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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96화 (9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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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대화는 봉사라는 목적의 자선행사가 무사히 끝낸 뒤 식사를 함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정호준과 아리아 록펠러, 그리고 오리하와 뜻을 함께하는 정치적 동반자인 하원 의원 몇몇이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하원 의원들과 담소를 나누던 오리하는 식사가 나온 뒤에야 처음으로 정호준과 아리아 록펠러를 신경써 줬다.

- 고생 많이 했네. 어떻게, 음식은 입맛에 맞나?

- 고생이라뇨. 저보다는 오리하 의원님꼐서 더 고생하셨죠. 그리고 음식은 누가 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맛있네요.

사실 정호준의 입맛에는 호텔 셰프가 한 음식이 더 맞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고이 접어 가슴속에 삼켰다. 오후 4시를 기점으로 미쉘 오리하가 자선행사장에서 모습을 감췄다는 것쯤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한 음식인데 셰프의 음식이 더 맛있다고 말하겠나. 사회 초년생을 데려다 놔도 정호준이랑 똑같은 대답을 하리라.

정호준의 대답에 오리하는 자부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 전에 말했지? 내 아내가 새우 링귀니를 기가 막히게 한다고.

미셸 오리하가 만든 새우 오리하를 개인당 한 접시씩 가져다준 것과 다르게 바비큐는 조리하는 사람에게 가서 직접 가져다 먹어야 했다.

슥! 슥! 슥!

바비큐를 조리하는 이가 톱날 같은 칼로 커팅해준 고기를 접시에 받아온 정호준은 포크를 하나 더 달라고 요청하고는 가져다준 포크를 활용해 가져온 바비큐 고기를 먹기 좋게 잘랐다.

먹기 좋게 자른 고기가 담긴 접시를 아리아 록펠러에게 밀었다.

- 이거 맛있네요. 좀 먹어봐요.

한국에서 연애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적이 있는 남자라면 누구나 해줄 배려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한국인이었기에 당연시 여기는 거였다.

큰 의미가 없는 친절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 이거 정대표가 생각보다 레이디를 잘 배려하는군.

누가 정치인 아니랄까 봐 그 모습을 지켜본 오리하가 능구렁이 같이 웃으며 정호준을 놀렸다.

- 그런가요? 한국 남자라면 다들 이 정도 배려는 합니다.

아리아와 엮으려는 장난기 가득한 오리하의 발언에 정호준은 자신이 특별한 게 아니라 다들 이렇게 한다고 말하며 장난이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했다.

*****

식사를 시작 나오기 전까지 오리하가 정호준과 아리아를 놔두고 하원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리아 록펠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정호준은 귀를 기울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퇴역병을 위한 사업이라. 이거 오리하를 도와줄 일이 생겼네.'

로비, 한국어로 번역하면 응접실과 같은 공간이나 청탁이라는 뜻이 존재하는 단어다.

세계에서 로비가 가장 활성화된 나라가 어디냐 묻는다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대답하리라.

'미국'이라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을 가진 패권국 미국이란 나라는 로비라는 활동을 불법이 아닌 합법으로 간주했다. 로비를 합법으로 인정하는 미국 정부의 정책 때문에 미국에는 로비를 업으로 삼는 로비스트들이 다수 존재했다.

'있어 보이는 표현이고 양지에 있으니까 로비스트지. 불법이 관여되면 브로커랑 다를 게 없는 게 로비스트니까.'

공식적으로 정부에 등록된 로비스트만 1만 명이 넘었으니 비공식적으로는 대체 얼마가 있을지 추산하는 것도 일이리라.

어쨌든 청탁이란 뜻이 존재하는 로비란 행위가 미국에서 합법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주의해야 할 게 있었다. 바로 로비가 합법이란 거지 뇌물을 주는 게 합법이란 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금품 청탁', 다른 말로는 뇌물 공여는 불법이었다.

정호준이 30억에 달하는 가치를 지닌 무기명 국채를 미국의 정보기관 국장들에게 넘겨줄 때 무언가를 요구하진 않았지만 그 또한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

헷갈려선 곤란하다.

'물론 안 걸리면 장땡이긴 하지만.'

걸려도 본인이 덜미를 잡힐 일은 없었다.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자금을 몇 바퀴나 돌리며 세탁했고, 추적이 힘든 무기명 국채를 구입해서 줬으니까.

힘을 가진 이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며 청탁하는 게 뇌물이 불법이면 대체 무엇으로 로비를 하는가?

답은 간단했다. 본인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게 아닌 그 정치인의 정책 또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돈을 붓는 거다. 본인이 정치적인 업적을 세울 수 있게 도와준 것을 기억한 상원 의원, 혹은 주지사들은 훗날 받은 만큼 보답을 하게 되는 그런 구조였다.

'물질만능주의 사고방식이 만연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시스템도 그렇고 참 대단한 나라야.'

미국은 미국으로 이민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창출해낸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자국의 생각을 알리고 이득을 챙기기 위해 로비하는 걸로 또 한 번 국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해낸다.

다른 나라들은 자국의 예산을 풀어 일자리를 창출할 때 타국의 남의 돈을 가지고도 자국민의 일자리를 창출해내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시스템이란 말인가.

'미국이 세계 제일의 패권국이라 그런 거겠지?'

세계 최고 강대국이라는 타이틀이 타국이 미국 정계에 찾아와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돈을 뿌리게 만드는 거겠지만 그들이 로비에 돈을 뿌리는 이유야 어찌 되었든 미국 정부가 남의 돈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펙트였고 부러워해야 할 점이었다.

'한국도 일본도 그리고 중국도 매년 로비로 조 단위의 돈을 쏟아붓는다고 했지?'

미국 정계에 로비자금을 뿌리는 1, 2, 3위가 동아시아 삼국인 한중일이라는 게 좀 가슴 아팠고 중국이 여기 껴 있는 게 의외이긴 했지만.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능력과 인맥이 충만한 로비스트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 법망을 회피하며 어떻게든 로비 대상자가 경제적인 이득까지 갖게 만들지만, 정호준은 비싼 값을 들여 로비스트까지 고용해가며 오리하에게 돈을 쥐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잘 보일 필요는 없지.'

불법에 발을 걸쳐 뇌물까지 지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호준이 오리하에게 원하는 건 황인이라고 괜히 표적이 되는 일이 없게 도와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헤어지기 전에 퇴역병 정책 사업을 돕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걸로 충분했다.

*****

식사를 마치고 과일과 후식 등을 먹으며 담소를 계속 나누다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정호준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확인한 오리하가 정호준을 보며 말했다.

- 정대표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군.

정치인, 법조인으로서 생활하다 보니 릭 오리하의 눈치는 굉장히 빨랐다. 운을 떼는 릭 오리하의 말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여 순순히 인정하며 입을 열었다.

- 예, 있습니다.

- 그렇군.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 아닙니다. 국정과 관련된 일이 먼저죠.

사죄를 청하는 오리하의 발언에 정호준은 괜찮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 그래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단도직입적 오리하의 질문에 정호준은 작게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 조금 전에 하원 의원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퇴역병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문제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자네가?

- 예, 퇴역병 처우를 위한 자선파티를 개최하시면 제가 작게나마 힘을 보태겠습니다.

딱! 딱!

- 흐으음.

정호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릭 오리하는 침음성을 삼키며 식탁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정호준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고 말이다. 정호준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건 릭 오리하만이 아니었다.

릭 오리하의 아내인 미쉘 오리하와 아리아 록펠러 또한 정호준을 똑바로 쳐다봤다.

-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 미국인이 미국을 지켜준 퇴역병들의 처우를 신경 쓰는 게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입니까?

- 자네의 진심을 듣고 싶네.

방향을 회피하는 대답으로 응수하는 정호준의 대답에 릭 오리하는 정호준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다시 한번 물었다.

- 겉으로는 자유를 외치고 인종차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움직이는 기득권 세력은 백인이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겉으로라도 그렇게 꾸준하게 노력하는 게 분명 올바른 방향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백인 기득권 세력이 이 나라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펙트였다.

- JHJ Capital의 명성이 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커졌습니다. 유색인종인 제가 큰돈을 벌며 승승장구해 나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이들은 분명 있을 겁니다. 그들이 직접 움직이기 전에 선의를 베풀어 덕을 쌓으려고 합니다. 마침 의원님께서 퇴역병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움직이시니, 제게도 더할 나위 없는 기회죠.

한국에서 군 생활을 한 1회차 때 정호준은 미군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군인을 영웅시하고 마지막 전사자 한 명까지 미국의 국토에 묻히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참 와닿았다.

군가산점을 주는 것도 부러운 일면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밝은 면만 본 거지.'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미군의 밝은 행보만 봐왔던 1회차 때와 달리 지금은 어두운 부분도 상당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이 군인을 영웅시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자선사업을 해야 한다면 군인들을 위한 일을 진행하는 게 여러모로 좋으리라. 진실 속에 또 다른 진실을 숨기며 정호준은 그렇게 릭 오리하의 물음에 답했다.

*****

며칠 뒤에 다시 만나 좀 더 심도 있게 이야기를 진행하자는 릭 오리하와의 말을 끝으로 만남이 파해졌다.

아리아 록펠러는 처음 자선행사에 참석했을 때처럼 정호준의 차에 탔다.

부르릉!

차에 시동을 거는 정호준을 보며 아리아 록펠러는 조용하게 물었다.

- 정은 릭 오리하를 높게 평가하나 봐요?

조금 전 릭 오리하와 나눈 대화는 논리적이고 이치에도 맞았지만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

굳이 릭 오리하가 주도하는 사업에 돈을 기부할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정호준이 퇴역병들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정호준 본인이 직접 재단을 만들어서 운영해도 되고, 아예 연방정부와 발을 맞춰도 될 일이다.

릭 오리하를 통해서 퇴역병들을 지원한다는 건 릭 오리하를 지지하고 밀어준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정치 경력이 길지는 않다지만 릭 오리하도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으리라.

- 예, 저는 릭 오리하를 높게 평가합니다. 상원 의원에서 끝날 사람은 아닌 것 같거든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아리아 록펠러의 시선을 확인한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적당히 둘러댈까도 고민했지만 함께 와준 것도 있고 하니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 어디까지 갈 것 같은데요?

- 글쎄요. 그건 하늘만이 알겠죠?

물론 전부를 이야기해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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