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76화 (176/335)

176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76)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할 말 없게 만드는 상황은 명확한 사실을 들이대며 조질 때다. 재무제표는 언제 다 들여다봤는지, 적자 규모까지 들먹이며 추궁하는 정호준의 말에 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정호준의 이 일을 잊지 않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뱉으며 축객령을 이야기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하지만 반도체가 미래산업이라는 것도, 하이넥스가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거짓은 아닙니다. 그저 큰 풍파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으며 여력을 낭비하는 일은 없길 바라서 제안을 드린 겁니다.”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 보기 위해 사죄를 입에 담으면서 돌이켜보려 했지만, 한 번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하~ 그래도 귀화하기 전까지 내가 살았던 나라라 여러 번 도움을 드렸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려 하십니까?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멀리 갈 것도 없이 1월에도 제가 한 번 도와드렸었습니다. 이제 겨우 반년 지난 일을 잊어버린 건가요? 내가 나고 자란 나라였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봐 드려야 하는 겁니까?”

정호준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 의욕이 너무 과했던 것 같습니다. 제 선에서 책임지는 걸로 노여움을 거둬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눈앞의 정호준이라는 존재는 이미 국빈 그 이상의 자격을 가준 남자다. 미국으로 귀화했어도 한국인이라는 태생은 남아 있었고, 핏줄이라는 이유로 가지고 있는 온정을 이번 사태로 잃는 건 국가적인 손실이었다.

‘정호준 대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차피 내 인생은 끝난다.’

강병원은 여기서 대통령의 지시라고 밝혀 봐야 도움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호준의 분노가 경제 보복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기 전에 자신의 직을 걸고 책임지는 선에서 끝나길 원했다.

‘대통령은 나를 버리는 선에서 끝낼 거야. 미련 갖지 말고, 지금 용서를 빌고 물러나는 게 최선이다.’

정호준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김명호 대통령은 그를 지켜 주기는커녕 본인의 허물을 덮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써먹을 이라는 걸 강병원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직을 걸고서라도 정호준의 분노를 잠재우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 * *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라.’라는 주식 시장의 격언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라는 장사의 기본을 말하지만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라는 말이기도 했다.

2020년대는 ‘줍줍’이라는 유희적인 표현으로 쓰이기도 했다.

튼실한 재무구조를 가진 대기업 위주로 주식을 매수하고 5년 이상 주식을 보유하며 장기 투자를 진행할 투자자가 아닌 이상, 주식 시장에서 투자자가 돈을 버는 방법은 ‘줍줍’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해내느냐에 갈렸다.

줍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진입 타이밍이었다. 무릎 밑이라고 생각해서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허리도 안 온 경우 투자자는 큰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경제는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기에, 이 타이밍을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이유로 ‘줍줍’이라는 투자 방식은 개인 투자자건 기관이건 증권사건 관계없이 돈을 잃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나 접하는 정보량의 차이로 기관이나 증권사들이 개인 투자자들보다 리스크를 조금 덜하긴 하지만. 어쨌건 기관이나 거대 증권사도 리스크는 존재했다.

줍줍을 잘못하면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사례가 바로 2008년 1월이었다.

2007년 2분기 막바지, 3분기 초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디폴트 사태의 파장으로 인해 2007년 말 미국 주식 시장에 쇼크가 찾아왔다. 미국 주식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애플폰이라는 시대를 앞서가는 오파츠를 생산해 큰 성과를 낸 엔플마저 주가가 하락했다.

2008년 1월, 주식 시장 내에서 하락세가 차츰 완화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주식 시장의 동태를 살펴보던 몇몇 기관 투자사 및 증권사들은 주가가 하락할 만큼 하락했다고 여기곤 줍줍을 시작했다.

진입 각을 제다가 줍줍을 시도한 무리에는 KIC(Korea Investment Corporation: 한국투자공사)도 끼어 있었다.

‘KIC’는 정부와 한국은행, 연금과 같은 공공기금으로부터 자산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기관으로 국부의 효율적 증대, 금융 산업 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2005년에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대한민국 기획재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만큼 국가(국부) 펀드로 봐도 모자람이 없었다.

2008년 1월 KIC는 메릴리치에 3,000억이 넘는 자금 운용을 맡겼다가 47% 손실을 보게 되었고, 그 외에도 20억 달러라는 거금으로 메릴리치 주식을 구매했다가 쪽박을 차게 되었다. 메릴리치는 서브 프라임 디폴트 사태로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2007년 7월부터 2008년 7월까지. 서브 프라임 디폴트 사태가 수면 위로 올라온 1년 동안 메릴리치는 매일 5,200만 달러 이상의 손해를 보게 되었다. 1년 동안 메릴리치가 본 손해를 모두 더하면 무려 192억 달러에 달한다는 기록이 있으니, 얼마나 암울한 상황이었는지 더 말해 무엇할까?

그런데 메릴리치가 입은 타격은 비단 적자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주식을 상장한 은행인 만큼 손실을 보는 동안 당연히 은행의 주가도 줄곧 하락을 이어 갔다.

계속되는 손해와 주가 하락에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메릴리치는 결국 2008년 9월 14일 BA로 인수되었다.

BA(Bank America)의 메릴리치 인수는 베어스프링스가 그랬던 것처럼 주식 교환과 현금 인수가 동시에 이뤄졌다. 보통주 1주당 BA 보통주 0.8595주와 교환되거나 혹은 주당 29달러에 매각되었다.

미국 10대 은행으로 꼽히는 은행 중에서도 은연중에 중위권으로 꼽히던 곳이 겨우 500억 달러라는 헐값(?)에 BA로 넘어간 것.

‘BA’도 ‘골드만식스’나 ‘DT’ 은행처럼 연준으로부터 공적자금은 크게 끌어다 쓴 은행 중 하나여서 사실 은행을 인수할 정도로 여력이 넘치진 않았지만, 리만의 파산 이후 또 다른 파산이 가져다줄 공포를 염려한 연준 때문에 이득을 보게 되었다.

BA가 ‘DT’ 은행과 비교해 공적자금을 끌어다 쓴 정도가 덜한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수면 밑의 정치 또한 영향을 끼쳤다.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 그리고 오늘내일하는 AOG 때문에 찰스 로슬러는 로슬러 재단 이사장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고, 그 탓에 본인의 입김이 닿는 메릴리치를 찰튼 로슬러의 영향력이 거대한 BA에 빼앗긴 것이었다.

2008년 1월 20억 달러를 쏟아부어 메릴리치의 주식을 ‘줍줍’한 KIC는 3월 이후 다시 시작된 극심한 하락세 때문에 주식을 매각하지 못한 채 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9월 14일 BA의 메릴리치 인수 발표로 보유하고 있던 메릴리치 주식을 ‘BA’ 주식으로 교환하게 되었다.

BA가 메릴리치를 헐값에 인수한 만큼, KIC가 쥐고 있던 메릴리치 주식의 교환비 또한 부당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극악이었다. 하지만 억울해도 어쩌겠는가? 여러모로 아쉬운 게 많은 한국은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국회 청문회를 통해 KIC 관계자들을 후려치며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게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손실이 80%(1조 5천억 원)를 상회하니 손해를 봤다고 매각을 할 수도 없어 ‘존버’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티며 9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2017년, 본전을 찾고 매각했다.

당시 KIC가 본전을 찾았다며 뉴스 기사에 잠깐 소개되기도 했다.

‘존버’를 강행하느라 소모된 시간을 생각하면 본전을 찾았다고 좋아할 게 아니었지만 말이다.

KIC의 투자 실패는 광우병 소고기 수입 논란과 함께 김명호의 지지율을 떡락시킨 주요인이 되었다.

정호준이 회귀하기 전인 1회차 때는 말이다.

정호준이 월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2회차는 1회차와 많은 것이 다르게 돌아갔다.

2007년 서브프라임 디폴트 사태가 벌어진 뒤로 JHJ Capital이 모기지 채권과 관련한 CDS(신용부도스와프)를 잔뜩 쥐고 있다는 사실은 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문이 널리 퍼진 상태였고, 그 때문에 KIC 관계자는 정호준을 찾아와 자문을 구했다.

정호준은 줍줍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만류했고, 그 덕분에 KIC는 20억 달러를 메릴리치에 투자했다가 망하는 1회차의 전철을 밟지 않게 되었다.

정호준이 만들어 낸 나비효과 때문에 메릴리치가 1회차 때만큼 심하게 망가지지는 않겠지만,

DT 그룹을 더 우선시하는 바람에 서브프라임 디폴트 사태로 타격을 받게 될 거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 * *

KIC 관계자가 정호준을 찾아왔을 때, KIC는 정호준에게 자문료를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저 국민의 혈세라는 말과 같은 한국인인데 조금만 도와달라는 말로 때웠을 뿐이었다.

정호준 역시 필요에 따라 미국 국적을 선택하기는 했으나 한국이라는 나라에 분명한 애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1회차 때보다 좀 더 잘 나가고, 부채가 조금이라도 덜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줄 뿐 딱히 대가를 갈구하지 않았다.

‘외국에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을 김명호 대통령이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하이넥스 같은 거대 기업을 매각하는 일에 대통령에 의중이 섞이지 않았다라. 그 말을 제가 믿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에서 저를 얼마나 가볍게 보는지 알 수 있는 말이네요.”

그렇기에 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자신이 책임지고 끝내려는 걸 알아챘음에도 정확히 그 사안을 꼬집었다.

“대표님!!”

강병원은 간절한 시선으로 정호준을 쳐다봤지만, 정호준은 그 눈빛을 매몰차게 뿌리치며 사람을 불렀다.

경호원들의 손에 끌려나가는 불상사를 범할 수는 없는지라 경호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강병원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밖으로 나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정호준을 간절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제는 한국의 국익을 생각하기보단 내 이익을 우선시해야겠네. 매국노 이미지가 더 크게 씌여지겠는데?’

김명호 대통령이 먼저 선을 넘은 만큼, 정호준은 한국 기업들을 털어먹는 것에 망설이지 않겠다는 결심을 품었다.

* * *

아리아는 만삭에 가까워진 뒤로 휴직계를 내고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리아가 첫 출산에 하나도 아닌 둘을 잉태한 만큼 정호준은 아리아의 곁에 머무르며 지켜봐 주려 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꼭 출근을 하지 않아도 활동이 가능한 게 금융업 분야인 데다 임직원이 아닌 회사의 오너여서 자신의 제 맘대로 출퇴근을 선택할 자유가 있어 정호준에게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호준이 함께 있어 주면 더 불편할 것 같으니까 얼른 회사 나가요.”

자신 때문에 정호준이 할 일을 못 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회사에 출근하라고 강력하게 밀어붙인 터라 함께 있어 주고 싶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매일 회사로 출근 도장을 찍어야 했다.

삐리릭!

강병원에게 축객령을 내린 후 두 시간이 지나 러시아워가 시작되었을 무렵, 정호준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지금 당장 존 홉킨스 병원으로 오게. 아리아가 진통을 시작했네.”

어떻게 장인과 함께 있었는지 주니어로부터 연락이 왔고, 정호준은 급하게 사무실을 달려나갔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날아가고 싶었지만 러시아워에 발이 묶여 버렸다.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1시간은 꼬박 소요한 뒤에야 병원에 당도했고, 병원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이동했다.

정호준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급했는지, 주니어는 앉아 있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며 복도를 오가는 중이었고, 정호준은 주니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재빨리 달려가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분만실에서 애쓰고 있네. 분만이 시작된 지 3시간 30분을 넘겼네!”

산전 관리를 잘해 산모와 아이들의 건강 상태가 양호했고, 아리아가 몸에 상처가 남는 것을 원치 않았던 터라 제왕절개 대신 자연 분만을 선택했다.

꺄아악!!

아리아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분만이 시작된 터라 정호준은 분만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산통으로 인한 비명이 이어지는데 본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화가 난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성질을 냈다.

“괜찮은 거 맞습니까?!”

“최고 의료진들을 모두 붙었다고 하니, 믿어 보자고. 괜찮을 걸세.”

아내가 출산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 아빠로서 딸이 출산하는 걸 지켜보는 건 체감하는 바가 달랐지만, 그래도 연륜이 어디 가진 않는지 주니어는 흥분한 정호준을 다독였다.

응애~!! 응애~!!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을 정도로 비명 소리만 들려오던 분만실에서 아기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정호준이 분만실에 당도한 뒤로 무려 6시간 21분이 지난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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