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04)
오성, 은성, KS 등 대기업 회장들은 정호준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돈을 지불한 건 미래자동차의 회장 박몽구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박몽구의 순위는 가장 뒤로 밀렸다.
이는 한국에서 오성 그룹 다음으로 성세를 누리고 있는 미래자동차를 무시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사안이었지만 정호준은 기어코 진행했다.
‘박몽구 회장에게는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제안을 던지기 전에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기에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었다.
“어서 와요. 오랜만에 한국 땅을 밟는 건데, 한국에서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었나요?”
자신과 정호준의 차이를 인정하고 참는 건지, 정말 괜찮다고 여기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다행히 박몽구의 저택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그런 기색을 느끼지 못했다.
“기자들이 따라붙는 게 귀찮기는 하지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회장님과 이렇게 개인적인 자리를 가질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영광이라뇨?”
“미래그룹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독립해 재계 서열 8위까지 떨어졌던 미래자동차를 수년 만에 다시 재계 서열 2위까지 끌어올리신 능력 있는 CEO이시잖습니까? 분야는 다르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존중받아 마땅한 성과라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칭찬을 들었는가는 경우에 따라 큰 기분의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자수성가, 그것도 세계 금융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정호준의 입에서 칭찬이 흘러나오자 박몽구는 입가에 미소를 띄웠지만 행동이나 말은 표정과 반대였다.
“정 대표, 기부금을 줬다고 제 얼굴에 금칠을 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금칠이라뇨?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걸요.”
손사래를 치며 말하는 박몽구의 말에 정호준은 다시 한번 아부를 입에 담았다. 그렇게 덕담을 나누며 박몽구 회장이 미리 준비해 둔 식사를 함께했는데, 지금껏 다른 대기업 회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박몽구 회장과의 미팅에는 장남인 박의선 부회장이 함께했다.
후계자로 선택한 자식에게 정호준의 식견이나 사고방식, 정호준이 바라보는 미래 등을 생생하게 공유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커피가 향이 참 좋습니다.”
식욕은 수면욕, 색욕과 함께 인간의 3대 욕구로 꼽히는 만큼 재벌가 회장들의 주방에서 일하는 이들의 솜씨는 모두 초일류급이었고, 식후 마시는 커피조차 품질과 로스팅 기술이 특출났다.
정호준과 박몽구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본격적인 사담을 나눴다. 정호준이 겪은 썰, 시놉시스나 포트폴리오를 보는 기준, 구단을 운영하며 겪는 애로사항 등을 함께 공유했다.
“다른 기업의 회장님들을 만났을 때는 그저 조언 정도로 그쳤지만, 이번에는 조언을 넘어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안이라뇨?”
대기업 회장들과 만나 그들이 본래 기억했던 방향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거나 리스크를 알려 주는 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됐다면 이번만큼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미래자동차가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로 수소를 선택해서 개발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미래 자동차는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 키요타와 함께 1990년대부터 수소차 연구 개발에 돈을 쏟아부었다.
내연기관이 불러일으키는 환경 오염이 훗날 발목을 잡게 될 것을 알기에 미래를 보고 투자한 것. 신기술이라는 게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닌 만큼 개발까지는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필요한 건 시간만이 아니지.’
기술 개발에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재원이 들어갔다.
“저는 미래자동차에 전기차 개발을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 * *
인간은 태생적으로 게으르다. 그리고 그렇기에 자신의 편리를 위해 기술을 개발한다. 더 더 좋은 것을, 더 편리해지기 위해. 이게 기술 개발에 가장 중요한 원동력(욕망)이었다.
하지만 친환경 기술의 개발 이유는 그런 인간의 욕구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다.
아니, 완전히 떨어져 있다고 말하긴 또 뭐 했다.
‘친환경 기술은 편리와 욕망 이전에 생존과 직결된 문제니까.’
기술 개발은 인간에게 많은 편리와 풍요를 가져다줬지만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온 건 아니었다. 환경 오염이라는 치명적인 단점 또한 야기시켰다.
기술 개발은 한 축에는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의료 기술 또한 존재했고, 의료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평균 사망 연령을 증가시켰다. 기술 개발은 인구부양력이 증가하도록 생산량을 폭등시키기도 했다. 덕분에 19세기부터 인구가 꾸준하게 증가했고 20세기에는 아예 폭증했다.
사람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존재인데, 그에 더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환경을 파괴한다. 그런 인간의 개체 수가 폭증했으니 환경 오염과 환경 파괴의 속도가 가파르게 늘어난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바다는 점점 산화되었고, 산화된 바다에서 비롯된 산성 증기는 오존층을 파괴하거나 또 다른 이상 현상을 야기시켰다.
오염되고 파괴된 자연환경 때문에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이상기후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하늘부터 강, 바다를 넘어 본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인간들은 환경을 염려하며 친환경 기술, 친환경 에너지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쏟아 내는 매연 또한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 중 하나로 친환경의 주요 대상이었다. 자동차 매연을 줄이고, 종국에는 아예 매연을 유발하지 않는 기술을 발명하기 위해 자동차 업계는 친환경 기술에 돈을 쏟아부었다.
자동차의 진화 방향은 전기차와 수소차, 이 두 가지로 나뉘었다. 전기차와 수소차는 전기를 주원료로 삼는데, 이때 전기를 얻는 방식의 차이가 전기차와 수소차를 구분 짓는 결정적인 기준이 되었다.
전기차는 전기를 ‘외부’에서 충전받아 배터리에 저장하는 방식이며 수소차는 ‘내부’에서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직접 전기를 생산했다.
미래자동차는 전기차와 수소차 이 두 가지 갈림길 중 수소차를 선택해 시간과 돈, 인력을 쏟아부었다. 그렇기에 박몽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호준을 바라봤다.
“전기차 개발을 시작해 달라니. 이해할 수가 없군요. 우리 미래가 수소차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 무리한 제안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하는 미래와 일본의 키요타는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로 수소를 선택해 기술 개발을 진행했다. 수소 쪽으로 방향을 잡고 돈을 쏟아부었다. 이제 와서 전기차 기술을 개발하란 말은 지금껏 쏟아부은 게 피 같은 개발 자금을 무로 만드는 행동이었다.
“수소차 개발은 지금처럼 계속 이어 가십시오. 그저 전기차 개발부서도 새롭게 설립해서 기술을 개발해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일종의 투 트랙 전략이랄까요?”
정호준은 미래자동차에게 전기차 개발을 요구했지만 그렇다고 미래자동차가 수소차 개발을 멈추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훗날 전기차 시장의 절대강자 테슬러의 CEO 엘튼 머스크가 ‘수소차를 대체 왜 생산하는지 모르겠다.’며 깎아내렸지만, 어느 것이 더 친환경적이냐 물으면 정호준은 ‘수소차지’란 답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전기차도 수소차도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자동차지만 전기차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것에 그친다면, 수소차는 여기서 한 걸음 더 진화한 제품으로 주행을 위해 수소와 산소를 결합하면서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다른 불순물을 걸러 냈다.
수소차를 운전하는 행위 자체가 미세먼지를 정화하는 활동으로 변모한 셈이다.
훗날 미래자동차가 생산한 수소차는 1시간 운행만으로도 나무 60그루의 공기 정화 기능을 하며 성인 50여 명이 호흡하는 공기량을 정화하는 성능을 선보였다.
“말이 쉽지,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투 트랙을 유지할 막대한 자본은 대체 어디서 조달해야 합니까? 그리고 이미 이름 있고 능력이 있는 기술자들은 메이저에서 일하고 있을 겁니다.”
기술 연구에 필요한 자금도 문제지만 인력도 문제다. 이미 능력 있는 기술자들은 전기차 개발을 목표로 하는 곳에 입사해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돈을 더 주고서라도 데려와야죠. 미국에 인력을 파견해 전문가를 영입하고 배터리는 은성화학 쪽에 도움을 구하시죠. 미래자동차가 수소차 개발에 주력했던 것처럼, 은성그룹의 고본후 회장님은 은성화학이 배터리 개발에 꾸준하게 투자를 단행하셨습니다.”
“일단 조금이나마 쉽게 가는 방법이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미래가 왜 전기차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까?”
박몽구 회장은 정호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정중했지만 말투 자체는 추궁하는 듯한 기색이 엿보이는 질문을 던졌다. 방향을 바꾼다는 건 돈도 돈이지만 경영자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다.
미국과 달리 상장회사임에도 창업자와 그 후손들이 회사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대한민국에서는 미국의 CEO처럼 책임지고 물러나거나 잘리는 일이 드물다지만, 경영권을 떠나 능력을 의심받거나 비난을 받기엔 충분한 소재였다.
게다가 상장회사인 만큼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면 지금껏 헛돈을 썻다고 판단한 주주들이 주식을 던져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자동차 개발이 완료되더라도 수소차의 시대가 오기까지 여러 문제점이 남아 있으니까요.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수소차가 실용화되기 위해선 전기차보다 더 많은 벽을 넘어야 합니다.”
정호준은 준비해둔 자료를 배포했다.
친환경은 분명 앞으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방향인 것도 확실하다. 하지만 말이다. 친환경이라는 아름답고 뜻깊은 말 뒤에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뒤따른다는 게 문제였다.
전기차보다 더 친환경적이고 더 빨리 충전된다는 장점이 존재함에도 수소차는 비용에 발목 잡혀 버렸다. 생산 단가 자체도 전기차보다 수소차가 훨씬 비쌌고, 수소를 충전시키기 위한 충전소를 건축하는 비용 또한 전기차 충전소나 주유소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쌌다.
2020년대 기준으로 주유소를 세우는 데 필요한 자금이 3~5억이라면, 수소를 공급하기 위한 충전소를 건립하는 데 필요한 돈은 그 10배인 30억을 호가했다. 2021년 말 대한민국에서 영업 중인 주유소는 총 11,378개다. 이 말은 즉 자동차가 수소자동차로 대체한다고 가정했을 때 충전소가 최소 1만 개는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충전소를 건립하는 데만 최소로 잡아도 무려 30조를 쏟아부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부지를 마련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보다 비용이 더 들겠지.’
땅값이 싼 곳이야 30억으로 해결을 볼 수 있다지만 땅값이 비싼 곳은 그 배를 사용해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을 거다. 50조, 어쩌면 100조까지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거다.
문제는 수소차를 팔아먹으려면 한국만이 아닌 세계가 충전소를 건축해야 한다는 거다.
“경제력이 충분한 국가들이 아닌 이상 기반 시설을 마련할 여건이 안 될 겁니다. 그렇다고 미래에서 충전소를 지어 줄 것도 아니잖습니까?”
돈 벌려고 차를 파는 건데, 미래자동차가 충전소를 건축해 줄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