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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어느 기자회견에서 '당신이 제일 두려워하는 장애물이 뭔가요?'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윌리엄 게이츠는 '누군가가 차고에서 전혀 새로운 뭔가를 개발하고 있지 않을까 두렵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윌리엄 게이츠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가 기자회견을 했던 1998년에 스탠퍼드 대학교의 두 천재가 구골이란 검색엔진을 개발해냈으니까.
그리고 스탠퍼드 대학교에 뒤지지 않는 명문.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하버드의 천재들도 질 수 없다는 듯 세계를 강타할 아이템 'The Facebook'을 만들어냈다.
윌리엄이 유일하게 틀린 것이 있다면 창고가 아닌 기숙사와 부실을 오가는 정도랄까?
뭐 그 또한 중의적인 표현이었으니 윌리엄 게이츠가 현명했고 미래를 내다봤다고 밖에 말할 수 없으리라.
- 프릭튼에게 돈까지 쥐여 주며 날 찾아온 이유가 뭔데?
마이클 저커버그, 더스틴 모스코, 크리스 휴스턴, 에도라도 새버린, 앤드류 존슨. 'The Facebook'의 창업자들의 시선이 본인에게 향하자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위축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 중엔 샌프란시스코까지 함께 가 함께 회사를 키운 이도 있었고 지분만 일정부분 나눠 갖고 또 다른 것에 도전한 이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했어도 하나 확실한 건 회귀 전의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둔 거인(巨人)이란 거다.
수상한 의도가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듯 눈초리까지 휘어 뜨며 관찰하는 창업자들의 시선에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쿵! 쿵! 쿵!
걷잡을 수 없이 빨리 뛰는 심장을 크게 심호흡함으로 최대한 진정시킨 뒤 입을 열었다.
- 찾아온 이유야 간단합니다. 당신들이 만든 'The Facebook'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 투자하겠다고? 우리의 뭘 보고 투자하겠다는 건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커버그는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 이용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에서 당신들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 뭐?
- 하버드 학생들이 사용했던 메신저 프로그램이 어느덧 아이비리그에 퍼졌고 스탠퍼드 학생들마저 회원이 됐잖아요?
2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The Facebook'은 빠르게 사용자를 늘려나갔다. 처음에는 보스턴 지역에 퍼졌고 보스턴을 넘어 아이비리그에 속한 학생들과 정반대편인 서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스탠퍼드 학생들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 그런 면에서 저는 당신들이 참 마케팅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력이나 군사력 같은 민감한 부분에서 모두 세계 최고라 불리는 강대국답게 미국에서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들은 세계에서도 명문으로 취급 받는다.
미국 최고 대학이 세계에서도 최고인 셈.
세계 최고의 학교에 다니는 이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램. 학생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마케팅은 없었다.
- 어떻게 사정을 그렇게 잘 꿰고 있지?
- 친척 중에 스탠퍼드에 다니는 형님이 있어서요. 어쩌다 보니 'The Facebook'을 알게 됐습니다.
마이클 저커버그와 'The Facebook'의 성공담을 기사로 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호준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도 하다 보니 느는 것 같아.'
아무렇지 않게 술술 거짓말이 나오는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말이다.
- 슬슬 돈이 필요하다는 걸 저커버그씨도 느끼고 있잖아요. 아닌가요?
사용자가 늘어나는 건 분명 그들에게 좋은 신호였지만 세상사는 언제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늘어나는 사용자 수를 감당하기 위해 서버를 확충하고 확충한 서버를 운영하는 건 모두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창업자라고 뭉친 5명의 가정 형편이 궁색하진 않아 각자의 사비로 충당해 운영했지만 그 방법도 이젠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 ...
- 얼마를 투자할 건지, 그리고 지분은 어느 정도나 원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에도라도 새버린이 할 말이 없어 침묵을 유지 중인 저커버그 대신 투자금 액수를 물었다.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새버린의 발언에 정호준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똑같은 돈을 투자 받아도 '누구에게 투자 받았냐?'에 따라 투자 받은 스타트업을 보는 주위의 시선이 달라진다.
투자자로서 아무것도 이룩한 게 없는 무명 투자자에게 5억을 투자 받은 것과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오성이 운영하는 투자회사로부터 5억을 투자 받는 것. 업계 사람이든 평범한 대중에게든 어느 쪽이 더 비전 있게 다가오는지는 굳이 입 아프게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피터 틸이 50만 달러(575,000,000원)에 10%의 지분을 먹었지. 500만 달러의 가치를 지녔다고 계산한 건데. 나는 얼마를 불러야 할까?'
'The Facebook'에 최초로 돈을 투자한 이는 다름 아닌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피터 틸이다. 그는 2004년 현재 월가에서 명성이 자자한 이였다. 엄청난 특혜로 작용하진 않더라도 그 피터 틸이 돈을 투자한 기업이란 어드벤티지가 알게 모르게 작게나마 있었을 거란 거다.
- 투자금을 이야기하기 전에 'The Facebook'의 가치부터 정해야죠. 여러분은 'The Facebook'의 현재 가치가 얼마라고 생각하십니까?
정호준은 에도라도 새버린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당연히 질문을 질문으로 받는 정호준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 투자하러 오셨다면서. 가치 평가는 투자자가 먼저 해야지.
'정말 이래저래 마음에 안 드네.'
명성이나 힘이 없는 자가 부르는 선제시는 공허한 외침이다. 그 사실을 미국에 와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데 자꾸만 그가 먼저 가격을 제시하는 상황만 만들어진다.
- 400만 달러(4,600,000,000원)
그래서 피터 틸이 평가한 기업가치보다도 더 낮게 불렀다.
정호준의 평가에 다섯 명의 창업자는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인상을 찌푸리는 이, 기뻐하는 이, 표정 관리가 완벽한 이까지.
- 조금 전에 우리를 높이 평가했던 건 거짓말이었나? 겨우 400만 달러?
가장 중요했을 저커버그의 반응은 부정적이기 그지없었다.
- 당장에는 어떤 수익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흑자로 전환될 시기가 언제부터일지도 불분명하고요.
실제로 'The Facebook'은 2009년 9월에 들어서야 처음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 미래의 비전만 가지고 400만 달러를 불렀으면 충분히 높게 평가한 거 아닙니까? 그럼 반대로 제가 묻죠. 저커버그씨는 'The Facebook'의 기업가치가 얼마라고 생각하시는데요?
'The Facebook'이 수익을 창출해내려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단 정호준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기에 저커버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잠깐 침묵하더니
- 그래도 우리의 노력이 겨우 400만 달러에 불과하단 건 납득할 수 없다. 700만 달러.
양심은 있는지(?) 저커버그는 2배를 부르진 않았다.
- 600만.
- 700만.
- 600만.
- 700만.
단답으로 시작된 자존심 싸움(?)이 시작되었다. 줄다리기는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 좋습니다, 700만 달러(8,050,000,000원)
'The Facebook'의 성공을 미래에서 확인하고 온 터라 정호준은 마이클 저커버그가 자신이 협상에서 이겼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적당히 붙어주다가 져줬다.
진 게 이긴 거란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 바로 이런 상황 아닐까?
기업 가치 평가와 관련된 협상을 무사히 마친 정호준과 마이클 저커버그는 지분 협상을 시작했다.
- 210만 달러 투자하겠습니다. 'The Facebook'의 지분 30%를 넘겨주세요.
- 30%나 넘겨줄 순 없어.
- 제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 없다는 전제하에 저커버그씨에게 제 권리를 위임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추후 지분을 판매하게 되면 지분협상과 관련해서 우선권도 드리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많은 지분을 얻고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저커버그를 설득해보려 했지만 계속된 설득에도 저커버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절대로 30%나 내줄 수 없단 저커버그의 고집에 결국 정호준이 또 한 번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자신이 계속 양보하고 있음을 알리며 저커버그에게도 약간의 양보를 받아냈다.
합의 하에 평가된 기업가치보다 좀 더 많은 돈인 200만 달러(2,300,000,000원)를 투자해 25%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추가 투자를 받거나 증자를 할 때마다 지분이 깎여나가겠지만 그때마다 호준 본인에게 돈이 있으면 추가로 투자해 25%의 지분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아냈다.
물론 양보한 것도 있다. 지분 매도할 때 창업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지분을 판매할 협상권을 주기로 했고 저커버그에게 조건부로 지분의 권리를 위임하는 위임장을 적어 주었다.
상담을 마친 다음날 보스턴에 위치한 로펌에 들려 법적인 공증을 모두 마쳤다.
'드디어 잭팟을 터트렸네.'
2021년에 들어서선 1조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지니게 될 기업의 지분을 겨우(?) 수십억으로 얻어냈다는 결과물에 정호준은 전율에 휩싸였다.
'됐어! 됐어! 됐어!'
1개월만 늦었어도 이들은 샌프란시스코로 넘어갔을 거고 피터 틸에게 투자의 기회를 빼앗겼으리라. 추가로 투자를 감행할 기회야 또 생기겠지만 초창기에 하는 투자와 추후 이뤄질 투자는 비용과 받을 지분의 차이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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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을 받아 알아낸 전산실의 위치는 ㈜레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중요한 것을 손에 닿지도 않는 곳에 놔두고 관리하는 인간이 드물 듯 다단계의 핵심인 전산실이 근처에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었다.
조규석은 김진혁 수사과장이 요청한 추가 지원을 전산실로 가도록 지시했다.
- 구속 및 압수수색을 완료했습니다.
습격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연락을 전해 받은 조규석은 정보를 제공해준 강현태 변호사에게 구속과 압수수색이 끝났음을 알렸다.
"변호사를 불러주시죠."
"지방의 4개 법인과 전산실까지 다 털었다고. 계좌가 다 막힌 건 알고 하는 소리야?"
못된 놈들 특징답게 장희팔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변호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서울중앙지검 조규석 검사, 금융사기를 조기에 진압하다.]
[강현태 변호사의 제보로 시작된 금융사기. 피해금액만 1,200억?]
[금융사기의 주범, 장희팔은 대체 누구인가?]
조규석으로부터 수사내용을 공유받은 강현태 변호사는 미리 섭외해둔 기자들에게 정보를 살며시 흘렸고 종류 불문하고 인터넷 신문은 금융사기 검거를 타이틀로 걸었다.
인터넷 신문사에 타이틀로 올라오는 걸 넘어 9시 뉴스에 긴급 속보로 소개되기까지 했다.
정호준이 최소 500배는 넘는 수익률을 안겨줄 투자에 성공한 날 대한민국은 금융사기와 관련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