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00화 (200/335)

200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00)

청와대 관계자가 정호준을 국빈급으로 맞이하겠다곤 했지만 정말 국빈급으로 맞이하는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정호준은 국빈으로 대우받을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방법은 국빈 방문, 공식 방문, 실무 방문 이렇게 크게 세 분류로 나뉜다.

국빈 방문은 가장 융성하게 대접하는 방식으로, 국빈이란 말처럼 국가의 손님 자격으로 방문하는 걸 의미했다. 대상은 대통령의 공식 초청을 받은 외국의 국가 원수 또는 행정 수반인 총리로 제한됐고, 국가의 큰 손님 자격으로 초대하고 방문하는 것이니만큼 그만큼 의전과 예우에 큰 신경을 써서 대접하게 되어 있는 탓에 준비 과정도 많고 비용도 많이 소요되었다.

공식 방문은 한 단계 떨어지는 의전을 받는 방문으로, 외국의 국가 원수 또는 행정 수반인 총리 및 이에 준하는 외빈을 대상으로 시행했다. 다만 국빈 방문과 달리 국가 원수나 총리급 인사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공식 초청을 받고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 공식 방문이 될 수 있었다. 공식 방문은 국빈 방문보다는 의전에서 조금 간소화된 절차를 가졌다.

마지막 실무 방문은 외교부장관급 이상의 직급을 지위를 가진 외빈이 공식 초대장 없이 공무를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를 의미하며, 국빈 방문이나 공식 방문과 달리 방문 비용은 한국이 아닌 외빈 측이 부담하게 했다.

법으로 정해 둔 기준에 따르면 정호준은 이 세 가지 방문에 속하지 않는 귀빈 방문에 해당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치적을 추가하고 싶었던 김명호의 욕망 때문에 정호준의 한국행은 귀빈 방문이 아닌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한국에 방문하는 공식 방문으로 바뀌었다.

‘정호준의 투자를 이끌어내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수월할 거다.’

어려운 시기 한국을 방문한 부호의 자본을 투자받아 경기(景氣)를 개선시킨다. 범세계적인 위기를 무사히(?) 넘긴다면 국민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야당의 방해 공작을 지금보다 수월하게 받아넘길 수 있으리란 계산이 섰다.

정호준이 무슨 목적을 갖고 한국으로 향했는지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만약 김명호가 정호준의 속내를 파악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었다면 정호준의 방한을 극구 막았을 거다.

자신이 아이들을 돌봐주겠다는 장인 주니어의 제안을 뿌리치고 정호준은 아리아와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봐줄 유모들과 경호팀을 대동하고 전용기에 몸을 실었고, 기자들과 청와대에서 보낸 이들의 안내를 받으며 준비해 둔 경호 차량에 몸을 실었다.

* * *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김명호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줄기차게 밀어왔던 공약으로 2008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한반도 대운하를 주요 국정 과제로 선정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진보 진영 야당에선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타당성이 없고 환경만 망치게 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김명호 집권 직후인 2008년, 한미 FTA로 광우병 소고기가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과장이 붙은 진보 쪽 움직임에 촛불시위가 시작되었고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촛불시위의 명분 중 하나로 스리슬쩍 끼게 되었다.

이미 불타오른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던 터라 김명호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파기하고 대신으로 ‘4대강 정비 사업’으로 노선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12월 공식적으로 4대강 정비 사업 추진을 발표했고, 이후 2009년 2월에 국토해양부 산하에 4대강 살리기 기획단이 만들어졌다. 2009년 4월에 4대강살리기추진본부로 확대 개편되었다.

2009년 6월에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마스터플랜이 완성되었고, 2009년 7월에 영산강 유역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착공에 들어갔다, 물론 야당에서는 그조차도 반대를 했지만 김명호 대통령은 반대하는 이들을 잘라내며 강행했다.

‘김명호가 타이밍이 참 좋았지.’

보수, 진보 구분할 것 없이 광복 이후 대한민국 역사를 살펴보면 건설은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애용되어 왔다.

건설 사업은 자재 거래부터 물류의 이동, 인부 고용 등 막대한 돈과 이런저런 일들이 얽혀 있는 사업이었기에 실제로 경기 부양 효과가 있었고 말이다.

2007년 미국의 모기지론 디폴트가 2008년에 이르러서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확산하면서 소비는 위축되었고, 세계적인 소비 위축 현상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의 경기를 침체에 들어서게 만들었다.

국가를 운영하는 행정부로써 침체를 그냥 두고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되었기에 김명호 정부는 4대강 정비 사업을 실시할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되었다.

‘기회를 잘 잡고 걸리지 않는 걸 보면 참 능력자긴 해.’

거래 시 거래 담당자가 물품의 정식 판매 가격보다 싸게 팔고 그 차액을 챙기는 착복행위를 한국과 미국에선 ‘백 마진(Back Margin)’이라 부르는데, 백 마진은 주로 회사의 오너나 고위직의 비자금을 형성하기 위해 벌어졌다.

문제는 백 마진을 발생시키는 게 횡령에 해당하는 범죄란 사실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종종 백 마진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연출이 종종 나오지 않는가? 게다가 백 마진이 성행하는 건 업계의 경쟁력을 죽이는 일이다.

그래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정부나 사법계 쪽에서 백 마진을 뿌리 뽑기 위해 노력을 기하지만 세상일이 그렇잖은가?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명의 도둑을 살피지 못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고자 한다면 어떤 업종이든 백 마진을 일으키는 게 가능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백 마진을 일으키기 가장 쉬운 업종 중 하나가 ‘건설’이란 편견(?)이 박혀 있었고, 편견이라 말하기도 뭐한 게, 실제로 건설은 자제 납품 등과 관련해 백 마진을 일으키기 편한 업종이었다.

김명호 대통령은 잠깐이지만 미래 건설이라는 대기업 계열사에서 회장직을 역임하는 등 건설업계에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겪은 노괴였다.

‘디스 실소유주 논란(비자금 조성 및 횡령)’, ‘오성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그 외 각종 뇌물 혐의로 훗날 재판을 받고 구속됐지만, 김명호의 죄목 중 4대강 정비 사업과 관련한 횡령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가 김명호가 해 먹었을 거라 추측하지만 워낙 잘, 깔끔하게 해 드셔서 증거는 전무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4대강 정비 사업 자체를 막진 못해. 규모를 줄이는 게 최선이야.’

저평가된 미국 주식을 줍줍했던 것처럼 한국 주식도 줍줍하기 위해 선택한 한국행이다. 하지만 정호준의 한국행에는 투자 목적 외에도 쓸데없는 세금 낭비를 조금이나마 줄여 보고자 하는 목적이 존재했다.

* * *

오성그룹이 운영하는 백제호텔 일부를 대관한 정호준은 아이들과 유모, 경호팀 일부를 호텔에 남겨 두고 아리아와 함께 청와대로 들어갔다.

대통령에게 초청장을 받고 들어간 청와대 만찬장에는 김명호 외에도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 면면을 확인한 정호준은 자신을 보기 위해 이런 거물들이 자리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자신이 성공했다는 생각을 가졌다.

‘정말 내가 많이 크긴 컸구나.’

대한민국 정·재계의 거물들이 모두 자리해 있었다. 현재 여당과 야당 대표들 모두가 참석한 건 당연했고, 당의 중진의원들과 훗날 대선 후보로 나와서 ‘사람이 먼저다’라는 멋진 슬로건을 외치며 대통령이 되었던, ‘북한이 먼저다’라는 패러디 구절로 변모시켰던 민재민까지 자리해 있었다.

미래를 아는 정호준이 시선으로는 현 대통령, 차기 대통령, 차차기 대통령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만찬회였다.

정계에는 행정부 수장이 될 이들과 당장의 중진들이 모였다면 재계 쪽에서도 거물급만 자리해 있었다. 오성그룹의 김건희 회장, 미래자동차 박몽구 회장, KS그룹의 정태원 회장, 은성그룹 고분호 회장, 대화그룹 강승연 회장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할 대기업 회장들만 줄줄이 참석했다.

사실 입지만 놓고 보면 청와대 만찬장에 모인 이들의 급은 정호준이 미국에서 만난 릭 오리하, 스티븐 잡스, 로랜스 닉슨, 처조부인 찰스 로슬러 등과 비교해 무게감이 떨어졌지만, 정호준이 미국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워낙 짧고 1회차 때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이쪽이 더 자신이 정말 성공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호텔은 머무르실 만합니까? 불편한 사안이 있으면 이 늙은이한테 지금 이야기해 주십시오, 곧장 조치를 취해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GDP 4분의 1을 차지해 넷상에서 대한민국을 오성공화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만드는 오성그룹 회장 김건희조차 저자세를 보이니 정호준의 감회는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불편한 건 전혀 없습니다. 친절하고 서비스 정신도 투철하고 만족스럽습니다. 그렇죠, 아리아?”

일상적인 잠자리 관련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만찬장의 화제는 경제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정 대표는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 같습니까?”

“대통령님과 회장님들이 말씀하신 대로 불경기가 한동안 이어지겠죠.”

“조금만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시면 어떻습니까?”

정호준은 그저 맞장구만 치며 최대한 의견을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재계 회장들은 정호준의 입에서 구체적인 의견을 듣기 위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식사 자리를 함께하는 것으로 수백만 달러를 받는 에릭 버펫과 비교해 정호준이 꿀릴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두 번은 운으로 깎아내릴 수 있지만 정호준쯤 되면 정호준의 성공은 운이 아닌 실력이었다.

“조심스럽게 충고를 해 드리자면, 아마 조선 업계의 불황이 심할 겁니다.”

2010년대는 대한민국 조선 업계가 일본 조선 업계를 상대로 그랬던 것처럼, 중국 조선업이 부상하며 저가 공세를 펼치며 한국 조선 업계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게다가 조선 산업의 계약 구조 자체의 문제도 한국 조선업의 목줄을 조였다.

조선사의 선박 발주는 생산비의 일부를 선금으로 받고 선박 건설에 착수한 후 조선사에 주문을 발주한 회사들이 선박을 수령하며 잔금을 지불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문제는 배를 발주할 때 한 척만 발주하는 게 아니라 보통 두 척, 세 척을 함께 발주한다는 거였다. 대량 구매하면 가격을 깎아 주는 경제 시스템은 조선 업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칙이었고, 선박을 구매하는 기업들은 조선사에 배를 발주할 때 두 척 세 척 발주하며 할인을 받아서 구매했다.

2007년 미국에서 부동산 디폴트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기에 돈을 떼어 먹힐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그게 문제의 발단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선금을 받으며 잔뜩 주문을 따낸 조선사들이 순차적으로 선박 건축을 완료해도 경영상태 악화 등의 이유로 잔금 지급을 미뤘고 혹은 아예 배를 수령해 가지 않는 기업도 있었다.

돈이 들어와야 추가로 배를 건축할 텐데 자금이 들어오지 않으니 한국 조선사들의 자금 상황은 급격하게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부동산 디폴트로 달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금, 은, 철, 구리 등 실물(원자재) 가격은 급등하게 되어 본래라면 이득을 봤을 계약도 본전만 겨우 차거나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

이런 악순환 때문에 2008년 이후 한국의 조선 업계는 장기간의 불황에 빠지게 되었다. 정호준은 조심스럽게 이런 조선업계 불황을 알렸다.

“선박을 발주한 회사 중 규모가 작거나 개발도상국에서 발주한 물건들은 취소할 수 있으면 취소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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