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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는데 첫사랑이 수상하다-30화 (30/189)

30화. 마차에서 내려선 아가씨들 (3)

잡화점처럼 꾸며는 놨지만 딱히 눈길을 끄는 것이 없어서, 세 사람은 기다리는 동안 괜히 벽이며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그 어색함이 조금 불편해지고 있을 때쯤에 반대편의 문이 열리더니 라구가 나타났다.

“일단 들어오세요.”

그의 손짓을 따라 들어선 곳은, 작은 응접실이었다. 궁정백저의 소응접실보다 작았지만 큰 탁자에 소파, 벽난로 등 있어야 할 것은 다 있었다.

그런데, 원래 이쪽 방향이면 알레지오여야 하는데?

“여기는 어디인가?”

“고티유 길드에 파견 나온 마법사들의 숙소예요. 실제로는 마차로 한 30분쯤 떨어진 데에 있죠. 차 드시겠어요?”

저들도 모르는 새에 순간이동을 한 것인가. 얼떨떨해하는 일행에게서 별말이 없자, 그가 손을 허공에 몇 번 그어 테이블 위에 다기를 갖다 놓았다. 마법을 써서 찻주전자의 물을 덥히고, 찻잎을 넣고, 시간이 지나 찻물을 찻잔에 따르는 그 모든 과정에서 라구의 손은 허공만 간단히 휘저을 뿐이었다.

마법사도 신기한데 마법은 더 신기하다. 라이언의 입이 신기함을 담아 헤 벌어졌고, 클로에 역시 그런 속마음을 감추느라 바빴다.

“또 정화하고 싶은 보석이 생기셨나 보죠?”

별 인사치레도 없이 바로 본론. 지난번의 왠지 물색없는 말본새에서도 느꼈지만, 오히려 그래서 대하기에 더 편한 면이 있었다.

클로에는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어 보이고는 미라벨을 시켜 일전에 마르코네에서 사 온 액세서리들을 탁자에 쏟아냈다.

“이 친구한테 직접 보여 주고 싶어서.”

고개를 까닥여 라이언을 가리켰다. 갑작스레 이목이 제게 집중된 것에 라이언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클로에는 그 보석들을 가리키며 라이언에게 물었다.

“이것들을 봐 봐. 이게 뭐 같니?”

라이언은 제 주인님에게 뭔가 성실한 답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얼른 당황한 기색을 지워내고는 장신구들을 열심히 살펴보다가 간신히 답을 짜냈다.

“귀걸이랑, 반지, 팔찌……? 브로치?”

“푸훗.”

줄곧 표정을 굳히고 있던 미라벨의 입에서 웃음이 삐져나왔다. 애초에 정답을 기대한 게 아니었던 클로에는 빙긋 미소 지었다.

“이게 그냥 모조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다 진짜 보석들이야.”

“네에?”

클로에와 라이언이 대거리하는 양을 보고 있던 라구가 묻지도 않고 루비 반지를 집어 들며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어디서 이렇게 오염된 보석들을 많이 얻어 오세요?”

“이게 보석이라고요?”

“빛깔이 탁해 보여서 모조품으로 보이겠지만요. 이렇게 성에가 낀 것처럼 뿌예진 것은 일반적으로 마력에 오염된 거라고 보시면 돼요. 보석에만 나타나는 현상이고요.”

제 옆에 앉은 라이언에게 제가 집어든 루비 반지를 보이며 설명한 라구는, 그대로 마력을 불어넣어 지난번처럼 깨끗하게 만들었다.

“헤에……”

라이언의 입이 다시금 벌어져 다물어지지 못했다. 지난주의 미라벨과 마찬가지로.

다만 오늘의 미라벨은 뭔가 불편한 기색이 있어서인지, ‘뭔가 다 알고 있는 듯한’ 연기를 계속해서 하려는 건지 팔짱을 낀 채 다시금 표정을 지우고 있을 뿐이었지만.

라이언의 반응이 마음에 든 듯 라구는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액세서리들도 척척 정화해 나갔다.

“이건 잘 안 되네요. 마력으론 이게 한계고 신전에 맡기셔야 할 것 같아요.”

라구가 건네는 금속 팔찌의 한가운데에 박힌 라피스라줄리에는 여전히 뿌연 기운이 서려 있었다.

‘어차피 루카에게 볼일도 있었으니, 그때 부탁해 보지 뭐.’

그렇게 간단히 생각한 클로에는 준비해 뒀던 말을 꺼냈다.

“지난번에 봐 준 덕에 잘 팔았네.”

“신전에 가 보셨어요?”

“그 정도는 감정사들도 눈치 못 채는 것 같더군. 그래서 말인데…….”

큼큼, 다시 한번 목을 다듬었다. 아무래도 라이언을 구슬리는 것보다는 조금 더 긴장이 되었던 것이다.

“혹시 알레지오와 별개로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해 줄 수 있겠는가?”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라구가 클로에와 계속 눈을 마주쳤다,

“이런 보석들을 정화하는 것 말일세. 지난번 대금에서 알레지오에서 수수료를 뗐을 테니 얼마나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주겠네.”

클로에는 마정석 충전료가 최대 5실버라는 사실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말했다. 수수료를 안 뗀다면 5실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서.

“마법사는 고용이 불가능한 걸 아시잖아요?”

“용병 일처럼 단기로 의뢰하면 되는 것 아닌가? 경이 전투 용병도 아니고. 대금을 건별로 그날그날 지급하는 걸로 하고, 이 아이를 여기로 보내도록 하겠네.”

“흐음…….”

라구는 턱을 문지르며 무엇을 고민하는 듯 한참 동안 입술을 쫑긋거렸다.

“일단, 안 돼요.”

“급여 문제인가?”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이 ‘사업’에 있어서 그가 핵심이었던 만큼 그 가능성을 애써 무시하고 있던 클로에는 절박해졌다.

“그건 알아서 잘 쳐 주시겠죠. 여기로 오시면 안 된다는 의미였어요.”

“아…….”

또 저 하고 싶은 말만 한 거였다. 그를 대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그의 화법에 익숙해지는 것만 같았다.

‘마법사들이 연구실에만 처박혀 있어서 제 생각에만 빠져 산다더니.’

클로에가 황당한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라구는 설명을 이어갔다.

“아까 길드에서 이곳으로 넘어오실 때에 일종의 포털을 통과하신 거거든요. 그런데 이 포털이 정식으로 승인받은 게 아니라 오가시는 와중에 마력에 다시 노출될 수가 있어요. 애써 정화했는데 다시 오염되면 안 되잖아요?”

“승인이라니?”

“모든 포털은 교단의 승인을 받아야 해요. 마법사 개인이 시전하는 이동 마법이야 어쩔 수 없지만, 포털이 마구잡이로 설치되면 관리하기 힘드니까요. 성국으로 가는 포털은 대신전에 있고, 성곽에 있는 타지역으로 가는 포털들 모두 대신전에서 관리하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렇군.”

클로에는 제가 포털을 이용했던 때를 떠올렸다. 외가인 라쥐르령으로 여름휴가를 갈 때, 궁정백령을 오가던 어린 시절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칸다르로 떠나게 되면서.

“교단에서 포털을 승인하면 신성력의 가호가 깃들어서 마력 간섭이 방지되거든요. 하지만 마법사들 쓰는 포털이 교단에 승인받을 건 아니고…… 이 포털은 짧아서 크게 오염되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미승인 포털이 많은가?”

“마법사들이 쓰는 이동 마법도 일종의 미승인 포털이고…… 용병 길드들도 암암리에 포털을 소유하고 있고요.”

이 액세서리들의 출처를 생각하면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용병들이 의뢰를 수행하면서 몰래 움직이느라 미승인 포털을 타고 다니는 바람에 보석들이 오염됐다는 거였다. 클로에는 고개를 주억이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자네들을 어디서 만나게 한다.”

“예가체프는 어때요? 칸막이가 있으니 다른 사람 눈에도 안 띌 것 같은데.”

아까 마시듯이 해치운 티푸드를 떠올린 양 반짝이는 눈으로 라이언이 말했다.

“나 없이는 4층에 못 가. 공개된 장소에서 마법을 써도 될지 싶고.”

“어차피 마력을 느끼는 건 같은 마법사예요. 소드마스터나 되면 모르겠지만, 제가 뭐 공격기를 쓰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차라리 영애님께서 저를 초대해 주셔도 괜찮은데.”

“저택에는 보는 눈이 많아서…….”

아무래도 클로에에게는 제 공간이 없었다. 만일 에티엔이나 데메트리안이었다면 경시청이나 원로원의 제 집무실을 쓰면 될 텐데. 저택에도 침실 말고는 저만의 공간은 없었다.

‘셰비크 별궁에서도,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은 침실밖에 없었던 것 같고.’

클로에의 낯이 가라앉을 때, 미라벨이 불쑥 끼어들었다.

“왜 알레지오에서는 안 만나고?”

“거기 가면 가문 장부에 달아야 하잖아. 이건 너만 아는 내 일인걸. 그리고 수수료라도 내지 않아야 라구 경에게 이득일 테니까.”

아하, 의문이 풀렸다는 듯 끄덕이는 미라벨의 낯이 조금 밝아졌다. ‘너만 아는’이라는 부분에서 특히.

그러는 양을 듣고 있던 라구가 입을 열었다.

“그냥 알레지오로 오시죠. 알레지오를 통해 예약하신 거 아니면 알레지오에 수수료를 낼 필요는 없거든요. 저희는 알레지오에서 받는 일거리 안 받아도 상관없지만 알레지오는 저희 없으면 안 돼서 그 정도 편의는 봐 줘요.”

오늘도 길드로 온다고만 안 했어도 거기서 만났을 거라 말하며 라구가 기지개를 켰다. 지금도 제가 라크루아인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라구는 무엇에도 스스럼이 없어 보였다.

‘아르투젠 출신이 아니어서일까?’

제국에 큰 의미를 안 두는 사람처럼 구는 걸 보면 말이다. 클로에가 이 ‘사업’을 하고 싶었던 것에는 그처럼 신선한 부류의 사람과 교류하고 싶었던 것도 한몫했다.

미리 연통을 주면 라구가 알레지오의 상담실을 빌려 놓겠다는 말을 끝으로 클로에 일행은 마법사들의 응접실을 떠났다. 우선 라이언이 하는 양을 보고 합류를 확정지어야 세부적인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니까.

“오늘 작업한 것들은 다음번에 지불하도록 하고. 그럼, 서신 보내도록 하겠네.”

“네, 어제처럼 노예상 할망……아니, 길드 사무실로 보내시면 돼요.”

갓 서임받은 마법사들이 의무적으로 가져야 하는 길드 파견 기간. 라구는 50퍼센트에 달하는 수수료에 눈물을 삼키면서도, 그래도 가욋돈이 생길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라크루아의 작은 마차가 다시 앙헬라타 대로를 달려, 프란츠 광장을 지나 페드로 거리의 아티장 지구 가까운 곳에서 라이언을 내려 주었다.

“이 귀걸이는 5실버, 팔찌랑 반지는 10실버에 샀고, 라구 경에게는 개당 또 5실버 지불해야 하는 거 들었지? 왜 그 가격에 팔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해.”

루카에게 보일 것을 뺀 나머지 액세서리들을 라이언에게 건네며 클로에가 말했다. 다행히 돌아오는 포털에서 추가로 오염된 것이 없어서 라이언에게 바로 시험 삼아 맡겨 볼 수 있었다.

“다음 주 빛의 날에 예가체프 4층에서 봐.”

“네, 주인님. 그런데 빛의 날이면 평일인데…… 아카데미 안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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