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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니언에 올 때처럼 6시 30분쯤 일어난 정호준과 브론시아는 어제 요리해 먹고 남은 음식과 과일들로 간단하게 배를 채우곤 7시가 조금 넘어서야 방을 나섰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운전대를 잡고 LAX공항을 향해 움직였다.
'도착 예정 시간이 8시간 43분이라. 빠듯하진 않겠네.'
브론시아들에게 전해 들은 그녀의 귀국 비행기는 18시 52분. 정호준과 박기태의 비행기는 23시 25분. 중간에 휴게소에 들려 잠깐 피로를 풀며 식사를 하고 쉬어가도 괜찮을 시간이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휑한 자연 그대로인 풍경에 한 번씩 감탄사를 뱉으면서 이동했다. 라스베가스에서 그랜드 캐니언으로 올 때와 달리 아침을 먹으며 정신을 완전히 차린 상태인 브론시아가 자지 않고 옆에서 재잘거려줘서 심심하지도 않았다.
며칠을 같이 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야깃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연애 초기의 커플들처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덕분에 혼자였다면 지루하기만 했을 운전시간은 꽤 즐거웠다.
그들이 LAX공항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1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다행히 늦진 않았네요. 일단 얼른 내리죠.
정호준은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었다.
그런데 짐이 좀 많았다.
"하아~. 아니 갈 거면 자기 짐은 다 챙겨가야지. 딱 필요한 것만 빼서 가면, 남은 짐은 어쩌라는 건지. 나보고 다 챙기라는 거야?"
트렁크엔 브론시아와 마리아, 박기태, 그리고 자신의 것까지. 총 6개의 공항 캐리어가 빼곡하게 실려 있었다. 혼자서 짐을 다 챙겨야 할 처지가 되자 정호준은 갑작스레 밀려오는 짜증에 자기도 모르게 한국어로 중얼거렸다.
- 잠깐만 기다려요. 내가 가서 카트 끌고 올게요.
한국어는 모르지만 인간은 누구나 눈치라는 걸 갖고 있다. 짐으로 꽉 찬 트렁크를 보며 중얼거리는 정호준의 모국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쯤은 얼마든지 추측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브론시아는 재빨리 나섰다. 사실 트렁크를 채우고 있는 캐리어의 70%가 그들의 짐이었으니까.
브론시아는 후다닥 뛰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손으로 카트를 한 대씩 밀며 비뚤배뚤 힘겹게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쾅!
트렁크와 문을 닫고 키를 주머니에 넣고는 브론시아에게 다가가 그녀가 왼손으로 끄는 카트를 양손으로 밀었다.
- 고마워요.
주머니에 넣어뒀던 키로 다시 트렁크의 문을 연 호준은 자신이 밀고온 카트에 그와 박기태의 캐리어를 올려놓았고, 브론시아의 카트에 그녀들의 캐리어 4개를 올려주었다. 차에 두고 내린 것이 없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한 뒤 카트를 밀고 공항 안으로 들어가 키를 돌려주었다.
- 마리아랑 따로 만나자고 정해 놓은 장소 있나요?
- 아뇨.
- 그럼 일단 함께 가죠.
정호준은 박기태와 찢어지기 전에 어디쯤에서 만나면 좋을지 미리 정해두었었다. 호준은 한국항공 안네 데스크가 있는 곳을 찾아 이동했다.
- 아, 드디어 왔네! 왜 이렇게 늦었어?
- 주를 두 개나 건너 왔는데 지금 왔으면 일찍 온 거지. 뭘 늦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늘 말이 고운 법.
미국의 거대한 땅덩어리는 생각도 안 하고 늦었다고 핀잔을 주자 정호준도 까칠하게 대했다.
- 그나저나 언제부터 도착했어?
- 우린 1시 조금 넘어서 공항에 도착헀어.
우리란 표현이 입에 붙은 걸 보니 그들과 마찬가지로 좀 더 친밀해진 모양이다. 브론시아와 마리아는 찰싹 붙어서 디카를 교환해서는 서로의 사진을 공유했다.
바쁘게 서로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는 그녀들을 보며 정호준이 말했다.
- 저녁 먹으러 같이 가는 게 어떨까요? 마지막 식사인데.
정호준의 의견에 따라 공항 내에 있는 식당에서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함께했고 출국심사를 위해 이동하는 그녀들을 배웅했다.
- 덕분에 정말 즐겁게 여행했어요. 메일로 같이 찍은 사진 보내줄게요. 꼭 답장해요.
만난 지 얼마 안 됐기에 눈물을 동반한 이별은 없었다.
조금 특별한 게 있다면 메일 주소를 교환하며 연락의 빌미를 남겼다는 것 정도?
'참 불편한 게 많네.'
2021년까지 살다 회귀한 정호준에게 2004년은 불편한 게 많았다. 모르는 것이 있거나 길을 잃어버려도 언제든 찾아볼 수 있고 찾아갈 수 있었던 2010년대와 달리 길거리에서 인터넷을 못 하는 건 기본이고 로밍을 하지 않으면 아예 연락을 주고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 불편했다.
'SNS가 활성화된 시대에서도 멀리 떨어진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남이 됐는데. 연락을 하면 얼마나 하겠어.'
- 네, 꼭 할게요.
'그냥 좋은 추억으로 남는 정도에서 끝나리라.'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
성공은. 역사에 남을 만한 기록이 될만한 성공은 어느 나라에서든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이런 집중된 시선을 이용하는 이들이 세상에 없을 리 없다.
이는 벌과 나비가 꽃에 몰려드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연예계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관심으로 밥을 먹고 사는 집단인 언론사와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태극기 흩날리며' 천만 관객 돌파 시점은 언제일까?
천만 관객을 돌파할 거라 호들갑을 떠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었고.
- '태극기 흩날리며'가 거둘 예상 수익은?'
- '태극기 흩날리며' 수출액 50억 돌파! 과연 100억도 넘길 수 있을 것인가?
'태극기 흩날리며'가 흥행기록을 새롭게 갈아 치우면 치울수록 영화가 벌어들일 수익을 조명하는 기사까지 생겼다. 그리고 제목과 내용, 문맥만 조금 바꿔 복붙한 기레기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영화의 상승세가 끊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기자들은 이윽고 영화에 투자한 이들까지 찾기 시작했다.
'태극기 흩날리며'의 감독이지만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의 사장이기도 한 박제균은 누구에게 얼마를 투자받았는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먹잇감을 포착한 아니 특종 냄새를 맡은 언론과 기자들은 집요했다.
박제균의 협조가 없음에도 그들은 영화에 투자한 이들을 하나둘 밝혀내기 시작했다.
- ㈜한글&컴퓨터 '태극기 흩날리며'에 투자했었다? 최소 4억의 수익이 예상돼.
정호준이 미국에서 팔자 좋게 놀고 있을 때 기자들은 영화에 투자한 투자자들을 하나둘 밝혀냈고 점차 명단과 액수가 구체화되었다.
*****
공항을 자주 이용해 보지 않은 이들은 짧게는 2시간 많게는 3시간도 일찍 공항으로 가 출국 절차를 밟는다.
정호준들이 심심해할 걸 알아서인지 아니면 본인들이 심심해질 걸 알아서인지 브론시아들은 되도록 오래 머무르다가 출국심사를 받으러 갔지만 그럼에도 비행기 시각보다 1시간은 이르게 출국심사장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하염없이 기다림을 이어가는 정호준과 박기태는 심심해 죽을 맛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이 기다린다는 게 이렇게 불편한 일인 줄은 몰랐다.
6시간이나 기다린 뒤에야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고, 홍콩 국제 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기약 없는 기다림은 마찬가지였다.
15시간을 비행해 25일 수요일 7시 35분경에 홍콩 국제 공항에 당도했는데 인천행 비행기가 22시 46분이라 기다렸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홍콩에서 사용하는 돈인 홍콩달러도 적당히 환전해둔 터라 먹거나 마시는 문제는 크게 거리낄 게 없었지만.
"아, 죽겠다. 6시간 더럽게 안 가던데 15시간은 또 어떻게 기다려야 하나."
박기태의 불평에 딱히 대꾸를 붙이진 않았지만 정호준도 박기태의 말에 100% 공감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마냥 기다리는 게 이렇게 고된 노동인 줄은 정말 몰랐다.
'싼 게 비지떡이다.' '비싼 건 비싼 값을 한다.'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정호준과 박기태는 처절하게 몸으로 체감하는 중이었다.
*****
한없이 느리게만 가는 국방부의 시계도 결국 흘러가는 것처럼 기다림의 끝은 존재했다. 2월 26일 목요일 새벽 3시. 그들은 그리운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4시를 넘긴 뒤였다.
"으아아! 드디어 한국이다!!"
밖으로 나온 박기태는 드디어 돌아왔다는 둥 희희낙락하며 찌뿌등한 몸을 푼 뒤 정호준을 보며 멍청하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택시 타?
"공항버스 타고 가면 돼. 양천구로 가는 거 찾아봐."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공항서비스 평가에서 12년 연속 1위를 달성하는 인천공항은 공항버스 시스템도 정말 잘되어있었다.
그들이 양천구로 향하는 공항버스 정류장을 발견했을 땐 막 버스가 떠난 뒤였지만 배차 간격이 길지 않은 터라 오랜 기다림이 필요치 않았다.
처음 버스를 탔을 때는 깜깜하게 뒤덮인 풍경만 보였지만 일출이 시작되자 대지를 잠식했던 어둠이 사라지며 제 모습을 찾아갔다. 시차 적응과 경유하느라 생긴 피로는 자꾸만 호준의 눈꺼풀을 감기게 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꾹 참았다.
피로에 함락돼 눈을 붙였다가 내릴 곳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람을 켜놓고 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정말 피곤하면 그 소리도 못 들을 수 있기에 참았다.
'잘 자네.'
각고의 노력을 기하고 있는 본인과 달리 박기태는 팔자 좋게 자고 있었다. 순간 짜증이 팍 올라왔지만 참아냈다. 경유를 선택한 건 다름 아닌 호준 본인의 의견이었다.
박기태는 그와 관련해서 아무런 불평불만을 내뱉지 않는데 짜증을 전가하면 안 되는 거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감사합니다."
6시 20분쯤 목동에 도착했다.
*****
아침 먹고 들어가잔 박기태의 제안을 뿌리친 정호준은 집으로 돌아와 샤워했다. 따듯한 온수에 몸을 지지니 참아왔던 피로가 다시 그를 덮쳤다.
덕분에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눕자마자 다시 곯아떨어졌다.
"아 배고파. 몇 시간을 잔 거지?"
햇빛이 들어와 환했던 집이 캄캄한 것을 인지한 정호준은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6시라. 거의 12시간을 잤네.'
- 부재중 전화 6건.
핸드폰엔 박제균 감독의 이름으로 된 부재중 통화기록이 4개, 박남정의 것이 2개. 핸드폰엔 총 6건의 부재중 통화기록이 적혀있었다.
"여보세요."
"부재중 통화가 4개나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통화 가능하십니까?"
"네 가능합니다. 피곤하실 텐데 이렇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박제균은 정호준이 미국으로 놀러갔다 온 걸 박남정에게 전해 들었는지 사과부터 했다.
"혹시 무슨 일 생겼나요?"
박제균은 정호준이 한국에 없는 사이 벌어진 상황을 설명했다.
"언론사들은 투자자님의 정보에 접근했을 겁니다. 정보를 보호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기자들은 한국인들이 왜 스스로를 의지의 한국인이라 칭하는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태극기 흩날리며'에 투자한 명단을 얼추 확보했고, 언론사가 쉽사리 건드리기 힘든 이들을 제외하곤 하나둘 터트렸다.
"혹시 감독님꼐서 친분을 갖고 계신 언론사가 있을까요?"
"그건 왜?"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한글&컴퓨터처럼 인터뷰해서 되도록 저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봐야죠."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어쨌든 투자 성공에 대해 다루는 일이다.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으면 먼저 다가가 호의를 보이고 최대한 본인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게 맞았다.
'귀국하자마자 귀찮게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