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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과를 내기에 30일이란 기한은 어떻게 봐도 길다고는 말할 수 없는 시간이다. 하물며 정호준에게 남은 시간은 30일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조금 전에 결의했으면서 시간이 없다고 주저앉고 포기할 순 없었기에 하루하루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수학은 이해하는 거지, 암기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수학은 암기가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과목이라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위권 학생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영어가 단어의 누적으로 시작되는 거라면 수학(수리)는 개념과 공식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야 하는 과목이었다.
기본적인 공부 메커니즘은 이미 다 꿰고 있던 터라 정호준은 곧장 집을 나와 중학교 문제집을 샀고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정호준은 새로운 기적을 맞이했다.
'이게 된다고?'
집중해서 읽는 것만으로도 개념이 머릿속에서 정리된다.
더 정확히는 기억이 난다고나 할까?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을 한 적 있을 거다. 분명 아는 것 같은데 갑자기 답이 떠오르지 않는. 그리고 답을 들으면 '맞다.' '아 그거였지?'와 같은 반응이 절로 나오는 그런 상황 말이다.
경우는 조금 달랐으나 정호준의 상황이 딱 그에 들어맞았다.
30대 후반의 정호준의 정신(영혼)은 공식과 풀이법을 완전히 잊어버렸지만, 19세 정호준의 신체(뇌)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덕에 정호준은 완전기억능력자가 된 것 같이 반복해서 여러 번 보지 않아도 개념의 암기가 가능했다.
'암기라기보단 떠올렸다는 말이 올바른 표현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되새긴 공식들은 다음날에도, 모래가 지나도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닷새 만에 중학교 3년 과정의 공식과 개념을 훑고 문제 풀이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고교과정에 올라온 뒤론 더 수월했다.
위와 같은 현상은 공부의 흔적인 필기가 곳곳에 남아 있는 수학의 정석이나 다 푼 고교 문제집을 볼 때는 극에 달했으니까.
문제를 풀다 종종 막힐 때가 있었던 중학교 과정과 달리 개념 정리를 끝내고 고교 과정이 수록된 문제집이나 모의고사를 풀 때는 막힘이 없었다.
'오랜만이네. 이렇게 치열하게 공부하는 건.'
정호준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학벌이 왜 필요한지'와 같은 동기 부여가 비슷한 연령대의 그 누구보다도 잘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냉정한 시선으로 스스로를 돌아봐도 최선을 다했다고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있는 힘을 다했다.
"하아~, 지친다."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느라 정신적으로 지치긴 했다. 다만 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똑같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예비소집일이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호준은 전생과 마찬가지로 구로고등학교 고사장에 배치 받았다.
1981년 개교해 연식이 20년을 넘긴 학교답게 고사장 상태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최신이라 말하기엔 부족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이야 정호준의 모교 강서고등학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말은 즉 구로고등학교 고사장으로 배치 받은 강서고 학생은 시험을 치르는 환경 자체가 모의고사를 봐 왔던 모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었다.
'뭐 물론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지.'
환경의 차이.
수험생들이 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 중 하나다.
하지만 정호준에게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모의고사를 봤던 것조차 그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데 대체 무슨 수로 환경의 차를 어떻게 체감하겠는가?
전생과 다른 게 몇 있다면 하나는 멘탈을 부여잡고 준비를 했다는 거고, 또 하나는 돈 많고 극성 맞은 부모를 둔 학생들이 수능 직전에 받곤 하는 족집게 과외를 받았다는 거다.
그것도 초일류급이라 불려도 모자람이 없을 강사의 족집게 과외로.
재벌가나 정치인의 자녀, 그리고 거부들이 고용하는 능력 있는 족집게 과외 선생은 돈만 가지곤 고용하기 어려웠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정호준은 직접 알아보는 대신 온갖 군상들이 모이는 연예계에서 수년을 버텨온 박남정의 인맥을 빌렸다.
"나름 그 바닥에서 명성 좀 있는 분으로 모셨다. 기태 녀석 거 낼 때 네 것도 같이 냈으니까, 녀석만 잘 챙겨서 같이 듣고 오면 된다."
"그러실 필요 없는데요. 계좌번호 주시면 바로 이체하겠습니다."
아직 상속과 관련된 정리가 끝나지 않아 수중에 돈이 넉넉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호준에겐 장례식과 관련된 비용을 처리하고 남은 조의금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인맥만 소개 받고 정당한 값은 지불하려 했다.
"됐다. 그쯤은 해줄 수 있다. 어른이 호의를 베풀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되는 거다."
박남정은 수백 만원은 호가할 게 분명한 족집게 과외 비용을 흔쾌히 계산해주었다.
친한 사이일수록 금전적인 계산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 믿고 전생에서도 그 믿음대로 살아온 게 바로 정호준의 인생이었다. 금전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빚이 생기는 걸 원치 않았기에 정호준은 박기태 편에라도 돈을 들려 보내려 했다.
그러나.
"됐어. 아빠가 내주겠다 한 거잖아. 나한테 돈 줘 봐야 난 그 돈 받을 생각 없어. 그리고 내가 그 돈을 어떻게 받냐?!"
박기태 또한 박남정이 그랬던 것처럼 단호하게 거절했다.
돈에 출처를 듣고는 표정까지 굳히며 절대 안 받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참 고마운 인연이다.'
절친을 둘셋만 사귀어도 성공한 인생이라 했던가?
사교성이 안 좋은 탓인지 박기태를 제외하면 절친이라 부를 만한 이가 없었지만 정호준은 박기태만으로도 충분했다.
정 깊고 호의 가득한 이 질긴 인연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
2003년 11월 05일.
고3과 재수생을 포함한 N수생들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대학수험능력시험 날이 밝았다.
- 이번 정류장은 대림, 대림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정호준은 집 앞의 전철역 목동역에서 탑승해 영등포구청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 대림역에 당도했다. 대림역에서 내린 정호준은 집에서 머릿속에 넣어둔 경로를 통해 움직였다.
전생에도 현생에도 예비소집일 날에 굳이 수험장에 가본 적 없었지만 그것은 딱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 못 찾겠으면 택시 타면 되니까.'
스마트폰이 없는 시대였기에 핸드폰 길 찾기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네비도 없고 위치도 가물가물하긴 했지만 모르면 가만히 남을 따라가면 반이라도 가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대로변까지 걸어 나가 도보를 통해 이동하는 일련의 무리를 따라 걸었고 무리 없이 구로고등학교에 당도할 수 있었다.
수험표를 꺼내 무사히 본인의 자리에 착석했다.
"혹시라도 휴대폰이나 MP3 같은 전자기기 소지하고 계신 수험생께서는 지금 제출하세요. 이 시간 이후로 전자기기를 소지하다 적발되면 부정행위로 간주되어 응시가 취소됩니다."
전자기기를 소지한 이들로부터 전자기기를 제출받는 시간을 가진 뒤 수험번호와 수험생이 일치하는지 등을 확인했고 그렇게 2003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시작되었다.
"수험자분들. 손에 쥔 필기구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세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2003년도 수능이 끝이 났다.
제출한 핸드폰을 돌려받아 건물 밖으로 나오자 어둠에 물든 밤하늘이 보였다.
뭔 정신으로 시험을 치렀는지, 시험을 어떻게 봤는지 평가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혼란 가득했던 회귀 전과 달리 이번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감이 왔다.
'나름 괜찮게 본 거 같다.'
정확한 결과는 답안지가 뜨고 가채점을 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구로고등학교 고사장은 시험을 끝마친 자식들을 데리러 온 부모와 가족들 그리고 그들이 끌고 온 차들 때문에 시끄럽고 복잡했다.
"고생 많았어."
인파를 헤치며 교문을 향해 이동하는 정호준의 시선에 시험을 끝마치고 나온 자식을 안아주는 그런 훈훈한 광경이 보였다.
"시험 보는 데 춥진 않았고?"
정호준이 교문 밖을 나서는 순간까지 자식을 데리러 온 부모 중 그 누구도 자식에게 잘 봤냐고 묻는 이가 없었다.
결과를 물으며 부담을 주기보단 먼저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말하며 안아주는 그런 광경은 고사장까지 찾아와 자식을 챙기는 부모의 애정을 느끼게 했다.
'뭐 물론 차에 타거나 식사하면서 잘 봤는지 묻긴 하겠지만.'
그거야 수능을 치룬 자식을 둔 부모로서 당연히 궁금할 수 있는 거였다.
******
집으로 돌아오니 시계 바늘은 6과 7 사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샤워를 마친 정호준은 저녁을 뭐 먹을지 고민하며 답안지가 뜨기를 기다리던 정호준에게 익숙한 손님이 찾아왔다.
박기태가 맥주와 소주, 복분자주, 매화주, 양주까지. 와인과 보드카를 뺀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술이 담긴 검은 봉투 2개를 양손에 들고 놀러 온 것.
"집에 있는 술 몇 개 가져왔어. 수능도 끝났겠다 치킨이랑 보쌈시켜서 술이랑 같이 먹자."
한국에서 술을 구매하기 위해선 법적으로 20세가 되어야 가능하다. 20살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가 술을 구매하는 것과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하는 것 쌍방 모두에게 불법이다. 보호자와 함께 마신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면 예외로 빠질 수 있지만 말이다.
일진이라 불리는 이들처럼 누군가를 괴롭히고, 돈을 갈취하는 등의 불량한 학창 생활을 보내진 않았지만, 돌아가신 그의 부모님과 박기태의 부친은 술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정호준의 경우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부친으로부터 술을 배웠을 정도로.
'수련회나 수학여행 갔을 때도 술을 챙겨온 놈이니까 뭐.'
이미 술을 챙겨온 전적이 있는 놈이다. 양손에 술을 바리바리 싸 들고 술을 마시자 말하는 박기태의 행동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다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아버님 술을 그렇게 니 맘대로 가져와도 괜찮은 거야? 아니 그 이전에 아버님이랑 식사 안 해? 오늘 수능 마친 날이잖아."
다른 일도 아니고 수능이란 큰 이벤트를 치른 직후다. 시험을 잘 봤고 못 봤고를 떠나 이런 기념비적인 날에는 가족끼리 식사 자리를 갖는 게 맞지 않겠는가?
정호준의 상식으론 그게 올바른 일이었다.
"아침에 얼굴 잠깐 봤으면 됐지 뭐. 어차피 촬영 시작해서 한동안 얼굴 보기 힘들 거야. 아침에 잠깐 봤을 때 시험 잘 보란 말이랑, 미안하다고 오늘 집에 못 들어올 것 같다고 미리 이야기 했었어. 그때 술도 가져가서 너랑 먹겠다고 이야기해뒀어."
박기태를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정호준의 의도와는 달리 박기태는 술자리를 함께 하는 데 거리길 게 전혀 없다 답했다.
'촬영 들어가셨구나.'
박기태의 부친 박남정은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망설이지 않고 배울 수 있게 아낌 없는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게다가 친구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호준뿐만 아니라 다른 반 친구들로부터도 종종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정도로 박남정은 객관적으로 봐도 괜찮은 이였다.
하지만 그렇게 부러움이 대상이 되는 박남정이라도 직업 때문에 갖게 되는 반대급부는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모든 것엔 장단점이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회귀 전에는 수능 끝난 날 안 찾아왔는데... 신기하네.'
그가 좌절에 빠져 흐리멍덩하게 있지 않고 잘 극복한 모습을 보여준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