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34)
교통, 통신기술의 발달로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되며 국가 간의 무역이 활발해진 탓에 나라의 사정에 따라 돈의 가치가 달라지는 위험성을 내포하게 되었으나, 이는 정부가 국가 운영을 개판으로 만들거나 국가에 타격을 줄 만큼 세계 경기가 극도로 나빠지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 때문에 나라의 돈의 가치는 웬만해서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은행에다 1억 원을 예금했다면 정기 예금을 들어 2~5%의 이자를 받는 것 외에 자산이 늘어나지도, 자산의 가치가 그렇게 커지지도 않는다는 소리다.
반면 주식은 가치가 대체로 고정적인 경향이 강한 돈과 비교해 변동성이 컸다. 화폐 가치에 영향을 끼치는 국가 경제나 환율,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받지만, 그 외에도 회사의 실적이나 신기술 개발, 시장 점유율, 회사의 재무 상태, 작년 영업 이익 등에 따라 가치의 변동이 가파르게 일어나곤 했기 때문이다.
1억 원을 가지고 은행에 정기예금을 들어도 많아 봐야 500만 원의 이자 수익이 전부인 반면, 주식 투자의 경우 1억 원은 2억 원, 3억 원도 될 수 있었고, 실력과 운이 따라 준다는 전제하에 10억 원 이상으로도 불릴 수 있었다.
돈이 불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만큼, 주식 투자는 1억 원이었던 돈이 500만 원으로 쪼그라들 리스크 또한 내포하고 있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더 잘, 더 세련되게 주식을 굴리는 이론과 방법론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었고 그렇게 투자기법은 하나둘 늘어났다.
한국에서 공매도(空賣渡)라 불리고 영어권에서 숏이라 부르는 행위는 증권회사, 기업, 기관 등에게서 재화를 빌려, 계약한 기간이 끝난 뒤에 빌린 재화를 상환하는 투자 기법이었다.
숏은 주식시장이나 채권, 외환시장, 파생상품, 식품, 석유 등 거의 모든 시장에서 사용 가능했다.
다만 공매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분야에서 공매도를 진행하든 간에 여기서 말하는 재화는 돈이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머릿속에 넣어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은행 대출과 달리, 빌릴 때도 갚을 때도 현금이 아닌 빌린 재화를 주고받는 거였다.
주식시장에서 일어나는 공매도는 주로 목표로 한 회사에 악재가 있는 것을 미리 전해 듣거나 혹은 회사의 약점을 찾아냈을 때 벌어졌다. 악재가 터지면 보통 주가가 내려가게 된다. 공매도 세력은 주로 그때 주식을 던짐으로써 공포를 극대화한다.
직접적인 예시를 들자면 어느 회사가 특허를 침해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차린 증권사의 트레이더가 다른 증권사나 기관을 돌면서 1주당 10만 원인 주식을 100만 주 빌려서, 악재가 터졌을 때(터트린 후) 주식을 시장에 던지는 거다.
돈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개미들은 악재가 터진 후 공매도 세력이 시장에 주식을 풀면 겁을 먹고 함께 던지곤 한다. 돈을 잃어버리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 그리고 시장 논리와 악재가 겹쳐 주가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10만 원이었던 주식의 가치가 84,000원까지 떨어지고, 공매도 세력이 1주당 평매가 93,000원에 주식을 팔아치웠다고 가정하면, 공매도를 시도한 팀은 주식을 930억에 매각하고 840억을 들여 100만 주의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것이었다.
약속한 기간이 지나고 840억에 사들인 100만 주의 주식을 상환하면 공매도팀의 그 차액인 90억만큼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돈의 단위가 이보다 더 클 뿐, 정호준이 시도하려는 공매도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 * *
2009년 일본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일본의 통화(화폐)인 엔화는 준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키요타 모터스는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그 일본에서 가장 큰 자동차 제조회사였다.
세계에서 GDP(국내 총생산)가 두 번째로 높은 나라의 대기업. 그것도 해당 시장에서 세계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대기업이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고 포트폴리오에 넣어 둘 만큼 키요타 모터스는 잠재력도 안정성도 뛰어난 기업이라 평가받았다.
미국 증권사와 기관은 물론이고, 자산을 굴리는 기관들은 알게 모르게 키요타 모터스의 주식을 보유 중이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정호준은 만주르가 보내 준 심복 모하메드 알 압둘라에게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 등 중동의 투사회사와 기관들이 보유 중인 키요타 모터스 주식을 빌려오도록 부탁했다. 부탁하면서도 사실 해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으나, 모하메드 알 압둘라는 정호준이 부탁한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 주었다.
‘사실 조금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 해내 줬네.’
미국 기관이나 증권사들로부터 주식을 빌리는 데는 정호준이 암암리에 힘을 써 줬지만, 중동은 정호준의 영향력 밖이라 왕자의 영향력만 믿고 있었는데,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었다.
공매도의 공매(空賣)는 ‘없는 것을 판다’라는 의미지만, 사실 공매도를 시도하는 쪽에서도 기회비용은 분명히 존재했다. 공매도에 쓰일 주식을 증권사나 기관들에게 대여받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개인으로만 봐도 그렇잖은가? 5만 원 10만 원 이런 적은 돈도 백만 원, 천만 원 단위의 ‘내돈내산’을 빌려주면서 차용증도 없이 빌려주는 이가 얼마나 될까? 빌려주기 싫지만, 친구라는 이유로 사정이 딱해 측은지심이 들어 차용증이라도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 아닌가.
돈을 굴리는 규모가 가장 적은 일개 개인조차 그렇거늘, 하물며 돈을 굴리는 게 주업인 금융기업이 대가나 담보 없이 그냥 무상으로 빌려줄 리는 없다. 만약 무상으로 빌려준다 하더라도 그건 ‘내가 이번에 도와줬으니 다음에 도와달라는 의미가 내포된’ 빚이었다.
정호준은 주식을 빌려오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호기심이 생겼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면서 호기심을 찍어눌렀다.
‘방법론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구두로 빌려줬는지, 차용증을 썼는지, 굴리기로 약속한 규모의 돈을 담보로 잡혔는지는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를 감당할 주체는 그가 아닌 만주르 왕자였으니까. 괜한 호기심은 독일 뿐이다.
12월. ‘프로메테우스’의 브레이크가 순간적으로 잘 듣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미국 고속도로 교통안전국(NHTSA)가 조사에 착수했을 때쯤 상관인 만주르가 다녀갔고, 만주르에게 질문 세례를 받았는지 모하메드 알 압둘라는 오랜만에 대표실을 찾아왔다.
“정 대표님, 슬슬 매도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만주르 왕자의 질문도 질문이지만 전문가인 그가 보기에도 슬슬 타이밍을 잡는 게 맞았다. 모하메드의 물음에 정호준은 고개를 저었다.
“NHTSA가 착수한 조사에 대한 결론이 아마 1월쯤 나올 겁니다. 대처가 늦고 미흡해서 배가 터질 정도로 욕을 먹었지만, 그 나빠진 브랜드 가치라도 지키기 위해 전격 리콜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11월에 발표한 가짜 리콜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리콜을요.”
11월에 키요타 모터스가 발표한 ‘리콜 발표’는 언론에서 리콜이라 말하긴 했으나 정확하게 말하면 차량을 리콜해 주는 게 아닌 부품을 교체하는 수리를 무상으로 해 주겠다는 발표였다. 부품을 바꿔 주는 서비스를 무상으로 진행한다는 것도 회사 차원에서는 분명 손해는 손해지만 차량 전체를 물어주거나 다른 차로 바꿔 주는 것만큼 손해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11월에 발표가 있고 나서 잠깐 주가가 내려갔다가 금방 다시 80불대 후반, 90불대 초반을 오갔다.
“정확한 날짜까지는 확정할 수 없지만, 저는 D-day를 1월 말쯤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D-day를 이야기하는 정호준의 발언에 모하메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키요타가 리콜 발표를 하는 즉시 주식을 던지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정확합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자회견 날짜를 입수한 다음, 사흘 전부터 천천히 시장에 물량을 던질 계획입니다.”
D-day가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인지한 모하메드의 표정이 조금은 냉정하게 바뀌었다. 그런 모하메드를 보며 정호준은 지금껏 비밀로 했던 사안 하나를 알렸다.
“우리의 작전에 대한민국의 증권사들도 함께할 겁니다. 한국 쪽에는 기자회견 하루 전쯤 정보를 흘리고 주식을 매각하도록 만들 겁니다.”
공매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오성 증권과 미래 증권, 그리고 대학 동기 정윤정 때문에 어떻게 조그마한 친분을 갖게 된 KS그룹과 결혼식에 참석하며 작게나마 인연을 맺은 은성그룹의 자산 운용팀에도 따로 언질을 주었다. 아니 그를 넘어 만주르 왕자의 공매도 세력의 한 축이 되도록.
‘말도 안 되는 투자 조건을 받아들이면서까지 정호준 대표와 교감하려 했던 왕자님의 뜻이 옳았구나.’
빠져나가기 힘든 올가미를 씌워 놓고도 사전에 포석을 몇 개나 미리 준비해 두는 정호준의 준비성과 냉철함에, 모하메드는 속으로 만주르 왕자의 안목을 칭찬했다.
* * *
11월 25일 리콜 발표(무상 교체)를 진행한 키요타는 미국 정계와 언론사에 돈을 뿌리며 최대한 키요타에 유리하게끔 기사가 쓰이게 조정했으나 한 번 나빠진 여론은 쉽사리 뒤집히지 않았다.
“하라타!! 크리스마스 이벤트 준비 제대로 했지?!”
키요타 모터스는 민심을 돌리기 위해 북미 최대의 명절 크리스마스를 맞아 대형 이벤트까지 기획했다.
“예, 언론사와 잡지사들에 광고를 넣어 이번 행사를 홍보했습니다.”
“잘돼야 해. 잘못했다가는 기껏 빼앗은 점유율을 도로 내줄 수도 있어.”
말이 씨가 될 수도 있기에, 이시타 이사는 차마 빼앗은 것 이상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말은 뱉지 않았다.
제법 돈을 들여 미국 대도시에서 동시에 이벤트를 개최했고, 나름 성황리에 이벤트를 마쳤으나, 이미 한차례 나빠진 여론은 쉽사리 뒤집히지 않았다.
게다가 프로메테우스 포함 8개 차량에 대한 문제는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것도 골치였다. 이목이 집중되는 바람에 차량이 문제가 돼서 일어난 사고들을 과거처럼 운전 미숙, 자살, 단순 교통사고로 몰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실제 차량의 문제가 아닌 운전자의 실수(부주의)로 일어난 사고조차 사고 차량이 키요타 브랜드인 경우 차량의 문제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브레이크가 제대로 먹지 않았어요”
사고를 저지른 운전자조차 실제로 그렇게 합리화하기 시작했고 말이다.
키요타 모터스의 불행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언론사들은 좋다고 돈을 받아먹어 놓고도 뻔뻔하게 과거 사고에 관해 파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대체 이 양키 새끼들은 양심이 있는 건가? 돈은 좋다고 받아먹어 놓고, 어떻게 우리를 비방하는 기사를 쓸 수 있지?!”
“진정하십시오, 지부장님!!”
키요타 모터스 미국 지부 총괄 지부장 모라타는 돈을 먹어 놓고도 태도의 변화가 없는 미국 언론을 깎아내렸다.
모라타가 격분하건 말건 키요타에 대한 비난과 교통사고, 차량 문제 등은 해가 바뀌고 나서도 꾸준하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