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09)
은행은 기업이나 개인 외에도 본인들과 같은 금융을 주업으로 삼는 회사 역시 대출을 해 준다. 은행이 은행에게 돈을 대출해 주는 건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항이었다.
인맥을 활용하든 돈을 먹이든 어떻게 해서든 큰 은행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싼 이자로 돈을 빌려 더 비싼 이자를 받으며 돈을 빌려준다. 금리가 단 1% 차이일지라도 단위가 500억, 1,000억 단위라면 최소 5억 많으면 수십억, 수백억의 수익을 올리는 거다.
금리 차가 1%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걸 고려하면 지방은행의 수익은 그 이상이었다.
“은행과 부동산을 담보로 잡겠습니다.”
인맥을 활용하고 담당자에게 돈을 먹이고 담보까지 제출하는 담보 대출이라면 대출금리는 더 낮아지니 말이다.
꽌시 문화가 발달한 중국의 경우 특히 이 인맥과 로비가 빛을 발했다. 야망 있거나 욕심 많은 지방 은행장들은 꽌시와 담보 대출을 활용해 대출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담보 대출을 받아 놓고 다른 은행을 방문해 담보로 제공했던 것을 똑같이 담보로 잡히며 중복 대출을 받았다.
대국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중국인들의 말마따나 중국이 큰 나라이기에 가능한 비리였다.
은행장들이 편법과 불법을 사용해도 사실 돈만 잘 벌리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국도 과정보다는 결과를 보는 나라였고, 성공했으면 그걸로 된 나라였으니 말이다.
돈을 떠나 경기가 호황이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꽌시가 방패막이 되어 주기도 하거니와 다들 먹고 살기 바쁘고 성장하기 바빴기에, 지방의 중소규모 은행의 비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거대한 폭탄으로 자라날 걸 몰랐던 것처럼 중국 지방은행들의 비리도 경기 호황에는 작은 잡음에서 끝날 뿐 그 어떤 트러블로도 확대되지 않았다.
‘비리가 발목이 잡히는 건 언제나 위기가 닥쳤을 때지.’
2007년 미국에서 일어난 모기지론 디폴트로 인해 전 세계에 부동산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었고 이는 중국에도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그도 그럴 게 중국은 부동산이 GDP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2020년대에는 30%를 훌쩍 넘길 정도였고, 땅을 좋아하는 아시아 사람답게 2007~2008년에도 부동산은 중국 GDP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리만 브라더스가 짊어진 파생상품이라는 폭탄 외에 부동산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경제 위기라 불려도 무방할 위기가 찾아왔다.
경기가 나빠지니 시장에 자금이 말랐고, 자금경색 상황에 빠지자 지방의 중소은행에 돈을 대출해 주었던 중국의 중견급 이상의 은행들은 대출을 연장하지 않고 자금을 회수코자 했다.
“대출 연장은 불가능합니다.”
“정치국 위원님께서 아쉬워하실 겁니다.”
“국가급 재난으로 번지려 하는데, 정치국 위원님께서 과연 아쉬워하실까요?”
어떻게든 대출을 연장하고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꽌시를 드러내며 압박했지만 헛수고였다.
일시불로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지만 1조 1천억 달러 손실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작은 피해가 아니었다. 공산당의 힘이 아무리 센 중국이라지만 잘못했다간 목이 날아갈 판이었다.
“왕X단!! 돈을 받아 오든, 아니면 담보를 받아 오든. 뭐라도 받아 오라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형 은행들은 지방 중소은행들의 비리를 눈치채게 되었다.
‘케이스는 다르지만 IMF 당시 은행이나 종금사들이랑 비슷하지.’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 한국에서 종합금융사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회사들을 포함해 모든 금융사는 하나같이 해외에서 단기 값싼 이자로 돈을 빌려와 동남아에 고리로 장기대출을 진행했다.
‘별일 없으니 대출이 연장되겠지.’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라는 3저 현상 덕에 호황기를 누리고 있던 한국의 상황을 낙관하고 있던 금융사들은 대출이 연장되지 않을 거라는 리스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기가 닥치니 종금사들은 하나같이 무너졌고, 은행 중에서도 버틸 체력이 있는 곳들만 살아남았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외부에서 위기가 불어닥쳤는데, 지방 중소은행들의 비리까지 겹쳤다. 중견급이라 불리는 곳들조차 하나 같이 무너지기 시작하며 6대 은행이라 불리는 곳과 중견 은행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곳 몇몇 곳만 살아남았다.
돈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법. 공산당의 힘이 아무리 강력하다지만 내 재산을 지키기 위해 중국 소시민들이 일어났다. 2020년 중국 국민들이 내 돈 돌려달라고 시위를 벌였던 것처럼 2008년 말부터 파산하는 은행들에 돈을 저축했던 중국인들이 은행 앞까지 찾아가 시위를 벌인 것.
“공안 빨리 투입시켜!!”
사람이 모이는 것, 집회를 두려워하는 중국 공산당은 공안을 투입시켜 시위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당근을 던져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은행장들의 비리 포착. 당국 자산 압류 후 피해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구제 조치 약속!]
[정법위원회, 금융시장에 혼란을 일으키고 막대한 비리를 저지른 은행장들에게 사형 선고!]
보시위안에게 리만 브라더스의 책임을 뒤집어씌운 것처럼 지금의 위기가 욕심 많은 지방의 중소은행의 장들이 벌인 비리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물타기를 시도했고, 비리를 저지른 이들을 처벌하는 본보기도 확실하게 보였다.
“집행!!”
사형을 선고만 할 뿐 끝까지 사형 집행은 하지 않고 있는 보시위안과 달리 이들의 사형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 * *
한국의 노년층들이 그리워하는 ‘P’ 대통령의 여식이자 보수정당 출신 박정혜 대통령이 탄핵된 후 치러진 선거에서 보수당 후보로 나온 대선 후보는 토론에서 말했다. 4대강 사업은 잘한 사업이라고.
실제로 본인은 도지사로 일하며 낙동강 유역의 보를 잘 써먹고 있다고.
‘자료를 제시했던 걸 생각하면, 그 사람의 말이 아예 거짓은 아니었지.’
대선 후보끼리 나눈 토론에서 후보 측이 제시한 근거 자료조차 100% 신용할 수 없을 만큼 거짓 자료가 넘쳐났던 세상이다. 본인이 그 분야에 종사하는 게 아닌 이상 직접 전문가를 고용해 확인하지 않는 이상 근거 자료를 100% 신뢰하는 건 어려웠다.
다만 정호준의 상식으로 판단했을 때 맞는 것 같다 싶었던 의견은 4대강 사업을 통해 경상도의 치수 피해가 조금은 줄었다는 점 정도였다.
‘경상도는 전라도와 마찬가지로 틈만 나면 태풍이 들이닥치는 곳이니까.’
한반도 남부. 전라도와 경상도는 태풍의 영향권에 자주 노출되는 지역이다. 보를 쌓아 낙동강 유역을 정비해 홍수 피해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 존재하는 지역감정 탓에 경상도에만 보를 건설하면 말이 나올 수 있어 전라도에 보를 건설하는 것까지도 정호준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충청도의 금강과 서울의 한강은 이해 범위 밖이었다.
‘그저 공사 규모를 키워 더 많은 돈을 착복하고 싶은 걸로만 보인달까?’
정호준은 그 점을 방송을 통해서 확실하게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시켜 둘 생각이었다.
배우, 가수, 예능인. 각 분야에서 탑이라 불리는 이들만 섭외한, 그에 더해 경제 전문가, 정치인까지 데려다가 진행하는 생방송 토크쇼가 막 시작되었다.
* * *
국민 MC라 불리고 앞으로도 불리울 유지석이 마이크를 잡고 토크쇼의 진행을 맡아 주었고, 며칠 전에 만났던 김은주도 배우 쪽 패널에 앉아 있었다.
국민 MC라 불리는 이답게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기도 하며 조금은 편안한 기색을 갖게 만들어 준 뒤 질문을 던졌다.
“정 대표님, 본인께서 생각하시기에 본인의 투자 기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치투자, 그리고 부정을 파고드는 투자 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치투자라면 에릭 버펫의 투자 기법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유지석의 되물음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저는 한 명의 투자자로서 에릭 버펫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버펫의 저서와 그가 투자해 온 역사를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죠.”
“가치투자는 저도 들어 봤을 정도로 유명한데, 부정을 파고드는 투자 방식은 말로만 들어서는 감이 잘 안 잡힙니다.”
“가치투자가 조금 길게 보고 수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라면, 네거티브 투자기법은 단기간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법이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남들이 좋다고 떠받들어 주는 것들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과 현상에 대해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도 영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유지석의 진행에 정호준은 실제 사례를 들며 설명해 주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보통 시장금리도 따라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린스펀 의장이 기준금리를 올려도 2000년대 미국의 시장금리는 오히려 하락을 이어 갔죠. 저는 이 현상을 이상하다고 여기고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국제정세, 유가, 달러 가치, 실물경제, 부동산, 정치상황 등 온갖 요소들을 점검하며 가파르게 성장 중인 중국이 미국의 국채를 사들이고 있고 그 탓에 시장금리가 계속 내려가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대출을 담당하는 이들이 모럴 헤저드를 일으키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뒤로 파생상품과 모기지론에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부동산에 거대한 거품이 꼈다는 걸.”
“신용부도스와프를 체결하고 공매도를 진행한다는 게 잘못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투자라던데, 두렵지 않으셨습니까? 저 같으면 밤에 잠도 못 잤을 것 같은데.”
“돈을 투자할 당시에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판단의 근거는 확실했으니까요. 다만 워낙 큰돈이다 보니, MC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돈을 투자하고 나서는 심장이 쫄깃하긴 하더군요.”
정호준은 자신도 손에서 돈이 떠난 후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며 인간미를 보였다.
투자에 성공했을 때 느낀 감정, 복권에 당첨됐을 때 느낀 감정 등을 물어보며 대화를 나눈 후 유지석은 방송사와 정호준의 상의하에 일찌감치 준비해 두었던 질문을 던졌다.
“말을 꺼내는 게 조심스럽긴 한데, 현 정부에서 계획 중인 4대강 정비 사업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단 경기가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해 공사를 일으키는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일자리를 만들고 물류와 돈을 돌게 하겠다는 판단은 아주 훌륭하죠.”
정호준은 자신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기 위해 김명호 정부의 정책을 칭찬했다. 정호준의 칭찬에 토크쇼에 참석한 정치인 중 진보당에서 나온 의원들의 낯빛이 굳어졌고 반대로 보수당에서 나온 정지인들의 표정은 환해졌다.
뒤이은 정호준의 발언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다만 4대강 사업을 전부 동시에 진행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