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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17화 (11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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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스팬서와의 만남이라는 올해 최중요 일과 중 하나가 무사히 끝났지만 정호준은 자신의 본거지인 시카고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음 일정인 찰스 로슬러, 찰르 로슬러 주니어와의 만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호준이 뉴욕에 온 건 어떻게 알았는지 찰스 로슬러로부터 초대가 왔다.

'따로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안거지? 혹시 사람 붙였나?'

저번처럼 사무실에서 만나는 게 아닌 맨하튼에 위치한 찰스 로슬러의 저택에서 만남을 갖게 되었다.

"어서 오게."

사무실이 아닌 저택으로 초대받았다는 건 그가 아리아의 부친과 조부인 찰스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거다. 하지만 정호준은 그게 딱히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다.

'부담스럽잖아.'

아리아도 없이 찰스들을 대면해야 하는 지금 이 상황이 심히 껄끄러웠다. 물론 아리아가 저번 만남에서 정호준의 편을 들어 줬다거나 나서서 실드를 쳐 주지는 않았지만 부담스러운 미팅에 혼자 나가는 것과 병풍이라도 누군가 옆에 있어 주는 건 체감 정도가 달랐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남자의 자신감은 지갑에서 온다는 말처럼 원유 선물로 체급이 꽤 커진 상태라 재단 이사장 자리를 놓고 벌이는 쟁투에서 밀리고 있는 찰스 로슬러가 처음만큼 거대하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예비 장인과 예비 처조부잖은가? 여자들만 시댁이 부담스러운 건 아니다. 남자들도 처가가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예비 장인과 처조부의 연령대도 정호준에게 불편함을 야기시켰다.

유교적인 사고가 사회 전반에 남아 있는 한국이란 동방예의지국에서 37년을 넘게 살아오며 만들어진 가치관은 그의 조부가 살아계셨으면 비슷한 연령대지 싶을 예비 장인과 80이 넘은 예비 처조부를 어려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가만 앉아서 큰돈을 날릴 뻔한 상황을 막았는데, 못 지낼 게 뭐 있겠나?"

그 사실은 아는지 모르는지 찰스 로슬러는 정호준을 보며 편하게 말을 건넸다.

"잘 지내셨다니 다행입니다."

"2달 만에 찾아와 놓고 다행이라니? 그런 말을 할 거면 얼굴이나 비추고 말하시게."

"죄송합니다. 3월과 4월 이래저래 바빴습니다."

"바쁜 사람인 건 알지만 얼굴 좀 자주 비춰 주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손녀를 데려가 놓고도 그러면 곤란해. 이 노인네가 자네를 만나러 가야겠나?"

찰스 로슬러는 네가 안 오면 자기가 찾아오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찰스 로슬러의 발언에 정호준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포커페이스가 깨질 정도로 말이다.

"농담일세, 그렇게까지 질색할 필요는 없잖나."

정호준의 포커페이스가 깨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찰스 로슬러가 섭섭하다는 듯 말하고는 본론을 이야기했다.

"동양의 방식으로는 감사함을 고개 숙여 표현한다지? 고맙네. 자네가 메이도프에 대해 일러주지 않았다면 수십억 달러를 허공에 날릴 뻔했어."

80이 넘은 처조부와 장인 될 찰스 로슬러 주니어가 동시에 고개를 숙이자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같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 인사는 전했으니 됐고, 그나저나 3월, 4월에 바빴다니, 이번에 원유 선물로 한몫 단단히 잡은 게 자네로군."

오늘 정호준은 당황시키기로 작정했는지 찰스 로슬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훅 들어왔다. 갑작스레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당황했던 터라 냉정을 유지하지 못했고 정호준은 이번에도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

정호준의 표정 변화를 확인한 찰스 로슬러는 역시 범인이 맞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했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정말 노회하기 짝이 없었다.

"상황 판단과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 판을 짜는 능력은 출중한데, 처세술은 아직 좀 더 배워야겠어."

"아직 어리니까요."

찰스 로슬러의 평가에 정호준은 실수는 젊음의 특권이라는 듯한 대답을 내뱉었다. 찰스 로슬러는 정호준의 변명을 한 귀로 흘리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어 갔다.

"원유 선물로 큰돈을 벌었으니 와코르비아 은행만으로 만족할 리 없겠군. 추가로 어느 곳을 노리고 있나? 메이도프 건의 보답으로 나나 주니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도와주겠네."

재단 이사장 자리를 놓고 벌이는 쟁투에서 밀리고 있다 해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미국 금융가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할 힘은 여전히 존재했기에 정호준은 찰스 로슬러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

"인데믹 은행과 워싱턴 레시프로 은행, 크레던스 스위스 은행을 노리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미 실수는 저질렀다. 이제 와 자존심을 챙기기보단 실리를 챙기는 게 맞았다.

"크레던스 스위스 은행을 전부 집어삼킨다는 소리는 아니겠고, 퍼스트 보스턴을 노리는 거군?"

"예. 그렇습니다."

자신을 생각을 꿰뚫는 것 같은 찰스 로슬러에 대한 경계심이 샘솟으면서도 입 아프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건 참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데믹과 레시프로 인수에는 내가 힘을 좀 써 줄 수 있을 것 같군."

찰스 로슬러의 확언에 이번에는 정호준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처조부님의 도움 감사히 받겠습니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지 않아서 좋구먼."

실리는 챙기는 모습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래를 끄덕이던 찰스 로슬러는 다시 한번 정호준이 당황케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말이야. 다음 달이면 아리아의 졸업식인데, 식은 언제쯤 잡을 생각인가?"

혼사를 거론하는 찰스 로슬러의 질문에 정호준은 정신이 혼미해졌으나 심호흡을 해 멘탈을 챙겼다.

"아리아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아직 젊습니다. 좋은 관계로 발전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요. 게다가 보통 약혼한 뒤에 결혼하지 않나요?"

좋은 감정을 갖고 만나고는 있지만 당장 식을 올릴 생각은 없었다. 내년에 있을 일을 위해서도 본인의 감정을 생각해서라도 아직은 아니었다. 정호준은 어떻게든 유예해 보고자 했지만.

찰스 로슬러는 정호준에게 퇴로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거야 당사자들이 어리니까 약혼식을 먼저 올린 거잖나? 아리아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결혼식을 치르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생길 정도로 나이가 어리진 않네. 그리고 아리아나 자네가 대중들처럼 금전적인 염려를 품을 이유도 없고."

"그건 그렇지만."

"설마 자네, 우리 아리아가 자네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본인 또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손녀가 정호준과 비교하면 조금 처진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남의 입으로 듣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에 정호준 황급히 고개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아리아는 아름답고 현명한 과분한 사람입니다."

정호준의 대답에 찰스 로슬러는 답답하다는 듯 밀어붙였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할 이유가 없잖은가. 생각해 보게.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나. 죽기 전에 손녀가 웨딩드레스를 입는 모습을 보고 가고 싶구먼."

실수하며 성장하는 게 젊음의 특권이라면 신파는 노인의 특권이라는 듯 찰스 로슬러는 정호준의 퇴로를 차단하고는 신파까지 벌였다.

"정정하시잖습니까?"

"보기엔 이래도 고장 나지 않은 곳이 없네.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산송장일세."

2017년, 10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앞으로 10년은 더 사실 테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당장이라도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내뱉지 못하고 목구멍 끝에서 말을 삼켰다.

"당장은 모기지에 집중해야 해서 결혼은 무립니다, 식을 올리더라도 2008년 말쯤에 하면 어떨까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정호준이 대답에 찰스 로슬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거 기다리다간 이 늙은이가 먼저 죽겠구먼. 틈은 자기가 만드는 걸세. 결혼한 사람들은 다 시간이 많고 할 일이 없어서 결혼했겠나? 다들 중요하고 바쁜 일상을 살면서 틈틈이 연애하고 결혼하는 걸세."

'당신 안 죽는다니까! 100살까지 장수한다고!!'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은 걸 다시 한 번 꾹 참으며 말했다.

"2007년 8월쯤 식을 올리겠습니다. 이게 제가 양보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찰스 로슬러의 뜻대로 혼례를 올리면 그다음은 손주 닦달이 이어질 걸 알면서도 정호준은 리미트를 제시했다.

* * *

정호준은 찰스들과 저녁 식사 자리를 함께했다. 되도록 함께 먹고 싶지 않았지만 집으로 초대받은지라 어쩔 수 없었다.

실력 있는 쉐프가 최고의 재료로 건강까지 생각해 가며 만든 음식이었으나 식사 자리에서도 시달리는 바람에 맛은 물론이고 코로 먹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모르는 식사 자리를 경험하게 되었다.

어쨌든 그렇게 또 하나의 중요 일과를 마친 정호준은 시카고로 돌아와 곧장 심복인 조나단을 자택으로 따로 불렀다.

"어쩐 일이십니까?"

"갖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조나단이 좀 진행해 줬으면 합니다."

"말씀하시죠. 대표님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십니다."

돈이란 건 결국 사고 싶은 걸 사고, 먹고 싶은 걸 먹기 위해 버는 거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닌 돈을 버는 행위 자체에만 몰두하는 것 같았던 정호준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던 조나단인지라 가지고 싶은 게 생겼다는 말에 기꺼움을 감추지 않았다.

"돈 벌면 구단주가 돼 보는 게 꿈이었습니다."

"구단주는 특별하죠. 남자들의 로망 아니겠습니까?"

"축구 구단(Football team)을 하나 인수하려 합니다. 사실 야구 구단도 갖고 싶은데, 아직 야구 구단을 인수하기에는 시기가 안 좋아서요. 때가 안 됐습니다."

정호준의 말에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을 확인차 물었다.

"설마 해서 묻습니다. 축구(Soccer) 말고 미식 축구(American Football)를 말씀하시는 거죠? NFL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종목이라 돈 좀 쓰셔야 할 겁니다."

"아뇨 아뇨. 축구(Soccer)팀을 말하는 겁니다. 영국의 프로 축구팀 'Liverpool'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여자들이나 하는 공놀이에 굳이 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조나단은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국인들이 축구란 스포츠에 갖는 편견을 스스럼없이 말했다.

"여자들이나 하는 스포츠라뇨!! 축구도 리그에 따라서 거칩니다만?"

"공을 이쁘게 차는 스포츠가 거칠어 봤자 얼마나 거칠겠습니까?"

축구를 좋아하는 한 명의 축덕으로서 정호준은 축구를 변호했지만 그의 변명은 먹혀들지 않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대표님께서 원하시는데 사야죠. 구단 쪽에 인수 의사를 타진하겠습니다."

사족을 붙이기는 했으나 정호준이 시키는 대로 진행하겠다는 조나단의 말에 정호준은 혹시나 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했던 발언과 비슷한 이야기들은 인수협상장에서 드러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아마추업니까? 자존심을 건드리는 게 인수협상을 유리하게 만들면 모를까, 제 생각이 어쨌건 남의 자존심을 건드릴 필요는 없죠."

"설마 해서 말해 봤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잖아요."

미국 마초들이 스포츠에 갖고 있는 이상한 자부심과 편견 때문에 혹시나 했지만 다행히 조나단은 이성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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