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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75화 (7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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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준은 분명 천천히 정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임원들은 친한 이들끼리 뭉쳐 순식간에 정호준이 요구한 3개의 TF팀을 구성했다.

- 어느 곳의 일을 처리할지는 좀 더 고민해도 됩니다. TF팀으로 끌어들일 부하직원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할 테니까요.

백지장도 맞들면 좀 낫다고 당장 이 자리에서 선택하기보단 함께 TF팀으로 일할 부하 직원들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음을 알리며 열흘의 시간을 주었다.

- 그리고 제 볼 일은 다 봤으니 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내가 껴 봐야 이 자리가 불편하기만 할 테니까요. 저는 먼저 빠지도록 하죠.

서양 세계는 동양 세계처럼 회식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회식이 아닌 파티지만 그게 그거지 뭐.'

서양은 회식 대신 파티 문화가 발달했지만 상사가 함께하는 파티면 그게 회식과 뭔 차이가 있을까? 존대 개념은 없더라도 위아래 개념은 서양에도 존재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사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아니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아니야.'

오너와 함께 파티를 즐기는 순간 파티가 아닌 회식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에 정호준은 그만 빠지기로 했다.

*****

임원 포함 작업 책임자들과의 미팅을 무사히 마친 뒤로 3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정호준의 말대로 셋으로 나뉜 임원들은 TF팀을 본인들이 신뢰하는 이들을 TF팀에 참가시켰다. 3개로 나뉜 팀은 협의를 마치고 각자가 선택한 곳에 대한 전략을 짰다. 매각 협상 관련 전략을 짜고 러시아 정계에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에 대한 정보를 구하느라 바빴다.

TF팀이 그들 나름대로 계획을 짜고 이행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정호준은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에 자본금을 충원했다.

준비를 마치고 먼저 움직인 쪽은 이르쿠츠크주로 날아가 폴류스와 협상해 수호이 로그 주변 폐금광의 소유권을 매입할 TF팀이었다.

사전에 알아본 루트로 폴류스사에 연락을 넣어 만남을 요청했다. 잘나갈 때는 금광 1개와 구리광산 2개, 철광석 광산 2개를 운영하며 광산업계에서 나름 방귀 좀 뀐 역사를 갖고 있다 보니 라이온 마인사의 임원들도 나름대로 연락처나 인맥은 가지고 있었다.

잘 나갈 때 연을 만들어두었던 인맥들이 이제는 볼품없어진 그들의 연락을 받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기는 했지만 말이다,

- 누구시죠? 이 번호로 연락이 오는 경우는 드문데?

다행히도 수호이 로그 담당 TF팀에게 그 정도의 행운은 따라주었다.

- 갑자기 이렇게 연락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라이온 마인의 첸들러 이사입니다.

- 라이온 마인이라 했습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보긴 한 것 같은데.

- 호주에서 근근이 먹고살고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냐는 듯 되묻는 남자의 목소리에 화가 날 법도 하건만 리온 챈들러는 현실을 인정하며 겸손하게 회사를 소개했다.

호주에 적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야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 아아, VLM 맞죠? 금광도 갖고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 예, 맞습니다. 이번에 저희 회사를 인수한 오너가 의욕이 좀 많이 넘칩니다. 시베리아쪽 광산을 알아보라고 오더를 내려서요. 광산이란 게 구하라고 바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새로운 오너는 그 사실을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귀사가 보유하고 있는 극동 관구 쪽 폐광을 좀 매입하고 싶습니다.

- 폐광을요?

리온 챈들러는 전화를 받아준 폴류스 임원에게 정호준을 호구로 묘사하며 이 기회에 그들을 벗겨 먹으라는 식으로 상황을 만들어갔다.

*****

리온 챈들러의 수호이 로그 폐광 인수 안건은 폴류스 이사진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회의의 주제는 '폐광을 매각할 건지 아니면 그냥 쥐고 있을 건지'였다.

어느 회사건 기업 또한 사람이 모인 단체이기에 정치는 따라오기 마련이다. 자기 일만 똑부러지게 하면 그만인 공무원들조차도 높은 자리에서는 정치가 오가는데 사기업에서 정치야 일상생활이나 마찬가지다.

세르게이 이사의 발언에 경쟁 관계에 있는 이사 하나가 세르게이를 발언을 듣고는 공격적인 튀앙스로 물었다.

- 수호이 로그의 폐광과 인근 탐사권을 넘긴다고요?

- 예, 이미 말라버린 금맥이지 않습니까? 금맥이 말라버린 폐광을 매입하겠다는데 안 팔 이유는 없잖습니까?

태연하고 능청스럽게 되묻는 세르게이의 반응에 남자는 다시금 공격적으로 되물었다.

- 금광이 어떤 습성을 가졌는지 모르지 않으실 텐데요?

20세기 중후반, 그리고 21세기에 발견되는 금광은 완전히 새로운 지역에서 발견되기보다는 말라버린 금광 주변에서 새로운 금맥을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금광을 탐사하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소모되는지는 알고 하시는 말이겠죠? 그리고 수호이 로그 지역이 오죽 넓습니까?

금광 특성상 근처에도 금맥이 있을 확률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넓은 지역을 대대적으로 탐사하는데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돼야 했기에 수호이 로그 지역의 탐사는 폴루스에서 차일피일 미루고 미뤘던 지역이다.

앞으로 13년은 더 지난 뒤에야 발견될 광산이란 것만으로도 폴루스가 탐사를 얼마나 부담스러워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금맥이 있었다면 이미 예전에 발견했을 겁니다.

수호이 로그는 과거 소련의 굴락(소련에서 노동수용소)이 있던 곳이다. 1929년부터 1953년까지 소련 정부는 수호이 로그로 무려 1,800만에 달하는 정치범을 보내 광부로 부렸다. 그만한 인구가 인부로 부려졌는데 새로운 광맥이 있었다면 금을 캐던 정치범들에 의해 금맥이 있다는 징조라도 발견했어야 옳았다.

세르게이 이사는 그런 생각을 회의장에서 발언권을 얻어 당당하게 받아쳤고 그의 논리는 듣기에 합당했다.

몇 차례 의견이 더 오가긴 했지만 결론은 났다.

회의를 줄곧 듣고만 있던 폴류스의 회장 솔레이먼 케리프가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케리프 회장은 세르게이를 보며 물었다.

- 개발권은 매각하는 걸로 결정하도록 하지. 매각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겠나?

- 될 수 있는 최대한 뜯어내겠습니다. 적어도 1억 달러는 받아내겠습니다.

- 돈은 루블화 말고 달러로, 받아낼 수 있는 최대한 받아내게.

1998년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이후로 형편이 썩 좋지 않은 러시아다. 그들로서도 외화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

2005년 10월 초.

수호이 로그 담당 TF팀은 폴류스에서 나온 담당자들과 몇 차례 밀당을 거듭했고, 정부 관계자를 소개 받아 로비스트를 활용해 기름칠을 했고 말이다.

그렇게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은 폴류스사가 기존에 보유 중인 수호이 로그 금광산을 주변 약 22,000km²에 대한 개발권을 사들였다. 폴류스가 기존에 채광하던 금광의 면적은 대략 10,000km²였다. 라이온 마인사는 폴류스에게 협조받아 12,000km²에 채굴권을 추가로 받아냈다.

- 행운을 빕니다.

1억 5,000만 달러를 받아 챙긴 세르게이 이사는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가 호구 짓을 해준 것에 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행운을 빌었다.

- 감사합니다.

챈들러 이사는 세르게이가 정말 그들의 행운을 기원하는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예의상 감사 인사를 뱉었다.

그런 챈들러의 반응에 양심이 뜨끔했는지 세르게이가 진심을 담아 충고했다.

- 저희가 매각한 폐광뿐 아니라 추가로 매입하신 지역에서도 어떤 광물이 나오던 러시아 정부가 23%의 지분을 가져가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정부에게 주는 게 아깝겠지만 괜히 더 줄여보겠다고 수를 쓰다가는 전부를 잃는 수가 있습니다.

로비 비용으로만 2,800만 달러 정도를 사용했지만 어쨌건 수호이 로그 TF팀은 정부의 지분을 무려 7%나 줄였다.

챈들러는 협상을 마치자마자 정호준에게 전화 통화를 걸었다.

- 오너, 지시하셨던 대로 수호이 로그 광산 개발권과 인근 지역 12,000km² 개발권을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가져갈 지분을 7% 줄였습니다.

챈들러는 곧장 협상으로 도출해 낸 성과를 알렸다.

- 수고 많으셨습니다. 7%면 14개월 치 월급을 보너스로 드리면 되겠네요. 맞죠?

성과금을 달라고 돌려 말하는 듯한 발언에 정호준은 웃으면서 다음 달에 성과금을 지급해주겠다고 말했다.

- 탐사를 진행하는 건 'Nyurbinskaya(누르빈스카야)'와 'Botuobinskaya(부투오빈스카야)'지역에 대한 탐사권을 얻어낸 뒤로 미루겠습니다.

'광산 채굴권을 얻어내기도 전에 전문가들을 동원해 수호이 로그 지역에 금광이 있음을 밝히면 채굴권 협상에 방해가 들어올 수도 있다. 러시아 정부도 정부지만 폴류스가 어떻게 나올지도 걱정이다..'

빈 깡통이라 생각해서 남에게 팔았는데 수십 조의 가치가 있는 1,780톤짜리 황금이 매장되어 있음을 확인하면. 폴류스의 회장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나 같으면 제정신으로 못 있을 것 같은데.'

매각을 선택한 건 다름 아닌 본인이지만 내 것이 될 수 있었던 수십 조를 잃은 사람이 어떻게 맨정신으로 있을 수 있겠는가? 원한을 갖고 정호준이 채굴권을 얻어내려는 두 광산에 눈독을 들일 확률 또한 있었다.

편하게 적당한 값에 채굴권을 얻어낼 수 있는데 굳이 급하게 서둘렀다가 경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

'조금 기다린다고 매장된 황금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

과한 경쟁은 종종 비극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경쟁이라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아니 나쁘다 해도 어쩌겠는가. 민주주의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필수 불가결한 것인데. 그리고 당장에는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했다.

수호이 로그 TF팀이 성과를 거둔 것을 확인한 다른 두 팀이 자극을 받아 더 열과 성을 다했다.

-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정호준은 속도보다는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길 바랐기에 서두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만류했지만. 그 말이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사하공화국을 담당하는 러시아 정관계 인사들의 권력 구도, 그리고 광업 관련 부서의 권력자가 누군지 파악을 마친 뒤 러시아로 날아갔다.

리온 챈들러가 모든 일을 끝마치고 결과만을 보고로 올렸다면 'Nyurbinskaya(누르빈스카야)'를 담당한 TF팀 총책임자 안토니 피터슨 이사와 'Botuobinskaya(부투오빈스카야)'를 담당하는 TF팀 총책임자 니콜라스 프라이스는 그날그날 누구를 만났는지 디테일하게 보고를 올렸다.

'이런 데서도 개성의 차이를 느낄 줄은 몰랐는데.'

성격의 차이를 실시간으로 느끼면서도 정호준은 한 가지 고민을 품었다.

'매입 완료하고 금맥과 다이아 매장지를 찾으면 개발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매각을 해야 할까?'

201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강제로 합병한다. 러시아의 행보에 서유럽과 미국은 경제 제재를 가하기 시작하고 말이다. 제재가 시작되면 해당 광산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건 번거로워진다.

지금부터 수년 동안 채굴을 이어가다가 2013년쯤 광산을 매각할지, 개발 비용을 들이는 것도 아까우니 매장량 확인을 마치고 경매로 매각할지. 무엇이 그에게 더 큰 이득을 가져다줄 것인지 심사숙고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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