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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95화 (9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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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터진 일본과 지근거리에 위치한 한국과 중국. 그리고 JHJ Capital의 법인 설립지인 미국 사회에 이번 제트컴 사태와 관련된 정보들이 뉴스로 방영되었다.

[미즈에 증권의 주문 실수에 가장 큰 이득을 본 금융회사]

그렇게 1차로 뉴스가 방영되자 미국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영어권 국가들과 비영어권 국가지만 금융 선진국이라 불리는 독일, 프랑스 등에도 정보가 퍼졌다. 그리고 크렘린이 정호준 개인에게 관심을 가진 탓에 러시아에도 JHJ Capital이 이번 제트컴 사태로 1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낸 사실이 러시아 상류층에 퍼졌다.

러시아나 프랑스, 독일과 같은 비영어권 국가에는 주로 금융권에서 일하는 이들과 상당한 자산을 모은 중상류층들에게만 퍼졌다. 자산가라 분류되며 거금을 투자할 여력이 있고 사회를 움직일 힘이 있는 중상류층들이 정호준에 관해 알게 됐다는 건 사실 모두가 알게 됐다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건 선진국 반열에 포함되는 나라들의 유력자들은 JHJ Capital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강대국의 유력자들에게 제 이름 석 자와 법인명을 각인시킨 정호준은 기말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탓에 미국으로 돌아와 공부하느라 바빴다.

이미 억만장자인지라(billionaire) 다른 학생들처럼 좋은 학점을 받아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는 동기 부여나 간절함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닥을 깔아줄 생각은 없었다.

'졸업까지 안 가고 중퇴를 하더라도 중퇴는 중퇴고 성적은 성적이다.'

취직을 떠나 시험에서 안 좋은 결과를 받는 결과는 개인적으로 정호준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정, 시험은 잘 봤어요?

- 아뇨, 망친 것 같아요.

새로운 법인을 창업하고, 펀드를 설립하고, 광산 매각을 신경 쓰고 제트컴 사태를 준비하느라 이래저래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정말로 시험이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자넷은 시험을 잘 못 치렀다고 대꾸하는 정호준의 말을 믿지 않았다.

- 망했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정말 시험 못 본 사람은 없던데.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 사람치고 못 봤다고 엄살 부리는 이들 중 정말로 못 본 이들이 드물기 때문. 그냥 예의상 하는 겸양으로 받아들였다.

- 정말이에요. 진짜 못 봤어요.

정호준이 머리가 좋고 공부 머리가 있는 것도 맞았지만 그가 다니는 학교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문 시카고 대학교였다. 시카고 대학교에서도 정말 특출남이 드러날 정도로 정호준이 뛰어난 건 아니다. 학부생들 또한 정호준과 비슷한 수준은 됐기에 다른 일을 하느라 바쁜 정호준은 시험 성적이 좋을 수가 없었다.

정호준의 표정이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자넷은 정말 정호준이 기말고사를 망쳤다는 것을 확인했다.

- 뭘 그렇게 실망한 표정을 하고 있어요? 사실 정이 시험까지 잘 보는 게 더 인간미가 없는 거예요. 고용주인 정이 다른 친구들을 위해 바닥을 깔아주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남들은 평생을 벌어도 못 벌 돈을 며칠 전에 벌어 놓고 시험까지 잘 보는 게 이상한 거다. 자넷은 시험을 못 봤다고 인상을 찡그리며 사무실 분위기를 다운시키는 정호준을 위로하는 걸로 숨 막혔던 사무실 분위기를 살렸다.

*****

기말고사가 끝나고 조금은 숨을 돌릴 법도 했건만 정호준의 분주함은 이제 시작이었다.

정호준은 지금껏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핑계로 정말 거물급 인사가 주최한 파티가 아니고서는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초대장은 빈번하게 왔지만 직접 연락해 다음을 기약하며 사죄하는 걸로 파티 참석을 미뤄왔다.

'이제는 그 핑계도 안 먹힌다는 거지.'

알 사람만 알았을 당시에도 정호준의 앞으로 발송되었던 초대장의 수가 상당했었다. 정호준이 일본에서 10억 달러 이상 벌었다는 사실이 퍼진 지금은 정호준의 앞으로 온 초대장의 개수를 세는 게 힘들 정도로 많아졌다.

문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거의 태반이 어중이떠중이가 보낸 초대장이라는 거였다.

그냥 무시하자니 언제 돈벼락을 맞고 클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신경 써서 관리하기에는 정호준의 몸은 하나고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 조나단, 자넷. 그쪽을 부탁합니다.

그래서 고른 방법이 바로 대리인을 보내는 거였다. 정말 격이 떨어진다 싶은 이들의 것은 아예 비서실을 시켜 감사와 사죄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결정했고, 거물은 아니지만 인맥 관리차 신경 써야겠다 싶은 이들은 조나단과 자넷을 보냈다.

정말 신경 쓸 필요가 있는 거물들에 한해 정호준이 움직였다.

파티에 참석해서 인맥 관리를 신경 쓰랴 새롭게 유령법인 만드는 작업의 진행 정도를 물으랴 바쁜 삶을 이어가고 있던 정호준에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만남이 찾아왔다.

-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다음 대선에서 백악관의 주인이 될 남자. 릭 오리하와의 만남이었다.

연구비를 지원하며 친분을 쌓은 전공 교수의 주선 하에 릭 오리하와 친분이 깊은 로스쿨 교수를 만났고, 다시 그 교수를 통해 릭 오리하와 접점을 만들어 약속을 잡게 되었다.

'미팅 잘 마쳐서 좋은 인상 심어주자.'

이 시기 릭 오리하는 상원 의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저평가할 인물은 아니었지만 현재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그가 백악관의 주인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미리 잘 보여서 나쁠 게 없는 사람이었다.

*****

1회차 때 오리하가 새우 링귀니란 음식을 좋아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기에 정호준은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파스타 집에서 만남을 갖게 되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릭 오리하입니다.

-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오리하 의원님. 호준 정입니다. 작은 금융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호감 가는 인상, 변호사답게 듣기 좋은 화법. 릭 오리하와의 만남은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 사회적 취약층들과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시는 의원님 행보를 존경합니다.

- 존경씩이나요? 저야말로 젊은 나이에 큰 자산가가 될 수 있는 정대표님의 능력이 존경스럽습니다.

정호준이 그를 띄워주는 만큼 릭 오리하도 정호준을 띄워주었기에 서로의 얼굴에 금칠하는 시간이 꽤 길게 이어졌다.

- 씹는 맛이 있도록 면을 익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2시간 식당 전체를 대관하고 직접 새우 링귀니를 조리해달라고 요청했기에 새우 링귀니와 하와이풍 음식들이 하나둘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정말 내게 관심이 있긴 한 거 같네.'

자신이 선호하는 음식들이 상 위에 올라오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한 릭 오리하는 정호준이 조금 전까지 말했던 말들이 영 없는 말들을 지어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오리하는 정호준이 자신에 대해 꿰고 있다고 불편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달가웠다,

- 드시지요. 셰프가 꽤 유명하더라고요. 예약하는 것도 일일 정도로.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무관심보다는 악플이 낫다는데 자신의 정치 성향에 호감을 품고 관심을 이어가는 이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배려하고 신경 써주는 느낌을 받았기에 작게나마 호감을 품게 되었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난 것도 아니고 당장 릭 오리하에게 원하는 것이 없는 정호준의 입장에서는 딱히 목적을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당신이 훗날 대선에 나갈 거고 그래서 미리 줄을 서는 거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첫 만남은 그저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탐색하는 시간만 갖고 끝났다. 다만 정호준이 호감을 쌓기 위해 노력했던 게 헛되지는 않았나 보다.

-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제 아내가 요리해주는 새우 링귀니를 먹는 것 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1월 초에 개인적으로 자선행사를 개최합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시겠습니까?

릭 오리하로부터 그가 주최하는 자선 파티에 참석해달라는 요청까지 받게 되었으니.

- 물론입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야 바라던 바지.'

접점을 늘려가는 것.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요소였다.

*****

정호준은 종종 거물 정치인이 개최하는 파티에 참석해 친분을 쌓았던 두 상속녀에게 셋이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문자를 남겼는데 라디아 히스트는 일정이 맞지 않았다.

'타이밍이 안 맞았네.'

잡지 모델로 활동하는 라디아 히스트는 촬영 일정이 잡혀 있었다. 정호준과 마찬가지로(?) 아직 학업을 마치지 않았기에 학업에 집중하는 중이었던 아리아 록펠러는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아리아 록펠러와 단둘이 가게 되었다.

- 와 줘서 고마워요 정대표. 여기는 내 아내, 미쉘 오리하입니다.

- 미쉘 오리하입니다. 남편에게 말씀 많이 전해 들었어요, 참 어울리는 한 쌍이네요.

릭 오리하가 개최하는 자선행사가 취약 계층 아이들에게 학용품과 같은 물품들을 지급하고 점심 저녁을 배불리 먹이며 공부를 가르쳐 주는 등의 방향으로 진행될 걸 알고 있었기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본판이 워낙 예쁘기에 아리아 록펠러는 빛이 났다.

아침부터 아이들을 돌보며 고생하다 식사 당번까지 끝낸 뒤에야 밥 먹을 시간이 난 정호준은 아리아 록펠러와 함께 뒤늦은 점심을 먹었다.

- 이런 자리 불편하지 않아요?

봉사활동이란 게 남을 돕는 것에 마음의 충만함을 얻는다면야 더 바랄 게 없는 행동이었지만 신체적으로는 고되기 마련이다.

미안함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정호준의 얼굴을 보며 정호준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한 아리아 록펠러는 짓꿎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 혹시 내가 물 한번 안 묻혀 봤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 ...

정호준은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는 웬만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가 질문했을 때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 사람은 거짓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구나.'

- 좋은 옷 입고, 좋은 거 먹고, 좋은 교육을 받은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지금껏 자라면서 이런 자선행사 많이 다녔어요. 이 정도는 힘든 축에도 속하지 않아요. 정이야 말로 피곤해 보이는데, 이런 자리 몇 번 참석 안 한 거 아니에요?

정호준은 모르는 1회 차 때의 이야기지만 아리아 록펠러는 브라질에 머물면서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해 교사로 일한 경력도 있을 정도로 자선행사를 많이 다닌 여성이었다.

그러한 면을 알지 못했기에 곱게 자란 여성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품었다.

- 얼굴에 다 드러나나요? 부끄럽네요.

아이들은 감정에 민감하다. 이런 봉사활동을 하면서 힘든 티를 내는 건 여러모로 실례되는 일이었기에 정호준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했다.

- 그렇게 티가 많이 나지는 않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신경 쓰기 시작하면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법이에요.

서로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된 하루가 되었다.

점심을 먹은 후로는 자선행사에 참석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식사를 먹인 후에야 어른들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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