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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59화 (5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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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에서 영업하는 호텔들은 모두 방 값이 저렴했기에 김은주가 미국으로 넘어온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정호준은 호텔에서 머물렀었다.

'기태 녀석이랑 처음 미국으로 여행 왔을 때만 해도 웅장하고 화려한 호텔들을 보며 지레 겁을 먹었었는데.'

VIP 전용 시설이나 스위트룸 같은 고급 시설들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몇 성급 호텔에서 머무르든 강남의 아파트나 오피스텔에서 월세로 사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싸게 먹혔다.

물론 그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강남에서 머무르는 데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정도 호사는 누려도 되잖아?'

정호준은 요리를 잘했다. 해 먹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하지만 음식을 해 먹은 탓에 생기는 뒤처리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음식을 해 먹으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게 바로 뒤처리다.

자취하는 사람 중에는 종종 그 뒤처리가 귀찮아(싫어)서 아예 밖에서 사 먹는 사람도 많았다.

어느 호텔에 머무르든 호텔에 머무르면 방을 나서면 청소는 기본으로 해줬다. 빨래 같은 경우에는 따로 서비스를 요청해야 하지만 빨래를 며칠 모아 요청하면 달에 5~6번 정도 사용하는 선에서 그친다.

뒤처리를 포함 잡다한 집안일에까지 신경을 쓰기엔 2004년과 올 한 해에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다.

그런 이유로 정호준은 호텔에 머무르는 것을 선택했다.

호텔 생활에 큰 불편 없이 잘 지내고 있었지만 김은주가 라스베가스로 온다는 박남정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서둘러 집을 구했다.

'신경을 안 쓴다면 모를까, 손을 썼으면 끝까지 책임져야지. 문제 될 소지는 최대한 없애고.'

한국의 법규상 도박은 불법이다. 그리고 한국은 속인주의 형법을 띠고 있어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행한 일도 한국 법에 불법이면 불법이 되었다.

그런데, 라스베가스는 자국민인 미국인들에게조차 도박과 향락의 도시로 유명했다.

오죽하며 죄악의 도시라고까지 불리겠는가?

연예인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향락의 도시인 라스베가스에 방문했다?

이는 경우에 따라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 점을 고려해 김은주는 직항이 아닌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 라스베가스에 왔지만, 그런 말 있잖은가. '전 세계에 한국인이 없는 곳이 없다.'라는.

김은주에 대한 목격담은 얼마든지 언론의 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면 문제가 되진 않지만 문제를 만들고자 작정하면 그녀가 라스베가스에 방문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책 잡을 사안을 만들 수 있었고, 김은주가 호텔에 머물렀다면 특히 논란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라스베가스 카지노들은 모두 호텔 내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고 자두나무 아래서는 관을 고쳐 쓰지 말라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한국에서 라스베가스 관광을 온 이들은 불법인 거 알면서도 그냥 적당하게 즐기고 돈을 버는 게 아닌 잃고 떠나니 별문제가 안 되고, 그게 문제가 되냐 싶지만.

김은주의 직업이 연예인이었기에 불가능한, 가능성이 낮은 일은 아니었다.

'공인이란 이유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려는 게 한국의 연예계니까.'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이들과는 비교가 불허할 정도로 큰돈을 버는 화려한 직종에서 일하는 대가였다.

안정을 취하며 심신을 회복시키기 위해 미국에 왔는데 괜히 논란거리만 더 만들어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신경을 안 썼으면 모르되 이미 살리기로 결심하고 행동을 취한 이상 끝까지 케어해서 보내는 게 맞았다.

그래서 2년 계약으로 집을 마련했고 그곳에서 경호원 둘(남자, 여자)과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 홈스테이로 머물렀다고 하시면 됩니다.

혼자 집세를 낼 정도의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은 집을 빌리고 따로 하숙생들을 받거나 친구끼리 돈을 모아 월세를 지불하고 함께 살곤 했다.

정호준은 이러한 현실을 활용해 김은주가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었다.

*****

자넷이 김은주와 같은 여성인 만큼 남자인 정호준이 알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조금 신경 써주면 좋으련만 자넷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자넷은 다른 로펌과 합작해 가며 유령 법인을 설립하느라 바빴다. 정호준이 부탁한 시일 내로 끝내기 위해 다른 로펌과 협업하는 건 물론이고 밤잠까지 설쳐 가며 일했다.

"나도 바쁜데."

그렇다고 김은주의 관광까지 정호준이 책임지기엔 그것도 무리한 면이 없지 않았다.

입시가 정말 코앞으로 다가와 시험 한번 한 번에 최선을 다해야 했기 때문.

어느 정도 신뢰를 쌓은 한국말을 잘하는 가이드.

다행히 이 조건을 충족하는 이들이 정호준에게는 둘이나 있었다.

"하루씩 번갈아 가며 가이드 좀 해주세요. 부탁할 사람이 형들밖에 없네요."

그런 이유로 정호준은 그의 과외선생인 데이빗 리(이주호)와 러셀 밀러에게 가이드를 맡겼다. 그들이 거절하면 보수도 따로 챙겨줄 생각으로 말이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나 보다.

"응, 좋아!"

"고마워!!"

단칼에, 흔쾌히 수락했다. 감사의 눈빛까지 시전하면서 말이다.

혹시 정호준이 말을 바꾸지 않을까, 눈치까지 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정호준은 동정심 가득한 시선으로 둘을 바라봤다.

'불쌍한 형들 같으니.'

그들을 이해 못 할 건 없다.

김은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을 환하게 만들 만큼 매력이 넘치는 여성이었으니까.

한국에서 주로 돌아다니는 이야기지만 연예인 중에서도 배우는, 배우들의 미모는 급이 다르다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 퀸카로 치켜세워주는 여성쯤은 되어야 김은주와 비슷한 미모를 지녔을 텐데, 퀸카라고 학생들에게 온갖 대쉬를 받았을 그녀들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동양인 이민자 출신과 혼혈에게 관심을 줬을 리 없다.

"혹시 문제 생길 수도 있으니까, 경호원도 한 명 붙여줄게. 부탁 좀 할게."

이제는 나름 좋은 학벌을 갖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사회에 나가지 않는 한 좋은 학벌이 무기가 되기엔 일렀다.

대가도 없이 무보수로 일을 맡겼는데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으며 그렇게 김은주를 맡겼다.

*****

남자들, 특히 여자(미인)를 만나보지 못한 이들은 여성에 대한 내성이 약하다.

연예계라는 복마전에서 구른 만큼 김은주는 번갈아 가며 자신을 가이드해 주는 두 남자가 여자와 가까이 지내본 경험이 적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렸고 손쉽게 그들을 구워삶았다.

"원래는 호텔에서 머물렀는데, 한 열흘 전인가, 집을 얻었더라고요. 어차피 대학 붙으면 이사 가야 하는데, 두 번 일하는 게 싫다고 그랬던 놈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김은주가 그들을 구워삶는데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치 않았다. 데이빗 리(이주호)와 러셀 밀러는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처럼 굳이 물어보지 않는 것도 말 한마디 더 붙여보겠다고 스스로 토해냈다.

두 사람이 열심히 나불거려준 덕분에 김은주는 정호준이 자신을 배려해준 것을 확실하게 인지했다.

달그락! 달그락!

식사를 차려 먹고 자신이 사용한 그릇 정리를 마친 정호준에게 김은주가 천천히 다가왔다.

"저기..."

"예, 말씀하세요."

"고마워요. 이것저것 배려해줬다고 들었어요."

"뭐가요? 뭐가 고맙죠? 난 특별히 배려한 게 없는데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 태연하게 되묻는 정호준의 질문에 김은주는 낮에, 그리고 어제 두 번이나 들었던 말을 이야기했다.

'참나, 나도 남자지만 정말 남자들이란.'

김은주를 통해 데이빗 리와 러셀 밀러가 자신이 아는 것을 미주알고주알 다 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고마워요?"

"여러모로 신경 써 준 거잖아요. 당연히 고맙죠."

"그럼, 내 부탁 한 가지만 들어줄래요?"

어차피 다 들통난 거 조금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요."

"약속한 겁니다?"

"네."

김은주의 승낙에 정호준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들었어요.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는 게 어떨까요? 그게 내 부탁입니다."

*****

점점 먹고 사는 게 각박해져 정신병을 하나쯤 앓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2010년대와 달리 2000년대까지만 해도 정신과, 정확히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다.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는 걸로 사람을 정신병자 취급하거나 그 정도는 아니라도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눈에 띄게 껄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 때문일까?

호감 가득 서렸었던 김은주의 얼굴은 한순간에 경계와 불안으로 가득 찼다.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대중조차 그러할진 데 연예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대중이 그들이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고 하면 얼마나 몰아세우겠는가?

돈이 있고 남들에게 자랑할 만큼 성공했어도, 안타까운 선택을 한 이들은 대게 제때 상담 못 받고 끙끙 앓다 간 이들이 대부분이다.

'원인을 해결해야지.'

슬픈 선택을 하는 걸 한번 막았다고 기뻐하기엔 언제 같은 또다시 그런 마음을 먹을지 모른다. 특히 눈앞의 김은주는 손을 그어 자살하는 데 실패하자 목을 매고 죽음을 선택했을 정도로 증상이 심했다.

보통 자살에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아프고 무서워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는 걸 고려하면 김은주는 감정이 북받치면 언제든 자신을 포기할 준비와 각오, 독기를 모두 갖춘 여자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생각할 것 없습니다. 무엇을 염려할지도 이미 알고 있고요. 여기는 미국입니다. 당신이 진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내가 힘을 써주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진료를 받는 걸로 알게 될 겁니다."

VIP들은 자신의 의료 정보를 조작하고 숨기는 게 일상인 이들이다. 미국은 그런 일들을 능숙하게 해내는 의료 관계자들이 많이 존재했다.

"당신은 비난 받는 게 무섭지 않나요?"

"괜찮습니다. 그런 걸 무서워하기에는 난 너무 멀리 왔거든요.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까지 거론하는 놈들도 있던데요."

익명이라는 장막 밑에 숨어서 온갖 더러운 말들을 쏟아낸다. 부모님까지 입에 담았을 때는 정말 신상을 털어서 킬러라도 보낼까 싶을 정도였다.

"내가 잘나서 질투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속 편합니다. 실제로 처음에는 그냥 욕만 가득했는데, 지금은 다 괜찮으니까 자기 돈도 맡아 달라는 댓글도 많던 데요?"

심각한 내용임에도 정호준이 워낙 능청스럽게 말해서 그런지 심각성이 덜했다.

이것이 김은주가 한 달 넘게 미국에 남아 있게 된 이유였다.

"약속했으니까 치료 받을게요. 대신 보안은 꼭 지켜주셔야 해요."

"물론이죠. 그럼 내일부터 사람을 부르겠습니다."

*****

4월 말부터 정호준은 진아제약의 주식을 매일 6,000주씩 시장에 던졌다. 하루 거래량이 천만을 넘나드는 종목이었기에 정호준의 주식 매도는 크게 상황을 변동시키지는 않았다.

바이오 열풍 때문에 미친 듯이 뛰어야 하는 상승폭이 조금 줄어드는 정도랄까?

이미 본인 때문에 진아제약의 주가가 많이 오른 상태라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주가가 절정에 달하는 7월까지 기다리면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었지만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끌어모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욕심을 버렸다.

'SY도 5월쯤 정리하고 전력을 다하자.'

돈을 얼마 넣지 못할 테마주들과 비교도 안 되는 큰 판이 정호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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