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90)
경호팀이 운전하는 차량에 탑승해 백악관을 빠져나온 정호준은 오랜만에 분노라는 감정을 발산했다.
“x발!”
화가 치밀어 오르니,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욕설을 내뱉게 되었다. 그나마 좌석이나 바닥을 발로 차거나 시트를 내려치는 등의 행동을 보이지 않은 것만 해도 많이 인내한 거였다.
후우~ 후우~
정호준은 한차례 분노를 표출한 후 심호흡을 하며 냉정을 찾고자 노력했다.
‘화가 나도 냉정해야 해. 그래야 해결을 하든, 이 사달을 만든 이에게 복수를 하든 하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분노를 가라앉혔고, 냉정하게 상황을 돌아봤다.
‘내게 주식을 던지게 함으로써 볼 수 있는 이득이 뭐지?’
‘일단 JHJ Capital과 내 명성이 너무 커졌어. 모기지론 디폴트 사태에서 역대급 수익을 올린 내가 앞으로도 승승장구를 이어 갈 거라고 장담한 만큼, 엔플 주식은 주식 투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바라 마지않을 종목이야.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삼은 거라면 후보군이 너무 많아져.’
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지금의 상황을 곱씹었다.
‘경제적 이득이 목적이 아니라면 후보군은 너무 간단하게 추려져. 내가 보유한 지분율을 낮추고자 하는 시도라면, 가장 유력한 범인은 잡스겠지.’
잡스는 정호준이 엔플의 주식을 2~6% 보유했을 때부터 지분을 사들이는 것을 꾸준하게 경계했고, 모기지론 디폴트로 시작된 경제 위기 속에서 지분율을 크게 늘린 JHJ Capital의 행보에 분노해 본사까지 찾아왔었다.
‘이미 한번 끌어모은 지분을 강제로 매각하게 만드는 건 미국 사회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회사에 큰 타격을 가할 정도의 약점을 잡고 있지 않은 한, 정부도 불가능한 일을 기업이 해내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지.’
더군다나 정호준이 돈만 많은 대주주도 아니지 않던가? 정호준은 로슬러 가문의 사위로 든든한 방패막이 또한 들고 있는 대주주였다.
그렇다고 자금 동원력으로 가자니 엔플의 자금 동원력은 은행까지 집어삼킨 JHJ Capital의 상대가 아니었다.
“JHJ의 정호준입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연락을 드렸네요.”
호텔에 도착해 방안에 혹시나 설치된 도청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진행한 뒤 친분을 쌓은 정보기관의 중진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정호준은 두 번째 WTI 원유 선물 거래 당시 종적을 감추기 위해 이곳저곳 인맥을 쌓았었고, 한 번 맺은 인연은 꾸준히 신경을 쓰며 관리했다. 중국이란 나라와 러시아란 나라는 워낙 상식과 개념이 통하지 않는 나라이지 않은가? 본인을 지켜 줄 수 있는 집단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용건 있을 때만 연락한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의 관계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거잖습니까?”
굳이 여러 단체에 한꺼번에 의뢰를 시도한 건 좀 더 명확한 증거를 찾아내고 정보의 신뢰성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혹시 엔플의 CEO인 잡스나 COO 짐쿡, 또는 다른 엔플의 이사들이 민주당 의원들과 회동을 가졌는지 알아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정호준은 정보기관 한 곳 한 곳에 본인이 직접 연력을 넣으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안임을 분명히 했다.
‘만약 이빨을 드러낸 게 잡스라 할지라도 이번에는 그냥 가만히 넘어가선 안 돼.’
정호준은 자신이 이렇게 분에 넘치는 주목을 받고 부를 누리는 게 회귀라는 기상천외한 기적을 맞이해서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면서도 본래 본인의 노력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던 이들을 존중하고 최대한의 배려를 해 왔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1회차의 기억 때문에 중국의 힘을 빼기 위해 중국은 많이 털어먹었어도,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기보단 되도록 상생을 추구했다.
성격상 문제가 있는 잡스가 저지른 무례도 벌써 몇 번이나 참아 오지 않았던가.
‘나도 사람인데, 당하고만 살 순 없잖아.’
그렇게 배려하고 배려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뒤통수를 쳤다면, 그때는 마음 편히 보복을 감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괘씸죄와 같은 감정적인 면 외에도 정호준에겐 보복을 감행해야 할 이유가 존재했다.
‘되갚아주지 않으면 모두가 날 만만하게 본다.’
자신을 공격한 상대에게 제대로 된 보복을 가해 본보기를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이든 정호준을 만만하게 보고 덤벼드리라. 만만하다는 오판으로 괜한 공격이 들어오지 않도록 초장에 잡아야 했다.
* * *
트리오플과 정보기관, 트리븐 컴퍼니에서 근무하는 기자들에게 최근 잡스와 엔플 이사들의 행보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 및 지시를 내렸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잡스가 아니길 바랬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인물에게 보복을 가하는 건 꺼려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호준의 바람은 완벽하게 빗나가게 되었다.
정보기관이나 트리오플들, 트리븐 컴퍼니 기자들이 물어다 준 정황은 잡스가 움직여서 이 사달을 만들어 낸 것임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내 경고를 끝까지 알아먹지 않고 결국 선을 넘었네.”
정보기관과 휘하 신문사의 기자들이 보내 준 정황을 모두 확인한 정호준은 비서실장에게 연락해 오리하와 자리를 만들었다.
* * *
대통령에게 업무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겠냐마는, 어쨌건 정호준은 근무 시간이 아닌 밤중에 불려갔다.
“예상한 것보다 만나자고 한 타이밍이 빨라서 놀랐습니다.”
“결정하기 전에 대통령님께 하나만 여쭙고 싶습니다. 대통령님께 이 계획을 알린 스티븐 잡스가 주식을 몇 대 몇으로 나누자고 했는지 알려 주십시오.”
정호준의 질문에 오리하는 잠깐이지만 눈을 크게 떴다가 재빨리 감췄다. 정치인답게 감정 수습에 능했지만, 정호준은 그 잠깐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대통령님께서 상원의원으로 계실 때부터 저는 대통령님께서 하시는 정치에 힘을 실어 드렸었습니다. 그간 우리가 쌓은 신뢰와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감추지 말고 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호준의 이야기에 오리하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이내 이 계획을 수립한 이가 잡스임을 시인했다.
“역시 정 대표입니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벌써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본 겁니까? 정 대표는 참 무서운 사람이에요.”
오리하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정호준은 아무런 답변 없이 조용히 오리하를 바라봤다. 정호준의 그러한 시선을 인지한 오리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4 대 1로 분할하기로 계획 중이라더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께서 부탁하신 제안은 받아들이겠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정 대표는 항상 그냥 넘어가질 않네요.”
오리하의 불평에도 정호준은 오리하를 보며 할 말을 이어 갔다.
“이사회의 안건으로 올라온 주식 분할을 4 대 1이 아닌 7 대 1로 진행했으면 합니다. 그 조건이 달성되면 JHJ는 보유한 주식 중 4%를 시장에 풀겠습니다.”
“8%가 아닌 4%만 풀겠다라?”
“주식을 7 대 1로 분할하면, 4%만 풀어도 28%를 푼 셈입니다. 1.5%는 엔플과 미라클이 내놓도록 대통령님께서 힘을 써 주셨으면 합니다. 분할 전 기준으로 38.5%에 달하는 주식이 시장에 풀리게 되는 셈이니, 서민들이 받아먹기엔 충분한 물량일 겁니다.”
JHJ Capital의 지분율은 낮추면서 JHJ가 시장에 매각한 주식을 사들여 본인과 본인의 우호 세력이 보유할 지분율을 높이려는 속셈을 달성하게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나를 공격해 놓고 본인 혼자 목적을 달성하게 그냥 둘 것 같아? 발목 잡고 당신도 지분을 팔게 해 주지.’
미라클을 함께 끼워 넣은 건, 엔플의 편에 선 대주주 중 미라클이 가장 득실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잡스를 도와줄 대주주였기 때문이다.
‘엔플이 망해 갈 때 그냥 50억 달러에 회사를 사서 잡스를 CEO로 앉히려고도 했다던가?’
본인의 지분과 무슨 짓을 하더라도 한편이 되어 줄 이의 지분 정도는 줄여 줘야 정호준도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정호준이 내건 조건에 오리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카고 트리븐에 소속된 신문사에서 낸 특집 기사처럼 저는 엔플을 고평가하고 있습니다. 4%를 시장에 내놓는 것만으로도 지금 저는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겁니다.”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하나만 물어봅시다. 정대표는 엔플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 것 같습니까?”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15년 내로 1조 달러를 돌파할 거라 보고 있습니다.”
2018년에 1조 달러를 돌파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정호준은 정확한 기간을 알려 주는 대신 기간을 두루뭉술하게 길게 잡았다. 그렇다 할지라도 1조 달러를 넘기는 기업이 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오리하가 놀라기엔 충분했다.
“기회비용을 따져 봐야겠지만, 어쨌건 금액만 놓고 보면 300억 달러 이상을 손해 보는 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대통령님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이 정도 양보했으면 처음 이 계획을 입안한 쪽도 최소한의 양보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정호준은 잡스가 자신이 너무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줄곧 염려해 온 사실과 오리하를 이용해 정호준의 지분을 줄이려는 것임을 알렸다.
“잡스는 이제 막 백악관에 입성한 미국 대통령의 힘을 이용한 겁니다. 대통령님과 민주당에게는 해가 될 게 없는 계획이긴 하지만, 이대로 그냥 이용만 당하시겠습니까? 만만하게 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것쯤은 대통령님도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도발이나 마찬가지인 정호준의 발언에 오리하의 표정이 처음으로 심각해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마따나 대통령 자리에 앉아서일까? 오리하로부터 비롯되는 정적의 무게는 이전보다 훨씬 더 무거워졌다.
한 달처럼 느껴질 정적 끝에 오리하가 입을 열었다.
“정 대표에게 하나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지금 엔플은 미국의 모든 국민과 미국에 법인을 낸 기관 및 펀드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주식입니다. 분할 전으로 쳤을 때 38.5%에 달한다지만, 분할 후로 보면 겨우 5.5%밖에 안 되죠. 나는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갈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와 엔플, 그리고 엔플의 우호세력도 지분을 팔면서 한편으로는 지분을 사들일 테니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오리하는 ‘역시나’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오리하의 표정을 보며, 정호준은 처음으로 분노와 냉정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대주주들이 주식을 팔게 만들 테니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정 대표가 엔플을 고평가했는데, 과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복수를 시작할 예정이거든요.”
대통령의 앞에서 미국 기업을 공격하겠다고 말하는 정호준의 뻔뻔함에 오리하가 정호준은 노려봤다. 하지만 정호준은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공격당한 채로 그냥 넘어가면 사람들이 JHJ를 만만하게 볼 겁니다. 제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라도 이대로 넘어갈 순 없습니다. 저는 이 사태를 초래한 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것을 대가로 치르게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