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13)
오사마 반리덴이 이끄는 알카에다의 테러에서 비롯된 보복 전쟁인,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달리 이라크 전쟁은 세계가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미국 내 초강경파 네오콘이 더 많은 전장을 원해서 시작된 전쟁이란 이야기부터,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 중이었다는 썰, 군산복합체들이 미국에 무기를 팔아먹기 위해 확전시킨 거란 음모론, 석유 채굴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국가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란 말이나 이라크가 프랑스, 독일과 같은 EU 선진국과 손잡고 달러 이외의 결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해서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전쟁이 시작된 원인에 대한 말은 가지각색으로 나돌았지만,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미국 내에서도 이라크 전쟁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이란 사실이었다.
‘굳이 전선을 두 곳으로 늘릴 필요가 있었나?’
전쟁을 벌일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게 바로 양면 전쟁이었다. 이는 군사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미국은 이런 기본적인 원칙을 위배하면서도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를 쟁취해 낸 역사상 유례가 드문 국가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당사자들은 그들의 승리를 위해 엄청난 돈과 물자, 희생이 뒷받침됐다는 것을 전쟁이 마친 뒤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타국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양면 전쟁도 아니고, 본인들의 손으로 전선을 두 곳으로 늘려 버렸다. 비난은 당연한 거였다.
게다가.
“대체 세계가 반대하는 전쟁을 벌인 이유가 뭐야?”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은 미국에 명분이 존재했지만, 이라크 전쟁은 명분조차 없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미국 국민들 또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중 전선을 열고 전쟁을 지속하면서도 국민의 삶의 질이 변한 게 적다는 게 참 대단한 거지만.’
보통 전쟁이란 행위는 국력을 모두 동원하게 만드는 행사다. 자국의 땅이 아닌 타국의 땅에서 전쟁을 벌이더라도 승패를 떠나 전쟁은 국민의 삶의 질을 해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국력을 깎아 먹는 쓸데없는 전쟁을 조금이라도 빨리 중단시키기 위해 정호준은 오리하와 미팅 약속을 잡았다.
* * *
매일 같이 출근하는 아리아와 달리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데 집중하던 정호준은 오랜만에 회사에 출근했다.
“감사를 통해 비리를 저지른 것이 밝혀진 이들에게 배임 및 횡령을 이유로 고소 진행했습니다. 한밭로펌이란 곳을 통해 손해배상 소송도 따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한밭로펌이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정호준의 중얼거림에 보고하던 남자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대표님도 아시는 곳입니까? 사실 저희는 한국 최고 로펌이라 불리는 ‘이&박’에 소송을 맡길까 고민했는데, 팀장님께서 한밭로펌에 지인이 있다고 그쪽에 맡기자고 하셔서 그렇게 진행했습니다.”
“잘했습니다. 중요한 것도 아닌데, 굳이 ‘이&박’에 맡겨 큰돈을 쓸 필요는 없죠.”
최고에게 맡긴다는 건 그만큼 비용이 나가는 일이다. 한국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해 봐야 푼돈(?)에 불과한데 큰 곳에 맡길 필요는 없었다. 그랬다간 아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연출되리라.
외환은행에 대한 보고 외에도 부동산팀이나 실물자산 매입팀의 보고가 이어졌다.
“서유럽과, 미국, 캐나다, 멕시코, 중국, 러시아, 일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라질, 호주, 한국, 칠레 등에 유통되는 금괴와 은괴를 모두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구리와 철의 경우 아프리카와 남미,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광석 판매를 업으로 삼는 국가들과 계약을 마쳤습니다. 사용 예산은 250억 달러입니다.”
밴쿠버 부동산 매입팀과 함께 가장 먼저 업무를 시작했음에도 사용한 예산은 가장 적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계약한 괴나 광석들은 모두 2년 후까지 인도받는 걸로 계약을 완료했다는 말에 정호준은 추가 매입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2012년, 혹은 13년부터 실물의 가격이 떨어지는 걸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킹 대회는 이야기했던 대로 매년 꾸준하게 진행하십시오. 인터넷 보안 쪽은 한 명의 천재가 열 명의 천재를 이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뛰어난 인력을 계속 충원할 필요가 있어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중요 사안들이 하나둘 다뤄지고 난 뒤 회의를 마칠 무렵 정호준은 자신이 회의장에 참석한 이유 중 하나를 언급했다.
“이번에 전용기를 2대 정도 새로 구입하려고 합니다. JHJ Capital과 SSL Capital 직원들이 사용하는 용도로 한 대, 그리고 다른 한 대는 JHJ 재단에 넘겨주려 합니다.”
새롭게 전용기를 두 대 구매하겠다는 정호준의 발언에 총무팀의 제이슨 팀장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획득한 뒤 입을 열었다.
“사모님께서 타고 다니실 전용기가 필요해, 겸사겸사 전용기를 매입하시는 거라면 1대만 사셔도 될 것 같습니다. 대표님께서 개인적으로 운용하시는 전용기를 제외해도 JHJ Capital 산하 회사들이 운용 중인 전용기는 10대가 넘습니다. 그런데 또 전용기를 사들이는 건 불필요한 소비입니다.”
회사를 인수한다는 건 보통 그 회사가 가지고 있던 빚과 자산을 함께 인수한다는 의미다. 빚은 로슬러가의 도움과 정호준이 보유했던 스와프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걸로 어떻게든 해결했지만, 인수한 회사의 명의로 되어 있는 자산들은 JHJ Capital이 모두 꿀꺽했다.
미국에서 규모 있는 회사치고 전용기가 없는 회사는 없다 보니, 은행과 신문사를 인수할 때 회사 차원에서 운용하는 전용기도 함께 딸려 오게 되었다. 은행이나 신문사들이 소유한 전용기 외에도 정호준의 소유인 PMC 트리오플 또한 자체적으로 전용기를 운용하고 있었고, 시카고 트리븐이 소유한 야구 구단 시카고 컵스 또한 전용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JHJ Capital에 전용기가 필요하다면, 유니버셜 뱅크의 자산으로 잡힌 전용기 하나를 JHJ로 돌리면 됩니다.”
은행을 하나로 합치면서 구조조정을 진행해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인력의 수를 조절하였고, 그 덕에 이사의 수와 자리 또한 감축되었다. 유니버셜 뱅크가 수 개의 은행을 병합해 탄생한 은행이라지만 유니버셜 뱅크가 운용 중인 전용기는 한 회사가 소유하기엔 너무 많았다.
“JHJ Capital을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이 있는데, 다른 이들이 썼던 걸 사용하면 기분 나쁘지 않겠습니까?”
JHJ Capital은 월가에 완전히 자리를 잡은 걸 넘어 에릭 버펫의 회사처럼 금융권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근무하고 싶어 하는 회사가 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과 비슷한 건데, 선망을 받는 회사가 된 만큼 남들의 시선에 맞는 복지제도가 필요했다. 전용기는 그 일환이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총무팀 제이슨 팀장은 기분 나쁘지 않겠냐는 정호준의 질문에 회의에 참석한 이들을 노려봤고,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모두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런 이유로 JHJ 재단에 배치할 전용기만 새로 구매하는 걸로 결정되었는데, 그마저도 취소되었다.
아리아가 쓸데없는 데 돈 쓴다며 거절하고 정호준의 바가지를 긁었기 때문이다.
* * *
Rio Games의 공동창업자 지크 메릴과 브레드 벡으로부터 레전드 리그 베타 서비스를 곧 시행할 거란 연락을 받은 정호준은 저택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장인 주니어에게 아이들을 맡기곤 전용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오랜만입니다. 그간 별일 없으셨죠?”
“득남, 득녀하셨다죠?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희가 고른 선물입니다.”
지크 메릴과 브레드 벡은 정호준에게 아기 옷을 선물로 건네주었다.
“뭘 이런 걸 다. 잘 입히겠습니다.”
정호준은 두 사람에게 신경 써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담을 나누며 회의실로 이동한 후 지크 메릴은 게임을 작동시키며 말했다.
“저희는 정 대표님께서 와 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정호준이 종종 메일로 보내 준 피드백의 수준은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없다면 결코 보여 줄 수 없는 레벨이었기 때문에, 지크 메릴과 브레드 벡은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호준이 게임에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일단, 게임을 플레이를 해 보고 계속 이야기합시다.”
그들의 환상을 부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게임의 발전된 방향을 기억하고 있는 정호준은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기에, 정호준은 두 사람과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기에 이르렀다.
정호준에게 투자를 받고 방향을 잡았기 때문인지 그래픽 해상도 자체가 1회차 때 그들이 서비스했던 시즌 1 시절을 초월했다. 시즌 3 때나 볼 법한 수준이었고, 이대로 진행되면 진입장벽이 높을 거란 정호준의 조언을 받아들여 시즌 4쯤 도입했을 정글몹 타이머 시스템을 장착시켰다.
추억을 되새기며 게임을 플레이한 정호준은 확실히 완성도가 올라왔음을 확인하고는 다른 부가적인 사안들을 질문했다.
“버그는 많이 수정됐나요?”
레전드 리그는 유저들이 중소기업 게임, 인디게임이라 지칭할 정도로 버그가 많은 게임이었다.
“인력을 쏟아부어 수정 작업을 이어 가고는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버그들이 많긴 하겠죠. 베타 서비스를 진행하며 차차 수정해 나가야죠.”
“대회 홍보도 착실하게 진행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레전드 리그가 1회차 때 게임을 운영했던 방식을 그대로 베껴서 제안했다.
“우리가 만든 게임을 대회로 개최하기까지 하다니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요?”
지크 메릴과 브레드 벡은 정호준이 제안한 레전드컵(Legends League World Championship)이란 대회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Rio Games는 1회차 때 그랬던 것처럼 대회 우승자에게 상금 외에도 부가적인 혜택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우승자들에게는 메이저리그 우승자들처럼 우승 반지를 지급하고, 그들이 원하는 챔피언 스킨을 제작해 주며 당해 스킨 판매량의 25%를 보너스로 지급하는 혜택 말이다.
우승자들이 원하는 형태로 스킨을 만드는 혜택은 훗날에야 도입된 제도였지만 정호준은 게임이 시작할 때부터 본인들이 원하는 형태로 스킨이 구현되도록 이끌었다. 첫 번째로 개최되는 레전드컵은 훗날 프로들이 경쟁했던 미래와 달리 아마추어팀들의 향연이 되겠지만 그래서 더 관심을 끌 만한 요소였다.
“게임 만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정 대표님께서 해 주신 조언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됐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대표님들께서 잘 경영해 주시길 바라며 저는 한 사람의 게이머로 남겠습니다.”
Rio Games 창업자들과의 미팅을 마친 정호준은 오리하와의 미팅을 위해 DC로 향했다.
“어서 와요, 정대표. 잘 지냈습니까?”
“저야 잘 지냈습니다만, 대통령님께서는 잘 못 지내신 것 같습니다. 제때 잘 쉬고 계신 겁니까?”
오리하의 안색은 백악관에 들어갔을 당시 봤을 때와 비교해 많이 나빠졌다. 건강을 염려하는 정호준의 물음에 오리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갖는 무게감이 막대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