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69화 >
* * *
한 바탕의 폭풍이 지나간 느낌이다.
신우는 얼떨떨한 얼굴로 눈앞의 노인을 바라봤다.
[얼굴이 다 죽어가누.]
[저승사자 보이는데?]
[쟤도 곧 여기 오겠네.]
‘예? 저승사자요?’
[ㅇㅇ 안 보임?]
[보이겠냐?]
[보이면 쟤도 여기 와야 됨.]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레전드들의 채팅을 보고 있을 때였다.
“미안하네.”
프레드 윌폰이 사과를 했다.
“내가 병상에 있다보니 구단의 일까지 신경쓰기 어려웠네. 그래서 아들한테 맡겼는데 일을 엉망으로 했더군.”
프레드는 진심으로 후회했다.
작년 알론소를 트레이드 시킬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러려니 했다.
현재 메츠의 재정으로는 잡을 수 없는 선수였으니까.
그 과정이 엉망이긴 했지만, 해야 될 일이었다.
하지만 신우는 달랐다.
그렇기에 협상과정을 듣고는 병상을 박차고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2년 동안 두 개의 사이영상과 MVP라니. 자네 같은 선수에게 돈을 아낄 순 없지. 베켓.”
“예, 회장님.”
“뒤는 자네에게 일임하겠네. 재정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말도록 해.”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프레드가 일어났다.
“오래 밖을 돌아다닐 몸이 아니라서 이만 일어나겠네.”
“예.”
“자네가 이룩하고 있는 기록들을 보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더군. 그 재능을 부디 스스로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줬으면 하네.”
프레드는 다양한 선수들을 봐왔다.
그들 중에는 재능을 보여주고 사라진 선수들이 너무나 많았다.
부상, 약물, 사고 등.
다양한 이유로 떠난 그들을 그리워할 정도로 그는 야구에 애정이 깊었다.
그렇기에 구단을 운영했던 거지만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신우의 대답을 들으며 프레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행비서가 그의 뒤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곧 문이 닫히고 베켓이 식은땀을 닦았다.
“존, 자네가 직접 연락한 거 아닌가? 왜 그렇게 식은땀을 흘려?”
“직접 오실 줄은 몰랐으니까. 전화나 한통 넣어줄지 알았지. 어쨌건 그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지.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하자고.”
“협상?”
보라스가 소파에 몸을 기대며 입꼬리를 올렸다.
“했던 말을 또 해야겠군. 이건 협상이 아니야. 통보지.”
너무 당당한 요구에 베켓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속보) 정신우 구단과 2000만 달러에 연봉조정 합의!!」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활약중인 정신우 선수가 구단과의 연봉조정에 합의하며 내년 시즌 2000만 달러의 연봉을 받게 됐다.
이는 기존 연봉조정 1년차 신기록이던 피트 알론소(당시 뉴욕 메츠)의 1450만 달러를 550만달러나 넘는 액수다.
2023시즌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정신우 선수는 24시즌 역대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세이브 기록을 갱신해 화제를 모았다.
2025시즌에는 선발투수로 전향하여 21승 2패 234이닝을 던지고 367탈삼진을 기록하는 역대급 시즌을 만들어냈다.
거기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참가하여 3전 전승 21이닝 퍼펙트 30탈삼진과 결승전에서 결승솔로홈런을 터트리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첫 우승을 견인했다.
재계약을 맺었으나, 여전히 현지 언론에서는 정신우 선수의 트레이드와 관련된 기사를 내고 있다. 그 이유는 소속구단인 뉴욕 메츠의 매각에 고액 연봉자를 보유하고 없다는 게 언론들의 주장이다.
과연 정신우 선수가 다시 메츠의 유니폼을 입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유니폼을 입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연봉조정에 대한 뉴스는 곧장 한국에 전해졌다.
그리고 엄청난 충격을 전해주었다.
-메이저리그 3년차 접어드는 선수가 2000만 달러? 실화냐?
ㄴ 성적만 놓고 보면 저것도 적은 듯.
ㄴㄴ ㅇㅈ
-여윽시 메이저클라스-! 믿고 있었다구!!
ㄴ 와...한큐에 2천만달러를 찍어버리네.
ㄴㄴ ㄹㅇ 내년에는 얼마까지 오를지 감도 안 잡힌다.
ㄴㄴㄴ 설마 내년에도 올해 같은 성적을 내려고.
-이대로 가면 연봉조정으로만 연봉 4천만달러 찍을 듯?
ㄴ 무난할 듯.
ㄴㄴ 5천만달러도 쌉가능.
-구단이 매각된다고 막 지른 듯.
ㄴ 그런 감도 없지 않다.
ㄴㄴ 네 다음 뱀심.
ㄴㄴㄴ 어떻게든 트집 잡으려 하쥬?
신우의 첫 연봉조정은 그렇게 마무리 됐다.
* * *
계약이 끝나고 신우는 호텔에서 짐을 뺐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함이 아니라 훈련을 위해 하와이로 떠나기 위해서였다.
“트레이드 관련해서는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그건 선수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김이나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우의 연봉계약 이후 많은 언론들에서 메츠가 신우를 트레이드 시킬 계획이다라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만약 신우의 성적이 큰폭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연봉은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탈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최근 재정적으로 압박받는 메츠는 연봉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메츠가 신우를 트레이드 시킬 것이란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었다.
‘트레이드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선수 생활을 하다보면 자주 겪게 되는 일이니까.]
[ㅇㅈ. 나 같이 위대한 선수도 레드삭스에서 양키스로 이적을 했잖아.]
베이브루스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응?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그나저나 저번에 부탁드렸던 건 어떻게 됐나요?”
“그 부분은 걱정마세요. 현재 마무리협상중이고 촬영지를 결정하고 있어요.”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린 건 아닌지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고작 촬영지를 결정하는 건데요. 그리고 저희는 요구하는 거라 그렇게 힘든 일은 없었어요.”
이번 비시즌 기간동안 신우는 너무 바쁘게 보냈다.
첫 한 달 간은 휴식에 전념했지만, 이후에는 WBC를 비롯해 구단과의 계약 문제에도 나섰다.
이런 와중에 다시 한국에 들어가는 건 무리였다.
[내년 시즌을 대비한 훈련해야지.]
[지금보다 늦어지면 문제 생김.]
[그동안 꾸준히 기초훈련을 했다지만,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어야 됨.]
레전드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신우는 광고촬영을 취소할까도 싶었다.
아직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았기에 별 다른 피해는 없었다.
그러자 김이나가 아이디어를 냈다.
훈련하는 하와이로 촬영장소를 한정하자였다.
이런 조건이 붙으면 계약을 제안했던 곳들이 철회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광고촬영을 통한 부수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훈련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대기업들은 대부분 신우의 제안에 동의했다.
촬영비가 더 들더라도 신우를 잡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덕분이었다.
“아! 마지막 짐을 다 실었네요. 이제 출발할까요?”
“예.”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공항으로 향했다.
* * *
신우는 하와이에 도착했다.
게이트를 지나자 익숙한 인물이 그를 마중나와 있었다.
“형!!”
“형님!!”
“선배님!!!”
박광수와 최연우 그리고 이영훈이었다.
“짐 주세요! 제가 들게요!”
“짐은 이게 전부에요?”
“나머지는 미리 보내뒀다. 리조트에 있을 거야.”
“그럼 바로 출발하시죠!”
박광수가 앞장서려는 찰나.
“혹시...정신우 선수 아니세요?”
한국인으로 보이는 두 여자가 신우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후후-! 이분이 바로 뉴욕 메츠의 정신우 형님이시죠!”
“그리고 저는 한국프로...!”
멋들어진 폼을 잡으며 박광수가 자신의 소개를 했다.
하지만.
“꺄아아악!!”
“정말 정신우 선수에요?!”
“팬이에요!! 사인 한 장만...아니! 사진 한 번만 찍어도 될까요?”
여인들의 관심은 오로짓 신우에게 집중됐다.
폼을 잡던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박광수의 어깨에 최연우의 손이 올라갔다.
“친구여...”
자신을 위로해주려는 것일까?
“풉! 넌 임마, 신우형님 옆에 있으면 차은우 옆에 있는 오징어야 짜식아.”
“이쉑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러니까 오징어끼리 딜 박지 말자...”
슬픔에 찬 최연우의 말에 눈물을 흘리는 박광수와 이영훈이었다.
* * *
저녁이 되어서야 리조트에 도착한 신우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시누!”
“헤이 정!!”
“오랜만이에요.”
작년 자신의 훈련에 큰 도움을 주었던 루스와 도널드 그리고 이사벨이었다.
“올해도 잘 부탁해요.”
“부탁은 우리가 해야지! 2년 연속 사이영에 MVP까지 석권한 선수인데!”
“정말 TV보면서 놀랐다니까.”
오랜만에 만난 세 사람은 여전히 유쾌했다.
함께 호흡을 맞추던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건 이런 점에서 좋았다.
뭔가 새롭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 알 필요가 없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 건 있겠지만, 그건 자연스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올해도 잘 부탁해.”
“물론이지! 그런데 이미 투수로서 정점을 찍었는데, 우리가 더 해줄 게 있나 모르겠네.”
“위에 있을 때 더 열심히 해야 유지가 되지.”
“하긴, 그것도 그렇네.”
고개를 끄덕이는 루스를 보며 신우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변화를 좀 줄 생각이야.”
“변화라니?”
세 사람이 의문을 가진 눈동자로 신우를 바라봤다.
“투타겸업에 도전할 생각이거든.”
그리고 그 의문은 곧 놀람으로 변했다.
* * *
투타겸업.
오타니 쇼헤이 이후 메이저리그에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완벽하게 성공하진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체의 한계다.
[메이저 레벨에서 투구를 한다는 건 엄청난 운동능력을 보유해야 가능하다. 그리고 그 운동능력으로 전력을 내야 통하는 레벨이지.]
매튜슨의 설명을 들으며 신우는 머신 위를 달렸다.
[투타겸업, 메이저에서는 투 웨이(Two-Way)라 불리는 이걸 해내기 위해서는 본인의 포지션을 정확히 정해야 된다.]
‘포지션이요?’
[그래. 현재까지 투 웨이를 진행한 선수 중에서 선발이나 내외야 포지션을 동시에 소화한 선수는 없다.]
[불펜을 하면서 외야수를 뛰거나 선발로 뛰면서 지명타자로 타석에 서는 게 전부였지.]
[이런 이유는 바로 체력적인 문제와 신체에 가해지는 데미지 때문이다.]
빠른공을 던지기 위해선 그만한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는 신체에 부담을 주는 행위였고 자연스레 신체에 데미지가 쌓여갈 수밖에 없었다.
[타격 역시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신체에 데미지가 이어지고 자연스레 데미지는 몸에 축적이 되지.]
[특히 투구와 타격을 동시에 하게 되면 진행되는 운동방향이 같기 때문에 데미지는 2배 플러스 알파가 되는 거다.]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다보니 투 웨이를 택한 선수들은 결국 한쪽에서 부담이 적은 포지션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
‘지명타자와 불펜이 그거군요.’
[정답-!]
삐빅-!!
머신을 정지시킨 신우가 내려와 물을 들이켰다.
이미 선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선례들은 수비와 타격 그리고 투구까지 하는 건 어렵다 말하고 있었다.
[투 웨이를 할 거라면 선택지는 두 개다.]
매튜슨의 채팅이 올라갔다.
[구단쪽에 이야기해서 지명타자로 뛰면서 선발투수를 하거나.]
[선발투수를 포기하고 다시 마무리 전향해서 타격에 올인을 하는 거지.]
투 웨이라고는 하나 한쪽 포지션을 부담없는 쪽으로 진행하는 거다.
즉, 기존에 있던 시스템을 신우 역시 받아들이는 거였다.
‘선배님들 생각은 어떠세요?’
[네 결정에 따를 거다.]
[ㅇㅇ]
[이건 이미 우리끼리 이야기했음.]
[결국 네 의지가 중요한 문제임.]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 문제.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까 말이다.
‘동시에 해보고 싶습니다.’
어중간하게 할 생각이었으면 도전할 생각은 없었다.
[그 말을 기다렸다구-!!]
[크으-! 넌 가끔 사람 불타오르게 하더라.]
[가즈아-!!]
채팅창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후원이 도착했다.
【타이 콥님이 10000노잣돈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럼 왼손으로 바꾸자.】
신우는 순간 자신이 잘못 봤나 싶었다.
“예? 뭘 바꿔요?”
[우타에서 좌타로 바꾸자고.]
예상치 못한 일격에 신우는 할 말을 잃었다.