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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는 입장이라 크게 위험하진 않겠지만, 어쨌든 골드만식스는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긴다.'
골드만식스는 미국에서 손 꼽히는 투자은행이다. 미국에 대해 별 관심 없던 정호준이 그 이름을 확실히 기억할 정도로 말이다. 비교 대상을 미국이 아닌 전 세계로 확대해도 순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렇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정보가 없어서 단언할 수 없지만 러시아 재벌(올리가르히), 중국 공산당의 검은돈, 중동 왕족, 일본 재벌 등 이 세상의 힘 있는 이들의 자금 일부가 이 은행을 통해 관리 받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 사람들은 VVVIP대접을 받겠지.'
영화에 투자하고 남은 자금으로 애플 주식을 구매할 때부터 정호준은 오직 골드만식스를 통해서만 주식 투자를 진행했다. 이 말은 즉 정호준의 주식 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골드만식스를 통해서만 이뤄졌다는 거다.
그런 포석 덕분에 이용한 시간을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VIP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가진 사람이 갑이지.'
정호준이 골드만식스를 이용한 기간은 VIP 대우를 받는 다른 고객들과 비교가 자체가 안 될 정도로 짧지만 자금의 규모 만큼은 뒤처지지 않았다. 세계적인 투자은행(IB) 골드만식스에게도 2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자산가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존재다.
- 246,575주는 JHJ가 아닌 SSL Capital의 이름으로 구매했지만 어쨌건 4,225,790주를 담보로 잡으시겠다는 거군요.
- 네, SSL Capital도 100% 제 명의로 설립된 회사니 그냥 총합으로 보시면 됩니다.
SSL Capital의 자금으로 산 주식을 포함해 정호준은 애플 주식 4,225,790주를 쥐고 있었다.
본래 8월 무렵에는 38불에서 40불을 오갔던 주가가 돈이 생길 때마다 계속 매입을 이어가는 정호준 때문에 현재는 67불에서 70불을 오갔다. 거액 베팅에서 승리한 JHJ가 주식 매입을 이어가는 것을 보며 애플 주식을 쥔 경제 정보에 빠삭한 투자자들이 매도를 멈추거나 매입에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닫힐 때 마지막으로 찍힌 애플의 종가는 70.35불. 정호준이 가진 주식의 시장 가치는 297,284,326.5달러. 반올림하면 3억 달러에 이르는 돈이다.
돈이 돈을 부른다고 주식을 구매하고 가만 앉아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호준의 재산은 7천만 달러 이상 불어났다.
- 제가 가진 애플 주식 전부를 담보로 잡는다면 골드만에서는 어느 정도나 대출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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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고객이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경우 자산 규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적으면 60% 많게는 65~70%에 달하는 돈을 대출 받는다.
- VIP로 분류되시고 담보 자산의 가치도 확실하니, 자산 가치의 75%만큼은 대출이 가능하십니다.
- 이자율은 어느 정도나?
- 회원 등급에 따라 이율이 조금 다릅니다. VIP 고객님께는 대출 시 4% 정도의 연이율 받고 있습니다.
- 1년 만기, 만기상환 방식으로 대출 받겠습니다. 단 만기를 1년 정도 연장할 수 있게 추가로 조항을 삽입해도 괜찮을까요?
- 어렵지 않은 조건이군요. 알겠습니다.
돈이 돈을 부른다는 자본주의 사회는 대출을 받을 때조차 특혜를 받게 해주었다.
VIP 고객인 정호준은 종가로 계산된 자산 가치의 75%, 222,963,244(2억 2,296만)달러를 대출 받았다.
한화로 무려 2,500억이 넘는 돈이었다.
서류를 확인하는 자넷과 부하직원에게 시선을 거둔 스미스는 정호준을 보며 물었다.
- 혹시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스미스의 질문에 정호준은 웃으면서 답했다.
- 돈 생긴 사람이 뭘 하겠습니까? 남들 하는 거 따라 해야죠. 주식과 부동산에 돈을 투자할 생각입니다. 돈을 가만 쥐고 만 있는 건 멍청한 거잖습니까?
한국에 살면서 가끔 들은 적이 있다. 사업이란 건 원래 자기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자기 돈으로 사업하는 이는 하수라고.
'그런 말이 나돌 만하네.'
왜 그런 말들이 나돌았는지 직접 경험하고 나니까 확실히 체감이 되었다.
부자들은, 권력과 친하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한 발 갈 때 수십 발을 앞서가고 있던 거다.
'이자는 180억 정도 내는 건가?'
연이율 7%를 머릿속으로 암산해 보니 1년에 15,607,427(1,560만)달러를 이자로 지불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지만 정호준은 이자로 낼 1,560만 달러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겨우 180억에 2천억이 넘는 돈을 굴릴 수 있게 됐는데 뭐가 아깝겠는가?
'돈을 굴리겠다?'
자신의 질문에 통상적인 대답을 뱉으며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이자를 계산하는 정호준을 바라보며 스미스는 생각했다. 빚을 낸 뒤 스스럼없이 돈을 굴리겠다 이야기하는 정호준의 대답에 스미스는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 그렇군요. JHJ Capital의, 아니 정대표님의 성공을 기원하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그렇게 제출해야 할 서류를 모두 제출하고 미팅과 심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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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넷의 차를 얻어 타고 다시 네바다주를 넘어오면서 정호준은 머릿속으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했다.
'인크레더블이 개봉되는 날은 11월 5일. 최소 3개월은 기다려야 하니 정산이 되려면 적어도 2월은 되어야 할 거다. 그럼 2월까지 이자 낼 돈은 남겨 둬야 한다는 건데.'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6개월치니... 7,800,000(780만)달러 정도 남겨두면 되려나? 아니다, 자넷 월급 줄 돈도 빼야지.'
자넷에게 월급을 줄 돈도 필요하니 대충 850만 달러 정도는 빼둬야겠다고 계산을 마쳤다.
집에 돌아와 다시 한번 계산기를 두드려 검토를 마친 정호준은 1억 8,850만 달러를 뺀 34,463,244(3,463만)달러를 따로 뺐다.
그렇게 빼놓은 34,463,244달러를 장이 시작하자마자 69불로 값이 하락한 애플 주식에 다시 투자했다.
'구글은 아주 장기까지 보고 가는 거지만,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할 날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금융위기가 왔을 때 한 번 정리했다가 다시 구매해야 한다. 2020년을 보는 게 아닌 2007년에서 2008년까지만 보고 가기엔 아무래도 애플이 더 나아 보였다.
'지금이 가장 쌀 때야,'
본인 때문에 회귀 전과 비교해 그 값이 거의 배 이상 뛴 상태임에도 정호준은 지금이 가장 쌀 때라고 생각하며 애플 주식을 추가로 매수했다.
정호준은 자신의 소신대로 평균 매입가 75불에 459,510주를 추가 매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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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까지 받아 애플 주식에 투자하는 정호준의 행보에 수상함과 분노를 느낀 스티븐 잡스는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내년 2월에 시행하려 했던 주식분할 계획을 미룬다.'
정호준은 알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회귀 전 애플은 2005년 2월 28일에 2대1 비율로 주식분할을 시행한다. 아직 2월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정확한 날짜까진 정해지지 않았지만 몇몇 중진들은 2월에 주식분할이 진행될 거란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 소문에 능통한 분들은 이미 들은 적 있을 겁니다. 우리 회사가 2월에 주식분할을 진행할 거라고. 주주들과 상의를 끝에 주식분할은 안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식분할이 취소됐다고 회사에 문제 생기는 건 아닙니다. 괜히 이상한 소문 퍼트려서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언행 조심하세요.
잡스는 2월로 예정되어 있었던 주식분할을 뒤로 미뤘다. 주식분할을 주워 들었을 법한 이들에게 아예 분할 계획을 취소한다고 알렸다.
'2개월 정도만 지켜보자. 확인해보겠다. 애플이 주식분할을 안 한다 해도 주식을 계속 쥐고 있을지를.'
2005년 2월 28일에 주식분할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정호준이었지만 스티븐 잡스는 그 사실을 몰랐기에 정호준의 수를 파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던졌다.
'사내 유보금을 사용하면 돼.'
주식분할을 1~2개월 늦춘다고 그의 큰 그림에 지장이 생기진 않았다.
천재는 모든 것을 통제하길 원하고 예민하다더니 스티븐 잡스가 딱 그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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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분할 사실이 누출되어 정호준이 주식을 계속 매입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주식분할 계획을 뒤로 미뤘을 무렵인 8월 17일, 정호준은 자넷의 인맥을 빌려 직장을 관두고 구직 중인 주식 트레이더(증권사 직원) 둘과 만남을 가졌다.
그들과 만남을 가진 이유는 간단했다.
- 19일 기업공개(IPO)를 진행하는 구글 주식을 매수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모든 일은 혼자보다 둘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낫다고 구글이 상장하는 8월 19일, 주식 구매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혹시 하루 만에 안 끝날 수도 있어 다음 날인 20일 금요일과 주말 지나 월요일까지 총 사흘 간 고용하기로 고용 계약을 맺었다.
정호준은 8월 18일 저녁부터 호텔로 불러들여 컨디션 조절을 제대로 시켰고 D-day가 밝아왔다.
그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준비를 모두 마쳤다.
- 의뢰인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실리콘밸리와 월가가 구글의 IPO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걸 알고 계십니까?
- 네? 아뇨, 그 사실은 오늘 처음 들었네요. 실리콘밸리와 월가처럼 다른 사람들도 구글의 IPO에 부정적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값싼 가격에 주식을 줍죠.
'난 내 할 도리를 다 했다. 이제는 시키는 것만 하자.'
정호준에게 업계의 생각을 알려준 조나단 트레이더는 정호준의 생각이 변함없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컴퓨터를 바라봤다.
-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술적으로 좀 더 싸게 사겠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그냥 닥치는 대로 매수해주세요.
정호준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했던 말은 장의 개시를 앞두고 다시 한번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장이 열렸다.
- 장이 열렸습니다.
구글의 IPO 시작가는 주당 85달러.
정호준에게 고용된 두 트레이더는 곧바로 매수에 들어갔다.
구매, 구매, 구매, 구매.
매수, 매수, 매수, 매수.
정호준에게 고용된 두 트레이더는 기술이라곤 일절 없이 1억 8,800만 달러를 무식하게 쓸어 담았다. 트레이더들은 밥조차 굶으면서 매수를 이어갔다.
- 끄.. 끝났다.
- 하아~!
장이 마감되기 전에 주식 구매를 모두 마쳤다.
정호준은 평균 매수가 93불에 살 수 있는 최대로 주식을 사들였다. 정호준이 끼어들어서 그런지 100.34달러로 장을 마감했을 구글 주식(Alphabet(GOOG))이 106.96달러로 마감했다.
정호준은 평균 매수가 93불에 2,021,506주 매입했다.
-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일단 내일은 안 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월요일에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