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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203화 (203/281)

훈수로 메이저리거 203화

앞서나가기 시작하자 더그아웃이 바빠졌다.

"불펜은?"

"준비는 끝났습니다. 언제든지 등판이 가능합니다."

이미 불펜전으로 치달은 경기였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경기만 잠글 수 있으면 경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런데 투수코치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그의 말에는 여러 의미가 응축되어 있었다. 제이비어는 코지를 바라보다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선수가 먼저 요청한 거야.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자네나 나나 잘 알고 있잖아?"

"예. 하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니까, 믿어봐야지."

경기 전,

제이비어는 자신을 찾아와 의견을 말하던 선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스스로 선택을 한 거다. 그러니 믿어야 한다.'

클로저라는 자리는 특별하다.

팀의 승리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의도 아닌 자의라면 그만큼 고민을 많이 했다는 거다.

'더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상황에서만 등판할 순 없는 노릇이야."

제이비어는 말없이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와 불안을 가진 채 말이다. 7회 말, 갤럭시의 공격은 그대로 끝났다. 스코어는 여전히 5 대 3.

공수교대가 이루어지고 갤럭시의 마운드에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8회초! 갤럭시의 투수가 교체됩니다. 마운드에는…… 빌 워커 선수가 등판했네요. 벌써 클로저를 사용하는 걸까요?]

[승부처이기에 그런 거 같네요.]

빌 워커의 보직은 클로저다.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졌기에 사람들은 제이비어가 선수기용에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빌 워커 선수, 4월 성적이 꾸준히 나빴는데요. 과연 오늘 경기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아직 기회를 얻고 있긴 하지만, 이런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자리를 지키긴 어려울 겁니다.]

워커는 마운드 위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상하게 몸이 가볍다. 어깨도 잘 돌아가고."

클로저로 마운드에 오를 때보다 상태가 좋았다. 어쩌면 자신은 클로저 제질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무척 서글픈 생각이다.

클로저는 불펜의 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자리였으니까.

하지만 워거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클로저를 하기 위해 야구를 하는 게 아니야.'

로진을 손에 묻힌 그가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그리고 스파이크에 묻은 흙을 털어낸 뒤, 상체를 숙여 포수와 사인을 교환했다.

'나는 야구만 하면 된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보직따위는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는다.

[워커 선수! 와인드업!!]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초구 던졌습니다!!]

억 ~!!

"스트라이크!!"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가 미트에 꽂혔다.

[몸쪽을 찌르는 날카로운 포심! 첫 번째 스트라이크를 잡습니다!]

[아주 좋은 공이 들어갔어요. 오늘 컨디션이 좋아보이는 워커 선수입니다.]

워커 역시 스스로의 공에 만족했다.

컨디션이 좋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대로 간다.

부담감을 떨쳐낸 워커의 피칭이 시작됐다.

[몬트리올 갤럭시의 정신우 선수가 시즌 15번째 홈런을 때려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정신우 선수는 7회말 1사 1루에서 타석에 들어와 4구를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홈런을 때려냈습니다.

그리고 특유의 배트 플립을 선보이며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한편, 클로저였던 빌 워커는 8회 등판해 세 타자를 깔끔하게 돌려세우면서 안정적인 피칭을 선보였습니다.

경기 종료 이후,

제이비어 감독은 인터뷰에서 '불펜을 여러 방향으로 실험 중이다. 워커가 셋업맨으로 나갈 수도 있으며, 다시 클로저로 나갈 수도 있다. 면서 앞으로 유동적인 불펜운영을 보여줄 것으로 보입니다.]

워커가 보직을 바꾸면서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클로저에서 내려온 이후, 그는 10경기에서 단 1실점만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이비어 감독은 그런 워커에게 다시 클로저로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워커는 고개를 저었다.

"클로저로 간다면 다시 흔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중한 거절에 더 밀어붙일 수 없었다.

아직 클로저가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경기를 계산하면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특히 불펜 전체의 분위기가 좋아졌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불펜투수들이 따르는 선수가 워커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성적이 좋지 않던 탓에 불펜투수들은 워커의 눈지를 살폈다.

하지만 그의 성적이 좋아지면서 자연스레 자유로운 분위기가 되었다.

덕분에 미구엘이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

"마이너는 정말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아. 정말 메이저랑은 너무 차이가 난다니까."

"맞는 말이지. 마이너에서 먹는 샌드위치는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아, 그나마 트리플A는 괜찮지만, 더블로 떨어지면 으으……"

미구엘은 불펜투수들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공통점이 많아 주제를 찾는 건 쉬웠다.

"그나저나 미구엘, 너는 갑자기 왜 폼을 바꾼 거야?"

"후후, 궁금한가?"

"갑자기 목소리는 왜 깔고 그래?"

"나와 마스터의 만남을 이야기해야 되는데, 당연히 분위기를 잡을 수밖에 없지. 너희들은 궁금하지 않아? 마스터와 어떻게 만났는지 말이야."

"마스터?"

"그게 무슨 소리야?"

미구엘의 말에 불펜투수들이 관심을 보였다.

"나와 마스터와의 만남은 캠프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판단한 미구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불펜투수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신우는 오늘도 T.S.W와 함께 훈련을 진행했다. 가벼운 웨이트를 시작으로 심폐지구력을 유지시켜주는 훈련 위주로 프로그램을 짰다.

"오케이! 휴식!"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호흡은 가됐다.

"천천히 마셔."

루스가 건넨 음료를 마시면서 신우는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는 문득 주변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언제 이렇게 사람이 많아졌어?"

"네가 한창 심박 올릴 때부터 주위에 선수들이 몰려들었어. 그리고 마치 관찰하듯 너의 훈련을 지켜보던데?"

"으흠, 설마 따라하려는 건 아니겠지?"

"따라할 수 있을까?"

농담이 아니었다.

신우의 프로그램은 오로지 그의 신체능력에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루스가 보기에 웬만한 메이저리거라 하더라도 그의 훈련프로그램을 따라오는 건 무리였다.

그만큼 힘든 훈련이라는 소리였다.

신우도 어느 정도 동감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음료를 들이겠다.

그때 한 선수가 다가왔다.

'불펜의 커티스네."

얼굴과 이름은 알지만, 딱히 왕래가 없었던 그가 다가오자 신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곧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커티스의 한 마디 때문에 말이다.

"마스터!!"

"?"

"제게도 가르침을 주십시오!!"

중국영화에서 본 것처럼 포권을 하는 그의 모습은 황당함을 넘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미구엘에게 들었습니다! 마스터한테 가르침을 받고 투구폼을 바꾸었다고."

"하아…… 출처는 미구엘인가."

두통이 몰려왔다.

"그런데 그 포즈는 또 뭔데?"

쿵푸영화 보면 스승한테 이렇게 예의를 갖추던데. 재키찬 영화에서 꼭 그러더라고."

"그건 중국이고, 난 한국인이야.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런 예의도 없고."

"아… 쓰리."

나쁜 의도가 없다는 걸 알기에 그 정도에서 넘어갔다.

"그런데 뭘 가르쳐주라는 거야?"

"내가 최근에 제구가 좀 흔들리거든? 그래서 폼 한 번 봐주면 안 될까?"

커티스의 말에 신우는 고민에 잠겼다. 이건 정확히 자신이 어떻게 할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아는 건 스스로에 대한 것들이다. 남에게 기술적으로 훈수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그때 채팅이 올라갔다.

[재밌겠네.]

[좋은 투수 많아지면 개꿀.]

[타자 애들 가볍게 눌러주자.]

[훈수 on.]

[가즈아~!]

레전드들의 열렬한 반응에 신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폼 한 번 보자."

제구가 흔들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심리적인 부분.

다른 하나는 기술적인 부분이었다.

그리고 커티스는 후자였다.

페억~!!

실내불펜장에서 신우는 커티스가 던지는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알겠음?

매튜슨의 질문에 신우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모르겠는데요.'

[다시 자세히 봐.]

[전체적인 부분을 보려하지 말고 부분적인 곳들을 하나씩 살피봐.]

스판의 말에 신우는 다시 커티스의 피칭에 집중했다. 이번에는 전체가 아닌 제구에 있어 중요한 부분들을 단계적으로 봤다.

하제, 어깨, 왼손, 그리고 머리와 릴리스포인트까지. 10개의 공을 던지면서 확인한 신우는 이상한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머리가 돌아가면서 시선이 분산되는 거 같은데요?'

[정답]

[공은 시선이 닿는 곳으로 가게 되어 있어, 그런데 머리가 돌아가면서 시선이 움직이면 자연스레 제구도 흔들리기 마련이지]

답을 알게 된 신우가 커티스에게 말했다.

"공을 던지는 순간, 머리가 돌아가고 있어. 그렇게 되면 시선이 분산되면서 제구도 흔들리게 되는 거지."

"아… 또 머리가 돌아가는 건가?"

"원래 돌아갔었어?"

"마이너에 있을 때 머리가 자주 돌아가서 여러모로 고생했거든. 어떻게든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되더라고."

머리를 고정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걸 선택하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레전드들이 선택한 해결책은 그중에서 가장 쉬운 것이었다.

"힘을 좀 빼는 게 어때?"

"응? 힘을 빼라고?"

"지금 던지는 힘을 100이라고 했을 때, 한 80까지 줄이는 거지."

"그러다가 맞으면 어떻게 해?""

이 한 마디로 커티스가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안타를 허용하는 것.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안타를 맞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도 안타를 맞지 않을 순 없어. 그러다 홈런이 나오기도 하고 점수를 주기도 하지."

"그래. 그렇게 성적이 나파지면 결국 또 마이너로 가게 될 거야."

마이너로 떨어지는 것.

그건 모든 선수들이 걱정하는 거다.

이는 어쩔 수 없다.

메이저리그라는 달콤한 과일의 맛을 알고 있는데, 다시 마이너로 떨어져 시고 맛없는 과일을 먹는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다른 팀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응?"

"하지만 우리 팀은 그럴 여력이 안 돼, 당장 한두 경기를 망치더라도 널 마이너리그에 보낼 정도로 선수 풀이 두텁지 못하잖아."

신우는 현실적인 부분을 알려주었다.

"정말…… 그럴까?"

"응. 하지만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한다면 교체할 거다."

메이저리그는 광속구로 유명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구력이 잡힌 광속구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제구력이 잡히지 않았다면 아무리 광속구를 던지더라도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수 없었다.

실제 많은 광속구 유망주들이 마이너리그를 전전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그러더라. 안타를 맞을 용기가 없다면 투수가 아니다.' 라고 말이야."

"좋은 말이네. 누가 한 이야기야?"

"크리스티 매튜슨,"

"아… 최초의 5인 말하는 거지? 그 두수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

생전에 한 거는 아니지만 말이다.

두 사람은 그 뒤로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하면 제구를 잡을 수 있을지 논의했다.

이야기는 열기를 띄어갔고 몇몇 선수들이 주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왔다.

"미구엘의 말이 사실일까?"

"글써,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거지. 공도 그렇게 잘 던지고 타격도 잘하고 거기다가 코칭까지 한다고?"

"말만 들어도 믿기지 않긴 하네."

"누가 코칭을 한다고?"

신우의 능력에 놀라고 있던 두 사람의 곁으로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그를 본 선수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코, 코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벤자민 투수코치를 본 두 사람이 급히 자리를 비웠다. 홀로 남은 벤자민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공을 던지는 커티스와 그의 옆에서 조언을 하고 있는 신우를 바라봤다.

"조금 더 힘을 빼고 던져보자."

"오케이."

두 사람의 말대로 코칭을 하는 신우의 모습에 벤자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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