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85)
12월 말, 크리스마스가 가져다주는 행복에 잠깐 불황을 잊고 있을 무렵 JHJ Capital은 진행하던 일 중 하나를 마무리했다.
[JHJ 유니버셜 뱅크, 엘리엇 뱅크 합병 발표!]
정호준이 퀸 부주지사를 만나 시카고 트리븐 컴퍼니 인수 의사를 타진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40억 달러로 금액 협상을 마쳤던 엘리엇 뱅크 합병안이 잘 마무리되었다.
가격 협상을 잘 마쳐 놓고 1월 초나 돼서야 합병을 시작한 이유는 지분 협상 때문이었다.
은행의 몸집이 합병으로 한 번 더 불리는데 지분을 그대로 두는 건 말이 안 된다. 합병을 추진함과 동시에 당연히 지분조정 협상을 시작했다.
연준이 쥐고 있는 지분 20%와 로슬러 가문이 쥐고 있는 지분 10%. 총 30%나 되는 지분이 자신의 손을 떠나 있는 이 상황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당장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화목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장담할 수 없는 거니까.’
정호준은 실무진들에게 보너스까지 언급하며 최대한 많은 지분을 가져올 것을 지시했고, 덕분에 협상이 길어지게 되었다.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끝에 DT가 각각 2%의 지분을 JHJ Capital에 양도하는 걸로 협상을 끝마쳤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올해 크리스마스 보너스 기대해도 좋습니다.”
은행 인수 협상을 마친 실무진들의 보고에 정호준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보너스 지급을 다시 한번 확언했다.
* * *
CDS를 구입하기 전, 세금까지 깔끔하게 정리를 마친 정호준이 보유한 자산은 폴류샤에게 1차로 받은 광산 매각금을 포함해 약 710억 달러였다.
2006년 6월 60억 달러. 2007년 6월까지 55억 달러가 JHJ Capital의 계좌로 입금되었다. 350억 달러를 받고 일로샤에 매각한 다이아몬드 광산은 중간에 푸틴에게 20억 달러를 뇌물로 지급해야 했지만, 어쨌건 330억 달러의 광산 매각금은 무사히 계좌에 들어왔다.
CDS 신용부도스와프 매각, 광산 매각금, 지수 선물 등을 통해 정호준은 급격하게 자산을 키웠고 지금에 와서는 자산이 약 30배 이상 증식한 상태였다.
JHJ Capital이 이번 CDS 사태로 벌어들인 달러는 무려 1,657억 달러. CDS 신용부도스와프를 매수하는 데 사용한 원금 230억 달러와 엔화로 지불한 금액과 러시아로부터 현물로 받기로 약속한 것, 지수 선물로 번 수익을 제해도 약 1,427억 달러를 벌었고.
거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지수 선물로 벌어들인 자금과 일로샤에 다이아몬드 광산을 매각한 매각금, DT그룹으로부터 지분의 대가로 받은 80억 달러와 대출 100억 달러 등이 더해져 JHJ Capital이 보유한 현금은 2,900억 달러를 상회했다.
정호준의 조국인 대한민국 1년 예산과 비슷하거나 더 많을 수 있는 돈이었다.
‘불황의 막바지인데 얼른 자산을 사들여야지.’
정호준은 멍청하게 돈을 현금으로 쥐고 있을 생각이 없었던 터라 투자를 감행했다. 엘리엇 뱅크 합병에 40억 달러를 사용하고, 밴쿠버 부동산 매입에 250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했다. 파산한 기업들의 부동산을 사들이는 경매팀에도 300억 달러를 쥐여 주고, 버스셔헤시웨이의 BA, 골드만 투자 계획에 한발 걸쳐 150억 달러 투자했다.
그뿐인가? 모든 계획의 기초가 될 엔플 주식을 위해 무려 256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쏟아부었고, 지금도 쏟아붓고 있다.
한도를 제한하지 않은 실물자산 매입팀과 12월부터 시작한 주식 매입팀이 사용하는 돈은 일단 논외로 치면 정호준이 따로 빼준 돈만 1,000억 달러에 달했다. 중진국의 1년 예산보다 더 많은 자금을 지갑에서 꺼냈음에도, 사용한 돈보다는 계좌에 남아 있는 돈이 훨씬 많았다.
그 사실을 정호준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크네.’
트리븐이란 회사가 앞으로 줄곧 적자를 보게 되리란 의견에 거짓은 없었음에도 정호준이 시카고 트리븐 컴퍼니를 인수하려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였다.
‘아리아가 아이를 가져 핏줄로까지 엮인 이상 내가 어려워지면 장인과 처조부가 나를 도와주긴 할 거야. 하지만 저들의 도움만 기다려선 안 돼.’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본인이 지켜야지, 남에게 도움을 받는 걸 전제로 삼으면 안 된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만 하는 안전은 비가 오면 언제든 힘없이 무너질 수 있는 모래 방벽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정호준은 잘 알고 있었다.
* * *
오성의 김건희 회장이 외친 천재 경영처럼 21세기는 소수의 천재가 다수의 평범한 시민을 먹여 살리는 구조로 변화된 상태다.
한국도 한국이지만 미국의 경우 유독 극소수의 천재가 전체를 먹여 살리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끝판왕인 나라답게 ‘승자 독식’ 구조가 제대로 나타나 있는 나라로 기본적인 대학교 학비조차 비쌌다.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비싸다고 알려진 의과대학의 학비조차도 미국 대학교의 학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등록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일반적인 학과에 다니는 학생의 4년 학비를 모두 모아야 미국 대학 1년 학비를 계산할 수 있을 정도일 거다. 아니, 어쩌면 1년 학비를 감당하는 것조차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립이 아닌 이상 불가능했다.
미국 대학교 학비는 그만큼 살인적이었다. 그렇다 보니 형편에 맞춰 어떻게든 자식에게 학원을 보내 교육시키는 한국과 달리 적당히 먹고살 만한 서민층의 자녀들은 정말 뛰어나서 장학금을 받아 낼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아니면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천재는 타고나는 거지만 수재는 길러지는 거다’란 말처럼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 꾸준하게 공부를 했다면 대학 문턱을 통과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다해 냈을 수재들이 미국 사회에서는 공부 대신 스패너를 잡고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그래서 문제가 되는 거지.”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지식을 쌓아 올리는 거고 지혜는 깨닫는 거니, 배운 게 많은 사람도 선동당하고 사기를 당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해 주었다.
지식이 많다고 사기를 당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배운 게 많은 사람을 속이고 선동하는 데 드는 노력은 배운 게 없는 사람을 속이고 선동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아는 게 많다는 것은 그만큼 따지는 것들이 늘어났다는 의미했고, 대학물을 먹었다는 것은 그만큼 주변에 자문이나 도움을 요청할 곳이 많아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도와주느냐 아니냐는 또 별개의 문제지만 어쨌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미국이라고 이러한 기본적인 행동양식의 틀을 벗어날 리는 없다.
‘대학 학비 때문에 아예 공부에서 눈을 돌린 이들은 그만큼 선동당하기 쉽다는 거지.’
운동에 재능이 있어 예체능으로 빠지지 않는 이상, 실업계에 다니는 한국의 고등학생처럼 사회에서 밥 먹고 살기 위해 써먹을 기술을 배우느라 바빠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이나 서민들의 자녀들은 캐나다나 멕시코 같은 이웃 국가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아는 게 없는데 지혜롭지 못한 이들은 선동되기 가장 쉬운 타겟이었고, 1% 아니 0.1%의 천재에 의해 굴러가며 사회 구성원 태반이 기술을 배우거나 먹고사느라 바빠 배움이 적은 미국 사회는 선동 될 이들이 차고 넘쳤다.
정호준은 자신이 가진 것을 탐내는 이들이 이민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저들을 선동할까 두려웠고, 해가 자신을 넘어 가족들에게까지 미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인간의 질투와 악의를 얕봐선 안 돼.’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믿는 정호준은 모든 것을 잃고 후회하기보단 미리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지킬 게 많은 사람의 올바른 태도였다.
정호준이 적자가 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면서도 시카고 트리븐을 인수하려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호준은 신문사로 미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고 산하에 잡지사를 소유하고 케이블 지분을 가지고 있는 시카고 트리븐이 본인에게 훌륭한 방패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오히려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동을 할 수도 있겠지.’
그럴 생각은 없다만 누군가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덤벼든다면 시카고 트리븐 컴퍼니는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주리라. 물론 그러기 위해선 평소의 행실을 조심하고 자선 활동 등에 힘써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했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가정교육을 잘 받고 자란 정호준은 약자를 괴롭히거나 갑질을 즐기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기에 전제조건을 달성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보다 적자를 감당하는 편이 훨씬 나은 선택지였고, 퀸 부주지사에게 말했던 대로 자신이 계획한 것을 실현시키면 적자를 수익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되리라.
‘신문사 앱을 만들어서 애플폰 2가 출시될 때 기본 어플리케이션으로 만들어 놓고 유니버셜 톡처럼 선점하면 되지 않을까? 구골은 구골을 통해 신문을 볼 때 최초로 뜨는 신문으로 시카고 트리븐을 선정하도록 힘을 쓰고.’
시장에 돈을 풀어 구골과 엔플의 지분을 사들이고 있잖은가? 훗날 자신에게 더 큰 돈을 벌어다 줄 걸 알기에 하는 주식 투자지만, 많은 지분을 소유한 만큼 대주주로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요구하는 건 문제 될 게 없는 당연한 거였다.
* * *
“……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대표님과 미팅을 요청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퀸 부주지사를 포함 일라노이주 의회와 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정호준에게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올려보내 주시죠.”
그냥 물러가라 하기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은 거물이었기에 정호준은 접견을 허락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스티븐 잡스는 문을 열고 대표실에 들어오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뭐 하는 짓인가!!!!”
대주주들의 지분을 흡수한 것도 모자라 주식시장에서 엔플 주식을 쓸어 담고 있는 정호준의 행보 때문에 스티븐 잡스는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넘어왔다.
“저평가된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거죠. 문제 있습니까?”
“문제가 있냐고 했나? 그걸 말이라고 하나? 당연히 있지, 세상엔 정도라는 게 있는 거다. 40% 넘는 지분을 보유한 이를 세상 어느 누가 그냥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한 이로 볼까?!”
정호준의 주식 매입 지시를 받은 트레이더들은 12월부터 주식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였다.
엔플 같은 경우는 기술적 매입 대신 주식이 시장에 나오는 대로 전부 사들이란 추가 주문을 했던 터라, 한 달이 넘었을 뿐인데 사들인 주식이 전체 발행 주식의 3%를 넘겼다.
“당신 말대로 그렇다고 치면 더더욱 나한테 말을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회사의 지분을 40%나 쥐고 있는 대주주입니다. 대주주한테 이렇게 무례한 게 미국의 기업 문화입니까?”
정호준은 약속도 잡지 않고 막무가내로 회사로 쳐들어와 목소리를 높이는 무례한 행보를 지적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