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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8화 (1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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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가지각색의 개성을 지닌 생명체다

남을 속이거나 깊은 친분의 친우를 배신하는 걸 거리낌 없이 저지르며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반듯하게 살아가며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삶은 사는 이들도 있다. 넘치는 부를 가졌음에도 더 욕심 내는 사람이 있고 부유하지 않은 평범한 형편, 부족한 형편에도 자신보다 더 힘든 형편의 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극과 극 성향 사이에 다양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다양하디 다양한 인간의 성향 만큼이나 인간의 외모 또한 가지각색이다.

못나거나 멋지거나 예쁜 생김새는 성형을 통해 바꾸지 않는 이상 평생 따라가지만, 인상은 조금 다르다. 사람이 풍기는 기도, 분위기 그리고 이런 것들이 합쳐서 생기는 인상은 대개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녹아 들어가 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은 족히 이른 시간에 청담동에 위치한 한식집에 도착한 김철수는 정호준과 강현태가 오기를 기다렸고, 정호준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걸 보자마자 정호준에게 사죄를 청했다.

"미안합니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워서, 부모님께는 물론이고 학생에게까지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했습니다."

정호준의 시선에 보이는 인자하지만 고생을 많이 한 그렇지만 또 아이러니하게도 곧고 바른 고집도 있어 보이는 인상이라 파악한 게 잘못 생각했나 싶을 정도로 김철수는 한참 어린 정호준을 향해 허리까지 굽히며 고개를 숙였다.

"내 자식이 잘못했고, 잘못한 만큼 벌 받는 게 사회의 이치고 정도란 걸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감옥에 구속돼 무섭다고, 힘들다고, 잘못했다고, 여기서 꺼내 달라고 외치는걸. 나는 흘려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박'로펌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갖고 법조계 전반에 걸쳐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다지만 형사합의조차 안 한 상태에서 3대 과실을 모두 범한 김창호를 무죄나 집행유예 판결을 끌어내기엔 여러모로 무리였다.

때문에 1심에서 형량이 결정된 김창호는 경찰 관계자 손에 이끌려 감옥에 구속됐다.

"뻔히 내 자식이 잘못한 걸 알고 있으면서도 부모 마음은 자식을 그렇게 둘 수 없더군요. 미안합니다. 마땅한 벌을 받게 놔두지 않아서. 정말 미안합니다 호준 학생과 학생의 부모님께."

잘나도 자식이고 못나도 자식이다. 자식이 그 어떤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부모는 결국 자식의 편일 수밖에 없었다. 늦은 나이에 본 하나 뿐인 자식이 감옥의 면회실 유리 너머에서 후회하고 오열하며 힘들어하는데 그런 자식을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김철수는 아들의 절규를 외면할 수 없었다.

김철수에겐 자식을 도울 능력이 있었기에 더 그랬다.

"앞으로 저와 제 내자가 얼마나 더 살진 모르겠지만, 평생 호준 학생의 부모님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살인이란 중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것도 불편해서 못사는 사람이 있다. 김철수는 명백히 후자의 인간이었고 그래서 합의하는 과정에서 정호준의 입장을 배려하고 또 배려해주었었다.

김철수가 정호준에게 20억이란 거금을 합의금으로 선뜻 내어준 것도 김철수의 그런 성향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김철수의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는데 정작 당사자인 김철수는 돈에 큰 욕심이 없었다. 충분한 보상을 하는 거로 마음속 불편함과 죄책감을 덜고, 자식을 감옥에서 꺼내거나 형량을 줄일 수만 있다면 얼마를 줘도 남는 장사다.

"당신께서 제게 많은 배려를 해주신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만 고개 드시죠. 그렇게 고개를 계속 숙이고 계시면 제가 곤란합니다."

회귀 전 김철수 부부가 어떤 심정으로 부모님의 묘소를 매년 찾아왔었는지를 진심 가득한 사죄를 통해 느낀 정호준은 김철수의 사죄를 받아들였다. 죄는 김창호가 저질렀는데 사죄는 김철수가 청하는 상황도 이상했고 말이다.

사죄를 받으며 자신을 일으키는 정호준의 손길에 굽어졌던 김철수의 허리가 조금씩 펴졌다. 허리를 곧게 세운 김철수의 눈을 쳐다보며 정호준은 말했다.

"큰돈을 합의금으로 받아 놓고 이런 부탁을 드리는 걸 뻔뻔하다 여시길 수도 있지만. 2번, 딱 2번만 도와주십시오. 절대 제 이득을 위해 도와 달라 청하지 않겠습니다."

스르륵!

정호준이 김철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부탁을 할 무렵 강현태가 격자로 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어떻게 대화 좀 나누셨습니까?"

*****

부모님의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기억 속에 있는 미래 사건들을 정리하며 돈을 벌 계획을 짤 당시 정호준은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시스템의 허점이나 전문가가 실수한 걸 놓치지 않고 받아먹으면서 이득을 보는 것까진 시도해도, 내 힘으로 밝히는 게 가능한 주가조작판에 끼어들지는 말자.'

주가조작을 감행하는 세력은 대개 그들끼리 미리 사전에 약속한 매도가가 있다. 주식을 만지는 쪽에서 일한 게 아니었고, 대한민국에 주식열풍이 불기 전까지 주식에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은 정호준이다. 당연히 주가조작 사례들을 모두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소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주가조작 사건은 알고 있다.

세력들이 결정한 주가의 최고점이 어디인지도 말이다.

이를 이용해 세력들보다 한 발 더 빨리 주식을 정리하면 정호준은 분명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정호준은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고 싶진 않았다.

정호준이 세력보다 한발 빨리 매도한다 해도 세력들의 갖게 될 이득의 크기가 작아질 뿐이지 그들이 이득을 본다는 사실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정호준과 세력이 벌어드린 수익은 모두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투자한 평범한 개미들의 피와 땀이 서린 돈이었다.

밝히는 게 가능한 조작을 밝혀 돈을 못 번다고 정호준이 가난해지진 않는다.

'세력들이 주가를 띄우기 위해 자본을 투입하는 그 초창기에 건드려서 일망타진하자.'

한 번 주가 조작으로 재미를 본 녀석들은 다시금 주가 조작을 시도한다. 성공을 통해 주가를 제 맘대로 유도할 돈과 경험을 쌓은 이들이 쉽게 큰 돈 벌 수단을 포기할 리 없잖은가.

여럿이 모여 세력을 형성해 치던 사기를 둘 셋 정도만 모여 칠 수 있게 되리라.

정호준은 최대한 그 꼴이 나지 않게 막고 싶었다.

'세롬이야 이미 예전에 일어난 거라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일어날 것들, 내가 아는 주가조작 사건들은 최대한 방해하자. 크게 털어먹을 녀석들만 손해를 보고 붙잡히게 만들어도 주가조작 사례는 줄어들지 않을까?'

대한민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주가조작을 모두 막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저 회귀 전에 일어났던 건수보다 조금만 적어져도 자신의 노력은 성공한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정호준이 주가조작으로 손해 보는 이들의 운명을 바꿔줘도 그들은 또 어디선가 돈을 잃을지 모른다. 돈을 벌고 싶고, 좀 더 잘 살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한 주식이지만 기관과 큰손들이 전해 듣는 정보를 그들은 몰랐고, 이는 개미들의 치명적인 결점이다.

주식 하는 사람들이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판다.', '뉴스에 나올 때는 이미 늦은 거다.'라고 말하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정호준도 주가조작 사건을 초장에 잡아내 돈을 잃어버릴 뻔한 것을 구해줘도 어디선가 돈을 잃어버릴 이들이 대다수란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그들을 돕는 일이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이를 잡아내는 과정에서 나란 사람의 명성과 신뢰가 쌓이게 될 테니까. 좋은 일 하면서 내 이름에 대한 신용도 올라가면 그거면 됐지 뭐.'

자본주의 사회에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자산이 되어줄 거다.

정호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주가조작에 참여해 돈을 벌지는 말자는 기준을 정하면서 정호준이 새롭게 계획한 2004년의 목표가 하나 생겼다.

'금융사기(다단계)가 일어나는 걸 막자. 장희팔이 돈을 챙겨 달아나기 전에, 아니 몸집을 크게 불리기 전에 잡아보자.'

살인은 분명 용서 받을 수 없는 중범죄지만, 금융사기는 국가마다 그 기준이 모호하다. 다만 정호준은 금융사기(다단계) 또한 용서해선 안 될 중범죄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살인은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만 고통받는다면, 다단계는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 그리고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 주변의 친지들과 일가친척 모두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일이었으니까.

금융범죄에 심각성을 잘 인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폰지사기범들에게 종신형을 때려 금융사기범들이 죽을 때까지 감옥에 구속되게 만든다. 그런 미국과 달리 대한민국은 금융범죄에 관대했다.

'수십 억, 수백 억 횡령한 금융사기범들은 경제사범으로 분류해 특별시 하는 게 어쩌면 이것부터가 잘못된 걸 수도.''

경제사범이라 불리는 이들은 남을 속여 번 돈으로 전관예우 변호사를 샀다. 수임료 수십 억을 사용해 무죄나 그에 준하는 결과를 받아내 남은 수십 억, 수백 억을 갖고 해외로 나가 잘 먹고 잘살았고, 대기업의 오너 가문의 누군가가 횡령을 저질러도 양형기준이란 새로운 기준을 달아주는 것 또한 금융범죄의 관대함을 증명하는 증거 중 하나였다.

금융사범에 대한 법의 관대함은 정호준이 죽기 직전인 2021년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법이 엄격할 수 없다면, 피해가 커지기 전에 붙잡는다.'

정호준이 내린 결론이었다.

*****

그렇게 크고 올바른 뜻을 세웠지만 세운 뜻이 무색하게 정호준에겐 당장 그들을 막아설 힘이 전무했다. 3년, 아니 2년 만이라도 정호준에게 시간이 있었다면 그들을 저지할 최소한의 힘을 갖췄을 텐데 말이다.

'힘이 없다고 가만 앉아서 포기할 순 없지.'

계획을 세울 당시 무력감을 느끼긴 했지만 차근차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궁리했고 답을 찾아냈다.

'내가 못 막으면 힘 있는 다른 사람이 막게 만들면 되잖아.'

본인이 못하면 다른 사람이 그들을 막도록 유도하면 된다 생각한 정호준은 안 좋은 일로 엮였지만 그 과정에서 최대한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김철수와 법조계를 움직일 힘이 있는 변호사 강현태가 떠올랐다.

'3월쯤 만나는 게 가장 좋았을 텐데.'

장희팔은 2004년 1월부터 2008년 9월까지 활동했고, 2008년 10월에 회사의 전산망을 망가트려 수사의 발목을 잡으며 잠적했다.

'최소한 3개월은 묵혀둬야 활동 내용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날 텐데.'

정호준은 3월 말쯤 장희팔에 대한 정보를 넘겨 4월이나 5월쯤 강현태가 움직이는 것을 설계했다.

처음 세운 계획이 어그러졌지만 어쩌겠는가?

본인들이 그때는 시간이 안 난다는 걸.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선택한다. 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장희팔이라는 이름 혹시 아십니까?"

강현태가 격자로 된 문을 열고 들어와 함께 식사를 마친 뒤 정호준은 강현태와 김철수를 이 자리에 부른 본론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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