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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66화 (6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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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부호들이 종종 기부도 하고 자선사업도 많이 벌인다. 기부하는 이에게 세금을 감면해주는 정책이 있어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기부라는 행동 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목적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에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것을 남에게 베푸는 건 찬사 받아 마땅한 일이었으니까. 다만 똑같은 기부를 해도 미국은 기부를 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존재했다.

기부하고 기사로 한 줄 딱 나가고 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인들은 기부라는 행위 자체를 즐길 거리로 만들었다.

우리가 흔히 한 번쯤 들어본 자선 파티가 바로 그것이었다.

- 오늘 너무 예쁜데요?

정호준과 자넷은 뉴욕까지 건너와 한 자선 파티장을 방문한 상태였다. 당연히 자넷의 복장은 힘을 많이 준 상태였다.

- 고마워요, 정도 오늘 멋지게 하고 나왔네요.

정호준은 자넷을 에스코트하며 파티장 안으로 들어섰다. 자선 파티가 열리는 장소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화려한 양식에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정, 너무 그렇게 두리번거리지 마요. 사람들이 흉봐요.

파티에 참석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아무렇지 않은 자넷이 자신을 에스코트 중인 정호준의 허리를 약하게 두드리며 타박했다.

- 이런 곳에 와 볼 줄은 몰랐으니까요.

- 앞으로 많이 오게 될 거예요.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라는 라스베가스에 거주했었으면서, 뭐가 그렇게 신기하다 그래요?

- 그쪽이랑 이쪽이랑 건축양식이 다르니까요. 그리고 자선 파티를 여는 장소인데 이렇게 화려한 곳에서 열 줄은 몰랐어요. 무난한 곳에서 열 줄 알았거든요.

모험이라 생각했던 WTI 원유 선물투자마저 성공적으로 끝마쳐 '더는 태클 걸지 말고 정호준이 지시하는 것만 해내자.'라 마음먹은 자넷이 정호준을 보며 놀리듯 말했다.

- 정이 모르는 것도 있네요?

- 전문 분야도 아니고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일인데, 모를 수도 있는 거죠. 이제 알면 된 거 아닌가요?

파티에는 유명 인사들이 다수 참석한 상태였다.

월가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투자사의 CEO들과 골드만식스와 같은 거대 투자은행(IB)의 트레이더들, 양당의 정치인들, 유명한 걸로 유명하다는 힐튼 호텔의 상속녀 해리스 헬튼, 미션 임파서블의 탐 크루즈와 같은 유명 할리우드 배우나 가주들까지 자선 파티에 참석한 상태였다.

정호준이 모르는 얼굴들도 다수 존재하긴 했지만 자넷이 옆에서 귓속말로 그들이 누구인지 가르쳐주었기에 정호준은 '내가 여기 오는 게 맞았을까?'란 생각을 품었다.

첼로, 바이올린 등 악기의 합주로 연주되는 고풍스러운 파티 음악을 들으며 구석진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직 크게 이름을 떨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파티에 참석했음에도 대화를 나누는 다른 이들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안면을 터주는 사람이 있어야 대화가 시작되는 법이다. 외향적이라면 자신이 먼저 다가가기도 하지만.

인연이 필요는 해도 먼저 다가갈 정도는 아니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별개의 세상에 있는 것 같다니, 참 웃기네.'

구석에서 조용히 샴페인을 음미하며 자넷과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데 일련의 무리가 다가왔다.

- 이런 파티 처음 오는 거죠? 우리 서로 인사나 나누죠. 해리스 헬튼이예요. 이쪽은 라디아 히스트, 그리고 이쪽은 티마라 에클리스톤. 그리고 여기는 아리아 록펠러. 아 그리고 여기는 킴 키디시안.

파티에 참석한 다른 여성들에게 크게 꿀리지 않는 외모를 지닌 자넷이 동양인인 정호준과 함께 있는 것이 신기했나 보다. 호기심을 느낀 건지 헬튼 호텔의 상속녀인 해리스 헬튼은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언론 재벌의 상속녀인 라디아 허스트와 자동차 경주대회 F1을 창시한 바니 에클리스톤의 상속녀, 록펠러 재단의 증손녀 등을 끌고 와 소개했다.

킴 키디시안을 제외하면 세 여자는 모두 해리스 헬튼보다도 더 급이 높은 상속녀들이었다.

'해리스 헬튼을 빼면 다 84년생이었던 거 같은데.'

어디서든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는 게 사실이었나보다. 해리스 헬튼을 포함해 미녀 4명이 한꺼번에 정호준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자 파티장에 들어올 때 잠깐 느껴지지 않았던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파티에 처음 참석한 이한테 친절을 베풀면서 이목을 끌고 싶은 건가?'

- 호준 정입니다. 한국계죠. JHJ라고 작은 투자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 릴리 자넷입니다. JHJ의 고문 변호사로 재직 중이예요.

- JHJ?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 나도 들었던 것 같은데.

해리스 헬튼과 티마라 에클리스톤은 서로 기억이 안 난다며 끙끙 앓았다. 정확히는 잠깐 궁리하다가 고민을 멈추고는 대화를 나누고 있던 월가의 젊은 트레이더들을 데리고 왔다.

- 파티에 처음 온 뉴비인데, 서로 인사는 해야죠. 이쪽은 JHJ에서 근무하는 호준 정이예요.

- JHJ? 럭키보이(Lucky Boy)?

해리스 헬튼의 손에 끌려온 이들은 처음에는 얘는 뭔데 여기 참석했냐는 시선으로 보다가 JHJ라는 회사명을 듣고는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개중에 한 명은 정호준을 럭키 보이라고 불렀다.

정호준을 럭키보이라고 부른 흑인 트레이더의 발언을 듣고서야 해리스 헬튼과 티마라 에클리스톤은 '아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 'JHJ'는 이런 행사에 한 번도 참여한 적 없는 걸로 아는데, 의외네요?

미녀, 그것도 미국 재계에서 유명한 상속녀들의 관심을 받았다는 것이 거슬렸는지, 자신을 브릭스 필립스라 소개한 백인 남성이 가시를 세웠다.

- 여태까지 안 했다고 앞으로도 안 할 필요는 없죠. 미국에 적을 두고 살아갈 시민인데. 좋은 일에는 동참해야죠.

- 'JHJ'나 'SSL'은 빚투성이로 알고 있는데, 이자 내기도 빠듯하지 않나?

어떻게든 정호준을 깎아내리려는 모습이 좀 우스웠다. 정호준을 깔아뭉개며 존재감을 보여서 연분이라도 만들어보려는 건가?

- 글쎄요, 빚도 자산이라잖아요? 그리고 이번에 일이 정말 잘 풀려서 여력이 좀 있네요.

- 여력? 그러고 보니 구골 주식이 많이 오르긴 했죠. 주식 팔려면 또 한세월이겠네요?

- 제가 이번에 귀사에서 추가로 대출 받은 돈을 어디다 사용했는지도 모르면서, 너무 장담하는 거 아닌가요? 재무제표도 안 쳐다봤잖아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왜 당신과 나눠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

정호준은 불쾌하다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해리스 헬튼은 지금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 악동 같은 미소를 보이며 흥미진진하게 구경 중이었다.

다만 상황은 그녀가 바랬던 클라이막스까지 가지는 않았다.

목소리가 커지며 시선이 쏠릴 무렵 자선 파티의 주목적이었던 기부금과 관련한 순서가 시작되어 대화가 끊겼기 때문.

기부한 회사나 개인의 이름을 전부 이야기하진 않지만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한 기부자(회사)는 파티 참석자들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다.

- 이번 자선 파티에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낸 회사는 'JHJ Capital'입니다. JHJ는 뉴올리언스주 수해민들을 위해 1억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이번 자선 파티에서 JHJ Capital이 기부한 1억 달러 이상을 기부한 이는 없었고 그 바람에 JHJ의 이름이 불리게 되었다.

부를 자랑하는 것을 즐기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먼저 시비를 거는 인간에게까지 겸손할 필요는 없었기에 정호준은 나름 최대한 싸가지 없게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구골이나 앤플 주식을 매도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직 더 오를 거라고 믿거든요. 투자할 여력이 있으면 투자하면 어떻겠습니까?

백인이어서 그런지 특히 얼굴을 붉히니까 눈에 확 들어왔다.

새빨개진 브릭스 필립스를 뒤로한 채 정호준은 먼저 가보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자넷과 함께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

기부가 행사화된 미국에서도 1억 달러. 한화로 1,150억을 일시불로 기부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그런 이유로 JHJ Capital이 뉴올라이언스주를 위해 1억 달러를 기부했다는 내용은 미국 언론사에서 짤막하게나마 다뤘다.

뉴올라이언스주의 참상이 언론을 통해 전달되면서 이라크에 전쟁에만 신경 쓴다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는 현재 비난을 잠깐이라도 줄여볼 훈훈한 미담이었으니까.

[한국계 투자자 정, 뉴올라이언스주의 피해 복구를 위해 1억 달러 기부.]

'그래. 이 위대한 나라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저 정도는 해줘야지. 쟤는 인정이다.'와 같은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잠깐이나마 미국인들의 뇌리에 'JHJ Capital'이라는 회사명이 각인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더 난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큰 피해를 입은 미국의 상황이 심각함을 전하던 한국 언론사들이다.

그들이 정호준의 기부 소식을 놓칠 리 없었다.

[2004년 메가밀리언 당첨자 정씨, 뉴올리언스주의 수해민들을 위해 1억 달러, 한화 1,150억을 기부하다.]

⌎ 와, 작년에 당첨금 5백억 수령했다고 난리 났던 애 아냐? 1,150억을 기부하려면 대체 재산이 얼마라는 거야? 1년 6개월 만에 재산이 얼마나 불어났길래 저렇게 많은 돈을 기부하지?

⌎ 일단 죽을 병에 걸린 게 아닌 이상 전 재산을 기부하는 경우는 없잖아. 그러니까 최소 저거에 배는 있다고 보면 될 걸.

⌎ re: 반도 적게 잡은 거 아닐까. 요즘 누가 재산을 절반이나 기부함. 그것도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을 애가.

⌎ 와~. 쟤는 진짜 인정해야겠다. 어린 애가 무슨 돈이 저렇게 많냐.

⌎ 저렇게 돈 버는 재주가 있는데, 이쯤 되면 군대 안 가려고 한국 국적 버렸다 욕할 게 아니라 투자 자문으로 모셔와야 하는 거 아닐까?

⌎ re: 그러니까, 내 말이 그거임. 혹시 투자금 유치 안 하나? 쟤가 투자금 받으면 적금 통장 깨서라도 돈 맡길 텐데.

⌎ re: 그러게. 나도 쟤가 투자금 모은다고 하면 나도 얼른 가서 줄 선다.

이쯤 되면 한국 국적을 버리고 미국 국적을 선택한 걸 용서하고 한국으로 불러들일 필요가 있다는 댓글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돈의 단위가 천억을 넘어가자 평범한 대중들을 넘어 재벌가나 정계 인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나라가 미국인 만큼 재벌가와 정계의 중진들은 미국에 나름대로 정보통을 갖고 있다.

정호준이 천억이 넘는 돈을 기부하며 주목받자 정보통을 통해 정호준이 대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졌는지 알아보느라 바빴다.

그리고 정보통을 통해 듣게 된 정호준의 재산 규모는 그들에게 경악이란 감정을 품게 했다.

'쟤도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했다며? 이번에 윤정이가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하잖아. 쟤랑 친분 좀 쌓으면 좋겠는데.'

'저놈을 내 사위 삼으면 든든할 텐데.'

원유 선물에 투자한 것까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호준이 쥐고 있는 주식만으로도 한화로 1조를 상회한다는 걸 전해 들은 정‧재계 인사들은 수화기를 붙잡고 국제 통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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