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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팔 때문에 돈을 잃어버린 다수의 피해자들이나 정호준이 투자하는 바람에 투자처를 잃게 된 이들을 제외하고 당장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긴 이는 넷이다. 하나는 정호준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 이들로 호준의 절친인 박기태와 자넷 변호사.
그리고 남은 둘은 '내 신부는 여고생'의 감독을 맡은 강호준 감독과 영화 제작사인 컬처캠미디어의 박순식 대표였다.
'실미도부대'를 개봉일로 통계 대상에 포함시키냐? 통계 계산을 스크린을 내린 시점으로 하냐?에 따라 2004년 성공한 영화 2위, 3위를 왔다 갔다 했지만, 누적 관객 수가 3,149,500명에서 막을 내렸던 회귀 전과 달리 6,273,204명을 기록하고 스크린에서 내려왔다.
회귀 전에도 2004년 태극기 흩날리며 다음으로 잘 나간 영화긴 했지만, 이젠 그를 넘어 저예산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정도가 되었다.
본래 10대와 20대를 겨냥해 찍었던 영화가 정호준 때문에 이슈가 되어 30대와 40대에게도 인기를 끌게 되었다.
'허준', '주몽', '대장금'처럼 시청률이 높게 기록되는 드라마가 방영될 때 드라마 시청을 안 하면 다음 날 직장에서 틈틈이 하는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다. 큰일은 아니지만 원활한 직장 생활을 위해 볼 수만 있다면 보는 게 안 보는 것보다 나았다.
경우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내 신부는 여고생'은 이와 비슷했다.
정호준이 메가밀리언에 당첨되기 전에도 본래보다 조금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기자들에 의해 메가밀리언 당첨자인 정호준이 투자했던 영화라고 언론에서 자주 다루니 유행에 민감한 20대, 30대의 티켓 예매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고 폭발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자 40대나 50대에서도 '한 번 봐볼까?'란 생각으로 보는 이들이 간간이 생겨났다.
그 결과가 바로 600만 돌파였다.
'600만을 넘길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영화 자체가 재미없게 찍히진 않았지만 이렇게나 선방할 줄은 정말 몰랐다. 유행이란 바람을 잘 탄 것도 잘 탄 거지만, 언론이 대놓고 부채질하며 밀어준 덕분이리라.
6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제작사와 감독 315만을 동원한 제작사와 감독. 적자 없이 흑자를 기록했지만 아무래도 전자에게 더 멋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리란 건 더 말할 필요 없는 현실이었다.
게다가 영화를 내리기 2주 전쯤 정호준이 미국에서 영주권을 획득하겠다고 발표만 안 했어도 어쩌면 650만을 돌파했을지도 모른다.
'뭐, 이제 와 이럴 수도 있었다 이야기해 봐야 공허한 논쟁이지. 어차피 인터넷에는 죽일 놈으로 쫙 도배됐는데.'
욕먹으면 장수한다던데...
인터넷으로 욕을 그렇게 받아먹었으니 이번 생은 장수할 수 있으리라.
- 며칠 쉬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할 일이 많네요.
자넷의 표정이 중간에 잠깐 펴지다가 다시 굳어지는 걸 확인했지만 정호준은 모른 척 넘겼다.
- 일단 수고 많으셨어요. 오늘은 퇴근하셔도 됩니다.
고생했다 말하며 자넷이 주고 간 보고서를 읽었다.
투자금: 800,000,000(22.222245%)
제작비: 3,600,000,000
극장매출: 총매출 40,775,826,000. …… 2,227,574,900(22.222245%).
부가수익: 총매출 9,500,000,000. …… 1,477,779,300(22.222245%).
'태극기 흩날리며'때처럼 보고서 안에는 매출에서 무엇이 공제되었는지가 전부 적혀 있었다.
"'태극기 흩날리며'에 투자했을 때보다 더 벌었네."
극장 매출이나 부가 수익이나 천만 관객을 동원한 '태극기 흩날리며'가 더 컸다. 하지만 투자금 비중이 높고, 높은 명성을 지니고 있고 본인이 직접 제작사까지 운영해 수익을 나눌 때 40%를 가져가던 박제균필름과 달리 극장매출을 정산할 때나 부가수익을 정산할 때나 컬처캠미디어는 30%만 떼 갔다.
'내 신부는 여고생'은 '태극기 흩날리며'처럼 100억을 수출하는 기염을 토하진 못했다.
하지만 수출액 50만 달러는 돌파하며 최소한의 체면을 세웠다. 게다가 수출 계약이나 케이블 계약, 부산 영화제와 같은 부가 수익들은 영화를 방영되는 중에 계약을 진행하는 만큼 정호준의 미국 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꽤 큰 목돈이 되어주었다.
투자 원금 포함 총 4,505,354,200원(45억 535만원)을 뱅크 아메리카 통장으로 받았다.
'얘는 2차 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서 아쉽네.'
2차 수익은 주로 DVD나 OST 음악, 등을 국내와 해외에 판매하고 촬영했던 세트장을 관광 상품으로 팔아서 나오는 거다. DVD 해외 판매야 정호준이 투자했다는 사실이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지만 국내 판매는 이야기가 달랐다.
'태극기 흩날리며'는 정호준이 투자했음에도 구매할 이유가 존재했다. 천만을 넘겼다는 상징성과 영화에 담긴 애국심, 고증, 작품성 등 말이다. 반면 '내 신부는 여고생'은 소장할 껀덕지가 달리 없었다.
껀덕지는커녕 오히려 2002년에 출시되었던 홍콩 영화를 표절했다는 표절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 정도 벌었으면 됐지.'
2차 수입은 크게 기대 안 하기로 하며 머릿속에 지워버린 호준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일 처리를 시작했다.
정호준은 자넷이 찾아온 3,969,475달러 중 350만 달러를 JHJ Capital 통장에 입금하고는 다시 한번 애플 주식을 매입했다.
정호준이 지분 가격을 올려놓은 탓에 매입하는데 평단가 64불이나 줘야 했다. 평균 매입가 64불에 54,687주를 추가로 구매했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어쨌건 지분 보유량이 범상치 않아 만남을 가진 게 바로 며칠 전인데 보란 듯이 지분 보유량을 늘리는 건 스티븐 잡스가 본인을 무시했다 생각할 수도 있다.
솔직한 말로 '엿이나 먹어라.'란 대답과 크게 다를 게 없잖은가?
자신을 스티븐 잡스가 달갑게 여기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돈이 있어서 투자를 하겠다는데.
이게 자본주의 사회의 매력이었다.
*****
기술적 매집을 진행해 350만 달러만큼 주식 매입을 마친 날로부터 이틀 뒤인 8월 9일. 정호준은 자넷과 함께 로스엔젤러스로 향했다.
정호준이 아직 차를 사지 않은 만큼 운전은 자넷이 했다. 그녀의 차는 정열적인 붉은 색깔의 페라리 360 모데나였다.
비싼 차인데도 승차감이 좋지 만은 않았다. 차체가 조금 좁아서 그런지 성인 남성인 정호준이 타고 가기엔 조금 좁았다. 의자를 조정해 최대한 불편할 여지를 줄이며 말했다.
- 페라리는 처음 타보네요.
BMW냐 벤츠는 종종 타봤다.
회귀 전의 호준은 BMW를 선호했고 절친인 박기태는 벤츠를 선호했다. 박기태의 경우 드림카라며 람보르기니도 한 대 구매하긴 했지만 말이다.
- 지금껏 차도 안 사고 뭐 했어요?
운전사를 둬도 몇 명을 둘 레벨이고 슈퍼카를 사도 몇 대는 샀을 재력인데, 자동차 하나 안 사서 고급인력(?)인 자신을 정호준이 운전기사로 부려 먹자 정호준에게 핀잔을 가했다.
- 정, 번 만큼 써주는 것도 부자에 덕목이에요. 부자가 돈을 써주고 기부도 해 줘야 사회가 굴러가죠.
계속 이어지는 핀잔에 정호준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운전시킨 것 때문에 화난 거죠? 돌아가면 차 주문할 테니까 그만해줘요.
- 아니!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부자의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거라고요!!
정곡을 찔린 자넷이 부정하며 목소리를 높이긴 했지만 포인트를 제대로 잡았기에 핀잔이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
로스앤젤레스 센추리 시티에 도착한 정호준과 자넷은 골드만식스 사무실이 위치한 폭스 프라자 빌딩을 네비로 찍어 이동했다.
- 건물이 되게 멋지네요.
건물과 그 주변 인테리어가 꽤 특이하게 되어있는 구도에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호준이 자넷과 골드만식스를 방문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호준은 영화에 투자하고 남은 돈과 베팅으로 번 돈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애플에 투자했다.
현재 정호준의 상태는 생활비(?)만 남은 빈털터리로 설명이 가능했다.
생활비만 남아 투자를 감행할 돈이 없는데, 정호준이 투자하길 원하는 회사 구글은 이제 막 상장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정호준이 구글에 투자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답은 간단했다.
'대출받아야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이에게 대출을 해줄 때는 엄격한 기준을 내세우지만.
수중에 돈이 없어도 자산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호준이 쥐고 있는 애플의 주식은 저들이 정해 놓은 자산이란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명함을 주며 자신을 소개한 담당자에게 정호준은 말했다.
- 주식을 담보로 하는 대출. 주식담보대출을 받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자넷만 딸랑 하나 대동한 채 주식담보대출을 받겠다는 정호준의 요구에 처음에는 정호준을 무시했지만 JHJ Capital이라 적힌 정호준의 명함을 확인하곤 표정이 바뀌었다.
- VIP전용 상담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우승자를 맞추는 베팅에 성공해 천금을 획득한 JHJ는 금융업계에서는 상당한 가십거리에 속했다.
*****
남자는 상당한 외모의 여성을 불러 정호준과 자넷을 VIP 상담실로 안내하게 한 뒤 전화기를 들고 연락을 했다.
- 혹시 음료 하시겠습니까?
- 물이면 됩니다.
남자 직원이나 여자 직원이 보여주는 태도를 보며 명성과 돈이 있으면 왜 편리한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 반갑습니다. 다니엘 스미스입니다. 요즘 금융가에 소문이 자자한 자넷 CEO와 JHJ의 오너를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정호준은 자기소개를 마치고 악수를 청하는 다니엘 스미스를 보며 그 손을 마주 잡고 자신을 소개했다.
- 아직 미국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도 못했는걸요. 너무 띄워주실 필요 없습니다. 호준 정입니다.
- 부하직원에게 담보 대출이 필요하시다고 들었습니다. 대출이 필요하시다면 어느 정도나?
- 할 수 있는 한 최대로요.
- 담보로 잡을 주식은 애플(AAPL)이죠?
- 그걸 어떻게?
잠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 호준의 질문에 스미스는 정호준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 그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JHJ가 애플 주식을 매입했다는 것쯤은 이미 금융가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혹시 들으신 게 있으십니까?
정호준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주면서도 좋은 소스를 받고 투자하는 것인지 정보를 빼내려 시도하는 스미스의 행동은 정호준으로 하여금 그가 금융가에서 닳고 닳은 인간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 그런 게 있을 리가요. 여기 자넷 CEO의 활약 덕분에 얻게 된 분수 넘치는 돈을 안전한 곳에 투자한 겁니다. 스티븐 잡스는 전설이잖습니까?
금융가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린 것 같은 정호준의 외형에 혹시나 하고 찔러봤는데 아무런 소득을 내지 못했다.
'쉽지 않네.'
자신을 낮추며 정보의 여지를 차단하는 정호준의 대답에 스미스는 정호준을 보며 잠깐이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호준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