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로 메이저리거 221화
"트레이드는 구단의 영역이다. 그걸 왜 너랑 상의를 해야 된다는 거지?"
"그, 그건 그렇지만……"
"피트 알론소는 트레이드 당일까지 본인이 트레이드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함께 우승을 노리기로 이야기했었지. 하지만 그런 그를 다음 날 볼 수 없게 됐어."
"나 역시 트레이드가 될 때 상의 같은 건 듣지 못했어. 일방적인 동보였다. 그런데 갤럭시는 어땠지?"
매버릭은 할 말을 잃었다.
'그 여자가 내게 말할 때 퇴로를 막아두고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프레이밍 실력을 생각하면 그 여자의 제안은 일종의 권유였다.
매버릭은 분수를 알고 있었다.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포수로 지내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 여자의 말에 적의부터 드러냈다. 대화는 동하지 않았다.
바보 같은 일이었다.
"너에게 포지션변경을 제안한 거 자체가 너의 능력이 팀에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거다."
"그런데 너는 그 제안을 받고 오히려 적의를 드러낸 거지. 그렇다면 구단에서는 어떻게 할까? 당연히 너를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고 외부에서 더 좋은 전력을 수혈하겠지."
냉정한 사실이다.
신우는 이미 프로세계의 밑바닥까지 경험했다. 당시에 그 이유를 남에게서 찾았다. 사람이란 원래 그랬다.
문제가 생기면 이유를 자신이 아닌 남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때로는 사람이 아닌 환경이나 시대를 탓하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이 됐건 잘못된 것이다.
직접 경험을 해보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레전드들을 만난 후, 자신에게 숨어 있는 재능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전에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던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지 않고 다른 곳에서 찾기 때문이다.
스스로 발전할 생각을 가지지 못하니 결국 도태되게 된다.
지금 매버릭처럼 말이다.
"구단은 너에게 선택권을 줬어. 포수로 남고 싶다면 다른 팀에 보내주고 포지션을 변경하겠다면 갤럭시에 남게 해주겠다는 선택권을 말이야."
"하지만…… 내가 다른 포지션에서 잘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포수 하나밖에 안 해왔는데."
"어차피 잘 못 했잖아."
[2T…]
[갑자기 그렇게 명치를 후려치누.]
"다 선배님들에게 배운 겁니다."
[우리가 언제 그런 걸 가르침?)
[맞아. 우리는 언제나 부드럽고 우아하게 가르쳤다 이 말이지.]
'아, 예
[어쭈? 너 대답이 건성이다?]
그때 매버릭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그렇게 엉망이냐?"
신우의 대답은 비수가 되어 매버릭의 심장을 후벼팠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포수로서 자신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하지만 처음부터 포수를 해왔다. 이제부터 다른 포지션으로 바꾼다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억지로 버렸다.
주위에서 불만을 이야기하고 투수들이 자신을 교체해 달라 이야기하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너에게는 타격이 있잖아."
"어?"
"만약 구단에서 널 포수로만 봤다면 그냥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했을 거다. 하지만 구단은 그러지 않았지. 왜 그랬을까?"
"그건…… 내가 아직 쓸 곳이 있기 때문에?"
"빙고, 너의 타격이 팀에 필요하다. 그렇기에 포지션변경이라는 투자를 택한 거지."
"투자?"
"널 카드로 쓰지 않겠다는 건 올 시즌 우승을 함께 가겠다는 소리잖아? 그러니 일종의 투자인 셈이지."
신우는 바닥부터 정상까지 올라온 선수다. 그것도 단시간에 말이다.
그러다 보니 온갖 경험을 다 했다.
바닥에서 기어 다닐 때, 구단이 어떤 대우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매버릭에게 기회를 준 것은 그의 재능을 봤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 역시 동감.]
[얘는 타격에 나름 재능이 있음.]
[그리고 일루수에 지금 포구하는 버릇도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매버릭의 버릇은 간단했다.
낮은 공을 포구할 때 미트를 아래로 향하는 버릇이 있다.
이는 포수에게 치명적이다.
하지만 일루수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잡든 공을 잡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결론은 네가 내리는 거다."
신우의 말에 매버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매버릭이 1루 수비를 엽습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릴리 헤리스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우리 차례가 됐네요."
"잘 되겠습니까? 그쪽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장난 아닐 텐데요."
"그래도 그 선수는 반드시 필요해요."
크리스토퍼 단장의 우려 섞인 말에 릴리가 태블릿을 념겠다.
거기에는 한 선수의 스탯이 기록되어 있었다.
"부상으로 전반기의 절반을 날렸지만, 회복 후의 기록을 보면 매우 좋아요. 부상의 후유증이 전혀 없는 상태죠."
"확실히 그렇군요. 이런 남자가 우리 팀에 온다면 확실히 타선에 도움이 될 겁니다."
"거기에 그는 리더십 역시 강해요."
"리더십이요?"
"네. 메츠는 알론소와 신우라는 두 중심축이 빠지면서 급격하게 흔들렸어요. 지구 최하위까지 내려갔고, 전문가들은 정상화가 되기까지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봤죠."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허무하게 빗나갔다. 메츠는 4월 이후 반등하면서 지구 3위의 자리에 올라섰다.
"확실히 신기하긴 하더군요. 그 이유가 이 남자가 복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문제이지 않겠습니까? 신우가 이미 팀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남자가 온다면, 리더가 둘이 되게 됩니다."
"타입이 달라요. 신우는 누군가를 끌어가는 타입이 아니에요. 자신의 역할을 하고 굳건히 버티는 기둥과도 같은 남자죠. 하지만 토마스는 포용력이 강한 타입의 리더에요."
크리스토퍼는 놀란 얼굴로 릴리를 바라봤다.
'설마 그런 부분까지 캐치를 했다는 건가? 단체운동도 안 해봤던 여자아이가?
처음 릴리가 팀에 합류할 때만 하더라도 불만이 있었다.
메이저리그는 체계가 잡혀 있다.
사장과 단장이라는 두 명의 간부들이 팀을 운영해 나간다.
그런데 그 위로 하나의 직위가 더 만들어진 셈이다. 게다가 그녀는 팀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거기에 신분은 구단주의 딸.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낙하산 그 이상, 이하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확히 야구팀의 생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괜히 구단주가 자신의 딸을 대행으로 삼은 건 아닌 거 같군."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그럼 바로 메츠와 접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크리스토퍼가 건넨 태블릿을 받아든 릴리의 시선이 선수의 사진으로 향했다.
'토마스의 영입은 당신을 한층 더 강하게 해주겠죠."
그리고 고개를 들어 연습하는 신우를 바라됐다. 두 사람이 낼 시너지를 상상하자 벌써부터 가슴이 떨려왔다.
후반기가 시작되면서 갤럭시는 본격적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맞았습니다!! 좌중간을 가르는 장타 코스! 1루 주자 3루 돌아 홈으로! 이제야 공이 중계됩니다. 그리고 타자는 2루까지!]
"세이프!!"
[2타점 2루타!! 역시 코디 밸린저!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코디 밸린저의 타격도 좋았지만, 방금 들어간 공은 명백한 실투였습니다. 슬라이더의 각이 밋밋하게 꺾이면서 존의 가운데로 흘러 들어갔어요.]
[아무래도 샘 로스의 체력이 떨어져 보이는군요.]
[직전 경기의 결과도 보면 확실히 그런 듯합니다.]
샘 로스는 갤럭시의 4선발이다.
전반기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9경기에 선발로 나서서 4승 4패.
평균자책점 3.88을 기록했다.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는 건 크게 무너진 경기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이닝 소화력이 괜찮았다.
최소 5이닝 이상을 던져주면서 팀에 부담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후반기 집어들며 급격하게 무너졌다.
[직전 경기에서 4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던 샘 로스, 오늘 경기에서는 2와 2/3이닝만 소화하고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2경기 6.2이닝,
즉, 경기당 3.1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럼 남은 5.2이닝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당연하게도 불펜이 투입되어야 하고 자연스레 과부하가 걸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기는 샘 로스의 경기만이 아니었다.
[최근 원정경기에서 갤럭시의 성적이 좋지 않군요.]
[아무래도 환경의 탓이 큰 듯합니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갤럭시의 후반기에 체력적인 문제가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거든요.]
[몬트리올과 다른 지역의 기온 차가 커서일까요?]
[그럴 가능성이큽니다. 본래 여름이 되면 본격적으로 더워지면서 체력소모가 심해집니다. 그런데 몬트리올은 선선한 날씨를 유지하거든요? 다른 지역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죠.]
[몬트리올에서는 야구 하기 편하겠군요.]
[그렇습니다. 문제는 선수들이 몬트리올에서만 야구를 하지 않는다는 거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 전혀 다른 환경에 노출이 되고 그런 급격한 환경변화는 선수의 체력을 갉아먹게 됩니다.]
[감기에 걸리는 선수들도 생길 테고요.]
[예. 무엇보다 갤럭시 선수들은 풀 시즌을 치르는 게 처음일 겁니다. 체력문제가 서서히 드러나도 이상할 게 없어요.]
환경적인 요인.
경험의 문제.
잃은 선수층.
모든 것들이 복합적인 얽힌 갤럭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절망적인 부분만 있는 건 아니었다.
[4회, 갤럭시의 공격이 이어집니다. 선두타자로 정신우 선수가 들어섭니다.]
모든 이들이 부진에 빠졌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빼애애액!!
따아악~!!
[초구를 강타!! 그리고 배트를 던졌습니다!! 타구는 담장을 넘어갑니다!! 강력한 한 방으로 넘어가는 경기의 먹살을 잡아 끌어올리는 정신우 선수!! 시즌 24번째, 홈런을 터뜨립니다!]
신우만은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3타수 2안타 1홈런.
신우가 오늘 경기에서 올린 성적이었다. 하지만 팀은 패배했다.
신우가 점수를 내더라도 마운드는 버티지 못했다. 마지막 타석에서 기회가 왔지만, 고의사구로 기회를 잡지 못했다.
짜증이 지밀었다.
팀의 성적을 어떻게든 끌어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거기다 상대의 고의사구가 늘어나면서 기회가 오더라도 잡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홈런더비에서 우승한 게 상대에게 크게 작용한 듯싶다.]
[솔직히 상대하기 싫을 듯.]
[0]
레전드들의 말에 동의하지만, 그래도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에는 야구도 팀플레이라는 소리지.]
[네가 일인 야구를 하면서 관중이 열광했던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해냈으니 열광할 수밖에 없었지.]
알고 있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이유를 알고 있다고 해서 이 답답한 마음을 풀어낼 수 없었다.
"짜증이 나시나 보네요."
그때 익숙한 여리여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릴리가 서 있었다.
"앉아도 될까요?"
"예."
허락이 떨어지자 맞은편에 앉은 릴리는 신우를 빤히 바라봤다.
"최근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아요."
"알고 있습니다."
"후반기 접어들어 지구 4위로 떨어졌죠."
이 역시 알고 있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자신에게 더 잘하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팀 전력을 보강할 생각이에요."
그러면서 태블릿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하나의 문서가 떠 있었다.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이에요. 마지막 절차로 메디컬 테스트가 남았거든요. 정상적인 결과가 나오면 우리 팀 선수가 되는 거죠."
……정말입니까?"
"네. 그러니 너무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려 하지 마세요. 저희도 노력해서 팀을 우승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그 말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날.
릴리가보여주었던 문서의 기사가 모든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뉴욕 메츠의 주전 포수 토마스 에드윈! 갤럭시로 전격 트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