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58)
릭 오리하가 한국의 교육 제도 등을 언급하며 배울 점이 있다고 관심이 드러냈다 해도 한국의 역사를 전부 알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정호준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 활동이 활발했던 점이나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군이 줄곧 활동을 이어 갔고 국민들이 적은 돈이나마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군들에게 기부를 했다는 것 등을 알리며, 내 나라를 위한 한국인들의 헌신과 희생정신 그리고 의지력 등을 언급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비교를 이어 갔다.
“지금은 둘로 나뉘긴 했지만 대한민국은 아프가니스탄처럼 부족 단위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미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하고 정규군을 키워도 공격 대상이 자신의 부족 출신 게릴라라면, 제대로 전투에 임하지 않고 전투하는 시늉에서 그칠 겁니다. 부족 간의 연대를 가벼이 보시면 곤란합니다.”
아프가니스탄 땅에서 사는 주민들은 수백 동안 부족사회의 연합체로 살아왔고, 또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미국이 들어가서 암만 돈을 뿌린다고 한들, 지금껏 살아왔던 기질이 한순간에 바뀔 리 만무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그 땅의 민중들은 외국군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 말은 즉, 미군의 작전이 언제 어디서 셀지 모를 위험성을 항상 지니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1회차 때 미국은 반감을 지우고 자신들이 떠나도 탈레반과 싸워 이길 체급을 키워 주기 위해 서방국가들과 함께 경제 재건과 민심 안정 등의 명목으로 7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자해 교육과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노력했다. 군사 장비까지 합치면 1,0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넘는 돈을 쏟아부었으리라.
‘쓰레기통에 돈을 갖다 버린 것과 다르지 않았지.’
“탈레반 반군들이 사기를 북돋기 위해 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정호준의 질문에 오리하는 대답 없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오리하의 표정을 본 정호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
“‘미군은 언젠가는 떠나지만, 탈레반은 끝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탈레반 병사들의 사기 진작으로 사용되고 끝나는 게 아닌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암암리에 퍼져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탈레반에게 좋은 감정이 없는 부족도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협조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공포에는 똑같이 공포로 맞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인권과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민간인 학살과 같은 범죄를 저지를 수 없는 미국은 그저 끝없이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매장된 자원을 생각하라는 보고는 한 귀로 흘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원, 물론 좋죠.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국토 태반이 험준한 산악입니다. 인프라는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이고요. 자원 채굴을 위해 인프라를 정비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고려하면 저는 크게 메리트가 없다고 평가하고 싶네요. 환경이 워낙 열악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최소 5년 이상은 광산에서 별다른 수익을 올리지 못할 겁니다.”
진흙탕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미국이 발을 빼지 않은 이유는 몇 가지 존재했는데, 첫째가 바로 자원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우라늄을 비롯한 막대한 광물 자원들이 잔뜩 매장되어 있었다. 아프간에 매장된 광물 자원 중에는 가치가 높은 회귀 금속들 다수 존재했다.
전쟁을 벌여 놓고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채 끝내는 건 미국의 위신에 먹칠하는 것이라 생각한 데다 자원도 하나의 무기가 되어 주는 세상이란 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안정적인 회귀 광물 수급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친미정부를 세워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로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이웃인 파키스탄이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염려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최대 민족인 파슈툰족은 파키스탄 서북부에도 많이 살고 있었고, 탈레반이 승리할 경우 최악에는 핵무기 통제권이 탈레반에 넘어갈 수 있었다.
‘파키스탄의 치안이 막장 중에서도 막장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걱정되는 거지.’
이해는 하지만 정호준은 그럴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했다. 아프가니스탄은 멀리 떨어진 나라도 아니고 인접국이다. 파키스탄보다 더 막장인 게 탈레반이라는 세력이고. 핵폭탄이라는 무기가 가져다주는 무게감을 생각하면 파키스탄의 상황이 아무리 막장이어도 폭탄 자체가 넘어가지는 않을 거다.
다만 핵폭탄 개발을 위해 필요한 기술은 구하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구해질 확률이 높았다. 원료인 우라늄은 국토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으니 기술을 들여오고 자본을 집중하면 어떻게든 완성시킬 수 있을 거다. 대한민국의 북쪽에 위치한 나라가 대표적인 성공사례(?) 아니던가.
‘내가 그것까지 어떻게 해 줄 방법은 없지.’
아프가니스탄보다 더 가까이에 위치한 북한의 핵 개발도 못 막는데, 아프가니스탄의 핵 개발을 어떻게 막겠나. 정호준이 할 수 있는 건 릭 오리하 시절 몇 번이고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진흙탕에서 빠져나올 기회가 생겼던 것을 기억해, 진흙탕에 최대한 짧게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엄한 돈을 쏟아부으며 국력을 깎아 먹지 않도록 하는 거였다.
“자원을 개발하는 데 소요될 시간은 어쩌면 10년이 넘게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10년의 세월은 국익 때문에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는 세상에서 관계 개선을 이룩하기 충분한 세월이죠.”
미국은 종교에 자유가 있는 나라다.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삼는 아프가니스탄의 옆 나라 중국과 달리 이슬람에 안 좋은 시선을 보내긴 해도 중국처럼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를 억압하고 깎아내리진 않았다.
종교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사원이 위치했던 곳에 사원을 부수고 화장실을 짓는 등의 행위를 이어 가는 중국이 미국보다 더 큰 이슬람의 적이었다.
“다만, 미국의 위신을 세우려면 테러 주동자의 목숨은 필요할 거라 봅니다.”
“충고 고맙게 듣겠습니다. 백악관에 입성하면 다시 한번 논의해 보도록 하죠. 그나저나 내게 요청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들을 만큼 들었다고 생각한 오리하는 대화의 주제를 바꾸었다.
“예, 그렇게 말씀드렸었습니다.”
“뭘 원하죠?”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전부터 자신의 정책을 여러모로 도와주었던 정호준이다. 그런데 후원금을 기부하면서도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기에, 사실 릭 오리하는 뭔가 빚지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10살 먹은 어린애가 아니었기에 세상에 대가 없이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항상 찜찜했었다.
“마이클 스팬서라고 알고 계십니까?”
“처음 부동산 부실을 발견한 남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CDS를 잔뜩 쥐고 있어서 요즘 핫하다 들었는데, 제가 알고 있는 게 맞습니까?”
“예,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마이클 스팬서가 2006년에 추가로 구매한 CDS는 전부 저희 JHJ Capital의 자금입니다.”
정호준은 구겨지지 않게 서류 가방에 챙겨 온 봉투를 꺼내 릭 오리하에게 건넸다. 릭 오리하는 정호준이 건넨 봉투를 열어 종이 한 장만 달랑 있는 것을 확인하곤 종이를 봉투에서 꺼냈다.
- 와코르비아 은행: 25억 달러
- 인데믹 은행: 20억 달러
- 워싱턴 레시프로 은행(Washington Recipro): 20억 달러
- 중국 상업은행(CCB(China Commerence Bank): 18억 달러
- 중화 커뮤니티 은행(CCB(China Community Bank): 18억 달러
- 중국 농업은행(CAB(China Agriculture Bank): 18억 달러
- 중국 건설은행(CCB(China Construction Bank): 18억 달러
- 중국 공상은행(ICBC(Industrial and Commercial Bank of China): 18억 달러
- 중국은행(Bank of China): 18억 달러
- 미츠바시 은행: 21억 달러
- 미츠이나 은행: 21억 달러
- 스비르 은행: 15억 달러
- 크레던스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CSFB(Credence Suisse First Boston): 15억 달러
서류에는 JHJ Capital이 체결한 CDS 계약 규모와 은행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저희 JHJ Capital이 CDS 계약을 체결한 은행과 그 규모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무래도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돈을 받아 내는 것도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일본이야 미국 정부가 뉘앙스만 풍겨도 알아서 길 거다. 문제는 러시아와 중국이었다. 러시아는 제정이 무너졌을 때 한 번, 그리고 소련이 무너지고 얼마 뒤에 또 한 번. 두 차례나 배 째라 식으로 나온 적이 있어 염려스러웠다.
그나마 위안은, 러시아 국적의 은행은 스비르 은행 하나뿐이고 CDS 계약을 체결한 스비르 은행은 1841년 설립된 러시아 최초의 국영은행이자 러시아 최대은행이어서 돈을 떼먹힐 걱정은 덜하다는 점이었다.
‘달러로 주기 힘들다 그러면, 러시아 정부와 협상을 통해 현물로 받는 방법도 있으니까.’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금과 은으로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금값과 은값은 천정부지로 상승하니 장기투자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정점 언저리에서 팔면 최소 2.5배는 자산을 부풀려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정호준이 걱정하는 건 다름 아닌 중국이었다. 논리로만 생각하면 한창 발전을 이어 가며 세계의 공장이 되어 가고 있는 중국으로선 세계에 신용 있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기에 CDS 채권에 대한 정당한 값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규모가 규모이지 않은가. 6개 은행 모두 합쳐 108억 달러. 한화로 무려 13조에 달한다. 협상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가치가 더 늘 수도 줄 수도 있겠으나, 정당한 값을 매기면 100조를 훌쩍 넘는 자금이 증발하리라.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러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모라토리엄을 선언해도 모자람이 없을 규모였다.
“로슬러 가문에게 도움을 청하면 되지 않습니까? 굳이 내 손까지 빌려야 하나 싶은데요?”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닌지라, 아니 대통령이 된다 해도 조심스러울 이야기였기에 릭 오리하는 한 발 빼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제 처가인 로슬러 가문의 힘을 빌리긴 하겠지만, 어쩌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로슬러 가문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지만 주도해 주는 사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 일 처리 속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릭 오리하가 손을 써 주었으면 한다는 뜻을 다시 한번 밝히는 정호준의 발언에, 오리하는 한숨을 내쉬며 다른 질문을 함으로써 대답을 미루었다.
“와코르비아, 인데믹, 워싱턴 레시프로, 크레던스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이라 미국 은행들에도 꽤 크게 CDS 계약을 체결하셨네요?”
“크레던스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게 될 겁니다. 정부나 당에서 부채 탕감을 약속해 주면 와코르비아, 인데믹, 워싱턴 레시프로는 제가 인수할 수도 있습니다.”
정호준은 CDS 채권을 무기로 내세웠다. CDS를 공매도하지 않는 걸로 지분을 매입을 대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가 제 일에 발 벗고 나서 준다면, 제조업 쪽도 인수할 생각이 있습니다.”
부채 탕감을 약속하면서까지 은행을 살리는 이유는 한국 정부가 고려하는 바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바로 실업률과 연관된 일자리 때문이다. 한국의 재벌들이 노동자들을 인질로 삼은 것처럼 정호준 또한 미국 노동자들을 인질로 릭 오리하에게 제안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