혀 있습니까?!”

“다음 작품과 관련해서 혹시 할리우드와 이야기를 나눈 게 있으십니까?”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언론사에서 기자를 파견했는지, 가지각색의 얼굴들이 마이크를 들이밀며 박남정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계 기록을 갈아치운, 역사에 남을 만한 영화의 촬영팀 중 하나에 한국인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한국 영화계의 위상이나 영화를 즐겨보는 한국인들에게 만족감을 채워 주기 충분한 사안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가 찍었던 두 상업 영화 DVD 판매량이나 케이블과의 영화 판권 추가 계약이 이뤄졌고.

오늘 박남정이 기자들로부터 엄청난 환대를 받는 거였다.

“공항을 이용하시는 다른 승객들꼐도 민폐가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자리를 이동하시죠!!”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박남정은 인천 공항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프레스룸으로 이동해 짧게나마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다.

* * *

박남정이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고 있을 무렵, 강현태는 정호준의 지시를 받고 카카엔터테인먼트가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다이아몬드 광산 매장지에 관해 조사를 착수했던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로부터 광산과 관련한 좀 더 정확하고 세밀한 정보를 받았다.

‘역시 사기였군.’

강현태가 받아 온 보고서에는 결코 4억 캐럿이나 되는 매장량을 지닐 수 없다는, 아니 그 이전에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을 리 없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적혀 있었다.

보고서 확인을 마친 강현태는 주가조작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식으로 움직였다.

“김준호 사무장님! 다다음 주쯤 기자회견을 할 수 있게 미팅 좀 잡아 주세요.”

“이번 주에 안 만나시고요? 이런 일은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시는 게 좋잖습니까?!”

주가 조작 사건은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인지했을 때 빠르게 빠르게 처리하는 게 올바른 해결법이었다. 김준호의 질문에 강현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번 주에는 따로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그쪽이 준비할 시간은 줘야 해서 조금은 길게 보는 게 좋겠습니다.”

본래라면 친한 기자들을 만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을 강현태 변호사는 기자들을 만나기에 앞서 거물과 미팅을 가졌다.

* * *

강현태가 말한 거물과의 만남은 청담동의 어느 일식집에서 이뤄졌다.

“저도 일찍 온다고 온 건데, 혹시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그럼 너무 죄송스러운데요.”

강현태는 누가 먼저 나오냐를 신경 쓰며 우위를 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시간 약속에 맞춰 오거나 조금 5분 정도 일찍 나오는 편이었는데, 강현태가 미팅을 청한 인물은 강현태보다 먼저 자리에 나와 있었다.

“아뇨.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어서 앉으시죠.”

자리에서 일어나 강현태에게 인사를 건넨 남자는 강현태가 자리에 앉는 것에 맞춰 착석했다.

“의원님께서 연락을 주신 게 너무 놀라워서 마음이 급했습니다.”

늦은 게 아니니 마음에 둘 것 없다는 중년 남자의 말에 강현태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저 미팅을 요청했을 뿐인데, 그렇게 신경 쓸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의원이 아닌 변호사입니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 활동을 하면 얼마나 오래 하시겠습니까? 금방 다시 의원 배지를 다실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강현태다. 선거에 나가기만 하면 거의 무조건 당선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제 얼굴에 너무 금칠을 하시네요. 부끄럽습니다.”

“글쎄요. 제 전임자의 목을 날려 놓고,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의원님을. 제가 더 부담스러워해야 맞지 않겠습니까?”

남자가 그만 가식 떨라는 말을 돌려 하자 룸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적의가 가득한 것 같아 불편하네요. 이 자리를 만든 건 관계를 개선해 보고자 해서인데요. 옛말에 보면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고 하잖습니까?”

“글쎄요. 이 자리가 관계 개선의 자리가 될지는 아닐지는, 의원님께서 오늘 들고 오셨을 선물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남자는 강현태가 당연히 선물을 준비해 왔을 거라는 투로 말했다. 강현태의 위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적의를 드러내는 게 이상할 법도 하지만, 남자의 정체를 알고 나면 이는 당연한 거였다. 강현태의 맞은편에 앉은 중년 남성의 정체는 박경훈 금융감독원 원장으로, 강현태가 들춘 부율경저축은행 파산과 뱅크런 사태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은 금융감독원의 수장이었다.

정확히는 국민적 비난 때문에 책임지고 직에서 물러난 전임 원장의 후임자였다.

맞아 놓고 때린 쪽에서 관계를 개선하자고 손을 내민 것을 벨도 없이 실실거리며 좋다고 받을 수는 없는 거였다. 평범한 시민들조차 맞으면 깽값은 받아 내지 않던가? 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때린 쪽이 대가를 지불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예상하신 대로 우리의 관계를 개선시킬 선물을 준비하긴 했습니다. 내가 준비한 선물이 박경훈 원장님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요.”

강현태는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가 보내 준 리포트 복사본이 담긴 서류 봉투를 박경훈에게 건넸다. 박경훈은 강현태가 전해 준 서류 봉투를 그 자리에서 개봉해 서류를 읽었다.

서류를 한 장 한 장 뒤로 넘길수록 박경훈의 표정은 조금씩 조금씩 굳어져 갔다.

“이게 정말 사실입니까!”

카카엔터테인먼트가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했다는 건 금감위에서도 주시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이 리포트는 사기가 맞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박경훈의 질문에 강현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호준에게 들었던 이후 벌어질 예측 시나리오를 읊었다.

“카카엔터테인먼트의 장덕호 회장은 카메룬에 나가 있는 외교부 직원과도 접촉하고 있을 겁니다. 만약 외교부 직원을 매수하는 데 성공해 외교부의 이름으로 이를 공증한다면.”

“또 한 번 개인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입겠군요.”

금감위원장쯤 되는 이가 멍청할 리 없다. 박경훈은 강현태의 말을 끊자마자 그 뒤에 이어질 말을 읊었다. 그에 강현태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금감위에서 서민들의 피해에 언제 신경이라도 썼습니까? 개인 투자자의 피해보단 김명호 정부와 여당이 입는 피해가 원장님께는 더 심각하겠죠.”

“그게 무슨.”

“김명호 정부와 여당이 미는 정책 중 하나가 자원외교잖습니까?!”

그제야 강현태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깨달은 박경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4대강 보수 공사도 역풍을 맞고, 부율경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 김명호 대통령 쪽 캠프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가 나와서 또 한 번 비난이 이어졌었다. 그런데 자원외교의 성과라고 밀려는 상황에서 공적 기관이 아닌 사적 기관을 통해 사기가 드러난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외교부가 공증을 하게 된다면 사안은 특히나 심각해졌다.

아직 임기가 2년 이상 남았음에도 대통령인 김명호는 식물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컸고, 다음 대선이나 총선에서 보수당의 입지가 흔들리게 될 게 눈에 훤했다.

“원장님이 김명호 대통령님 쪽 라인인지, 박정혜 의원님 쪽 라인인지는 아직 파악이 안 됐지만. 어쨌건 여당 측 줄을 잡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거면 화해를 원하는 제 뜻이 잘 전달됐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의원님의 말씀은 우리 금감위에서 이걸 맡아서 파해치란 말이군요.”

직접 언론에 노출하지 않고 그를 찾아온 것은 이번 사태를 금감위에서 맡아서 정리하라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제가 이 사실을 제보했다는 걸 언론에 밝혀 주셔야 합니다. 잊으시면 곤란해요.”

“물론입니다. 이런 큰 선물을 받아 놓고 어떻게 그냥 꿀꺽하겠습니까?”

“금감원이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냐에 따라 우리가 같이 갈 수 있을지 아닐지가 결정될 것 같습니다.”

“무거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시고, 일단 한잔 받으시죠.”

박경훈은 사케 병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말 공손하게 강현태의 잔에 술을 따랐다.

“오늘 의원님께서 보여 주신 배려, 잊지 않고 전달하겠습니다.”

박경훈의 태도 변화에 강현태는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병을 건네받아 박경훈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정호준이 2011년이나 2012년쯤 그를 위한 자리가 날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정호준의 말만 믿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마냥 기다리는 건 하수나 하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상황이 정호준의 계산과 다르게 흘러가 그때 가서 자리가 없다고 말하면 어쩌란 말인가?

정호준의 안목이나 치밀함을 고려하면 그럴 확률은 적겠지만, 그럼에도 제로에 수렴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교토삼굴(狡免三窟),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했다.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지.’

본인의 자리를 준비해 두고 정호준이 준비해 준 자리가 더 매력적인지를 비교해 더 좋은 선택지를 고르는 게 맞았다. 오늘 이 자리는 좀 더 좋은 자리를 골라 가기 위한 포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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