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25)
토요일 ‘저것이 알고 싶다’가 다룬 부율경저축은행 분식회계와 관련된 소식들이 일요일 아침부터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라왔다. 정호준이 원했던 대로 의혹이 확산된 것.
은행은 물론이고 다수의 회사들이 휴무하는 일요일임에도 부율경저축은행 강연호 회장은 기자를 불러 인터뷰를 진행했다.
“강현태 의원이 제기한 의혹은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부율경저축은행은 법을 준수하고…….”
생존이 걸려 있어서인지 강연호 회장은 재빠르게 대처했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은 강연호 회장이 의혹을 부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제가 정치자금 요청을 거부해 억하심정을 품고 은행을 흔드는 것 같습니다. 부율경저축은행 법무팀에서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은행의 영업을 방해하고 혼란을 야기시킨 강현태 의원에 대한 법적인 조치를 준비 중입니다.”
강현태가 요구한 적 없는 정치 성금을 언급하며 강현태가 언급한 분식회계설을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며 의혹을 부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강현태를 고발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예금주님들께서는 낭설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마시고 저희 부율경저축은행을 믿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강연호 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부율경저축은행 이사진 또한 바쁘게 움직이며 사태 진화를 위해 물밑에서 노력을 기했다.
“박 부국장님, 이번에 힘 좀 써 주시면 다음에 거하게 보답하겠습니다.”
“조 부장, 나 부율경저축은행 윤 전무예요. 다름이 아니라 조 부장네 포털 신문에 ‘저것이 알고 싶다’에서 우리 은행을 음해한 내용을 다루는 기사가 올라와 있더라고요. 그것 좀 내려줘요. 그리고 밑에 기자들이 우리 은행을 음해한 기사를 내보내지 못하게 힘 좀 써 줘요.”
어떻게든 언론에 오르내리는 기사들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런 부율경저축은행의 이사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심은 점점 집중되었다.
부율경저축은행의 역량은 관심이 집중되어 큰불로 번져 버린 사태를 진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부율경저축은행은 오성이나 미래, KS 같은 대기업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문제는 사람들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돈과 관련된 사안이었다.
월요일 해가 뜨기 무섭게 대전, 전주, 부산, 울산 등 부율경저축은행 간판을 달고 있는 모든 지점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회장님께서 직접 언론에 나가 해명하고 강경 대응을 할 것을 천명했는데, 전혀 안 먹힌 거야?!’
각 지점에서 하루를 시작하려던 부율경저축은행 임직원들은 몰려든 사람들을 보며 경악했다.
강연호 회장의 말이 전혀 먹히지 않은 이유? 단순했다. 강연호 회장의 대응은 분명 빨랐지만 부율경저축은행 회장인 강연호가 뱉는 말의 무게와 신뢰가 서민자산 지킴이라 불리기 시작한 강현태 의원이나 세계 최고 부자로 알려진 정호준과 비교했을 때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암만 발버둥을 쳐 봐야 정호준이 원했던 대로 뱅크런은 발생하고 말았다.
“문 열어!!”
“내 돈 돌려줘!!”
“나부터 출금해 줘!!”
돈 앞에 질서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간절함 외침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고, 몸싸움이 이어졌다.
경찰이 출동해 통제한 뒤에야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게 됐지만, 다시금 소란이 일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지점마다 보유하고 있는 현금 사정은 달랐지만 오후가 채 되기도 전에 지점들이 지급할 수 있는 돈이 바닥을 드러냈고, 결국 부율경저축은행 지점들은 모두 경찰의 도움을 받아 몰려든 사람들을 밖으로 쫓아내고 은행의 문을 닫았다.
“내 돈 돌려달라고! 내가 그렇게 어려운 부탁을 한 것도 아니잖아!!”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내 돈 내놔!! 내 돈 내놓으라고!!”
자신이 예금한 것을 돌려받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니 돈을 돌려받지 못한 이들은 절규를 내뱉었다.
* * *
부율경저축은행이 분식회계로 회계를 조작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경영을 이어 갔더라도 고객 모두에게 돈을 돌려주지는 못했으리라. 그리고 이는 제2금융권에 속한 저축은행이 아닌 제1금융권에 속한 은행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에 예치한 예금을 그냥 가만히 두고만 있는 은행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서며 발전한 금융 시스템은 갑작스러운 현금 인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최소한의 선을 마련해 두었는데, 그 선을 ‘지급준비제도’라 불렀다. 지급준비제도는 은행이 예치한 전체 예금 중, 일정 비율 이상 은행에 예치해 두도록 만들었다.
전체 예금액에서 지급준비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지급준비율이라 부르는데, 나라마다 정해 둔 비율이 다르다. 다만 대한민국에서 법으로 정해진 법정 지급준비율은 7%였다.
물론 법으로 정해 둔 지급준비율을 지킨다고 할지라도 뱅크런이 발생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반대로 일시적으로 지급준비금을 넘어선 인출이 발생해도 뱅크런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 또한 존재했다. 지급준비금을 넘어선 인출이 발생해도 은행 간의 대출을 통해 추가적인 현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재무제표와 지급준비율 등을 모두 염두에 두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금융업계 종사자나 자산에 민감한 부호들이 아니고선 신경도 쓰지 않는다. 때문에 일시적으로 지급준비금을 넘어선 인출이 발생해도 은행에 돈을 유치한 고객들 대다수는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은행은 돈을 대출해 준 기업들에게 돈을 회수하거나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다른 은행에서 돈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면 만사형통이었다. 만약 부율경저축은행이 정상적으로 경영이 이뤄지는 은행이었다면 이런 행보를 밟아 나갔을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율경저축은행은 적자를 숨기고 흑자를 난 것으로 분식회계를 단행한 비정상적인 경영을 이어 갔던 은행이다.
부율경저축은행은 경기가 호황일 때 건설사들에게 9,000억 원에 이르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대출을 해 주다가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디폴트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로 건설사들이 연쇄적으로 부도가 나는 바람에 급격하게 부실화되었다.
그런데, 부율경저축은행의 파산에는 외적인 이유 외에 내적인 이유 또한 존재했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임원들의 주도하에 120여 개나 되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4조 5,000억 원이 넘는 대출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출을 담당하는 특수목적법인의 사장에는 사정 포함 임원들의 친인척을 바지사장으로 앉혀 120여 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추가로 월급을 타 먹었다.
간단히 말해 임원들이 은행에 예치된 돈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돈세탁한 뒤 투자라는 명목으로 본인들의 배를 불렸다는 것이다. 부율경저축은행의 방종은 이 이외에도 더 있었다.
임원들은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서 해외에 투기성 투자를 진행했다. 투기성 투자는 본인들이 갉아먹은 것을 한 방에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나만 걸려라’ 같은 느낌이랄까? 정호준처럼 미래를 보거나 월가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초엘리트도 아닌데, 투기성 투자가 성공할 리 없다.
내부에서 곪을 대로 곪았는데, 위기까지 불어닥치니 버틸 수 없었고, 1회차 때는 한국의 국가 부채를 4조 원 이상 늘리는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정호준이 움직인 덕에 국가 부채가 좀 줄고, 2년은 일찍 거머리를 죽일 기회가 왔다.
* * *
부율경저축은행에 돈을 예금했던 이들은 뱅크런이 발생한 날부터 돈을 받기 위해 매일 은행 앞에서 진을 쳤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 사흘이 지나도 부율경저축은행에서는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언론을 통해 전 국민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대로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정부의 지시하에 금감원과 감사원이 움직였다. 1회차의 삶에서 138일 동안 감찰을 진행하고도 문제없다고 밝혔던 금감원과 감사원은 이번에는 일을 똑바로 했다.
자신들이 밝힌 사실을 언론에 알리기 전에 청와대에 먼저 보고를 올렸다.
금감원 원장과 감사원 원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김명호는 강연호 회장을 포함한 부율경저축은행 임원직들이 해 먹은 것을 확인하고는 욕설을 내뱉었다.
“아니 이런 미친 새끼들!! 무슨 깡으로 1조가 넘는 분식회계를 저질러!!”
“감사 내용 발표할까요?”
“이미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었어. 숨긴다고 숨겨질 일이 아니잖아?! 발표해!”
“강연호 회장 측에서 이번 대선 선거 비용을 보내 줬었습니다. 대통령님께 누가 되는 행보를 보이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파멸하는 이에게 눈에 뵈는 게 있을 리 없다. 비서관의 질문에 김명호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중에 상황이 좀 잠잠해지고 나면 특별사면해 줄 테니까, 특별사면 받고 싶으면 선거자금을 준 사실은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확실하게 단도리 쳐 놔!!”
김명호 대통령은 그렇게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킬 사고를 터트린 강연호 회장을 버렸다. 금감원과 감사원의 주도하에 진행된 감사에 대한 결과가 언론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부율경저축은행 1조 2,500억 규모 분식회계 저질러!]
[강현태 의원이 또 옳았다! 부율경저축은행!]
[현금이 모자란 부율경저축은행, 파산까지 초읽기?!]
신문, 뉴스 방송 구분할 것 없이 대한민국 언론들의 초점은 부율경저축은행 파산으로 모였다.
* * *
저축은행은 제2금융권에 속한다. 제1금융권에 속하지 못했다는 것은 안전성 면에서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저축은행들은 예금주에게 시중 은행(제1금융권)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했다.
시중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지급하며 나름대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던 저축은행들에게 부율경저축은행의 파산은 뱅크런의 연쇄라는 불행의 신호탄이 되었다.
‘설마 망하겠어?’라는 심정으로 위험한 것을 알고도 높은 금리 때문에 저축은행을 선택했던 예금주들은 부율경저축은행의 파산을 지켜본 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돈을 맡긴 은행도 망하는 게 아닐까?’
‘쟤들도 부율경저축은행처럼 회계장부 조작하는 거 아니야?’
외국에 나가면 개개인 하나하나가 그 나라의 인격을 대변한다는 말처럼 국민들은 같은 제2금융권에 묶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적인 경영을 이어 가는 저축은행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부정적인 감정은 빠르게 확산해 자신이 돈을 예금 중인 저축은행도 부율경저축은행처럼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빠졌다.
‘빨리 움직여야지. 늦으면 돈 못 건진다!’
공포에 잠식당한 이들은 하나같이 저축은행에 예치한 자금을 회수해 시중 은행에 돈을 예치하기 위해 움직였다. 연이은 뱅크런의 발생에 부율경저축은행 파산 후 10개가 넘는 저축은행들이 잇따라 파산했던 1회차 때처럼 재정 상태가 좋지 못한 저축은행들은 부율경저축은행의 뒤를 이었다.
연이은 뱅크런 현상이 벌어지면서 은행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저축은행이 돈을 벌기 위해 부린 수작 중 하나가 또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의 정체는 바로 ‘후순위채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