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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31화 (3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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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석은커녕 지각도 한번 하지 않았던 정호준이 수업을 통으로 빼먹자 김관식과 최준석 그리고 팀플을 하며 만난 이들로부터 염려(?)하는 통화를 받았다.

- 혹시 사정이 안 좋아서, 해외로 튄 거야?

최준석은 혹시 사업이 망해서 해외로 날랐냐는 말까지 직설적으로 해댔다. 박기태에게 그랬던 것처럼 볼 일이 있어서 외국으로 나왔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설명을 뒤로 미뤘다.

무사히 입국심사를 마치고 보스턴 로건국제공항을 빠져나온 정호준은 택시를 타고 하버드 대학교 근처로 이동해 하루를 보냈다. 월요일에 LLC 설립 승인이 완료된다 했기에 혹시나 싶어 하루 지체한 거다.

어차피 이번 주는 여유를 가지고 이 일에 집중하기로 결심한 터라 시간은 많았다.

다음날인 화요일 오후에 하버드 대학교로 향했다.

가까이에 숙소를 잡고 점심 먹자마자 이동했지만 대학교 캠퍼스가 워낙 큰 탓인지 컴퓨터공학부(Computer Science Department)가 사용하는 건물에 당도하기까진 35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조금 낡은 아니 누가 봐도 연식이 좀 돼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 호준은 바쁘게 움직이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났는지 느긋하게 움직이는 일련의 무리를 발견하곤 말을 걸었다.

- 죄송합니다. 잠깐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 아뇨, 제가 지금 바빠서.

호텔에 있을 때나 관광지에 머무를 때보다 훨씬 냉정한 반응들이 잇따랐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데다가 아는 사람도 없고 인맥도 마땅치 않아서인지 제대로 대답을 듣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아예 질문 자체를 못 하게 만드는 냉담한 거절을 몇 번이나 당한 뒤에야 원하는 것을 물어볼 수 있었다.

- 혹시 마이클 저커버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 누군지는 아는데 어딨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이클 저커버그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정호준에게 레게머리를 한 흑인 남성이 다가와 말했다.

- 마이클 저커버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알아.

- 아, 혹시 어디에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 말한다고 찾아갈 수는 있고? 그리고 내가 알려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건데?

속으로 인심 참 야박하다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 뭘 원하는데요?

- 내가 저커버그가 있는 곳까지 안내해 줄 테니까. 수고비로 50불 줘. 다들 바빠서 네가 하나하나 수소문하며 저커버그를 찾으려면 평생 걸릴걸?

평생은 과장이겠지만 그를 찾아 가는 게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 터라 정호준은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물론 조건부로.

- 줄게 50불. 대신 그냥은 못 줘. 네가 나를 저커버그에게 데려다주면 그때 줄게. 막말로 네가 돈만 먹고 튀면 무슨 수로 잡으라고?

- 삭막하기는! 믿음이 부족한 친구구먼.

어깨를 으쓱거리며 과장을 하면서도 흑인은 앞장서서 걸으면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 이동했고 부실 비슷한 곳으로 안내받았다.

- 저커버그, 여기 이 친구가 너를 찾던데?

살짝 길쭉한 얼굴형의 남자. 영상 매체에서나 잠깐 본 큰 성공을 거머쥔 남자 마이클 저커버그를 만날 수 있었다.

- 누군데 나를 만나고 싶데? 왜?

- 그것까진 나도 모르지. 네가 물어봐. 아 그전에 잠깐. 헤이 친구. 우리 정산할 거 해야지.

엄지와 검지를 웅크리며 동전 모양을 그린 흑인의 유쾌한 태도에 정호준은 10달러짜리 지폐를 5장 꺼내 건네주었다. 저커버그가 괴짜끼가 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 프릭튼에게 돈까지 쥐어 주며 날 찾아온 이유가 뭔데?

저커버그가 정호준을 보며 물었고, 저커버그의 주변으로 4명의 백인이 다가왔다.

*****

지구 반대편인 한국에서는 강현태 변호사와 조규석 부장검사가 계획한 프로젝트가 개막할 D-Day가 밝았다.

- 부엉이가 둥지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서울, ㈜레브의 명의로 빌린 사무실 앞에서 잠복근무를 서고 있던 관계자는 타겟인 장희팔이 출근하는 것을 확인하곤 곧장 조규석 부장검사에게 문자를 남겼다.

"자, 그럼 출발하지."

"예."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근해 현장으로 나갈 준비를 끝마친 조규석은 문자를 받자마자 미리 수배해 놓은 수사관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 지금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 저희도 출발하겠습니다.

- 현장입니다.

서울에 위치한 ㈜레브 말고도 ㈜첼린, ㈜씨엔씨, ㈜엘린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덩어리로 파악된 곳들에 이미 인력들이 준비 중이었다. 이 거대한 사기극의 주동자이자 최중요 인물인 장희팔이 머무르고 있는 서울에서 급습을 시작되면 조규석이 미리 섭외해둔 지방검찰청 소속의 검사들이 이후 곧바로 들이닥치는 걸로 이야기가 끝나있었다.

차량 5대가 줄을 지어 장희팔의 사무실을 향해 이동했다. 조규석은 차에서 내려 장희팔의 ㈜레브 사무실을 확인하곤 말했다.

"과장님."

"예, 검사님."

"수사관님들 중에 체력 좋은 분, 믿을만한 분을 이 앞으로 배치해주시죠. 생각했던 것보다 층이 높지 않아요. 궁지에 몰리면 창문으로 뛰어내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하계장! 하계장!"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절망스러운 상황에 놓였는데 뭔들 못하겠는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피의자였기에 대비를 단단히 했다.

- 지금 진입합니다.

돌입을 알리곤 또 한 명의 수사관을 배치해 엘리베이터를 붙잡아 두었고 계단으로 사무실이 있는 층까지 올라갔다.

"건물이 크지 않아 다행히 통로가 하나뿐이군요. 여기도 한 분 남아계시면 좋겠네요."

계단에도 사람을 하나 남겨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조규석 포함 양복을 입은 장정이 열둘이나 줄지어 몰려오자 시선이 집중되었다.

"누.. 누구시죠?"

조규석은 자신의 신분증을 들이밀며 질문에 답을 주었다.

"검찰입니다. 모두 하던 일을 멈추시고 책상 위에서 손을 떼주세요. 손을 위로 올려주시죠."

"검찰이 왜?!"

"손 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금융사기에 연류됐다는 혐의가 적용 중입니다. 협조에 응하지 않으면 금융사기혐의에 더해 공무집행방해죄가 추가되니, 죄를 추가시키고 싶지 않다면 지시에 잘 따라주십시오."

회사가 크건 작건 관계없이 사장의 사무실과 직원들의 공간과 분리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희팔의 사무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이 일하는 공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장희팔의 사무실이 있었다.

바깥에서 시작된 소란 때문에 장희팔은 패닉에 빠졌다.

'검찰이 어떻게 벌써?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금융 범죄에 있어서는 특히 늦장 대응으로 유명한 게 금융감독원이고 검찰이다. 거기에 더해 장희팔은 돈 관리를 철저하게 함으로 구설수조차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벌써 알아채고 자신을 잡으러 온단 말인가?

조규석은 공황 상태에 빠진 채로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수사 과장과 함께 장희팔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장희팔씨. 당신을 금융사기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당신이 하는 말은 당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영장, 영장 가져와! 영장 없이는 안 가!!"

영장을 내놓으라는 장희팔의 외침에 조규석은 미리 발부받은 영장을 펼쳐서 보여주었다.

"여기, 체포 영장 보이시죠?"

조규석과 김진혁 수사과장은 장희팔이 도주할 수 없게 좌우에 서서 서서히 간격을 좁혀 들어갔다.

"제길!"

장희팔에겐 안타깝게도 사람의 몸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창문이 크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큰 창문으로 달아둘걸.'

곁눈질로 창문을 쭉 훑은 장희팔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문을 열고 도주해도 버벅이다 잡힐 게 눈에 훤했기 때문.

자꾸만 뒷걸음 치며 도망칠 틈을 찾는 장희팔의 모습에 김진혁 수사과장이 외쳤다.

"창가로 도망쳐도 소용없어. 이미 건물 밖에도 사람을 대기시켜 놨으니까!"

김진혁 수사과장의 희망을 꺾어는 확인 사살에 장희팔은 결국 체념하고 말았다.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내미는 장희팔의 모습에 김진혁 과장이 품에서 수갑을 꺼냈다.

찰칵! 찰칵!

회귀 전. 피해 금액 5조원에 달하는 최악의 다단계 사기를 일으킨 한국 역사의 남을 희대의 금융사기범 장희팔의 손목에 쇠고랑이 채워졌다.

조규석이 동원한 검찰 수사관들은 핸드폰을 압수하고 전화선을 끊어 직원들이 혹시나 몰래 밖으로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전적으로 차단했다. 밖으로 빠져나갈 소지를 모두 지운 뒤에야 자료를 깡그리 쓸어 담는 압수수색이 시작되었다.

장희팔의 구속을 완료하고 함께 사무실 밖으로 나온 조규석들의 눈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사관들의 모습이 보였다.

"검사님. 여기 있는 인원 전부를 구속해서 청으로 데려가려면 추가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원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지원 요청 마치시면 과장님은 하계장님과 장희팔씨를 데리고 먼저 가시죠. 저는 끝까지 정리하고 들어가겠습니다."

"검사님께서요? 제가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추가로 심문할 게 있어서요. 제가 직접 심문하는 게 저들에게 더 위협적이지 않겠습니까?"

조규석의 말에 김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지원 요청하고 먼저 복귀하겠습니다."

"도주하지 못하게 심혈을 기울이셔야 합니다. 2중 3중으로 관리 부탁드립니다."

*****

김진혁이 하현우 계장과 함께 장희팔을 인솔해 떠나는 것을 지켜본 조규석은 수갑을 찬 채 구석에 모여 있는 일련의 무리에게 다가갔다.

"혹시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 싶어 다시 한번 소개합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 4부 부장검사 조규석입니다."

무리 중 누구도 자신들이 사기에 가담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일까? 감정히 확연히 드러나고 아니고의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의 얼굴엔 두려움, 공포란 감정이 서려 있었다.

"검찰이 습격한 곳이 과연 여기뿐일 거 같습니까? ㈜첼린, ㈜씨엔씨, ㈜엘린. 지방에 있는 3개의 법인도 이곳과 똑같은 상황이라 보시면 됩니다."

조규석의 입에서 법인명이 나올 때마다 그들의 얼굴엔 '어떻게?'란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참 대단하더군요. 지역마다 법인명을 바꿔 다른 회사인 것처럼 꾸며 접점을 없애고, 돈 계산을 철저히 함으로 문제 될 소지를 지운다. 지금처럼 조기에 발견하지 못했으면, 대체 얼마나 커나갔을지 두려울 정도입니다."

조규석이 모든 것을 꿰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자 수갑을 찬 이들의 얼굴을 죽은 사람처럼 가무잡잡해졌다.

발가벗겨진 것 같은 감정을 느끼는 그들을 향해 조규석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전산실도 운영 중이라고 파악하고 있는데, 이곳도 그렇고 다른 법인에 출동한 검사 쪽에서도 그렇고 전산실의 행방이 묘연하네요. 전산실 어디 있습니까?"

입 꾹 다문 채 눈치만 보자 조규석은 냉정한 말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굳이 전산실의 기록이 없어도 돈이 나가고 들어오는 과정만 추적해도 당신들의 죄는 입증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난 반드시 구형할 수 있는 최대 형량을 구형할 겁니다. 당신들의 계획을 언론에도 흘려 판사가 최대한 많은 형량을 부여하도록 유도할 거고요."

반드시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 형량을 부여할 거라고 강조하자 가무잡잡했던 얼굴이 그 상태로 창백해졌다. 그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과 든든한 줄이 없는 상태에서 대한민국에서 주민등록증에 빨간 줄을 긋고 서른을 넘긴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아마 그 어떤 나라의 빈곤층 못지않게 비참할 거다.

자신들의 인생이 여기서 끝났음을 깨닫게 하며 그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린 조규석은 한 가지 구원의 동앗줄을 제시했다.

"저희에게 가장 먼저 전산실의 행방을 알려주는 분께 자수와 협조했던 명목으로 죄를 경감시켜주겠습니다. 누가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선착순의 동앗줄에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제.. 제가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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