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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논 로렌스 메이도프가 월가에서 떠들고 다니는 행동이 찰스 로슬러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를 받은 찰스 로슬러가 입을 열었다.
"괘씸하군."
찰스 로슬러의 심정을 대변하는 데 그 이상의 표현은 필요치 않았다.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가 떠들고 다닌 탓에 계획했던 것보다 소문이 빠르게 퍼졌고 그 덕에 일을 좀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말이다. 결과가 좋았다고 메이도프가 찰스 로슬러에게 적의를 드러낸 사실이 정당화되거나 용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찰스 로슬러의 중얼거림에 찰스 로슬러 주니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걸로 메이도프 투자증권에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해졌습니다. 우리가 회수한 투자금의 규모가 적지 않다지만, 겨우 이 정도로 콧대 높은 버논 메이도프가 찾아와서 매달리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가는 미국 재계 상류층에서 가장 견고하고 영향력이 큰 유대계 커뮤니티에서도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에 거주 중인 유대계 미국인들과 월가를 꿈꾸는 예비 금융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로슬러 재단의 당주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이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쯤 되는 인간이면 수면 밑에 잠들어 있는 로슬러 재단의 자산이 얼마나 거대한지 윤곽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오늘만 사는 인간 같달까요?"
찰튼 로슬러 주니어가 메이도프가 찰스 로슬러를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기뻐할 거라 생각하면 이는 큰 오산이었다. 찰스 로슬러가 정호준이 찰튼 로슬러 주니어의 입김이 닿는 사업체들에 손실을 입혀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던 것처럼, 찰튼 로슬러 주니어 또한 로슬러 재단을 가문의 이름을 그 무엇보다 우선시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일반적인 평범한 가정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렇잖은가, 암만 집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원수처럼 싸워 대도 동생이 밖에 나가서 맞고 오면 누가 내 동생 때렸냐며 열불을 내며 길길이 날뛰는 게 가족이었다.
일반적인 가족이어도 그럴진대 로슬러 가문은 100년 넘게 명맥을 이어 온 명문가였다. 자신의 편에 선 이가 아닌데 경쟁자를 공격하면 경쟁자를 위기로 몰아 줘서 고맙다가 아니라 로슬러의 이름을 무시하고 로슬러라는 이름이 그간 쌓아 온 권력 앞에 도전한 꼴이다.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하니 지금은 놔두는 걸로 하지."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멸의 운명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더 남의 돈으로 호의호식을 이어 갈 수 있게 되었다.
뭐 그래 봐야 파멸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말이다.
* * *
1920년대 미국의 유명 희극배우인 윌 로저스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위대한 발명품은 불, 바퀴, 중앙은행. 이렇게 세 가지라고 말했다. 그가 남긴 말은 세월이 꽤 흐른 197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이란 경제학자가 이를 '경제학원론'에 인용해 다시 한번 세간의 조명을 받게 됐다.
중앙은행이 대체 얼마나 중요하길래 불, 바퀴 다음으로 위대한 발명품이라 부르는 걸까?
중앙은행은 현대 금융경제의 사령탑이자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핵심 기관으로 크게 세 가지 역할을 담당했다.
첫째로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관장했다.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해 적절한 물가 상승률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물가상승률과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및 산출, 개인소득 등 다양한 경제지표들을 밀접하게 모니터링해 적극적으로, 그리고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어려운 말을 잔뜩 늘어놓았는데 쉽게 설명하면 시장에 풀린 돈이 많은지, 적은지를 실시간으로 감시해 기준금리 인상, 인하를 포함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최선책을 찾는 거다.
금융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나라라면 어떤 나라던 간에 중앙은행이 쥐고 있는 힘은 정말 막대했다. 나라의 역량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외부 요인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린스펀의 수수께끼처럼 기준금리로 금리가 통제되지 않는 현상은 드물었다.
둘째로 한 나라의 최후 대부자 역할이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 파산 이후 세계에 들이닥친 경제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적인 위기가 국가에 발발했을 시 시장에 돈을 풀고 의회 동의 없이 부도 위기에 처한 금융 기관에 자금을 내주는 역할이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할인 창구라는 제도가 존재했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도미노처럼 은행들이 연이어 파산했는데 골드만식스와 JB모건스탠리라고 이러한 재난으로부터 자유로울 리 만무했다. 그들 또한 부동산과 서브 프라임을 활용한 상품들을 통해 단물을 쪽쪽 빨아 왔지 않던가. 단물을 빨아먹은 만큼 대가를 치를 때가 찾아온 셈이다.
'그럼에도 리만 브라더스와 달리 두 은행은 살아남았다.'
골드만식스와 JB모건스탠리가 2008년에 망하지 않고 20년에도 명맥을 이어 간 이유가 바로 할인창구라는 제도를 통해 연준에게 자금을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할인창구는 상업은행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골드만식스와 JB모건스탠리는 상업은행을 자회사로 둘 수 있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기까지 했었다.
셋째로 국고 출납을 담당하는 정부 은행 역할이다. 국고 출납이라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 나라의 국채를 발행 매각할 권한과 외환보유고를 통제하는 권한을 가진 은행이란 소리였다.
세부적으로 나뉘면 이외에도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진 곳이 바로 중앙은행이란 기관이었다.
미국은 연준(Fed), 대한민국은 한국은행(BOK), 일본은 일본은행(BOJ) 중국은 중국인민은행(PBC)이란 중앙은행이 매일같이 경제를 관리했다.
중국인민은행은 허베이은행, 베이하이은행, 시베이농업은행을 합쳐 설립한 은행으로 1948년 12월 1일에 창설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소속의 정부 조성부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지방 군벌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를 벤치마킹해 1998년 전국에 존재했던 지점들을 9개로 통폐합해 통제함으로써 개혁개방으로 지방 성장(省长)들이 독자적으로 커 나가는 것을 방지했다.
모든 것이 공산당의 통제하에 흘러갈 수 있도록 군사력, 경찰력(치안력)과 함께 15억 인민을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중국인민은행이 가진 권한은 실로 막강했다.
물가 상승의 정도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며 매일같이 열일하고 있는 중국인민은행 앞으로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이 날아들었다.
- 리만 브라더스를 매각하고 싶다.
갑작스럽게 제안된 이 제안은 중국 공산당의 고위 간부들은 물론이고 중국인민은행을 경영하는 최고 엘리트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충분한 사안이었다.
* * *
크리테리온 오일(CRITERION OIL)을 갈가리 찢긴 로슬러 가문은 가문의 사업이 산산조각난 뒤에야 재산을 은닉하고 숨긴 채로 자금을 운영하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말이다. 그리테리온 오일의 해체를 보며 깨달음을 얻은 건 달리 로슬러 가문만이 아니었다.
로슬러 가문을 보며 교훈을 얻은 가문의 이름은 로건가문. 로슬러가 19세기 미국 산유업계를 집어삼켰다면 로건가는 19세기 미국 금융업계를 집어삼킨 가문이었다.
크리테리온 오일 해체 사건을 통해 정부가 작심하면 정상적으로 운영 중인 기업조차 찢어 버릴 수 있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로건 가문 또한 언제든 로슬러 가문처럼 정부에 의해 날려질 수도 있음을 인지했다.
그때부터 로건가는 로슬러 가문과 마찬가지로 자산을 수면 밑으로 숨기고 수면 밑에서 움직이는 방법을 배웠다.
로슬러 가문과 로건 가문, 그리고 수 세기 전부터 재산을 증식해 온 유럽의 차일로드 가문까지. 세간에 이름이 유명한 가문들은 모두 재산 은닉에 뛰어났지만 세상사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돈을 숨기는 방법이 더 은밀하고 교묘해졌지만 기술을 발전과 비례해 대중의 교육력과 의식수준 또한 성장했다. 로슬러, 로건, 차일로드들의 자산 은닉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과 진실을 감당하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커도 너무 커 버렸다.'
로슬러 가문이나 로건 가문의 자산에 편린을 확인하게 됐을 때는 이미 까발려도 이전처럼 해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몸집을 불린 상태였다.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을 몇 개를 사도 살 자산으로까지 성장하게 된 상태에 더해 그런 자산을 가진 두 가문, 로건과 로슬러 가문이 손을 잡기까지 한 상태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처럼 해체하려고 덤벼들었다간 과장 조금 보태 미국이란 나라가 절단 날 수 있을 정도로 로슬러 가문과 로건 가가 결속한 힘은 강력했다.
'판도라의 상자를 두 번 여는 실수를 할 필요는 없잖소?'
되도록이라는 사족이 붙었지만 미국 정부를 얼마든지 갈아 치울 수 있는 영향력을 가졌으면서 정부의 정책에 반하지 않겠다 말하며 먼저 숙여 줬기에 암암리에 그들을 인정하고 말았다.
흑막 속에 감춰진 두 가문의 진실은 정말 관심이 있어 깊게 파고드는 이들이나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 있는 이들이나 겨우 알게 되는 진실이 되었다.
리만 브라더스 매각 의사는 공산당의 고위 당원들과 중국인민은행의 이사진, 그리고 각성의 성장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만들었고 당사에서는 토론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는 세계에 우리 중화민족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거요."
"인민들에게도 우리가 실행한 개혁개방이 성공적임을 증명하는 일이 되겠지."
"올림픽과 함께 우리 당의 영도가 뛰어남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사건이 되겠군."
"나는 좀 조심스럽소. 미국 4대 은행 중 하나를 선뜻 매각하겠다는 게 꺼림칙하지 않소?"
조심스럽게 반대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3분의 2는 인수에 긍정적이었다.
"그만큼 찰스 로슬러가 궁지에 몰린 걸 수도 있지. 작년에도 일본을 방문해서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한 것 같다고 보고받지 않았소. 손에 쥔 것을 잃고 싶지 않은 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욕심이오."
중국 인민들을 통치하는 중국 공산당 고위직 의원들이나 공산당의 통치 수단 중에서도 군부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권한을 가진 중국인민은행의 이사진들은 대중들은 알지 못하는 로슬러 가문에서 벌어지는 암투에 대해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제 몸에 상처를 입히는 일은 처음 아니오."
"이제 겨우 100년 된 가문이오. 그런 가문에 사례를 찾아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노욕이 든 거지.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오. 어차피 사람이잖소?"
개중에는 은근슬쩍 로슬러 가문과 미국의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다며 까 내리는 의원들도 있었다.
"그래도 뭐, 조심해서 나쁠 것 없잖소. 일단 좀 더 상황을 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