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26화 (12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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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수고들 해 주십시오."

"예, 중간중간 진행상황을 보고 올리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해 조용히 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던 조나단 무리스 명예 회장을 제외한 직원들은 정호준의 공치사를 끝으로 하나둘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 늙은이가 보기엔 너무 부담 주는 게 아닌가 싶은데."

회의실을 나가는 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독기와 결의가 가득한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나갔다.

그 표정을 조용히 다 지켜봤기에 나오는 충고였다.

"글쎄요. 결과물을 가져오라고 주는 월급인데, 당연히 잘해야죠."

보드진들이 비장한 표정을 지은 이유는 간단했다.

"Big 4로 불리는 리버풀을 운영해 온 여러분의 협상력과 일처리 솜씨, 기대해 봐도 되겠죠?"

일거리를 잔뜩 쥐여 주고는 솜씨를 보겠다고 뒤로 물러난 신임 구단주가 뱉은 마지막 말이 벼락처럼 그들의 가슴에 꽂혔기 때문이다.

정호준의 중얼거림을 들은 보드진들은 생각했다.

'실패하는 순간 최소 오늘 회의에 참석한 이 중 몇 명은 잘릴 것 같다'라고.

그들이 그런 생각을 품게 된 이유에는 신임 구단주인 정호준이 프리미어리그 우승이나 더블을 기록하지 않는 이상 리파엘 베네테즈 감독과 재계약을 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것이 컸다.

베네테즈 감독은 리버풀 팬들이 염원하던 프리미어리그 우승 혹은 더블이나 트레블 같은 역사에 남을 만한 결과물을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베네테즈가 재계약이 불가능할 만큼 성과를 못 낸 무능한 감독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베네테즈는 그가 리버풀 감독으로 취임한 첫 시즌인 04-05시즌에 꾸역꾸역 결승전에 진출해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리는 기적적인 우승을 일궈 냈고. 이제는 전 시즌이라고 지칭해야 할 05-06시즌에는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FA컵 우승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과 명성이 프리미어리그나 챔피언스리그 우승만큼 값지진 않다지만, 그래도 우승은 우승이었다.

'시즌마다 우승컵 하나는 들어 올려 준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니. 기대치와 기준이 높은 건가? 그렇다면 우리는 완전히 파리목숨이겠군.'

리버풀의 지휘봉을 잡은 뒤로 매년 한 번의 우승은 기록해 주는 감독조차 되도록이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구단주다. 감독조차 더블을 기록하지 못하면 자르겠다는 판국에 연봉도 존재감도 감독보다 못한 그들의 목숨은 얼마나 하찮겠는가?

보드진들이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도 아니면 전임 구단주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건가?'

회사를 인수한 후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사진을 물갈이하는 건 축구구단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인수합병된 회사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베네테즈 감독이 성과를 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임 구단주인 조나단 무리스 시절의 인선이다. 베네테즈가 다음 시즌을 포함 미래에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해도 그 공은 오롯이 정호준의 것이 아닌 조나단 무리스와 나누거나 아예 무리스 가문의 것이 될 확률이 존재했다.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됐을 거라는 둥의 말이 나돌면서 말이다.

수십 년 리버풀과 함께 했던 무리스 가문의 영향력을 줄이고 자신의 색깔로 덧칠하려는 의도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것도 말이 안 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지우고 싶은 존재라면서 명예회장으로 구단에 남긴다? 그것도 지분을 1% 남겨 주면서? 앞뒤가 맞지 않아도 너무 안 맞았다.

결국 정호준의 기대치와 기준이 높다는 전자의 추측으로 의견이 모였다.

'이유야 어쨌건 지금은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다.'

베네테즈 감독이 현대 축구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알고 모르고에서 생겨난 오해였지만 정호준은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이라 근거를 제시하는 게 불가능했고 보드진들은 자세한 이유를 물어볼 수 없어서 오해는 해결되지 못했다.

아무리 서양이 나이 차를 크게 여기지 않고 동양보다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관계가 프리하다지만 그 말이 돈과 생사를 쥔 사장이 어렵지 않다는 말은 아니었기 때문.

* * *

회의를 끝마친 뒤 커피를 들고 얀필드의 가장 뒷좌석에 앉아 경기장을 내려다보는 정호준의 귀에 작게나마 시위 소리가 들렸다.

'리버풀을 인수하긴 했지만 난 아직도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이해가 가지 않네.'

축구선수도 아니면서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인생을 축구에 건 이들이 저렇게 많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었다.

'대체 왜 저렇게 센지 모르겠네.'

자신들을 축구 종가의 나라라 칭하며 특별하다는 듯 여기는 태도가 참 꼴불견이었다.

'브라질이나 독일, 이탈리아가 그러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지.'

월드컵 우승 5회로 최다 우승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브라질이나 브라질을 바짝 뒤쫓으며 월드컵에서 4번 우승하고 유로에서 세 번 우승한 독일, 월드컵 우승 횟수는 독일과 동률이나 유로 우승 횟수에서 1회 쳐지는 이탈리아의 국민들이 시위하는 이들처럼 저렇게 나섰으면 마음에는 안 들더라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영국은 아니었다.

1966년 자국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로 단 한 번도 월드컵을 우승하지 못했고 정호준이 죽기 직전 개최된 유로 대회에서 우승을 이탈리아에게 빼앗겨 유로 우승 횟수는 0회에 해당했다.

쥐뿔도 못하면서 특별하다고 시위하는 꼴은 정호준이 보기에 우습기 그지없었다. 전교로 치면 겨우 상위권에 들어갈 법한 학생이 누군가 자기 답안지를 컷닝한다고 경계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랄까?

물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괜히 홀리건들이 거품 물고 달려들 여지를 만들 필요는 없잖아?'

* * *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정호준과 달리 회의실을 나온 보드진들은 그들만의 회의를 다시 개최했다.

"일단 줄리오 세지르는 당장 올해 데려올 필요는 없다 말했으니 줄리오 세지르는 에이전트를 통해 운만 띄웁시다. 중요한 건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뛰는 윙어 프랭클린 리베리와 AS모나코에서 뛰고 있는 마이튼, 그리고 아스날의 에슐리 콜과 토트넘 유스 루이 케인이오."

사실 보드진은 루이 케인을 데려오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 싶었지만 구단주인 정호준이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한 터라 중요 영입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혹시 영입에 차질이 생기면 구단주가 전화로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달라고 한 것 기억합시다."

구단주와 통화를 나눴음에도 영입에 실패하면 책임을 어느 정도 전가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섞인 얄팍한 수였다. 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면죄부와 비슷할 수단을 쓰는 보드진을 욕할 수는 없다.

먹고 사는 건 어느 곳이든 중요한 문제니까.

* * *

계약기간이 1년 이상 남은 선수를 영입하는 축구구단들은 예외 없이 두 번의 협상을 치러야만 한다.

첫 번째는 구단끼리의 협상. 선수의 몸값에 대한 가격협상으로 최대한 값을 높이려는 자와 값을 깎으려는 자의 대결이 된다. 협상을 통해 몸값이 결정되고 결정된 몸값을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표하면 두 번째 협상으로 넘어가게 된다.

바로 선수 측과의 연봉협상이다. 2000년대 중반은 이미 에이전트 제도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라 첫 번째 협상만큼이나 까다로운 게 바로 이 협상이었다. 막말로 첫 번째 협상이 잘 마무리돼도 선수가 만족하지 못해 팀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면 말짱 꽝이었기 때문.

프랑스 쪽 영입의 경우 첫 번째 협상 두 번째 협상 모두 난항을 겪는 일이 발생했다.

마이튼의 경우 첫 번째 협상에서 문제가 생겼다. AS 모나코의 협상력은 범상치 않았고 마이튼을 원하는 리버풀과 인터밀란을 경쟁시킨 것. 수요의 공급의 법칙에 따라 마이튼을 원하는 팀이 많은 현 상황은 마이튼의 몸값을 부풀렸다.

"1,000만 파운드. 여기가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이오."

결국 리버풀의 에이든 무어 단장은 정호준이 그에게 정해 준 재량권 내에서 지를 수 있는 최대한의 값을 낸 뒤에야 인터밀란을 제칠 수 있었다.

인터밀란이 떨어져 나간 뒤 벌이는 두 번째 협상은 어렵지 않았다. 에이전트의 능력이 그리 월등하지 않은 데다 리그앙보다 더 큰 무대,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하는 프리미어리그의 빅클럽 리버풀의 제안은 성공을 원하는 남미 선수들의 욕망을 모두 총족시켰기 때문이다.

반면 프랭클린 리베리와의 협상은 두 협상 모두 난항이었다.

일단 첫째로 리베리를 팔 생각이 없다고 계속 뒤로 빼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탓에 값이 높아졌다. 리베리의 몸값을 올리기 위한 수작이 아닌 다음 시즌을 위해 판매를 거절하는 거라 특히 힘들었다.

1,500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지불하겠다고 선언한 뒤에야 마르세유는 고개를 끄덕였으니 그 노고가 적지 않았다.

문제는 프랭클린 리베리는 생긴 것과 달리 구단에 충성심을 가진 선수라는 거였다.

자신이 떠난 뒤 마르세유가 그 공백을 쉽사리 메꾸지 못할 걸 예상한 마르세유에 담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결국 에이든 무어 단장이 직접 프랑스에 넘어가는 성의를 보일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내년에도 리베리 선수에게 똑같이 오퍼를 진행할 겁니다. 우리 보드진도 보드진이지만 리버풀을 인수한 새로운 구단주님꼐서 리베리 선수를 높게 평가하고 있거든요."

"리버풀의 구단주님이요?"

"예, 구단주님은 리베리 선수가 최고의 윙어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만하다고 믿고 계십니다. 구단주님이 원하시는 선수이신 만큼 우리 리버풀은 리베리 선수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영입 의사가 단장이 아닌 좀 더 위에서부터 시작된 것임을 확인한 리베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리베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을 눈치챈 에이든 무어는 재빨리 말을 이어 갔다.

"제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어차피 떠날 거라면 하루라도 더 일찍 떠나는 게 마르세유에게도 좋을 겁니다. 유스를 콜업해 키우던, 밖에서 유망주를 데려와 키우던 리베리 선수의 자리를 메꾸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험상궂은 외모의 리베리가 아무 말 없이 심사숙고를 이어 가자 분위기는 급격하게 다운됐다.

"알겠습니다. 리버풀로 이적하죠. 이렇게 마르세유까지 찾아와서 성의를 보여 준 에이든 무어 단장님과 리버풀 구단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리베리가 이적을 받아들인 후에야 2번째 협상이 진행되었다.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윙어 프랭클린 리베리. 1,500만 파운드에 리버풀로 이적!]

1년 뒤 1,700만 파운드에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팀으로 이적해 10년 이상 활약할 선수가 리버풀로 이적했다. 리버풀이 공시한 오피셜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AS 모나코의 라이트백 마이튼. 1,000만 파운드에 리버풀로 이적!]

인터밀란으로 이적한 뒤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로 군림하게 될 마이튼 또한 인터밀란이 아닌 리버풀로 이적했다는 공시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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