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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57화 (157/335)

157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57)

중국이 리만 브라더스를 언제 정리할지에 대해 생각을 공유한 뒤에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다 날이 어두워졌다.

“이제 곧 식사 시간인데, 혹시 드시면 안 되는 음식 있으십니까? 쉐프(영양사)에게 미리 말해 두겠습니다.”

3시간 넘게 대화를 이어 가는 바람에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사위라는 놈이 장인을 굶긴 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정호준은 식사 준비를 위해 질문을 던졌다. 원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음식은 조심해야 하는 법이잖나? 게다가 미국은 땅콩 알러지 같은 이런저런 알러지를 보유한 병력을 가진 이들이 많은 나라였다.

“특별한 알러지 병력은 없네만 당뇨가 있으시네. 그리고 아버지가 연세가 있으니 육류 쪽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네.”

“네, 그럼 그렇게 전달해 두겠습니다.”

거실에서 잠깐 나온 정호준은 아이폰으로 쉐프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손님이 왔고 손님의 병력과 저녁을 신경 써서 만들어 주길 부탁했다. 힘을 써 달라는 오너의 부탁에, 정호준에게 고용된 쉐프는 본래보다 더 신경 써서 조리했다.

저녁상은 생선을 활용한 요리와 샐러드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잔 받지, 따로 운영 중인 와이너리에서 직접 제조한 걸세.”

찰스가 챙겨 온 와인으로 입가심을 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대화는 한창 진행되었다.

“자네 말대로 오리하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해 기어코 경선에서 이겼더군.”

조금 전까지 중국을 비롯한 모기지론에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면, 이번에는 미국의 정치에 대해 논했다. 국민, 그중에서도 특히 사업가에게 정치는 민감하고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전에도 한번 말씀드렸잖습니까. 대선보다 민주당의 경선이 더 치열할 가능성이 크고, 릭 오리하는 대통령의 자리에 꿈꾸기 충분한 사람이라고.”

2007년 1월 20일, 클라라 힐링턴은 웹사이트의 동영상을 통해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2007년 2월 10일, 릭 오리하는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의 옛 주 정부 청사 건물 앞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발표하였다.

두 사람의 접전은 상당히 치열했으나 승자는 1회차 때와 마찬가지로 ‘릭 오리하’였다. 6월 3일 모든 주의 대의원 수를 집계한 결과, 릭 오리하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 예정자로 지명되었다. 대통령 후보를 정하는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릭 오리하는 미네소타의 세인트 폴에서 승리 연설을 했고, 6월 7일 클라라 힐링턴은 선거 유세를 접고 릭 오리하의 승리를 인정했다.

“그래도 설마 했지.”

로슬러가는 유대인이 아니고, 흑인이나 황인, 라틴계를 차별하는 인종차별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내 돈 불려주고 내 회사 잘 운영해 주면 피부색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러니 정호준이 능력을 인정받아 로슬러가의 영애와 혼인을 할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찰스들이 흑인의 능력을 얕보는 건 아니지만 ‘흑인인데 설마 백악관의 주인이 되겠어?’와 같은 미국 상류층 인사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주지사나 상하원에서 흑인들이 하나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지만, 대통령은 의미가 달랐다.

게다가 현재 미국에서는 빌 힐링턴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은 것 또한 숙고할 거리 중 하나였다. 빌 힐링턴이 집권했을 때 지긋지긋했던 소련이라는 경쟁자를 누르고 미국이 확고한 세계의 패권국임을 세계에 과시하게 되었으며, 경제 쪽으로도 큰 잡음 없이 꾸준한 성장을 이어 갔다. IT 거품 붕괴를 시작으로 9.11 테러, 중동에서의 전쟁, 모기지 붕괴 등 온갖 사고가 계속된 현 정부와는 여러모로 비교되다 보니 클라라 힐링턴의 인지도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흑인(릭 오리하)이, 빌 힐링턴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향수를 등에 업은 클라라 힐링턴을 경선에서 누르고 승복을 받아 내니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네 말을 듣길 잘했네.”

1회차 때 릭 오리하가 백악관에 들어간 것을 알고 있는 정호준은 릭 오리하의 캠프에 선거 자금을 후원하며 풀베팅을 했지만, 사위인 정호준과 달리 흑인이 대통령이 된다는 걸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웠다. 모기지 붕괴를 예측한 정호준의 미래를 보는 안목을 무시할 수도 없었기에 찰스들은 오리하와 힐링턴 둘 모두에게 선을 댔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힐링턴이 경선에서 패배했다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비록 경선에서 오리하에게 패하고 훗날 있을 대선에서도 트럼프에게 패배하지만, 릭 오리하 이후에도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서 대통령에 도전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여자였다.

‘대단한 아줌마지. 그분도.’

클라라 힐링턴은 빌 힐링턴이 바람을 피우고 다녀도 꾹 참는, 서양의 사고방식으로는도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여자였다.

‘정말 사랑한 건가? 아니면 정치적 영향력을 위해서인가?’

빌 힐링턴의 후광을 위해서인지, 대통령직을 노리는 정치인으로서 이혼은 있을 수 없다는 풍토가 강해서인지, 그도 아니면 정말 사랑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정호준은 클라라 힐링턴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어떤 이유에서라도 남편의 외도가 자국인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뉴스를 타 유명해졌음에도 참고 사는 것이 대단하다 생각될 뿐이다.

정호준은 이번 백악관의 주인은 흑인인 릭 오리하가 될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일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도록 하지.”

정치 이야기를 마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위해 침묵이 잠깐 흐를 무렵, 찰스 로슬러가 정호준과 아리아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증손주는 언제쯤 보여 줄 생각이니?”

콜록! 콜록!

콜록! 콜록!

갑작스럽게 2세 계획을 묻는 찰스 로슬러의 물음에, 정호준과 아리아는 사레가 들린 것처럼 기침을 해 댔다. 정호준은 황급히 물을 들이켜 진정시키고는 아리아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정호준의 두들김과 물 덕분에 평소의 호흡을 되찾은 아리아는 찰스를 불렀다.

“할아버지!!”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할애비가 증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거냐?”

정호준은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당신 앞으로 6년은 더 살 거거든.’이란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인간은 본인의 의지와 의욕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명줄을 달리할 수 있는 동물이다. 재단 이사장 경쟁에서 완전히 패배해 의욕을 잃어버려서 6년이지, 만약 이사장 자리를 차지하거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면 얼마나 더 살게 될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나도 빨리 손자가 보고 싶구나. 결혼도 했는데, 피임하고 그러는 거 아니지?”

아리아는 목소리를 높여 따지듯이 찰스를 불렀지만, 찰스 로슬러는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부친인 주니어는 한술 더 떴다.

‘아, 어지럽다.’

한국에서도 조부모들은 종종 손주 이야기를 꺼내곤 하기에 아주 놀랄 건 없지만 최소한 피임과 관련한 노골적인 말을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묻지는 않는다. 특히 식사 자리에서 하는 건 더더욱 예상 밖이었다.

“할애비는 내년이 가기 전에 증손을 보고 싶구나.”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만해 주세요.”

아리아가 고개를 숙이며 그들이 원하는 답을 모기처럼 중얼거리는 것으로 2세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다시 한번 자신이 사는 곳이 미국임을 깨닫게 만드는 하루였다.

* * *

찰스들과의 만남을 마친 며칠 뒤 정호준은 미리 약속했던 만남을 위해 한 저택으로 향했다. 안내를 받으며 서재에 들어선 정호준은 저택의 주인과 티타임을 가지며 해후를 나눴다.

“오랜만입니다. 이래저래 바빠서 이제야 시간을 좀 낼 수 있었습니다.”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남성은 미소를 지으며 정호준은 맞이했다.

“대선을 준비하여야 하는데, 당연히 바쁘시겠죠. 경선 승리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보좌관에게 들어 보니 경선 자금을 후원해 준 것도 모자라 대선 자금 후원까지 해 줬더군요. 덕분에 선거를 좀 더 쉽게 치를 수 있었습니다. 대선도 좀 더 준비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이번 정부가 모기지 붕괴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는 만큼 대선도 승리하실 겁니다. 대통령님이라고 미리 불러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이라니, 그건 너무 이릅니다. 백악관에 들어간 뒤에 말해 주시죠. 정치적 동반자인 호준에게 대통령님이란 말을 들으면 참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호준은 상원의원일 때부터 오리하의 행보에 도움을 준 건 릭 오리하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불이익을 받지 않고 도움을 받기 위한 포석이었다.

“취임식 때 불러 주시면 참석해서 ‘대통령님’이라고 불러 드리겠습니다.”

정호준의 대답에 릭 오리하는 다시 한번 기분 좋은 미소를 짓다가 이내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그나저나 모기지 붕괴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습니까?”

“참모진을 구성하셨을 텐데, 그들에게 물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괜한 편견을 심어 드리거나 후보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릴까 염려스럽습니다만.”

“약한 소리는 안 하셨으면 합니다. 누가 나한테 경제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호준 정, 당신을 뽑을 거니까요.”

어떻게든 정호준에게서 답변을 듣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오리하의 말에 정호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곤 입을 열었다.

“모기지 붕괴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입니다. 7월 말부터 본격화됐던 붕괴들이 점점 진정세를 보이는 것 같지만, 그냥 상처가 속에서 곪고 있을 뿐입니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 그리고 모기지 대출업체들의 파산은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겁니다. 아마 후보님이 대선에서 승리한 뒤에야 상황이 진정될 거라 생각합니다.”

양적완화라는 언제가는 파멸을 맞이할 정책을 사용한 뒤에야 진정될 정도로 모기지론의 부실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내게 부탁하고 싶은 거나, 개인적으로 충고해 주고 싶은 건 없습니까?”

“둘 다 있긴 하네요.”

“일단 충고부터 들어 보죠.”

“대통령님께서 공약하신 대로, 명분이 생겼을 때 최대한 빨리 전쟁을 끝내셨으면 합니다. 이라크 전쟁만 마치는 게 아닌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 모두에서 발을 빼야 합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시작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며 승승장구를 이어 갔으나, 전쟁광이라 불리는 네오콘 신보수주의자들의 떠밀림에 의해 현 정권은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이라크에까지 전선을 확대했다.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전통적인 동맹이었던 유럽이 미국에 등을 돌려 독립노선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쟁을 벌인 명분과 의도는 훌륭했으나 결과가 좋지 못했다. 테러는 전쟁 중에도 계속 이어졌고, 경제적 이득도 없는 진흙탕에 빠지게 되었다.

“미국이 승리해 새로운 정부를 세운다 해도 미국은 이방인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언젠가 그 자리를 떠나야 하지 않습니까? 저들이 한국처럼 성공적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민주화를 이어 나갈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국민성이 다릅니다. 대한민국은 원래부터 국민에 의해 지켜지던 나라입니다.”

조선 건국 이후부터의 이야기긴 하나, 정부나 왕이 무능해도 백성들과 위기 속에 나온 영웅의 힘으로 지켜진 나라다.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는 대한민국이 오롯합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오롯할 겁니다. 이건 제가 한국 출신이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국뽕에 취한 게 아니다. 실제로 1회차에서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 미군에 의해 훈련을 받고 무기를 지원받았으나 탈레반에게 패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뒤늦게 후회하고 반군이 활동하나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국민들이 싸워야 할 때와 피 흘려야 할 때 망설이지 않았던 대한민국과는 결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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