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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조트 어디?
추궁하는 듯한 질문에 정호준은 말을 돌렸다.
- 그건, 알아서 뭐 하려고요. 누나 바쁘지 않아요? CF랑 화보 찍느라 시간 없을 거 같은데?
드라마 찍을 때도 바쁘지만 배우들이 정말 바쁜 시기는 드라마 방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혹은 끝났을 때다. 배우들은 드라마를 통해 높아진 인지도를 활용해 CF나 화보를 찍고 중국으로 행사 투어를 다녀오곤 한다.
물론 위와 같은 행보를 밟기 위해선 드라마 시청률이 잘 나온 채로 끝나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했지만 말이다.
김은주가 주연으로 나왔던 드라마는 시청률 30%를 넘기며 전제조건을 충족시켰다. 2005년에 대박 작품들이 줄줄이 나와서 빛이 바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시청률 30%면 분명 큰 성공을 가뒀다고 평가해도 모자람이 없을 성적이었다.
- 그렇잖아도 다음 주부터 중국행사 줄줄이 잡혔어. 그러니까 빨리 어디 있는지 말해줘. 너도 다음 주쯤 다시 미국으로 들어간다며? 그럼 이번 주 주말밖에 만날 시간이 없잖아.
- 누나가 여기 와서 뭐 하겠다고요? 내 친구랑 친한 것도 아니면서. 누나가 여기 와 봐야 분위기 어색해져요.
정호준의 말에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박기태는 돌아가는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듯, 전화기 넘어 김은주에게도 들릴 정도로 아주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냐! 오시라 그래! 김은주란 이름에 최근 방영 끝난 드라마면 '프라하식 연애.'의 김은주 배우잖아. 톱스타께서 이 비루한 곳(?)까지 행차해주시겠다는 데, 나야 완전 땡큐지!!"
박기태는 행차라는 단어까지 사용해가며 만남을 미루려던 정호준의 의도를 와장창 깨부쉈다.
'하아~, 얘는 전방에 배치돼 군 생활하면서, 무슨 드라마가 종영된 것까지 꿰고 있어? 군대에서 TV만 보나?'
세간에서 전방이 훈련이나 군기가 더 강하게 요구된다 생각하는 것처럼 정호준도 그렇게 생각했다.
세간의 편견처럼 전방에 배치되면 신체나 정신적으로 힘든 게 많다.
하지만 단점만 존재하는 인간이 없듯 세상일이란 것도 그랬다.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는 경우는 드물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만큼 먹을 것(컵라면)과 부식(간식)이 매일같이 지급되었고, 좋은 게 있거나 새롭게 도입하는 장병복지는 언제나 전방부터 보급되어 후방으로 내려오게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전방부대에 소속된 박기태는 그 덕을 톡톡히 봤다.
모든 생활관에 케이블이 도입된 건 아니지만 몇몇 생활관에 케이블이 배치됐고 운 좋게도 박기태의 생활관은 케이블이 설치된 생활관이었다. 동기끼리 사는 게 아닌 선임들과 함꼐 지내느라 자기 맘대로 채널을 선택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러한 사실은 알지 못했지만 어쟀건 정호준은 박기태의 훼방에 눈에 힘을 주며 박기태를 노려봤다. 그 입 다물라는 무언의 압박이 담긴 시선이었다.
하지만.
'제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간절한 시선으로 두 손을 모은 채 '제발'을 중얼거리며 슬며시 검지를 드는 박기태를 보니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조금 전 지분양도 계약서를 받았을 때 지었던 껄끄러움과 근심이 섞인 표정은 이미 옛일이 된 듯하다.
- 네 친구가 와도 된다고 했잖아? 어디야?
'그래, 이 새X가 껄끄러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이대로 잊어버리게만 해도, 은주 누나가 날 도와주는 거네.'
낙장불입(落張不入)으로 이미 물릴 수 없다지만 박기태가 정말 받고 싶지 않다며 본인의 전 재산을 사용해 세금을 내고 정호준에게 양도하겠다고 움직이면 곤란해지는 건 정호준이었다.
- 하아, 여기 춘천…… 예요. 정말 올 거예요?
- 준비하고 곧장 갈게.
뭔가 피곤해지게 생겼다는 생각을 하며 정호준은 전화를 끊었다.
*****
전화를 끊은 뒤 곧장 피곤함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김은주와 알게 됐는지 묻는 박기태의 물음에 정호준은 있는 그대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박기태가 유쾌하고 말 많고 가벼운 성향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할 말 못 할 말 구분 없이 다 뱉을 정도로 생각이 없는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괜히 남들한테 말하고 다니면 안 되는 거 알지?"
"당연하지, 내가 바보냐. 나 이래 봬도 중대생이라고."
"눈치 없는 거랑 학력은 별개의 문제니까 그렇지. 그리고 난 서울대 중퇴에 시카고 대학 학부생이다. 어디서 학력 자랑이야?"
오랜만에 만난 절친 때문인지 유치한 말이 필터링 없이 나왔다.
"그나저나 아버지 영화에 네가 투자도 해줬다며. 정말 이래저래 빚만 늘어나는 느낌이다."
정호준도 그랬지만 박기태도 이유 없는 공짜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친한 사이라면 더더욱 '이유 없는 공짜는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그와 박기태는 1회차를 지냈다.
김은주는 정말 직접 차를 몰고 춘천까지 당도했다.
"오랜만에 보네요. 차 안 막혔어요?"
찌릿!
정호준의 안부 인사에도 김은주는 대답 대신 눈총을 주었다. 박기태가 중간에 끼어들어 정호준의 명분을 없애주지 않았다면 이 만남도 성사되지 못했으리라. 자꾸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만남을 미루려고 했던 정호준의 태가 괴씸했기에 주는 눈총이었다.
다만 그렇게 정호준을 쏘아보다 손목에 그녀가 선물로 준 시계를 차고 있는 것을 발견한 뒤로 조금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정호준을 쏘아보던 김은주의 시선이 박기태에게로 향했다. 김은주의 시선을 인지하자마자 박기태는 웃으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기태라고 합니다. 호준이랑은 면회까지 와줄 정도로 절친이죠."
자신을 소개하는 박기태의 설명에 정호준이 한 마디 덧붙였다.
"박남정 감독님 알죠? 박남정 감독님이 이 친구 아버지세요."
정호준의 부연설명에 김은주의 눈동자에 잠깐이지만 이채가 서렸다 사라졌다.
"배우 김은주예요. 어쩌다 보니 호준이랑 말을 편히 하는 사이가 됐어요."
"말 편히 하세요. 호준이한테 누나면 저한테도 누나죠."
LA 여행 갔을 때 마리아 실바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아니 그보다도 더 절실하고 관심받기 위해 노력하는 박기태를 보며 정호준은 몰래 눈시울을 붉혔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니까.'
치마만 두르면 할머니여도 눈이 돌아가는 게 바로 군대라지 않나. 물론 군대에 입대했다고 남자들이 그 정도로 눈깔이 삐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남자들만 있는 곳에 갇혀 지내야 하니 이성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성적인 관계를 바라는 게 아닌 그냥 여성의 관심,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즐거웠다.
플라토닉적인 관념으로라도 말이다.
김은주가 리조트로 온 뒤로 술자리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김은주로부터 연예계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박기태가 주도하고 정호준과 김은주는 주로 들었다.
박기태의 이야기 3분의 2가 군대 이야기였다는 게 좀 흠이랄까?
여자들이 '축구 이야기', '군대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말을 떠올리면 박기태의 행위는 무덤을 파서 들어가는 것과 같은 행위였지만.
술이 들어간 탓인지 아니면 감정을 쏟아낼 때가 필요해서인지 박기태는 자신의 답답함을 토로했다.
*****
리조트에는 방도 많았고 화장실도 두 개나 있었기에 그녀가 머무르는데 지장이 없었다.
김은주는 점심을 함께 먹은 뒤 월요일 중국으로 가야 할 일정을 생각해 떠났다.
자기가 술 먹고 군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는 사실에 박기태가 얼굴을 붉히긴 했지만 철판을 깔고 김은주가 떠나기 전까지 모른 척 대화를 리드했고, 김은주도 딱히 군대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꼬집지 않았다.
"누나 사진 한 번만 찍어주실 수 있어요? 그 사인도 15개만 해주세요."
점심을 먹고 떠나려 하는 김은주를 붙잡고 박기태가 처음으로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사인이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한데?"
"선임이랑 간부, 장교들한테 주려고요. 다들 누나 팬이거든요."
박남정을 위해서도 정호준을 위해서도, 그리고 박기태에게 나쁜 느낌을 일절 받지 않았던 터라 김은주는 흔쾌히 박기태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역시 잘하고 있네.'
사제담배와 더불어 선임과 간부 장교들을 위한 선물까지 준비하려는 박기태를 보며 1회 차 때보다 더 힘든 군 생활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정호준이 생각했던 것처럼 박기태가 군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
박남정은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춰 리조트를 방문했다. 정호준은 박남정과 함께 군부대 앞까지 마중 나가 차 안에서 박기태를 보냈다.
박기태를 군부대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박남정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울로 돌아온 정호준은 다음 날인 월요일. 12월 5일에 구인사이트에 구인광고를 냈다.
정호준은 일본어 능력자들에게 고액 시급을 지급하는 단기 알바를 30명 모집했다.
수요일, 목요일. 단 이틀 고용하는 대가로 지급하기로 약속한 돈은 50만 원.
단 이틀 일하는 일당으로 지급하는 액수가 커서인지 이력서가 줄을 이었다.
이력서를 제출한 이들 중에는 구직 중인 학생을 포함 이직을 위해 잠깐 쉬는 이들까지 다양했다.
정호준이 이렇게 사람을 구하는 건 제트컴 사태를 위해 하나라도 더 많은 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제트컴 쇼크'라 불리는 팻핑거로 유발된 사건은 미즈에 증권의 한 트레이더가 제트컴 주식을 '1주 61만엔'이라고 입력해야 하는 주문사항을 '61만주 1엔'으로 잘못 입력해 벌어진 실태였다.
1엔은 당시 거래 하한가인 59만엔에 못 미치는 금액이기 때문에 [매도가가 하한가보다 낮습니다]와 같은 경고창이 떴지만 주문을 입력했던 직원은 이 경고창을 무시하고 그대로 매도를 진행했다.
당사자는 훗날 '가끔씩 오류로 경고창이 뜨는 일이 있곤 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다.'라고 증언했다.
주문 실수가 발생한 지 약 2분 뒤 미즈에증권 측에서는 착오를 발견하고 뒤늦게 주문을 취소하려 했지만, 하필 그때 도쿄증권거래소 전산망에 오류가 발생하는 바람에 주문 취소마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미즈에 증권 측은 총 3회에 걸쳐 주문 취소를 시도했으나 도쿄증권거래소 호스트 컴퓨터가 프로그램 내 버그로 인해 주문 취소 명령을 인식하지 못해 주문 취소에 실패했고, 증권거래소와 직접 연결된 시스템을 이용해 주문을 취소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에 미즈에 증권은 도쿄증권거래소에 직접 전화로 연락해서 주문 취소를 의뢰했으나, 증권거래소 측에서는 미즈에 증권이 책임질 일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실수한 것은 어디까지나 미즈에 증권이기도 했거니와 책임지는 게 자신만 아니면 된다는 관료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일 처리 속도가 느긋한 일본 특유의 직장문화 때문에 벌어진 거절이었다.
결국 16분 동안이나 잘못 발행된 주식이 거래되었고 이는 미즈에 증권의 수천억 손실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에 한탕 빼먹자.'
증권가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한국 사정도 전부는 모르면서 어떻게 이런 사건을 알게 됐냐 묻는다면.
정호준은 이렇게 대답하리라. '제트컴남이라고 불리는 BNO 덕분이다.'라고.
2010년도쯤 시작된 사건사고 및 특별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를 종종 시텅한 정호준은 자수성가한 사람을 소개할 때 BNO와 제트컴 사태를 알게 되었다.
'대단한 사람이지.'
BNO는 일본의 전업투자자로 아르바이트 비용과 용돈을 모아 만든 160만엔을 기초 자본금으로 시작해서 기하급수로 몸집을 불려 슈퍼 개미가 되었다.
시간이 더 흐른 2013년에 이르러서는 자금이 너무 커져 공격적인 투자가 불가능해져 지금껏 해 왔던 공격적인 투자를 포기하고 일반 장기투자자처럼 장기적으로 관망을 보며 주식을 투자하고 부동산으로도 자금을 투자했다.
그런데 그런 이 선택 또한 일본의 총리인 아베가 미는 '아베노믹스' 정책 흐름에 올라탄 선택이 되었다. 2010년대 중후반에는 수천억 아니 환산이 어려울 정도로 수조 원의 재산을 소유하며 슈퍼 개미라고 불릴 수도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개인투자자로 거대한 성공을 이룩해낸 일본 투자업계의 전설이었다.
BNO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나 남의 성공을 시기하며 깎아내리려 하는 이들은 BNO를 2005년 제트컴 사태 덕분에 벼락부자가 되었다고 깎아내리곤 하지만 제트컴 사태로 하루만에 300억 이상을 벌기 1년 전인 2004년에 그의 재산은 이미 11억 5천만 엔(115억 원)을 넘겼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투자자로 활동하는 이들에게는 특히나 유명한 이였다. 자수성가한 BNO가 유명해지고 큰돈을 버는 계기를 가로채는 것 같아 조금 미안했지만 그 정도로 미안해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