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2화 (2/44)



〈 2화 〉2화

“갑자기  개소리를 하나 했더니.”

나는 TV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김준석의 말에 퉁명스레 대답하곤 술을 마셨다. 오늘따라 유난히 잘 받는다.

“한잔 더 시킨다?”
“엉.”
“여기 맥주 좀 더 주쇼!”
“아...  말투 좀 고치면 안 되겠냐. 존나 병신 같아.”
“내가 볼 때는 네가  병신 같으니까 걱정 마.”

내 말투는 업계에서 나름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다 보니 이렇게 됐을 뿐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데. 용병업계 쌍놈들은 가는 말이 고우면 만만하게 보는 놈들이 대다수다.

김준석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꽝이냐?”
“닥쳐. 시발 오늘은 진짜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랬으면 네가 여기 있겠냐?”
“그러지 말고 너도 해. 이거 의외로 할만하다. 요즘 안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니까?”

안주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김준석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설명대로라면 딱 4등.  필요 없고 4등만 노리면 된다는 논리.
그러면 15골드를 받으니  안에 4등만 되면 일단은 본전이라는 소리였다.
로또는 한번에 1실버니 언뜻 보면 틀린 말도 없지만.


‘숫자가 100까지 있는 게 맞는 거냐.’


한주에 구매할 수 있는 로또는 10개로 제한된다.  많은 작자들, 특히 귀족들이 수량에 상관없이 구매할 수 없도록 황제가 직접 조치를 해버렸다.

뭔가 공평해 보이기는 한데, 그냥 1등이나 2등은 나오지 말라고 하는 거 같다.

“그냥 황실에서 돈이나 빨아먹으려고 만든 게 확실한 거 같은데.”

귀족이 영지에서 걷는 돈이 황실로 간다. 그런데 로또가 생기고 평민들한테도 직접 돈을 걷어가는 거다.

황실이 운영하고 있으니까 당연한 거다. 처음 생기고 난 이후부터 대부분의 평민들이 이용하고 있으니 세금도 엄청 벌고 있을 것이고.

이세계인들은 단돈 1실버에 인생을 역전할  있는 로또라는 문물에 맛이 가버렸다.
애당초 존나 잘 먹고 잘사는 귀족들은 하지도 않을 텐데.


“혹시 아냐? 4등 노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1등이 될지.”
“1등 나오기는 했어?”
“아직.”

그럼 그렇지. 거의 반년이나 됐는데 아직 1등이 없으면 솔직히 답도 없는 거다.
1부터 100까지에서 무려 7개를 맞추라니.
사탄도 지옥에서 울고  확률이다.


“그래서 그런지 황제가 1등이 나오면 직접 치하해 주겠데.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더라.”
“그건 좀 쩔긴 하겠다.”


설마 황제 가오가 있지 한입가지고 두말하지는 않겠지.

“속는 셈치고 한번만 사본다.”
“응~ 그렇게 중독되는 거지.”
“계산이나 해. 먼저 간다.”
“오냐. 이렇게 미래의 중독자 한명 탄생했쥬.”

김준석은 비아냥거리듯 말했으나, 난  한번만 사보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지구에서도 로또를 거의 안하던 내가 맛들일 일이 없지.

*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저번일 덕에 진짜 빡세게 일했다.
신뢰를 쌓기는 어려워도 잃어버리는  한순간이니 감점당한 평판을 무마하려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건 직접 겪어봐야 아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주는  운이 따라주어서 맡은 의뢰를 성공적으로 다 마무리했다. 내 앞길을 방해하는 트롤 새끼들도 없었고.

‘이대로 2년 정도만 더 고생하면 먹고사는데 크게 지장은 없겠네.’


루트란에서 자리를 잡는 일이 머지않았다.
분명 저번 주에 준석이놈이 로또 어쩌고 했었는데. 먹고살기 바쁘다보니 잠깐 잊고 있었다.

여관에서 이대로 늘어져서 몸을 뒹굴고 있기에도 좀 찌뿌듯하고. 생각난 김에 사러 가볼까?

“생각했으면 바로 움직여야지.”

옷을 걸쳐 입고 후다닥 나갈 준비를 빠르게 마쳤다.

해가 지기엔 아직 두어 시간 남아서 루트란의 거리는 활기로 가득했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어깨를 부딪치는 일이 간간히 생기기는 하지만.

“음?”
“아닙니다...”

인상한번 써주면 귀찮은 시비는 피할 수 있다. 5년간 단련된 실전근육을 일반인이 무시 못 하지.
로또를 사질 않으니 위치를  몰라서 길을 물어봐 겨우 찾았다.

“시바. 사람 존나 많네.”

딱 보니 30분은 넘게 기다려야 하는데, 로또 하나 사려고 멀뚱멀뚱 줄을 서야 한다니 현타가 세게 오지만 여기까지 와서 안사기도 뭐했다.

새삼스레 로또의 인기가 실감나기 시작했다. 답답하기도 해서 뒷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왜 이렇게 줄이 많은 거요?”
“오늘이 추첨하는 당일이니까 그렇지. 오늘 처음 사보는구먼?”

고개를 끄덕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날을 잘못 잡았나보다. 잊지 않고 기억해뒀다가 미리 사둘걸 그랬다.
내 차례가 돼서 자동으로 5개만 사려 했는데 이세계판 로또는 자동이 없었다.
존나 귀찮아서 다시는 안사기로 또   다짐했다.

처음엔 느낌가는대로.
 번째는 아직 기억하고 있는 주민번호를 적당히 섞어서.
마지막은 그냥 막무가내로 찍었다.

3실버도 내 기준에선 많이 투자한 거다. 5개는 다시 생각해보니 아까워서 안 되겠다.
어차피  놈은 하나만 사도 당첨되지 않을까.

“잃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판매원이 용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마법이 처리돼있는 특수용지 어쩌고 설명해주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잃어버릴시 당첨돼도 아무런 보상을  받는다는 것.

그래도 쉽게 찢어지거나 젖지는 않는다 했다.

“이거 도둑맞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귀족 분들은 가끔 가문의 인장을 용지에 새겨 넣긴 하죠.”

판매원은 그리 말하고서  행색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견적은 당연히 귀한 신분과는 거리가 먼 평민.

“킥, 그런 걱정은 당첨이나 되고 하는 게 어떨까요?”
“눈깔 그렇게 뜨지마쇼.”

뭐 나도 당첨될 거란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괜한 걱정이긴 했다.
쪽팔리네.
병신 같은 걱정을 했다.

‘오늘이 추첨일이라 했지. 보고 갈까?’


지금 묶고 있는 여관엔 TV가 없다. 괜찮은 주점이나 협회로 가야 볼 수 있을 터.
로또가 인기몰이를 한창 하는 중이니 어딜 가던 추첨 방송을 틀고 있을 거다.

협회로 가는 게 낫겠다.

겸사겸사 괜찮은 의뢰도 찾아보고 덤으로 방송도 보는 편이 합리적이겠지.
딴 놈들이 낚아채기 전에 부지런히 움직여야한다.

용병협회의 땀내는 언제 맡아도 빡친다.
 쓰는 일을 하는 거니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얼굴이 찡그려지는  참기는 힘들다.

“할 만한 일거리를 알아보러 왔소. 웬만하면 보수가 괜찮은 편으로.”

접수원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그녀는 옆에 분류돼 있는 서류를 몇  꺼내들더니 내밀었다.

“전부 1골드 이상의 보수가 책정돼 있는 의뢰예요.”

D급 의뢰 기준으로 준수한 편이다. 빠르게 훑어보고 혹여나 위험한 일이 아닌지 판단한다.


‘대충 길어야 4일 이내로 끝낼 수 있는 일들이네.’

엉?
보수가 10골드!

마지막 서류엔 분명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이건 굉장히 보수가 후한 편인데. 의뢰인을 보니 바일런 상단이라 적혀있다.

내 기억에 있는 이름은 아닌데. 귀족 나부랭이는 아닌 건가?

귀족이랑 잘못 엮이면 진짜  되는 수가 있기 때문에 가문이름 정도는 외우고 있다.

어디 시골 뜨내기 귀족가문 까지는 모르지만. 그런 촌 귀족이 굳이 루트란까지 올 일은 그다지 없으니 엮일 일도 없다.


이건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이건 보수가 후한데. 나는 바일런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수도에서  성장하기 시작한 상단이에요. 상단주가 당신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그럼 구분하기 쉽게 대한상단이라 지을 것이지 사람 헷갈리게 하고 있어.”


여기서 상단까지 차리고. 확실한건 나보다 좋은 신세다. 괜히 부러운 마음이 잠깐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보수가 10골드로 책정된  숲을 가로질러 수도로 가기 때문이죠. 거기 쓰여 있지 않나요? 마감 기한은 내일이니  거면 빠르게 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다지 구미가 안 당긴다.
루트란에서 수도까지 일반적으로 5일이 걸리는데, 숲을 가로질러 가면 2일밖에 안 걸린다고 듣긴 했다.

대신 그만큼 몬스터의 위협도 두  이상 될 거고. 수도에 도착해 다시 루트란에 오려면 맨몸으로 오기 뭐하니 의뢰를 통해 돌아와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좋은 의뢰가 없으면 고생만 하고 공칠 수도 있다는 거다.

“모집 인원이 정해져 있지 않은데. 지원한 사람은 많이 있소?”
“꽤 있죠. 저를 통해 하겠다는 용병이 30명은 돼요. 제가 알기론 C급 용병도 몇 참여 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쓰읍. 일단 알겠수다. 고민을 좀 해봐야겠어.”
“네네.”

C급도 섞여있으면 안전하기야 할 테지만 좆같이 피곤하다.
이 새끼들은 뭔가 업계에서 어쭙잖게 귀족놀음을 하려는 놈들이 태반이라 그렇다.

딱 재능이 C급 턱걸이인 용병은 본인보다 밑에 용병을 대할 때 작위가 거의 대공을 뺨치는 수준이다.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용병들은 대개 그랬다.

이래서 어지간하면 내가 솔플을 지향하는 이유기도 하다. 병신들이랑 엮이지 않아도 되거든.

 장의 서류를 품에 챙기고 TV를 보기위해 자리를 잡았다.
처음 살 때는 크게 기대를 안했으나 막상 추첨을 보려고 기다리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어림도 없겠지만.

많은 건  바라고 딱 5등만 되자.

웅성웅성.

아직 TV가 지구처럼 예능도 틀고 음악방송도 하는 정도까진 아니고, 황실의 말을 대변하는 용도로만 쓰이고 있다.

전혀 황실과 연관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소통의 창구, 일방통행인 소통이지만 황제가 백성에게 관심이 아주 없지는 않은  같다.


‘그러니 이런 웃기지도 않은 방법으로 세금을 빨아먹지.’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새 번호는 2개나 추첨됐다.

10 29.

될 리가 없지 라고 생각한 순간.

“엥?”

막무가내로 찍은 세 번째 로또에 10번  있다.
잠깐만. 7개 숫자 중에 일단 2개가 들어맞은 상황이니까 앞으로 2개만 더 들어맞으면 15골드 개꿀이잖아.

‘나 생각보다 운이 좋나?’

스타트가 좋다.
게다가 남은 5개 번호 중 하나만 들어맞아도 본전 이상은 뽑는다.


33.

‘예에에에쓰! 됐다! 일단 돈은 굳었고.’

87.

‘엥? 시발 이게?’

뭔가 이상한데. 처음 사본 로또에서 바로 4등이라고? 이게 말이 돼? 기분이 뭐라 설명 못할 만큼 묘했다.
어쩌면? 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49번.

눈을 세게 비볐다.
꿀꺽 침을 삼키고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아쉬움에 욕을 하는 놈들도 보이고 5등이라도 됐는지 꽤나 좋아하는 놈들도 보였다.

‘씨발.. 절대로 동요하면  돼. 침착하자 침착. 무조건 침착하자. 자연스러워야 해. 들키면 진짜 좆 된다.’


3등.
여기서부터 당첨금이 수백골드 단위가 넘어간다. 나는 지금 잠깐 사이에 수백골드의 돈이 생긴 거다.
몸이 덜덜 떨리고 입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76번.

그리고 내 용지에는 기어코 76번 마저 있었다.
몸이 진정이  된다. 손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누가 날 자세히 보기라도 하면 분명 이상하단걸 알아차릴 거다.

다행히 다들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지  보는 시선은 없다.

떨림이  심해지기 전에 용지를 얼른 품에 숨겼다. 더는 용지를 바라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4번.


방금 전 용지를 품에 넣었지만 마지막 숫자가 몇 번인지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 4번. 마지막으로 추첨된 번호가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 같았다.

“에라이 씨벌!! 오늘도 꽝이네!”
“흡.”


어느 용병의 울분어린 욕설에 진짜 존나 깜짝 놀랐다. 고양이를  생쥐마냥 본능적으로 몸이 한껏 움츠러들었다.

'수상하게 보이지 말자... 걸리면 진짜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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