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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인데 황녀가 되었다-46화 (46/146)

황제인데 황녀가 되었다 46화

나는 드물게 심각한 얼굴을 한 그에게 명령했다.

“한동안 황실 마법사들을 아르시스의 각 지역에 파견하고, 가급적이면 마물이 보이는 즉시 처분하라고 알려.”

“알겠습니다. 어차피 곧 축제일이니, 마법사들이 황궁 밖을 나가는 것도 그리 큰일은 아닐 겁니다. 마법사들에게는 비밀리에 명령을 내리고, 표면적으로는 축제를 돕는 것으로 하죠.”

“그래. 그리고 기사단은, 지금까지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황궁의 안전을 지킨다.”

내 명령을 들은 리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가 방을 나간 뒤 내가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의문에 내가 멈칫했다.

‘잠깐만, 레르하겐 님은 이것도 아시나?’

* * *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 수도에서 세베르 켈리어드의 귀환을 가장 반기는 이들은 다름 아닌 그가 복귀한 중앙기사단의 기사들이었다.

총 세 개의 분단으로 이루어진 중앙기사단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세베르 켈리어드는 한 번쯤 대련을 해보고 싶은 상대였고, 설사 바닥에 꽂혀도 기꺼운 그런 상대였다.

그러다 보니 세베르가 중앙기사단으로 복귀한 뒤, 기사들의 대화의 주제 대부분은 세베르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기사단장으로서 자리를 비운 것에 지대한 아쉬움을 안고 있던 이들은, 이 며칠간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중앙기사단 제1분단의 기사, 점심 식사를 끝내고 기사단으로 복귀하는 요한 이슨은 이미 한 시간째 세베르와 관련된 이야기만 꺼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오전에, 응? 제2분단의 대장 아론과 대련을 할 때, 응? 거기서 아론이 옆으로 베니까 바로 쳐 내는 거, 응? 진짜 멋있었다니까.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반응이 빠르지.”

“그래, 그래, 그런데 인간적으로 같은 말 좀 그만할 때 되지 않았냐? 단장님이 대단한 건 나도 안다고.”

아일린은 그런 요한의 재잘거림을 옆에서 듣다못해 목 부근에서 찰랑거리는 단발을 살짝 뒤로 넘기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비록 그녀 또한 세베르 켈리어드를 누구보다도 존경하지만, 친구인 요한은 아까 전부터 똑같은 말만 하고 있었고, 그에 그녀는 이미 그 내용을 거의 외워 버릴 지경이었다.

친우의 반응에 요한이 흥 코웃음을 쳤다. 그는 깔끔하게 넘긴 갈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다시 한번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뭘 모르는 녀석들. 이제 재스민한테 실컷 말할 테다.”

“네 여자친구는 아직도 그걸 견디냐? 잘해 줘. 너랑 사귀어 주는데.”

“뭐라고? 이…….”

“둘 다 그만해.”

“아니 대장, 왜 내가 반격하려고 할 때 잘라요.”

요한의 억울한 목소리에 앞서 걷던 제1분단의 대장인 체인즈 필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에 요한이 불만 가득한 얼굴을 했다. 이제 연무장으로 돌아가려던 그들은, 이내 멀리서 보이는 인영에 멈춰 섰다.

“어? 단장님이시다.”

“뭐? 어디, 어디? 어? 저기 계시네. 캬, 역시 오늘도 단정하고 절도 있는 모습, 역시.”

“같이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 분은 누구시지?”

“어…… 델멘 공작가의 막내 공자 아니신가?”

“폐하의 보좌관?”

“왜 폐하의 보좌관이 이곳에 있어?”

그렇게 말하는 기사들의 눈가에 의문이 서렸다.

그러나 어쨌든 이곳은 황궁이었고, 황제의 보좌관이 대공을 찾아오는 일은 드물긴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괜히 방해하지 말고 조용하게 연무장을 돌아가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듯한데.”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세베르의 얼굴은 평소보다도 더욱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결국 기사들이 숨을 죽이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때, 힐끔힐끔 세베르가 있는 쪽을 보던 요한이 작게 입을 열었다.

“야, 그런데 말이야. 궁금하지 않냐?”

“주군과 상사의 대화에 끼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아니, 그거 말고. 내 말은, 단장님의 검에 있는 저 리본, 저 어울리지 않는 리본, 궁금하지 않냐고.”

그제야 옆에서 시큰둥하게 서 있던 아일린이 고개를 돌렸다.

덩달아 몇몇 기사들의 시선이 세베르의 허리춤에 있는 검에 꽂혔다.

고아하면서도 천박하지 않게 화려한 디자인으로 세공된 검 손잡이에 빨간색 리본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가 봐도 검이나, 세베르 자체와는 다소 이질적이라서, 기사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저거, 여자 머리끈 같지?”

“그렇지 않을까?”

“궁금하다. 누가 준 걸까?”

“정말 궁금할 것도 많네. 근데 나도 궁금하다.”

“어떤 여자일까?”

“혹시…….”

그러나 그때였다. 갑자기 말수가 적어진 채 뭔가 생각하던 요한이 갑자기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고 입을 열었다.

“폐하?”

요한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기사들의 얼굴에 미묘한 기색이 서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옆에 있던 아일린이 갑자기 요한의 뒤통수를 때렸다.

퍽-!

“야!”

“말조심해. 함부로 입에 올릴 분이 아니야.”

“하지만…… 우리 단장님이 애지중지하면서 갖고 다닐 물건이라고는.”

“게다가 폐하는 이미 황녀 전하도 있으셔. 이런 건 좀 신중하게 말을 내뱉어야 해.”

“아니 그렇지만 너희들도 그동안…….”

“쓰읍.”

결국 요한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튼 나만 이상한 놈이지.”

“알면 됐다.”

곧 다시 티격태격하기 시작한 요한과 아일린을 말리며 기사들이 분분히 연무장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와 동시에.

“중앙기사단의 이들이 이렇게 활발할 줄은 몰랐습니다.”

‘본의 아니게’ 기사들의 대화를 전부 들어 버린 리건이 세베르에게 물었다.

에슈트의 명령을 받아 세베르에게 상황을 알려 주러 온 그는, 방금 전 일어난 ‘재미있는’ 대화에 반응하듯 연무장을 힐긋 보았다.

그러나 정작 리건의 물음에도 세베르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얼굴을 굳히고, 리건을 향해 입을 열었다.

“기사들의 가벼운 입은 내가 처리할 문제다. 그래서, 내게 알릴 것이 그것밖에 없나?”

세베르의 반응에 리건이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에게 하기에는 다소 무례한 모습이었으나, 애초에 리건이 ‘인간적인’ 얼굴을 하는 것은 에스트리아의 앞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세베르는 굳이 리건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았다.

다만.

“카르트리에르 숲에서 마물이 출몰했다는 소식은 나도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이미 출몰을 했다는 것까지.”

“역시 대공 전하의 정보력은 저희가 무시할 바가 못 됩니다. 저 또한 대공 전하께서 아실 것이라고 폐하께 그리 말씀드렸는데 꼭 전하께 전해야 한다고.”

그러나 정작 리건의 말에 세베르는 다른 것에 반응했다.

“폐하께서 깨어나셨나?”

“가끔 의식이 있는 정도라 국정만 보시는 편입니다.”

“혹시, 더 악화되거나 하는 것은 없나?”

“그것을 그리 걱정하시는 분이, 그때 그렇게 수도를 떠나셨습니까.”

그 순간 세베르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리건은 제가 실수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굳이 자신의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에스트리아에 관한 문제에서, 묘하게도 우위를 점하는 것은 언제나 리건이었다.

그녀의 보좌관이라는 사실은, 놀랍게도 세베르가 언제나 리건에게 한 수 접어주도록 했다.

물론, 어디까지 일정한 정도에서일 뿐.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내가 안다.”

“그럼.”

“하나 델멘 경. 그건 경이 신경을 쓸 일이 아닌 것 같군.”

리건은 세베르의 목소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냉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것이 세베르가 용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무례라는 것을 알았다.

결국 리건은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옮겼다.

곧 주변은 다시 고요함을 찾았다. 세베르는 그대로 얼굴을 굳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고 싸늘한 목소리가 나지막이 공기를 울렸다.

“지시한 건?”

“전부 처리했습니다. 마탑에서 협조에 감사를 표해 왔습니다.”

“이제 곧 감사절이다. 그전까지 감히 마물을 수도에 들이려는 자들의 씨를 말려야 할 것이다.”

“네.”

“그리고.”

세베르는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사실’은, 절대 페하께 함구하라.”

애초에 그것이 협조의 조건이었으니.

“존명.”

말을 마치자마자 사내가 사라졌다. 세베르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얼굴에 약간의 피곤이 섞였다.

그는 습관적으로 제 검에 매인 리본에 손을 올렸다. 부드러운 벨벳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그제야 조금 진정되는 듯하여서, 세베르가 입을 꽉 다물었다.

* * *

그날 이후 마물의 출현에 대한 보고는 들려오지 않았다.

마탑에서 오늘 왕실에 접촉을 한 것 같다는 밀정이나 사신들의 보고는 있었지만, 다행히도 더 사상자는 없는 듯했다.

- 요즘 묘하게 마탑의 인력이 늘어난 느낌인데, 이 상황에서 마탑이 새롭게 마법사를 모집할 리가 없고, 누가 협조를 해 주었을까요?

그러다가 문득 들려온 보고에 잠시 의문을 품던 나는, 그날 오후 세베르에게 다녀간 리건의 말에 해답을 얻었다.

“켈리어드 대공 전하께서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 그럼 마탑에 협조했다는 그 미지의 세력이 켈리어드 대공가의 마법사들이겠군.”

“네?”

“켈리어드 대공가의 마법사들은 마탑이나 황실 마법사들보다 공격력이나 방어 면에서는 떨어지지만, 딱 하나, 흔적을 쫓고 탐색을 하는 면에서는 기가 막히게 출중하거든.”

리건은 내 말에 다소 미묘한 얼굴을 했다.

“벌하지 않으십니까? 소식을 알고도 전하지 않았는데. 게다가 사적으로 마탑에 협조까지.”

“세베르 켈리어드가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내게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두 가지 가능성이겠지. 누군가를 감추거나, 아니면 스스로 처리를 할 수 있다고 여겼거나.’

하지만 전자라면 애초에 소식을 이미 들었다는 티를 내지 않았을 것이고, 후자라면 다소 건방진 감이 있었다.

다만.

‘너도 참 한결같이 나를 싫어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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